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말고 니 형-71화 (71/77)

제71화. 다시 찾은 행복

2018.10.06.

파티가 벌어지기 두 시간 전,

수현은 파티장으로 향하기 앞서 먼저 줄리가 있는 가회동의 빌라를 찾았다.

물론 태규는 없었고 수현이 고용한 도우미 아줌마와 줄리만 집에 있었다.

수현은 도우미 아줌마에게 당부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지금까지처럼 문태규에게는 아무런 말씀하시지 말고 오늘 밤 문태규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에 아동 폭력이 일어났다고 신고하세요.”

태규가 오늘 밤 집에 와서 무슨 짓을 하던 일단 무조건 신고부터 하라는 의미.

아줌마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수현은 이번엔 줄리에게 말했다.

“줄리야, 드디어 오늘 악몽에서 깨어나는 거야. 악몽에서 깨면 누가 있다고 했지?”

그녀가 입술을 조물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연과 오랜 시간 보지 못하며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이었다.

“엄마…….”

“그래, 하지만 꿈에서 깨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어?”

“솔직해야 한다고…….”

그녀는 아빠의 거친 행동을 지연에게 말하면 앞으로 평생 지연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태규의 협박에 세뇌를 당한 상태였다.

수현이 줄리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

쥐가 위태로운 상황이 오면 마지막 발악처럼 고양이를 물 듯 줄리도 절박감을 느껴야 태규에게 반항이란 걸 할 수 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수현은 태규를 자극하기 위해선 이제 줄리를 폭력으로 절대 길들일 수 없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줄리야, 아빠가 나쁜 행동을 할 땐 절대 굴복하면 안 돼.”

대신 조금이라도 그녀가 위험한 상황에 놓이지 못하도록 도우미 아줌마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우리 줄리, 단 한 대도 맞지 않도록 막아주세요. 제가 최대한 빨리 오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에게 당부를 하고 파티장으로 향했다.

수현에게 오늘 이 파티장은 파티장이 아니었다.

달콤한 프러포즈가 있는 로맨틱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악마를 덫에 가두는 아슬아슬한 사냥터이기도 했다.

파티장에서 벌어질 태규를 자극하는 모든 장면들은 수현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상황들이었다.

그를 강 회장과 민희와 같은 테이블에 앉힌 것.

애런이 그를 배신했다고 느끼게 하는 멘트들.

지연을 파티장에서 가장 화려한 여자로 만든 것.

진심이긴 하지만 보란 듯이 태규 앞에서 지연에게 프러포즈한 것.

그가 원하는 대로 술을 가져다 준 것.

만취한 그가 행패를 부리도록 유도한 것.

굴욕적으로 파티장에서 쫓아낸 것.

그의 차와 기사를 뺏어버린 것.

그가 차를 탈취하게 유도한 것.

음주운전을 하게 만든 것.

집에 와서 본성을 드러내 줄리에게 폭력성을 보이게 한 것.

그리고 가장 극적인 순간 집으로 들어가 그를 저지한 것까지.

하지만 수현은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이 만든 한 편의 잘 짜인 시나리오라는 걸 숨기고 경찰관 앞에서 오로지 팩트와 합법적 진술로만 답했다.

“먼저 제 약혼녀 송지연 씨는 접근 금지 명령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수현의 말에 태규가 괴성을 내지르며 반발했다.

“말도 안 돼! 내 집으로 쳐들어와 줄리를 안았잖아!”

수현은 태규를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내 집이라니? 그거 지연이 집인데?”

태규가 수현의 말에 반박했다.

“그 집은 애런이 나한테 준 집이야. 어떻게 그 집이 송지연 집이야?”

수현은 이번엔 경찰관을 보며 말했다.

“확인해보시죠. 정확히 세대주는 송지연입니다.”

경찰관은 컴퓨터로 문제가 되고 있는 집의 등기를 확인했다.

“세대주가 송지연 씨 맞는데요? 두 달 전에 구입한 걸로 돼 있네요.”

