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말고 니 형-76화 (76/77)

제76화. 사랑의 서약

2018.10.24.

줄리아나 코리아 파티에서 공개적으로 지연에게 프러포즈를 했던 수현.

태규를 몰아내기 위한 덫을 놓은 파티이긴 했지만 지연을 위한 파티이기도 했다.

수현은 그날 이후 지연과의 결혼식을 구상했다.

지연이 줄리를 찾게 된 기쁨을 누리는 동안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결혼식을 의미 있게 치러줄까를 고민했다.

로즈는 한국에서 한 번, 미국에서 한 번 파티 형식으로 열 것을 조언했다.

한국에선 지연을 위한, 미국에선 수현과 줄리아나 기업을 위한.

결혼식이란 게 당사자 간의 언약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집안과 가업의 중요한 행사이기도 하니까.

수현은 지연 모르게 전문 플래너들과 상담을 하기도 했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 이제 막 유치원에 적응하는 줄리를 돌보느라 정신없는 그녀를 위해 어느 정도의 아웃라인을 갖춘 후 상의를 하려고.

그런데 줄리의 ‘동생 사건’이 생기며 생각이 바뀌었다.

지연이 임신했다는 말이 퍼지며 지연의 갤러리도 수현의 회사도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로 확인과 축하 전화에 시달렸다.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는지 화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배달된 꽃다발과 꽃바구니들.

수현의 위치가 일반적인 위치가 아니다보니 직원들뿐 아니라 관련 업체에서까지 어떻게든 눈에 들어보려 경쟁적으로 보낸 것.

그때 수현은 생각했다.

앞으로 결혼식을 하든 아이를 낳든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되겠다는.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런데,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 결혼식을 하면 어떻게 될까.

안 그래도 성대하고 화려한 결혼식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는 찰나, 비록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됐지만 동생 얘기가 나오며 줄리가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동생이 생기면 친딸이 아닌 자신은 아빠 엄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어이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그런 줄리를 바라보는 지연은 또 가슴 아플 수밖에 없고.

말로는 얼마든지 줄리를 달랠 수 있다.

‘동생이 생기더라도 우리는 줄리를 너무너무 사랑할 거야.’

하지만 어떤 달콤한 말을 해준들 몸소 보여주기 전까지 줄리의 불안은 계속될 것이다.

수현은 결심했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정신없는 결혼식이 아닌 외부 사람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 결혼을 올릴 것을.

그리고 결혼식을 통해 줄리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줄 것을.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결혼의 방법은 이거였다.

어느 밤, 도망치듯 떠난 데스티네이션 웨딩.

*

데스티네이션 웨딩이란 특정한 나라, 도시, 섬 등으로 떠나서 올리는 결혼식을 말한다.

수현과 지연의 가족과 친구를 태운 비행기는 북태평양의 동쪽에 있는 천상의 섬 하와이에 도착했다.

수현은 갑작스럽게 떠나도 부족한 것 없이 모든 걸 준비할 수 있는 하와이를 최적의 장소로 생각한 것.

오아후에서 동북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아름다운 한 프라이빗 하우스가 나온다.

그곳은 바닷가 바로 옆에서 결혼식과 애프터 파티를 올릴 수 있고 외부 사람들은 통제가 되어 그야말로 그들만의 잔치가 가능하다.

수현과 지연은 갑자기 떠나온 만큼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고려해서 당장 오늘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하루 만에 결혼 준비가 가능할까?

“저도 이제 늙었거든요? 제가 요술 램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수현이 탄 전세기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로버트가 불만을 토로했다.

그가 미리 와서 수현의 슈트부터 지연의 웨딩드레스, 케이터링 음식까지 완벽히 세팅해놓은 것.

“전 이제 로버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지연의 애교 섞인 감사에 로버트는 또 스르르 녹아버렸다.

전세기라지만 8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함을 느낄 하객들을 위해 오전과 오후 시간은 휴식을 취하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이른 저녁으로 결혼식 시간을 잡았다.

그 시간 동안 수현과 지연은 결혼식을 위한 단장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또 줄리가 걱정이었다.

생전 처음 타본 전세기에 줄리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다시 표정에 우울감이 비췄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

이제 정말 수현과 지연이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니 동생이 생긴다는 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

로버트가 급조해온 아티스트 팀이 오늘의 주인공 지연을 전담 마크하는 동안 수현은 줄리를 데리고 바닷가로 향했다.

