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세기의 고백
2018.09.29.
수현이 한국에 와 처음으로 개최한 성대한 파티.
겉으로 드러낸 명목은 수현의 회사와 K화장품과의 협약, 그리고 애런이 론칭한 모델 에이전시의 오프닝 기념이었다.
하지만 수현이 이 파티를 연 속내엔 다른 의도가 있었다.
‘오늘 모든 걸 다 끝장내겠어.’
넓은 홀 안의 테이블들엔 손님들 하나하나의 네임카드가 놓여 있었다.
이렇게 자리가 지정돼 있는 경우, 보통 무대 앞 쪽으로 안내된 사람들이 VIP다.
무대 앞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테이블에 오늘 파티의 주최자인 수현과 애런, 그리고 K화장품 부부가 자리했다.
잠시 후 태규가 파티장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번들거리는 슈트를 선택한 그의 표정은 다소 상기돼 있었다.
그는 이 파티가 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폼 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유명 기업인들만이 참석하는 파티에 자신이 거의 주최자 급으로 참석했고
그들과 커넥션을 맺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고,
돈 한 푼 없이 자신을 쫓아낸 강 회장과 민희에게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복수의 장이었으니까.
그는 홀의 중심으로 걸어오며 강회장과 민희에게 보여줄 많은 모습들을 상상했다.
새로 론칭한 모델 에이전시의 법률 팀장이 되어 회사의 대표 애런의 오른팔로 있는 모습과 세계적 모델들이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 다가오는 모습 등등.
‘흥, 날 그렇게 내쫓은 것에 대해서 평생을 후회하게 만들 테다.’
그는 달콤한 몽상을 하며 애런이 앉아 있는 VVIP 테이블로 스태프의 안내도 받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애런의 오른팔이니 당연히 그의 자리가 그곳이라 생각하며.
그런데 VVIP 테이블의 중심에 수현의 모습이 보였다.
주변의 모든 조명을 빨아들인 듯 빛나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마에 핏대가 곤두섰다.
‘저 새끼랑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 하다니.’
그와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짜증났다.
하지만 수현의 옆에 앉은 애런을 보며 생각을 바꾸었다.
‘진수현 저 새끼가 주인 행세할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다. 곧 동생에게 뺏길 테니까.’
그는 수현을 외면하며 애런에게 먼저 인사했다.
“애런, 나 왔어.”
일부러 친분을 과시하기 위해 직장 상사인 애런에게 반말을 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어서 와, 하면서 반겼을 애런의 표정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문태규 씨, 지정된 자리로 가서 앉으시죠.”
“…… 뭐?”
태규는 그제야 이 중심 테이블 위에 자신의 네임카드가 없다는 걸 알아챘다.
‘당연히 애런의 옆자리에 내 자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머쓱해지니 두 다리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애런은 그런 태규를 외면하고 옆에 앉은 수현에게 너무도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형, 오늘 너무 힘줘서 입고 온 거 아냐? 모델들이 형만 보고 있네.”
“자식, 질투는. 난 이미 주인이 있다고 전해줘. 그 주인 성격 좀 더럽다고.”
“하하하, 이따 형수님 오면 이른다.”
“나보단 네가 먼저 죽을걸?”
수현과 애런의 격의 없는 대화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태규는 지금 애런의 태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두 사람, 원수 같은 사이 아냐?’
애런은 늘 수현을 자기 인생을 망친 복수의 대상으로 얘기했다.
게다가 언젠가는 수현을 줄리아나에서 쫓아내고 자신이 최고의 위치에 오를 것이라며 이를 갈았고.
때문에 자신과 공모해 가짜 유언장까지 만들지 않았나?
공식적인 자리라 연기가 필요하다지만 그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오히려 태규의 눈에는 어색하게 보였다.
뭔가 아리송했지만 아무도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이곳에서 그런 걸 따질 순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서 있는데 저 멀리서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오는 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설마…… 송지연?’
저게 왜 이런 자리에 왔어!
그녀를 여기서 마주친 것도 의외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이 더 의외였다.
태규는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그는 지연이 예쁜 여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제대로 꾸민 모습은 처음 보았다.
미국에서는 늘 청바지에 셔츠 차림이었고 한국에 와서도 오드리 화장품의 뷰티 카운슬러를 하며 그냥 평범한 정장만 입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녀의 차림새는 이 파티에 온 그 어느 전문 모델들보다도 화려했다.