“제가 제 약혼자 송지연 씨에게 결혼 선물로 증여했습니다. 자기 집에 자기가 갔는데 그게 어떻게 줄리에게 접근한 겁니까? 냉정히 말하면 송지연 씨는 아빠 문태규 때문에 싸구려 모텔을 전전해야 하는 줄리가 안타까워서 문태규의 불법 가택 점거를 눈감아주고 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지연도 몰랐던 일.

그녀도 놀라 수현을 쳐다보자 그가 그녀의 손을 꾹 눌렀다.

가만히 있으라는 뜻.

수현이 조금 더 신빙성 있는 증언을 첨가했다.

“신혼집으로 꾸미기 위해 제가 그림을 사서 인테리어 중이었습니다. 송지연 씨는 집주인으로서 그림을 설치하러 가끔 들렀습니다. 아, 물론 결혼 후에는 문태규 씨를 내보내려 했습니다만.”

이쯤 되니 태규의 눈동자에 강력한 지진이 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분명 애런이 준 집인데.”

“누가 누굴 줘?”

그때 뒤에서 가볍고 얄미운 음성이 들렸다.

“내가 돈이 어디 있어서 그런 집을 너를 주냐? 난 형한테 용돈 받아 사는 사람인데.”

뒤를 돌아보니 애런이 재밌는 구경을 하듯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난 그 집이 무슨 집인지도 몰라. 내가 집이 있으면 호텔 생활 하겠냐?”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긴 했다.

애런은 그 집이 자기 집이라고 했지만 그 집엔 애런의 취향으로 보이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줄리가 올 줄 알았던 것처럼 방 하나가 아이의 용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 고급 집에 살 수 있다는 마음에 들떠 디테일한 걸 따져보지 않았었는데…….

‘그래…… 내가 애런에게 놀아났었어.’

영악한 태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억울하다고 외쳐봐야 증거로 내밀게 하나도 없었다.

‘결코 이 상황은 나에게 유리하지 않아. 그냥 빨리 해결해버려야겠어.’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경찰관에게 말했다.

“진수현이나 송지연이나 어쨌든 별로 잘못한 게 없다는 얘기죠? 제가 뭘 좀 착각한 것 같네요. 그렇다면 그냥 이쯤에서 상황 종료하죠. 제 착각으로 인해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하고.”

그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지연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나 지금 집에 가서 줄리 데리고 그 집 나갈 거야. 멀리 떠나버릴 테니까 앞으로 줄리 찾을 생각은 하지 마.”

그런데 태규 앞으로 한 남자가 길을 막았다. 몬테규가의 집사 로버트였다.

“안녕하십니까, 문태규 씨. 저는 진수현 씨와 송지연 씨의 법률 대리인 로버트 알리입니다. 지금부터 문태규 씨의 불법 행위에 대한 고소 고발을 진행하겠습니다.”

태규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고소 고발을 한다고요? 저를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백치의 얼굴이었다.

로버트는 태규를 지나쳐 경찰관에게 미리 작성해온 고발장을 제출했다.

최고의 변호사가 작성한 꼼꼼하고 섬세한 고발장을 훑으며 경찰관이 말했다.

“문태규 씨 오늘, 집에 못 가실 것 같은데요…….”

태규의 몸이 손끝까지 힘을 잃었다.

구렁이에게 먹이로 던져진 생쥐가 된 기분이랄까?

커다란 덫에 걸려버렸다.

*

로버트에게 모든 걸 맡기고 수현과 지연, 그리고 애런은 경찰서를 나왔다.

경찰서 앞에 도우미 아줌마와 줄리가 서 있었다.

“줄리야!”

지연이 줄리를 발견하자마자 달려갔다.

“엄마!”

줄리도 지연을 보자마자 다람쥐처럼 뛰어갔다.

자석처럼 붙어서 서로를 보듬고 만지기에 바쁜 두 사람.

참 오랜만에 이뤄진 엄마와 딸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던 도우미 아줌마가 말했다.

“애가 참 능구렁이같이 어른스러워요.”

칭찬인지 아닌지 모를 헛갈리는 말이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지연의 목을 목숨 줄처럼 꼭 껴안고 있는 줄리를 보며 자신이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설명했다.