하와이의 바다는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선물 그 자체였다.

이 세상 그 어떤 물감으로 이 환상적인 푸른빛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경이로운 바다를 바라보며 수현은 줄리에게 물었다.

“줄리야, 잠시 후에 아빠랑 엄마가 결혼하는 건 알아?”

그녀는 발로 와이키키 해변의 모래를 톡톡 차며 소심하게 끄덕였다.

“네…….”

“그럼 줄리가 결혼식 때 뭘 해야 하는지도 알아?”

“알아요…… 미국에서도 결혼식 가봤고 영화에서도 봤고.”

“뭘 해야 하는데?”

줄리는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입술을 툭 내밀었다.

“신부가 들어가기 전에 꽃 들고 먼저 앞장서서 꽃잎 뿌리거나 그런 거 하겠지.”

그녀는 화동(花童)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보통의 결혼식에선 줄리 또래의 아이들은 신부를 안내하고 버진 로드에 꽃잎을 뿌리는 역할을 한다.

수현은 무심하게 툭 뱉는 그녀의 말투가 귀여워 웃음이 터지려 했다.

그는 해변을 걷던 발길을 멈추었다.

옆에서 걷고 있던 줄리도 따라 멈추었다.

수현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옆에 두고 눈부시게 하얀 백사장 위에 무릎 꿇었다.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는 모래 위로 툭 고개를 떨어뜨린 그녀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작은 두 손을 잡았다.

“줄리야…….”

수현이 다정하지만 진지함이 섞인 음성으로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네?”

“이따 결혼식 때 우리 줄리에게 부탁할 게 있는데 해주겠니?”

“화동이요?”

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거 말고.”

아니라는 수현의 말에 줄리의 눈망울이 허공을 향했다.

“그럼 뭐지?”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앞에는 석양빛에 물든 붉은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뒤로는 코울라우 산맥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하늘엔 백색 구름이 물감 번진 수채화처럼 붉은색과 파란색이 흩뿌려졌다.

이 천혜의 풍광은 한마디로 지상 낙원이었다.

그 지상 낙원 바로 앞에 자리한 로코코 양식의 작은 전당으로 하객들이 모여들었다.

관능미와 여성미가 더해진 작지만 아름답고 경건한 전당 안에서 그들은 감히 작은 감탄사조차 내뱉지 못했다.

신성함 그 자체였기에.

그 전당 안에서 바라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바다는 삶의 고단과 피로, 먹먹함, 우울함 그리고 쓸쓸함을 한순간에 녹여버렸다.

하객들은 새롭게 태어난 듯 깨끗하게 정화된 마음으로 오늘의 주인공들을 기다렸다.

전당 가운데 자리한 동그란 단상 위로 나이 지긋한 백발의 목사가 올랐다.

오늘, 수현과 지연의 결혼을 증인할 주례자였다.

잠시 후 잔잔한 음악 소리에 맞춰 수현이 입장했다.

그는 까만 웨딩 슈트에 까만 보타이로 평소의 그다운 클래식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웃음과 긴장을 입가에 동시에 품고서 당당히 단상 앞으로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 지켜보던 하객들은 커다란 박수와 함께 환호를 보냈다.

애런의 추임새도 빠지지 않았다.

“신랑 멋지다!”

이번엔 결혼식의 하이라이트 신부 입장.

하얀 실크로 이루어진 버진 로드 끝에 지연이 섰다.

그녀는 화려한 보석 티아라 대신 데이지 꽃으로 장식한 화관을 쓰고 길고 넓은 롱 드레스 대신 정강이까지 오는 깔끔한 화이트 드레스로 고귀한 신부로 탄생했다.

그녀 옆에는 긴장으로 바짝 굳은 봉수가 서 있었다.

인생의 전부라고 여겼던 소중한 딸 지연.

그런 그녀를 보내는 아비의 복잡한 심경이 안면 가득 묻어 있었다.

하지만 저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듬직한 사위를 보며 그는 최선을 다해 미소 지었다.

지연은 아빠의 팔짱에 살짝 손을 걸치고 두 사람을 리드할 화동 줄리를 보았다.

리틀 지연처럼 그녀와 똑같은 화관에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지연과 봉수 앞에 선 줄리.

꽃잎 가득한 바구니를 손에 든 줄리는 야무지게 입술을 다물고 첫 걸음을 내디뎠다.