옷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유명 브랜드의 옷으로 보이는 귀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핑크 미니 드레스,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메이크업과 헤어,
그리고 빛깔이 예사롭지 않은 목걸이와 클러치까지.
‘말도 안 돼. 저게 어떻게 지연이야?’
게다가 그녀의 자리는 자신도 앉지 못하는 VVIP 테이블이었다.
그녀가 도착하자 태규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VVIP 테이블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다.
수현은 몇 발자국 먼저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잡으며 의자에 앉을 때까지 에스코트했다.
“지연이 왔어?”
애런은 윗사람 대하듯 깍듯하게 인사했다.
“지연 씨 오셨습니까?”
더 황당한 건 K화장품 회장 부부까지 그녀를 귀빈 맞듯 맞는다.
“송지연 씨, 어서 오세요.”
오히려 정작 지연의 얼굴이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태규의 머리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수현이 그녀를 초대했을 것이라는 짐작은 간다.
태규가 줄리를 데리고 가자마자 수현과 지연이 다시 만난다는 얘기를 애런을 통해 들었다.
그렇다고 이런 공식적인 자리까지 지연일 데리고 와?
수현도 수현이지만 초대했다고 저렇게 빼입고 나타난 지연도 못마땅하다.
‘나쁜 년, 줄리 없으면 죽을 것처럼 시늉하더니 에라 잘됐다, 하면서 신이 난 거야?’
그녀가 수현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오장육부가 모두 거꾸로 뒤집어지는 느낌이다.
‘줄리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어.’
그냥 줄리를 지연의 옆에 두면서 두고두고 괴롭히며 내 맘대로 휘둘렀어야 했는데.
막상 줄리를 데리고 오고 나니 생활만 불편하고 그녀를 괴롭힐 구실도 사라지고.
모든 게 후회스러웠다.
태규는 자신의 자리로 가지도 못하고 VVIP 테이블에 앉지도 못하며 무너지는 억장만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지연과 눈이 마주쳤다.
말을 하지 않아도 태규를 쏘아보는 그녀의 눈빛으로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개새끼!’
태규는 붙잡고 있는 인내심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저게 그냥!”
그녀에게 독설이라도 날리려는데 덩치 큰 경호원 두 명이 앞을 막아섰다.
“자리로 돌아가시죠.”
할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순 없으니까.
그는 다시 입구로 돌아가 스태프가 안내해주는 자리로 향했다.
그런데 안내된 테이블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에서 험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뭐야, 이게!”
스태프가 안내한 테이블은 파티장의 가장 외진 구석.
심지어 초대받지 못한 사람처럼 문태규라는 네임카드도 없었다.
더 황당한 건 그 테이블에 강 회장과 민희가 앉아 있는 것.
그들도 넋이 나간 표정으로 태규를 보았다.
“너가 여길 왜 왔어?”
오랜만에 듣는 신경을 긁어대는 민희의 앙칼진 목소리.
“이 새끼는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여전히 그를 인간 대접하지 않는 강 회장.
태규는 오늘 이들에게 자신이 이 파티의 주인공처럼 행사함으로써 굴욕과 후회를 안겨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들과 같은 테이블이라고?
기분이 많이 상하긴 했지만 그들 앞에서 그걸 티를 낼 순 없었다.
그는 오히려 기분 좋은 척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었다.
“전 이 모델 에이전시의 법률팀장입니다. 그런데 두 분은 웬일이십니까? 초대도 못 받으신 걸로 아는데?”
비아냥거림이 역력한 그의 대꾸에 강회장과 민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빵 터진 풍선처럼 동시에 웃어대기 시작했다.
민희가 깔깔 웃으며 손가락질을 했다.
“너 뻥 치는 버릇 여전하구나. 그룹 홈페이지랑 에이전시 홈페이지에 조직도 다 떴어. 법률팀장은 로버트 알리라는 몬테규가의 집사이자 고문 변호사거든? 네가 아니라?”
강 회장이 민희의 말을 거들었다.
“이런 큰 회사에서 너 같은 경험도 없는 무명 변호사한테 법률팀을 맡긴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바보 같은 놈.”
이들의 말에 태규의 낯빛이 하얀 모래처럼 탈색되었다.