“줄리의 아빠가 줄리더러 엄마한테 가서 진수현 대표님이랑 헤어지라고 말하라니까 줄리가 뭐라고 그랬는지 아세요?”

수현과 애런, 그리고 지연의 귀가 아줌마를 향해 열렸다.

도우미 아줌마는 지연을 보며 짠하면서도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줄리의 대답을 전해주었다.

“엄마를 다시는 보지 못하더라도 그런 말 안 하겠다고 거부하더라고요. 엄마는 수현 아빠랑 사는 게 더 행복하다고.”

순간 수현도 애런도 지연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보통의 아이라면 엄마랑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키는 대로 한다고 했을 텐데.

사실 수현은 태규가 줄리에게 그런 협박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엄마에게 가겠다는 아이에게 다시는 엄마를 보여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정도?

그것도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그런데 애한테 엄마에게 가서 나랑 헤어지라고 말하라고 협박했다고?

‘문태규는 생각보다 더 최악의 남자였군.’

수현은 줄리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가 계획한 일들은 기름칠한 톱니바퀴들처럼 서걱거림 하나 없이 잘 돌아갔다.

태규는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서 행동했고 지연도 그를 믿으며 잘 버텨주었다.

애런은 프로 사기꾼처럼 태규를 속였고 아카데미 연기상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로 잘 연기해주었다.

‘그런데 내 예상에서 유일하게 벗어난 사람이 줄리라니.’

줄리를 지치게 만들면 줄리가 엄마를 보게 해달라고 태규에게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릴 줄 알았다.

그럼 태규는 그 말에 자극되어 숨겨왔던 폭력성을 드러내고.

바로 그 현장을 잡아 그를 덫에 가두는 게 수현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줄리가 그를 자극한 건 맞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른 말로 태규를 자극했다.

엄마를 보지 못하더라도 엄마의 행복을 지켜주겠다는.

하마터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뜨거웠니, 줄리야?’

수현의 심장에 뜨거운 피와 눈물이 차올랐다.

너무도 짠해서, 너무도 미안해서.

줄리의 행동을 듣고 지연의 기분도 괜찮을 리가 없었다.

이미 지연의 눈에선 가득찬 물동이처럼 눈물이 넘쳐버렸다.

“줄리야…….”

줄리를 안고 있는 그녀의 손끝이 하염없이 떨렸다.

고마워서…… 그러면서 미안해서…… 그러면서 가슴 아파서.

사람들의 시선이 지연의 품에 안겨 있는 줄리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에 무안해진 줄리가 부끄러운 듯 지연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지 말라는 것처럼.

모두가 숙연해지는 순간,

그 심각한 순간을 유쾌한 순간으로 치환시키는 힘이 있는 사람도 줄리였다.

“나 배고파…….”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의 배에서 애처로운 울부짖음이 들렸다.

꼬르르르르륵-

이 소리 하나로 또 사람들의 입에선 웃음이 터졌다.

이래저래 아이는 요물이었다.

*

수현과 애런, 지연 그리고 줄리가 진짜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이,

태규는 로버트와 나란히 앉아 경찰관 앞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었다.

먼저 아동폭력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

아동폭력은 친고죄가 아니기에 누구든 상황을 목격하면 신고할 수 있다.

수현과 지연의 이름으로 태규가 아동학대로 신고된 것.

태규는 이 부분에서 자신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한 번도 줄리를 때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증거를 대요, 증거를!”

그런데 로버트가 정말로 증거를 댔다.

“문태규 씨가 묵고 있는 송지연 씨의 집은 고가의 그림들이 많아서 집안 곳곳에 열 개가 넘는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CCTV가 명백한 아동 학대의 증거입니다.”

CCTV에 의하면 태규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날들이 많았다.

애런이 그를 술과 여자에 중독시키며 호텔에서 재우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간혹 집에 들어오는 날에도 술 취한 여자들과 함께였다.

아이를 좋지 않은 환경에 노출시킴으로써 이 또한 간접적 학대였다.

사실 태규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 때 줄리는 집에 있지 않았다.

