소설리스트

50화 (50/196)

50화

“그러도록 하마.”

고개를 끄덕인 공작이 집무실의의 자를 끌어당겨 앉았고, 손을 휘휘 저어 두 사람을 물렸다.

“그럼 두 사람은 이만 물러가도 록.”

“공작님께서도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푹 쉬시고요.”

“그래.”

공작이 선선히 대답했다. 자카리는 여전히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이엘리가 손을 잡고 끌어당기자 못 이기는 척 방 밖으로 나섰다.

방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공작은 작게 미소했다. 저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엘리는 초대장을 뽑기 시작했다. 공작성의 사람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서 금박 무늬까지 박았다. 친밀한 귀족들에게나 보내는 친필 서명을 일일이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웬 초대장이지?”

“아.”

펜을 쥔 채, 이엘리는 고개를 반짝 들어 올렸다. 햇빛을 등에 진 공작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게……”

“티파티를 열기로 한 게냐?"

공작이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려나. 이엘리는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그게, 자카리의 성인식을 치르면서 공작성 사람들이 너무 고생한 것 같아서요.”

“그렇다면 티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공작성의 사람들인가?”

“네, 그렇긴 한데.”

이엘리는 눈동자를 굴렸다. 법도에 맞는 일이 아니라면서 화를 내시면 어떡하지, 생각하던 때.

“……그렇다면.”

“네?”

“내게는 초대장을 안 주는 건가?”

그렇게 묻는 공작의 목소리는 조금 은 짓궂게 들렸다. 깜짝 놀란 이엘리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공작님도요?”

“그래. 역시 내가 참석하는 게 불편하다면……” 

“아니요, 불편한 게 아니라!”

이엘리는 와락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공작을 공략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공작이 먼저 물어봐 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공작의 눈치를 살피던 이엘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작님께서는 이런 파티를 좋아하 시지 않는 것 같아서…… 하지만 곧 드리려고 했어요.”

“내가 억지로 받아 가는 게 아니고?”

“그럼요! 제가 공작님을 얼마나 초대하고 싶었다고요!”

이엘리는 깜짝 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풋, 하는 작은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녀는 눈을 휘둥그렇게 떠 공작을 올려다보았다. 공작은 입가를 가렸 지만 웃음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구나. 고맙다.”

도대체 이 반응은 뭐지……? 하지만 공작이 자의로 참석해 준다고 하면 어쨌거나 좋은 일이다.

“공작님께서 이번 티파티에 참석해 주시면 전 정말 기쁠 거예요.”

그렇게 말한 이엘리는 조심스럽게 초대장을 내밀었다. 금박으로 장식 된 초대장에는 동글동글한 필체로 이엘리의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 공작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초대장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는 약은 꼬박꼬박 드시고 계세요?”

“그래.”

“자카리는 공작님의 기침이 줄어들었다고 했지만, 그래도 몸조심하셔 야 해요.”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공작은 선선히 대답했다. 이엘리는 눈동자를 굴렸다. 공작은 자신의 몸 상태가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솔직히 안색이 그다 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주치의도 찾아가 봤지만.’

주치의 또한 별말을 해 주지 않았다. 한숨을 삼키는 이엘리에게 때마 침 공작이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네가 온 이후로 공작성이 무척 잘 관리되고 있더구나.”

“예?”

“오랜만에 성안을 돌아보았다. 흠 잡을 곳이 없었어. 이만큼 잘 관리 된 성은 무척 드물지.”

연녹색 눈동자가 공작을 빤히 바라 보았다. 공작은 그런 그녀에게 차분 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모두 네 노력 덕분이겠지.”

“……공작님."

“언제나 네게는 감사하고 있다.”

공작성의 밝아진 분위기도, 자카리와의 관계도. 모두. 공작은 뒷말을 삼킨 채로 다시 말했다.

“이제 그만 가서 자카리도 티파티에 초대해 주거라.”

“네?”

“네가 준비하는 티파티 소식이 공작성 내에 이미 소문이 파다하거든.”