‘조직도? 그런 게 떴어? 그런데 내 이름이 없어?’
이상한 일이었다.
애런은 늘 태규에게 넌 내 평생의 동지이자 오른팔이라고 말했었다.
심지어 모델 에이전시의 1호 직원이란 말도 하고.
‘대표가 그렇게 말했음 당연히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이들 말을 들어보니 뭔가 좀 찝찝했다.
생각해보니 모델 에이전시에 공식적인 입사절차를 밟은 적이 없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의 눈동자가 점점 불안에 흔들리는 걸 보고 민희는 신이 나서 비아냥거림의 수위를 높였다.
“병신, 어디 가서 그런 말 하고 다니지 마. 그거 사기야. 하긴, 네 인생 자체가 사기니까.”
강 회장은 비아냥거림을 넘어 육두문자를 섞어 비난을 했다.
“너 때문에 줄리아나가 우리 회사가 아닌 K화장품이랑 계약한 거 알지? 이 개새끼야. 너만 아님 우리 회사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야.”
강 회장이 열 받을 만은 했다.
업계엔 이미 기정사실로 알려졌다.
줄리아나가 자신의 회사랑 계약할 줄 알고 무리하게 투자 금을 끌어왔다가 물 먹으면서 오드리 화장품은 지금 다른 회사로 넘어가기 직전이라는.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태규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문제는 지금 자기 자신이다.
뭔가 반대로 돌아가는 듯하다.
‘분명 오늘은 내가 강회장과 민희에게 복수하는 날이야. 그런데 내가 왜 오히려 비난과 조롱을 듣고 있지?’
태규의 속이 불안감으로 타들어갔다.
그는 애런의 테이블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티고 뭐고 그에게 따져 물어야 했다.
*
갤러리의 우수 고객인 K화장품 회장 사모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파티장을 찾게 된 지연.
회장 사모가 입고 오라는 옷과 구두로 장식을 하고 역시 그녀가 예약해준 뷰티숍에 가서 연예인 같은 헤어와 메이크업 서비스를 받았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 시간에 맞춰 파티장에 도착하긴 했지만 남의 잔치에 이유도 없이 참석하려니 마른침만 넘어가며 불편했다.
그녀는 아주 잠깐 회장 사모에게 얼굴만 비치고 돌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정 좌석에 앉으셔야 합니다.”
스태프는 그녀를 파티장의 가장 중심으로 이끌었다.
아마도 수현과 K화장품 회장 부부가 있는 테이블로 데리고 가는 듯.
그런데 그들 테이블 앞에 태규가 서 있다.
눈빛이 마주치자마자 그를 원수 보듯 쏘아봤다.
‘개새끼!’
안 그래도 미니드레스로 인해 걸음걸이도 불편한데 그를 보고 나니 다리가 휘청, 힘을 잃었다.
다행히 그녀가 테이블 앞에 도착하자마자 태규는 다른 자리로 가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태규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그녀를 쏘아보는 걸.
그 눈빛을 보니 불안했다.
‘내가 줄리를 보내놓고 수현 씨와 자유롭게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문태규는 앞으로 나에게 절대 줄리를 보여주지 않을 거야.
겁을 먹은 심장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희망을 잃은 얼굴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나 어떡해요…….’
그런데 수현이 테이블 밑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지연아…….”
잔뜩 겁을 먹은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그가 미소를 거두고 말했다.
“오늘 넌 줄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무조건 나만 믿어. 나만 바라봐.”
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오늘?
갑자기 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들었다.
“무슨 말이에요? 줄리를 찾다니요?”
그가 테이블 밑으로 잡고 있던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지연아, 사랑해. 나만…… 믿어.”
도무지 무슨 말인지…….
그에게 따져 물으려는데 홀 내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대신 밝고 화려한 조명이 무대 위를 밝히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애런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귀빈 여러분. 줄리아나 모델 에이전시의 대표를 맡은 애런 몬테규입니다.”
애런은 금빛 조각들을 모아놓은 듯한 금발 머리를 빛내며 핸섬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평생 요란한 샐럽 파티만 다니다가 이런 격조 높은 파티에 오니 긴장이 됩니다.”