애런이 미리 그녀를 챙겨 데리고 나오거나 아줌마를 시켜 보호했다.

하지만 로버트는 CCTV를 제출하기 전 애런이 그녀를 데리고 나가고 들어오는 장면들은 모두 삭제했기에 모르는 경찰이 봤을 땐 아이를 그 집에서 완전히 방치한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절대 빼도 박도 못할 결정적 장면이 있었다.

파티에서 돌아온 태규가 줄리의 멱살을 잡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려 한.

그의 거친 언행까지 또렷하게 녹음되어 명확히 그의 아동 학대가 입증됐다.

CCTV를 살펴보던 경찰관도 태규를 보며 혀를 찼다.

“어떻게 아빠로서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의 죄목은 아동학대만이 아니었다.

파티장에서 위스키 병을 깨며 난동을 부렸고

이미 회사에 반납된 차를 탈취해 집까지 몰고 갔고

집까지 운전하는 그의 상태도 살인 미수죄가 적용될 정도로 만취.

이 정도의 죄목이 쌓이니 태규는 경찰서에서 하루 이틀 만에 풀려날 상황은 아니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태규에게 로버트가 말했다.

“그런데 문태규 씨, 당신에게 들어온 범죄 혐의가 이게 끝은 아닌 것 같습니다.”

태규의 멍한 눈동자에 공포감까지 더해졌다.

‘또 뭐가 있지?’

“차라리 경찰서에 있는 게 더 안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로버트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경찰서 밖이 보이는 창문을 가리켰다.

태규는 그가 가리키는 창문 밖을 흐리멍덩한 눈으로 보았다.

창문 너머엔 한 무리의 여자들이 몰려 있었다.

“저것들은?”

태규가 모델 에이전시의 법률 팀장이란 지위를 이용해 달콤한 유혹으로 함께 술과 유희를 즐겼던 가짜 모델들이었다.

그녀들이 태규의 정체를 알고 모두 사기죄로 고소를 하겠다고 찾아온 것.

“…….”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지?

진흙탕 깊숙이 빠져버린 그는 아무리 허우적대도 공기 위로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죽는 게 편할까?

이제 그만 그가 희망의 끈을 놓았다고 판단한 로버트는 그런 태규를 보며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문태규 씨를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도저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건 태규도 알고 있다.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려만 주신다면…….”

*

수현과 지연 그리고 애런과 줄리는 그동안 줄리가 가장 먹고 싶었다는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그들이 식당을 찾은 시간은 이미 늦은 밤이었기에,

식당 안은 넥타이를 뒤로 넘긴 만취한 부장님들, 인생 한탄하는 젊은이들 그리고 과한 알코올로 화장이 뭉개진 여성들로 가득했다.

때문에 안 그래도 파티 복장을 하고 있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수현, 애런 그리고 지연은 식당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모래나라에 들어온 보석들처럼 반짝거렸다.

특히 가장 시선이 집중된 사람은 지연.

고급스러운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겁이 날 정도로 예뻤다.

또한 잘생긴 두 남자 사이에서 여왕처럼 군림하는 그녀의 자태에 식당 안의 모든 여성들은 그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 옆을 둘러싼 오징어들과 비교하면서.

하지만 수현과 애런, 지연은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파란만장한 하루 동안 쭉 비어 있던 위장을 열심히 채웠다.

그들 무리 중 오히려 가장 주변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줄리.

오랜만에 엄마 품에 안겼다는 기쁨에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 이제 정말 악몽에서 깨어났다는 걸 느끼게 되자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그녀는 지연에게 몰리는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동경의 눈동자들을 하나하나 주시했다.

‘울 엄마가 이렇게 예뻤나?’

그녀가 봐도 오늘 엄마의 모습은 평소에 그녀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지연은 평소에 보들보들한 아기살에 해가 가지 않도록 편하고 신축성 좋은 면소재의 옷들만 주로 입었으니까.

엄마가 예쁘다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안 좋은 면도 있었다.

“지연아, 이것 좀 먹어봐. 잘 구워졌네.”

엄마는 어른인데…… 수현 아빠는 엄마 입에 자꾸 쌈을 싸서 넣어주네?