‘파헬벨의 캐논’이 연주되었다.

부드러운 선율에 맞춰 줄리는 꽃잎을 뿌리며 버진 로드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지연과 봉수가 천천히 그녀 뒤를 따랐다.

활기차고 웃음이 넘쳤던 신랑 입장과는 달리 줄리를 앞세운 신부의 입장엔 경건함이 흘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객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찬 박수 대신 촉촉해진 눈빛으로 그녀의 입장을 지켜보았다.

희한하게도 꽃잎을 날리는 줄리의 표정엔 오전까지만 해도 보였던 우울함이란 없었다.

밝고 환하고 생기가 흘렀다. 그녀가 흩뿌리는 꽃잎들처럼.

심지어 애런 삼촌을 향해 윙크를 하는 여유까지.

씩씩한 화동의 뒤를 따르다 보니 지연은 어느새 수현 앞에 이르렀다.

화동 줄리가 한쪽으로 빠지고 수현과 가벼운 포옹을 나눈 봉수도 버진 로드를 비껴났다.

이제 단상 앞엔 수현과 지연이 있을 뿐이다.

수현은 아름다운 신부 지연의 손을 잡고 동그란 단상 위로 올랐다.

“지금부터 신랑 진수현 군과 신부 송지연 양을 위한 인생의 조언을 시작하겠습니다.”

신랑 수현과 신부 지연을 위한 목사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 아닌 가장 친한 친구가 되라고 했다.

남녀의 사랑엔 유효 기간이 있다지만

친구들의 우정엔 유효 기간이 없습니다.

오래된 사랑은 무뎌지지만

오래된 우정은 묵어갑니다.

결혼이란 사랑하는 두 남녀의 결합이지만

부부란 인생이란 길을 함께 가는 동지의 결합입니다.

운명 같은 사랑이라 믿지 말고

운명 같은 삶을 만들어가길.

아름다운 두 남녀여,

뜨겁게 사랑하는 남녀가 아닌

끈끈한 의리를 가진 친구가 되소서.

이 세상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그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끈끈한 친구.

그대들의 영원한 우정을 기원합니다.

불꽃같은 사랑보단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사랑을 하라는 말씀이었다.

수현과 지연은 깊은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하며 그 말씀의 의미를 가슴에 새겼다.

자 이제……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 사랑의 서약을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신랑과 신부에게 사랑의 서약을 받아야 할 목사가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하객들은 의아한 눈으로 목사를 보았다.

‘왜 그냥 내려가지?’

그때 화동 역할을 끝내고 가장 앞줄에서 결혼식을 보고 있던 줄리가 대신 단상 위로 올라왔다.

하객들은 또 다시 의아했다.

‘엥? 줄리?’

키가 작은 그녀를 위해 목사는 그녀 앞으로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줄리는 의자에 올라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의식하며 가슴 깊이 심호흡을 했다.

‘잘해내야 해.’

그녀 앞에 서 있는 사랑하는 엄마 지연과 눈을 맞췄다.

그리고 결혼식 전, 해변에서 나누었던 수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

.

“이따 결혼식 때 우리 줄리에게 부탁할 게 있는데 해주겠니?”

수현은 생기 없이 처져있는 줄리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줄리는 긴 속눈썹을 깜박였다.

‘화동 말고 부탁할 게 또 있나?’

수현은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그녀와 눈동자를 맞추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빠랑 엄마가 사랑의 서약을 할 때 목사님 대신 우리 줄리가 물어봐줬으면 좋겠어.”

“왜요?”

“아빠와 엄마가 사랑하게 된 이 모든 기적은 줄리 때문이니까.”

나 때문에?

수현은 수많은 의문을 담고 있는 그녀의 눈망울을 보며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사실 아빠랑 엄마는 줄리 때문에 만나게 됐어.”

뉴저지의 언덕에서 지연이 소리쳤다.

‘난 문태규의 애를 키운 여자다!’

수현은 당시 술에 취한 그녀가 꼬인 발음으로 말한 ‘문태규’를 ‘몬테규’로 오인했다.

아마 그 오해가 없었다면 수현이 그녀를 동생인 애런 몬테규의 여자라고 오인하지 않았을 것.

그리고 ‘애를 키운 여자’라는 말을 안 했다면 그녀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테고.

“아빠가 한국에 와서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줄리 때문이야.”

수현이 빨간 지붕 집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 몰래 들어와 있던 줄리를 발견했다.