그렇게 말하는 공작의 목소리는 부드럽기만 하다. 이엘리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티파티에 대한 걸 일부러 비밀로 삼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미 소문이 다 퍼졌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 그녀석도 아마, 언제쯤 네가 저를 초대해 줄 건가 전전긍긍하고 있겠지.”

공작님, 이제 자카리도 신경 써 주시고 계신 거구나. 그녀는 양 뺨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 마세요.”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툭툭 이엘리의 어깨를 두드려 준 공작이 걸음을 옮겼다. 이엘리는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공작님, 확실히 많이 변하신 것 같아.’

어쨌거나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녀는 즐거운 기분이 되어 초대장에 마저 서명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모든 서명이 끝났다. 공작성의 사용인은 얼추 백여 명. 백 장의 초대장에 모두 서명을 넣으니, 펜을 쥔 손아귀가 욱신거렸다. 이엘리는 초대장을 모두 챙겨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우선 초대장을 나눠 줘 야 하는데……’

이엘리는 잠시 초대장을 받을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자카리와 메리는 직접 만나서 건네고, 다른 사람들은 건너 건너 주면 될 것 같았다. 초대장을 추스른 이엘리는 속 편하 게 생각했다.

‘음,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부터 주면 되겠지.’

그리하여 가장 먼저 마주친 사람은 바로 메리였다. 메리를 만난 이엘리가 초대장을 내밀었다.

“자, 메리. 초대장이야.”

메리는 그 초대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감동받은 낯이 되어 조심스럽게 초대장을 받아 든다.

“세상에…… 정말로 저희들을 초대하여 티파티를 여시는 건가요?”

“그럼. 내가 누군데.”

부러 잘난 척을 하면서 가슴을 쫙 펴자, 소중하게 초대장을 품에 넣던 메리가 까르르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저 작은 주인님보다 먼저 초대장을 받은 거네요?”

“응, 그렇긴 한데…… 왜?”

“아무것도 아니예요.”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얼굴 표정은 무척 흐뭇해 보였다. 이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때 짧은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상대는 바로 자카리였다.

“자카리?”

“이엔.”

자카리는 두 눈을 가늘게 뜬 채였다. 그대로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 오자, 메리는 승리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엘리는 어리둥절해졌다. 음, 자카리의 저 표정은 뭔가 심통이 난 건데. 도대체 왜?

“너무해, 정말.”

자카리가 불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당연하다는 양 이엘리를 품에 끌어안는다.

“뭐야, 뭐가 너무한데?”

어느새 그의 품에 폭 파묻힌 자세 가 된 그녀가 자카리를 올려다본다. 그 와중에도, 메리는 뿌듯한 얼굴로 초대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작게 웅얼거렸다.

“티파티 초대장 말이야.”

“그게 왜?”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이엘리는 자카리에게 되물었다. 자카리가 불쑥 고개를 치켜든다.

“어떻게 나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초대할 수 있어?”

……설마 너 그런 걸로 질투하니?

이엘리는 순간 기가 막혔다. 하지만 자카리는 나름대로 진지했다.

그녀가 공작성 사람들을 위해 티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은 퍼진지 오래였다. 게다가 이엘리가 초대장을 마련한다는 소식은 공작성 사람들에게 묘한 경쟁심까지 심어 줬던 것이다.

‘누가 먼저 아가씨에게 초대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런 주제의 경쟁심이었다. 비록 이엘리는 몰랐지만, 상냥하고 아름다우며 공정한 성품의 아가씨는 공작성 내의 인기인이었다.

그 말은 곧, 초대장을 빨리 받는 건 그만큼 아가씨에게 신뢰를 얻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자카리는 내심 자신이 제일 먼저 초대장을 받길 바랐다.

'치사하게 아버지가 이엘리를 직접 찾아가 초대장을 받아 올 줄은 몰랐 지.’

자카리는 잔뜩 미간을 좁혔다. 그래도 두 번째 초대장은 자신이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초대장이 이엘리의 개인 시녀에게 넘어갈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난 네 남편이잖아. 당연히 제일 먼저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저기, 자카리. 지금 그런 문제로 질투하는 거야?”

