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196)

7 화

“크라바트가 조금 비뚤어졌네. 네가 직접 맨 거야?”

“으, 응……”

자카리는 머쓱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을 가늘게 뜬 이엘리가 손을 뻗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목 언저리에 닿는 순간, 소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가 조곤조곤 설 명을 했다.

“이건 이렇게 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어머니가 아버지의 크라바트를 매 주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는 크라 바트를 다시 정돈했다.

“자, 다 됐다.”

“……고마워.”

자카리는 수줍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엘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흠, 아직 어린데도 훤칠한 모습이네. 옷걸이의 중요성을 내 남편에게서 배우게 되다니.

“그럼 이만 가자.”

이엘리가 한 걸음 앞서 걸었다. 자카리는 느린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걷는 건 괜찮아? 부축해 줄까?”

그녀가 자연스럽게 어린 남편의 팔짱을 꼈다. 손이 닿는 순간, 자카리는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역시 이편이 낫겠네. 다녀올게, 메 리.”

하지만 자카리가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이엘리는, 메리를 향해 인사를 남겼다.

“다녀오세요, 아가씨. 작은 주인님 도요.”

“응, 이따 보자.”

발랄한 인사는 이엘리, 어딘가 뚱 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는 쪽은 자카리였다.

두 사람은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한 쌍의 인형 같은 두 소년 소녀를 보면서, 메리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정말 잘됐어.’

두 사람이 서로 친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까칠한 작은 주인님께서 아가씨를 직접 데리러 오실 줄이야!

메리는 곧장 돌아섰다. 이 놀라운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해 줄 요량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곁에 선 자카리의 가라앉은 분위기에, 이엘리는 의아해졌다.

‘아니, 왜 갑자기 기분이 축 처졌지?’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꽤 기분이 좋아 보였는데. 그때 자카리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그렇게 하녀와 친해진 거야?”

“응? 굳이 따지자면 최근에?”

두 눈을 굴리던 이엘리가 문득 자카리를 돌아보았다. 아, 설마?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자카리. 설마 너 질투하나?”

당연히 펄펄 뛰며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자카리는 여전히 뚱한 얼굴이다. 응? 이 반응은?

“……자카리?”

“저기, 대답 좀 해 줄래?”

하지만 그는 집요하게 침묵을 지켰 다.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였으면 좋겠어.

차마 그 말은 꺼내지 못하고, 자카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목에 맨 크라바트가 이상하게 답답했다.

‘아무래도 이거 질투하는 것 같은 데. 내 남편, 너무 귀엽잖아?’

이렇게 흐뭇할 수가. 마치 강아지 같잖아? 이엘리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뾰로통한 자카리를 약간 놀려 줄까하던 그녀는, 그냥 화제를 전환하는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

“걷는 건 괜찮아? 부축해 줄까?”

“아냐, 목발이 있으니까 혼자 걸을 수 있어. 그런데……”

자카리는 잠시 망설였다. 하녀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 방금 전 그녀가 머무르고 있던 그 방은.

“……지금까지 너, 손님방에서 머 무르고 있었던 거야?”

자카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게 가라앉았다. 이엘리는 자신의 단 하나뿐인 아내였고, 당연히 가족들이 머무는 안채에서 거주해야 했다. 지 금 대우는 명백히 그녀를 무시하는 태도였다.

‘전혀 몰랐어. 설마 나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고 있던 건가.’

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껏 그가 몸이 안 좋았기에, 그녀의 방에 올 일이 없어서 몰랐다.

하지만 이엘리가 먼저 자신에게 말 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으니, 그 가 먼저 신경을 썼어야 하는 문제인 건 변함없었다.

그러나 이엘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려 보일 뿐이었다.

“뭐, 공작님께서 날 그리 환영하지 않으시는데 어쩌겠니.”

“그건……”

자카리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 표정을 지켜보던 이엘리는,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또 표정이 어두워지네.”

“이엘리.”

“네 탓 아니야, 내가 황녀님 대신 시집와서 그래.”

자카리의 멘탈은 자카리처럼 연약 해서, 살펴 주지 않으면 바삭바삭 부스러진다. 그녀가 말했다.