그때 지연이 줄리를 찾으러 빨간 지붕 집으로 들어왔고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한국에서 재회하게 됐다.

“만약 그때 줄리가 그 집에 몰래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빠는 엄마를 다시 못 만났을걸?”

듣고 있는 줄리의 눈동자가 점점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일을?’

“그리고 엄마랑 줄리가 봉수 할아버지 집에서 쫓겨났을 때 줄리가 춥다고 안 했으면 엄마가 빨간 지붕 집으로 들어와 살 생각을 안 했을 거야.”

봉수는 유학을 보내놨더니 미혼모가 돼서 돌아온 지연을 줄리와 함께 내쫓았다.

한 겨울, 돈도 없고 갈 데도 없던 지연은 추위에 떠는 줄리 때문에 할 수 없이 수현의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아빠한테 마음을 주게 된 것도 줄리 때문이었대.”

어느 아침, 잠에서 깨니 창밖에서 아이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창문 밖을 보니 수현이 줄리를 목말 태워 마당을 달리고 있는 것.

까르르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재밌어 하는 줄리의 행복한 웃음에 지연은 눈물을 흘렸다.

아빠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줄리와 마치 아빠처럼 함께 놀아주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처음으로 수현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됐다.

“사실 아빠가 엄마에게 반했던 순간도 엄마가 줄리와 함께 있었을 때였어.”

그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한 손으론 줄리를 잡고 한 손으론 자기 덩치만 한 짐을 들고 씩씩하게 걸어가던 지연.

그 여자에 대한 짠한 감정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르며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랑으로 이어진 것.

“그러니까 아빠와 엄마에게 줄리가 없었다면 우리에겐 만남도 사랑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없었을 거야.”

수현의 말을 듣고 있는 줄리의 가슴이 크게 들썩거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의 사랑은 다 나 때문이었구나.’

기쁨에 찬 나머지 흥분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우울함이 사라지고 다시 아이다운 생기가 춤을 추었다.

그제야 수현은 정말로 하고팠던 얘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줄리야…… 아빠 엄마에겐 줄리를 대체할 수 있는 아기는 존재하지 않아.”

“…… 진짜요?”

“줄리 너는 우리 사랑의 시작이자 원인이자 이유이자 모든 것이야. 그러니까…….”

수현은 부끄러움에 장밋빛으로 얼굴을 붉힌 그녀의 턱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앞으로 어떤 아기가 태어나든 우리에겐 줄리가 가장 소중한 존재야.”

서운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버렸다.

모든 걱정이 훨훨 날아가버렸다.

앞으로 생기게 될 동생은 이제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난, 아빠 엄마의 사랑을 이어준 가장 중요한 아기니까.

.

.

.

줄리는 수현과 지연의 사랑의 서약을 받기 위해 두 사람 앞에 섰다.

그녀는 먼저 수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사의 음성으로 물었다.

“신랑 진수현 군은 신부 송지연 양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습니까?”

“네!”

수현의 우렁찬 대답 소리가 와이키키 해변에 퍼져나갔다.

줄리는 이번엔 사랑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신부 송지연 양은 신랑 진수현 군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습니까?”

또박또박 외운 것을 낭독하는 줄리가 너무 귀여워 지연은 픽, 웃어버렸다.

하지만 곧 진중한 표정을 하고 자신 있게 외쳤다.

“네!”

사랑의 서약이 끝났다.

이제 수현과 지연은 부부가 됐다.

한 가지 의식만 더 치르면 두 사람은 완전한 부부로 다시 탄생한다.

줄리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두 사람 이제 키스하세요.”

수현은 수줍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지연을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진짜 내 여자…….’

지연도 사랑을 반짝이며 그녀를 보고 있는 수현을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내 남자…….’

수현이 그녀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갔다.

두 손을 올려 그녀의 얼굴을 보듬듯, 따뜻하게 감싸 쥐었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수현은 서두르지 않고, 하지만 멈추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그녀의 빨간 입술이 그의 입술 앞에서 수줍게 떨렸다.

그는 순결하고 순수한 신부의 입술을 제 숨결로 감싸 안았다.

깊고 진한 키스가 시작되었다.

사랑의 서약을 끝낸 두 사람의 첫 번째 키스였다.

적당한 바람이 그들을 스쳤다.

은은한 파도 소리가 귓가에 전율했다.

두 사람의 키스는 달콤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아름다운 밤이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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