가벼운 농담에 사람들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분위기를 편하게 만든 후 줄리아나와 모델 에이전시에 대한 비즈니스적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과 계획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준비한 말을 모두 끝낸 그는 단상을 내려가기 전 마무리 인사를 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제가 마더 다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아마 이분이 없었으면 전 지금 이 순간에도 알코올과 약물에 절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함께 천박한 파티나 전전하고 있었겠죠. 그래서 전 이분을 제 인생의 은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진중해진 분위기에 사람들은 모두 애런이 소개할 사람을 고대했다.
애런은 무대 바로 앞에 앉아 흐뭇한 시선으로 동생을 보고 있는 수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바로 오늘 파티의 주최자이자 주인공인 진수현 대표님, 아니 나의 사랑하는 형!”
와~~~~~~
애런이 수현을 소개하자 홀 안엔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졌다.
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올라갔다.
애런과 바통 터치하듯 가벼운 포옹을 나눈 뒤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줄리아나 대표 진수현입니다.”
단순한 그의 인사에도 사람들의 동공과 입이 크게 확대되었다.
반듯한 이마에 날렵한 콧날, 이마부터 코, 인중, 턱까지 매끈하게 내려오는 조각 같은 얼굴 라인.
그리고 좌중을 압도하듯 뿜어내는 강한 남자의 기운에 빠져버린 것.
그는 애런이 만들어 놓은 유쾌한 공기 위에 카리스마를 얹었다.
수현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자신에게 집중되는 많은 시선 속에서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 있는 웃음으로 분위기를 녹였다.
“너무 저만 보시니까 쑥스럽네요.”
그제야 사람들은 꿈에서 깨듯 표정을 풀었다.
“저는 오늘 줄리아나와 K화장품의 협약, 그리고 모델 에이전시 론칭을 기념하기 위해 이런 파티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명목이고요. 사실 여러분을 초대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빛에 호기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러지?
“저는 원래 공과 사를 매우 구분하는 편입니다. 아니, 사적인 부분은 절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수현은 미국에서 유명한 셀럽이나 다름없는 명문가의 아들이면서도 크게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없다.
보호색을 칠한 것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감췄다.
“그런데 최고 경영자라는 위치에 오르니까 터무니없는 루머가 너무 많이 생기더라고요.”
모델들과의 자잘한 염문설부터 비서와의 스캔들을 말하는 것.
“그래서 그 모든 루머들을 종식시키기 위해 국내외 기자들뿐 아니라 제게 소중한 여러분들 앞에서 한 가지 발표를 하려고 합니다.”
홀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기자들이 하나둘 카메라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촉이 얘기하고 있다.
뭔가 폭탄 발언이 나올 거라는.
수현의 입술이 잠시 닫히며 홀 안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그는 쑥스러운 듯 피식, 고개를 돌려 혼자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다시 정면을 보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 결혼합니다.”
와~~~~~~~~
예상한 대로 폭탄 급 발언이었다.
수현은 재벌이라는 지위, 한눈에 들어오는 견고한 외모로 미혼 여성들의 유혹들을 꼬리처럼 달고 다녔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존재하나 싶을 정도의 차가운 인상과 눈빛에 항간에는 그가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데 타블로이드 기자들에게 들키기도 전에 먼저 결혼한다고 선언을 해?
어쨌든 이제 사람들의 궁금증은 다음 수순으로 넘어갔다.
기자들은 이미 노트북에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수현이 결혼을 한다는 커다란 뉴스는 이미 적었고 이제 한 문장만 더 쓰면 전송할 수 있다.
그녀가 누구일까.
초대된 손님들의 눈동자도 궁금함으로 반짝거렸다.
‘그러니까 누구랑?’
어떻게 보면 결혼이라는 사건보다 어떤 여자랑 결혼하느냐가 더 궁금한 사안.
수현은 그렇게 긴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는 말 보다는 먼저 시선으로 사람들에게 ‘그의 그녀’를 알려주었다.
홀 안을 가득 메운 많은 사람 중 오직 한 사람을 향해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물었다.
“Will you marry me?”
순간 무대 위를 비추던 밝은 핀 조명이 그녀를 향했다.
불 꺼진 파티장, 오로지 빛을 받고 있는 사람은 그녀 하나.
조명과 함께 장내의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도 그녀에게 쏠렸다.
반면 그녀의 동공은 점점 자욱한 안개로 물들어 간다.
그녀의 머리가 그녀의 귀에 속삭인다.
송지연, 이거 지금 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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