“그보다 내가 말했지? 넌 웃는 얼굴이 제일 잘생겼다고.”

“그럼 여기서 네가 지어야 할 표정은?”

자카리는 대답 대신 어색하게나마 웃어 보였다. 짜식, 말도 잘 듣네. 누구 남편인지 신수가 훤하기도 하 다. 그녀는 힘내라는 뜻으로 그의 등을 탁탁 쳐 주었다. 어느새 식당이 지척이었다.

식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숨이 턱 막혔다. 긴 테이블 끝, 의자에 기대 앉은 공작이 나른한 얼굴로 그들을 마주 본다.

새파란 눈동자가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턱을 까닥이며 의자를 가리켰 다.

“다들 앉거라.”

왔느냐는 형식적인 인사조차 건네 지 않았다. 이엘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리에  앉으며, 그녀는 힐끔 소년을 곁눈질했다.

그는 방금 전까지의 편안한 표정은 간데없이, 냉정한 얼굴이었다.

“자카리. 표정이 그리 좋지 않구나.”

“아버지께서 절 보실 때마다 불쾌 해하시는 것을 압니다.”

공작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평소 자신의 말에 가타부타 말조차 붙이지 않던 아들이었다.

거의 처음으로 속내를 언급한 것이다. 의자에 앉은 자카리는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말을 이었다.

“그러니 자식 된 도리로 제가 어찌 홀로 즐거워하겠습니까.”

“그래?”

공작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서렸다. 냉랭한 눈동자로 아들을 바라보며 공작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요새 꽤나 즐거워 보이는 것 같던데 말이 지.”

“황가에서 붙인 저 아이와 꽤나 친해진 걸로 아는데, 아닌가?”

자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작은 그를 싫어한다. 그랬기에 함부로 공작의 말을 긍정할 수가 없었다.

이엘리는 처음으로 만난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피해를 입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대답하지 않는구나.”

“아버지께서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공작의 채근에 자카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공작은 두 눈을 가늘게 치떴다.

“그 말은 곧, 내 마음대로 생각해도 된다는 뜻인가?”

“아니요.”

하인이 다가와 자카리의 의자를 빼 주었다. 고개를 가로저은 자카리가 허리를 세우고 단정하게 앉았다.

서로를 꼭 닮은 무표정한 시선이 상대방을 잡아먹을 듯 바라본다. 소년은 웃었다.

“제가 뭐라 대답한다 한들, 아버지께서는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생각할 거라는 뜻이지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공작은 살짝 눈썹을 들어 올렸다. 마침 하인이 들어와 수프를 날라 주었다.

“다들 음식을 들지."

공작이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제 대로 식사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작은 식기엔 손도 대지 않은 채 아들을 응시했고, 자카리 또한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고소한 냄새가 풍기던 따끈한 수프 가 미지근하게 식었다. 이엘리는 먹는 둥 마는 둥 스푼을 내려놓았다.

‘이거, 물만 마셔도 체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그녀도 이렇게 불편한데, 자카리는 그 심정이 어떨 것인가.

잠시 후, 손도 대지 않은 수프 그릇들이 치워졌다.

메인 요리가 식탁에 오른다. 아침이기에 가벼운 음식으로 준비했는지, 메인 요리는 생선이었다. 부드럽 게 조린 농어 위로 크림소스를 올린 요리는 굉장히 맛있어 보였다.

‘……자카리는 괜찮을까?’

포크를 들던 그녀는 걱정스럽게 자 신의 남편을 곁눈질했다. 은빛 속눈썹 아래, 고요히 침묵하는 짙푸른 눈동자.

식기를 들고 있는 자세 또한 흔들 림 없다. 하지만. 그녀는 한숨을 삼 켰다.

‘저 애,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는 데.’

솔직히 자카리는 정찬에 나을 정도 로 몸이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다. 비록 겉으로는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을지라도, 분명 저렇게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들 것이다.

곁에서 그의 상처를 치료했던 이엘리였기에 잘 알고 있었다.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저, 공작 각하.”

공작이 서늘한 시선으로 이엘리를 마주 보았다. 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네.