어린애도 아니고…… 이엘리는 차마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자카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하지!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데!”

“그, 그런 거니?”

“그런 거야!”

단호하게 대답한 자카리가 홱 고개를 돌렸다. 초대장을 살펴보던 메리에게 곧장 질문을 한다.

“메리, 네 생각은 어떤가?”

“맞아요. 초대장을 먼저 받는 건 역시 중요한 문제죠.”

이엘리는 황망해졌다. 메리까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거다. 게다가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리고 전 작은 주인님보다도 먼 저 초대장을 받았죠.’

비록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아도 그런 말이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자카리는 이제 상당히 서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그 정 도로 중요하단 말이야? 그녀는 기가 막혔다.

“저기, 그렇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 하지 못했어. 마음 풀고……”

하지만 어쩌겠나, 좀 더 어른스러운 쪽이 상대방을 관대하게 받아들여 줘야지. 이엘리는 한숨을 삼키며 남편을 달래 주었다. 손을 들어 자카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자, 그 가 중얼거렸다.

“그럼 티파티를 할 때.”

“응?”

“내가 네 바로 옆자리에  앉을 거야.”

”……”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걸 약속 받기라도 하는 양, 그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네가 애냐?’

그럼에도 자카리가 귀엽게 느껴진 다는 게 가장 신기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날이 잘 선 칼날처럼 냉랭 하게 구는 주제에, 그녀 앞에서는 커다란 강아지처럼 군다. 이엘리는 픽 웃어 버렸다.

“그래, 마음대로 해.”

“약속한 거야.”

“그래, 약속.”

그제야 자카리는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푸른 눈동자가 곱게 휘어졌다.

“티파티, 무척 기대된다.”

“으응……”

이엘리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생긴 건 무슨 겨울의 귀공자 같은 주제에, 저렇게 해맑게 웃는 건 미모 낭비 아닌가. 그녀의 남편은 지나치 게 귀여운 게 문제다. 이엘리는 한 숨을 쉬었다.

그 이후 티파티 당일 아침이 되었다. 카페 로랑에서 주문한 티푸드들 이 공작성에 바리바리 배달되었다.

카페 사람들은 피곤한 얼굴로 티푸드들을 납품하며,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방장님께서 저희 카페에 직접 찾아오셔서 얼마나 놀랐다고요.”

언뜻 건너 듣기로, 울상이 된 카페 로랑의 주인이 찾아와 집사에게 하소연을 했다고 들었다.

“아니, 이럴 거면 굳이 카페 로랑에서 티푸드를 따로 주문할 이유가 없었잖아.”

이엘리는 다소 황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애초에 그녀가 티푸드를 따로 주문 한 이유는 부엌 하녀들과 주방장에게 따로 노동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듣기로, 부엌 식구들은 이엘리가 카페 로랑에서 주문을 넣자 마자 바로 카페에 내려가 요리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맛있기에 아 가씨께서 이 카페에서 티푸드를 주문하신 거야?’

울분에 찬 주방장이 그렇게 외쳤다고 메리가 그렇게 귀띔해 주었다. 이엘리는 좀 피곤해졌다.

‘어째 오해를 단단히 산 것 같지만.’

그 오해를 풀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뭐, 맛있는 레시피를 더 배워 오면 나야 좋지.

이엘리는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러나 티파티는 이엘리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고 있었다.

‘……난 그냥, 공작성 사람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간소하게 진행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엘리는 피곤한 얼굴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째 그녀보다도 공작성 사람들이 훨씬 더 티파티에 열정적인 것 같다. 의자를 착착 내려놓고, 고급 식기들을 늘어놓는다.

‘이건 너무 본격적이잖아?!’

향기로운 꽃이 가득 꽂힌 꽃병과 은 접시, 고급 도자기 찻잔. 게다가 기대감에 가득 차 반짝거리는 눈동자들.

다들 원래부터 티파티에 이렇게 열정적이었나. 이엘리는 혼란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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