“형수님, 오늘 같은 날 술 한 잔 하세요. 제가 시원하게 한 잔 따라드릴게요.”

나의 히어로, 애런 아저씨도 계속 엄마만 신경 쓰는 것 같고.

줄리의 눈에는 수현과 애런의 이런 행동이 모두 엄마가 예뻐서 하는 행동 같았다.

물론 엄마는 줄리에게서 손길과 눈길을 떼지 않았다.

“줄리야, 계란찜 맛있다. 여기에 밥 비벼줄까?”

호호 불어서 계란과 밥을 쓱쓱 섞어 입 안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계속해준다.

‘역시 엄마는 나를 젤 예뻐하는구나.’

그런데 여섯 살 아이도 여자였다.

잘해주는 엄마보다 엄마한테만 잘해주는 아빠와 아저씨의 사랑을 받고 싶은.

그녀는 매의 눈으로 오늘 엄마가 왜 이렇게 예쁠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알아냈다.

‘핑크 드레스…….’

색깔도 그녀의 취향인 핑크색이지만 마치 겨울 왕국 엘사의 드레스처럼 반짝거리기까지 한다.

줄리는 지연의 핑크 드레스를 한 번 보고 자신의 옷을 한 번 보았다.

엄마의 화려한 드레스와는 달리 그녀는 급하게 나오느라 뽀로로가 그려져 있는 내복을 입고 있다.

비교가 되니 자신이 더 초라해 보였다.

‘내가 이젠 안 예쁜가 봐.’

훌쩍훌쩍-

갑자기 줄리의 눈에서 이슬이 모이듯 눈물이 모이기 시작했다.

삐죽삐죽-

계란찜에 비빈 밥을 먹던 그녀의 입술이 지그재그로 삐죽거린다.

예사롭지 않은 신호를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당연히 지연이었다.

“줄리야, 왜 그래? 계란찜이 뜨거워?”

“…… 흑흑.”

수현 아빠는 또 엉뚱한 말을 한다.

“계란찜에 혹시 고추가 들어갔던 거 아냐?”

애런 아저씨도 눈치가 없기는 마찬가지.

“씹다가 혀를 같이 씹은 거 아냐? 애기같이?”

이런!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참으려고 했는데, 오늘 같은 날 꼭 참으려고 했는데……

“으앙~~~~~~~~~”

기어이 터져버렸다.

그동안 태규와 함께 있으며 꿈도 꾸지 못했던 어리광과 투정이 엄마를 만나며 제대로 폭발한 것.

“핑크 드레쭈~~~~~ 핑크 드레쭈~~~~~ 나도 핑크 드레쭈~~~~~~~”

핑크 드레…… 쭈?

수현, 지연, 애런은 그제야 그녀의 눈물의 이유를 알았다.

아이고야…… 하하.

줄리는 조금 전 자신보다 엄마를 먼저 생각하는 어른 같은 태도로 어른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여섯 살 아이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현과 지연 그리고 애런은 오히려 이런 아기 같은 줄리의 행동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바로 이런 게 행복한 아이의 모습이지.

그들은 귀여운 줄리의 시샘에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줄리도 사줄게, 줄리도 사줄게, 똑같은 걸로 사줄게.”

수현은 줄리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달랬다.

“구두도 사줄까? 핑크색으로? 머리띠도? 가방도? 아예 화장도 하지.”

애런은 개구쟁이처럼 그녀를 놀려댔다.

그리고 식당 안의 사람들도 인형 같은 아기의 삐죽대는 모습을 귀여워 죽겠다는 듯 보고 웃었다.

줄리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이 식당에서 가장 부러움과 시선을 많이 받는 사람은 그녀가 됐다.

너희는 아느냐, 눈물 섞인 계란찜 밥을…….

엄마인 지연, 아빠가 될 수현 그리고 삼촌이 될 애런까지 함께하는 이 시간,

울고 있는 줄리는 행복했다.

엉엉 울고 있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행복한 아이를 보는 어른들도 행복했다.

모두가 행복한, 삼겹살이 익어가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dark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