하지만 이왕 저지른 김에 그녀는 공작을 버리고, 자카리에게 점수를 따기로 결심했다.

“소공작께서는 조찬 자리에  나서기 에는 아직 몸이 불편하십니다. 그러니……”

“그러니?”

“소공작께 아량을 베푸시어, 편하 게 앉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될 대로 되라,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이엘리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하지만 공작은 비스듬히 고개를 기 울일 뿐이다.

겨울 하늘처럼 새파란 눈동자가 가 늘어지며, 공작은 느긋하게 답했다.

“괴물을 공작가의 후계로 받아들여 주었는데, 저 정도는 응당 버텨야 하지 않겠나.”

또 나왔네. 저 괴물 드립. 순간 화 가 치밀어, 이엘리는 미간을 구겼다. 자카리를 흘끔 돌아봤다. ‘괴물’이라는 말이 듣기 좋을 리 없는데도, 소년은 그저 그 말을 감내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난 저 괴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라고? 그런 의미를 담아서, 그러나 최대한 공손한 눈빛으로 이엘리는 공작을 마주 보았다.

“그런데도 넌 저 아이와 친밀하게 지낼 생각이냐?”

순간 자카리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절박한 눈동자가 그녀의 얼 굴을 집요하게 바라본다.

‘안 돼, 말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만약에 그녀가 ‘아니오’라고 대답 한다면, 그때의 나는? 자카리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엘리는 그에게 있어 단 하나의 온기이고 기적이었다. 얼음으로 짜 올린 세계는 이제 싫었다.

“내 미움을 살지도 모르는데도?”

마치 그녀를 시험하듯 공작이 물었다. 순간 연녹색 눈동자에 확 불이 붙었다. 그녀가 답했다.

“공작님께서 지금 보이시는 행동은 치졸하십니다.”

공작에게 보이는 대답치고는 상당히 거친 목소리다. 하지만 화가 났 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공작님께서는 북부의 군주이시자 제국 유일의 공작이십니다.”

……”이렇게 내 멋대로 지껄이면, 정말로 내 목의 안위가 위태로워질 것 같은데.

이엘리는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 고 말하려 노력했다. 물론 찰나의 노력이었지만. 아니, 화나는 걸 어떡

해?

“무릇 권위는 그만한 아량과 관대함을 가지고 내세워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야 아랫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어요. 하지만 공작께서는 그것들은 전혀 없이, 권위만을 내세우고 계십니다.”

이엘리는 도전적으로 공작을 바라 보았다. 의외라는 것처럼, 공작은 이엘리를 빤히 마주 보았다.

“지금 공작님께서는 하나뿐인 아드님을 위험한 전투에 수도 없이 내모시고, 괴물이라 칭하고 계십니다. 아드님에 대한 책임감, 아버지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아량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자카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어? 당신이 낳은 거잖아. 그렇다면 최소한의 책임감은 갖고 있어야 할 것 아냐? 아빠가 된 주제에 자식을 앞장서서 학대하다니, 사람이 할 짓이야?

“또한 공작님께서는 아드님의 아내인 제게 물으셨습니다.”

손도 대지 않은 농어 요리가 차갑 게 식어 갔다. 그녀는 숨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공작님의 미움을 살 수도 있는데 도, 아드님과 친밀하게 지낼 생각인지 말입니다."

순간 자카리의 시선이 절박하게 그녀의 얼굴을 훑고 지났다. 이엘리는 그런 자카리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마음, 이해한다. 버림받는 것에 익숙하다 하여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닐 테니까.

‘걱정하지 마, 자카리. 난 널 버릴생각 따위 절대로 없으니까.’

이엘리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공작 과 시선을 맞추었다.

“공작님의 물음은 제가 아드님과 친밀하게 지내지 말 것을 강요하시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불만스러운가?”

“네, 불만스럽습니다. 전 제 남편을 아끼고 존중할 생각이니, 그런 협박 은 듣고 싶지 않아요.”

……나 이제 파혼당하는 거 아냐? 할 말을 모두 쏟아 냈더니 그제야

약간 걱정이 됐다. 이엘리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래도 너무 막 나간 것 같다. 그때, 공작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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