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이별
2018.09.12.
수현과 지연은 봉수의 집을 나서려 현관에 섰다.
수현이 왔단 소리에 봉수가 편의점에서 잠시 집으로 올라왔다.
반가운 사위를 대하듯 봉수는 친근한 얼굴로 수현에게 인사했다.
“바쁘겠지만 언제 한 번 집으로 또 놀러오게. 내가 맛있는 밥도 한 그릇 준 적이 없어서 말이야.”
수현이 깊이 허리를 숙이며 호쾌한 미소로 응답했다.
“네, 아버님. 조만간 오겠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던 지연이 수현을 향해 굉장히 불편하고 곤란한 눈빛을 보냈다.
헤어진 사이에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뜻.
수현은 그녀의 눈빛을 알아들었으나 오히려 지연에게 다른 소릴 했다.
“출근하는데 딸 한번 안아줘야지. 그냥 가는 엄마가 어디 있어.”
하…….
지연의 입에서 허무한 신음소리가 터졌다.
너무도 맘에 들지 않는 수현의 태도 때문에.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오직 그와의 이별에 대한 생각으로 그득하다.
그런데 그는 자꾸 그녀에게 줄리 얘기를 하고 있다.
출근길에 엄마가 아이를 봐야한다며 봉수의 집으로 데리고 오고,
들어와서도 줄리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한참 있다 나오더니,
지금은 이 어색한 상황이 싫어 1초라도 빨리 이 집을 나가고 싶은데 또 줄리를 안아주라 한다.
물론 그녀에겐 줄리가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줄리를 위해서 수현과 헤어질 결심을 했고.
하지만 줄리는 이따 퇴근하고 나서도 얼마든지 안아줄 수 있고 사랑해줄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다.
심지어 며칠 후 태규를 만나 수현과 헤어졌다고 통보하고 그가 약속한 대로 줄리의 입양절차를 밟으면 모든 게 끝난다.
그땐 정말로 줄리는 완전히 그녀의 딸이 되는 것.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수현이다.
‘당신, 바로 당신이라고!’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그녀가 아닌 줄리만을 보고 있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서 그와 더 함께 있고 싶은데 말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야속할 수 있을까.
‘줄리와 난 영원하지만 당신과 난 지금이 마지막인데.’
그녀가 머뭇거리는 사이 줄리가 수현의 말을 듣고 그녀의 품속으로 쏙 들어왔다.
“엄마 언제 들어와?”
그런데 막상 또 딸이 안기니 그녀의 마음이 좋아진다.
지연은 그녀의 통통한 볼을 자신의 볼로 비볐다.
“일 끝나자마자 올 거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엄마 저녁에 오면 나랑 애니메이션 보자. 아까 아저씨랑 동화 얘기하고 나니까 갑자기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어졌어.”
“그래, 그럼 뭐 볼지 줄리가 골라놔.”
지연은 안고 있던 줄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수현을 향해 이젠 제발 나가자는 눈짓을 했다.
그는 알았다고 고갯짓하더니 다시 줄리를 잡았다.
“줄리야…….”
엄마 품에서 막 떨어진 줄리가 수현을 올려다보았다.
“네?”
“어른이라고 다 어른은 아니야. 그러니까…….”
“…… 네?”
“그러니까 어른의 말이라고 다 들을 필요는 없어. 아무리 어른이라도 너에게 잘못을 하면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그러는 거야. 알았지?”
이건 또 무슨 소리!
지켜보는 지연은 황당함을 넘어 기가 찼다.
하다하다 이젠 교육상에도 좋지 않은 말을 해대는 수현.
안 그래도 여섯 살 아이답지 않은 말투로 가끔 버릇없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에게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의 말은 듣지 말라니.
“수현 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수현을 보는 지연의 눈초리가 까칠해졌다.
그런데 줄리는 수현이 일반 어른들과는 다른 말을 해주는 게 재미있어 까르르 웃는다.
줄리는 둘만이 아는 호칭으로 수현을 불렀다.
“알았어요, 마법사님.”
수현은 진짜로 아빠를 바라보듯 사랑을 가득 담아 자신을 올려보는 줄리의 눈망울을 한참을 응시했다.
한 번만 더 안아보고 싶어 손끝이 움찔움찔.
하지만 주먹을 꾹 쥐며 참아냈다.
그는 냉정하게 고개를 획 돌려 서둘러 현관문을 열었다.
마지막 인사는 마음으로 전했다.
‘꿈에서 깨서 보자, 줄리야.’
.
.
.
수현의 자동차는 지연의 새 직장이 있는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가장 피크의 출근 시간을 벗어난 늦은 아침이기에 그다지 차가 막히지 않았다.
지연은 수월하게 움직이는 차도, 기다렸다는 듯 터지는 신호도 아쉬웠다.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그녀의 맘도 모르고 수현은 앞 차를 앞질러 서두르고 있다.
차에 탄 이후 그녀에겐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은 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는구나. 우리의 마지막은.’
지연은 여태 그가 아는 남자가 아닌 전혀 다른 남자와 함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차갑고도 매정한 사람.
아무리 자신이 먼저 헤어지자고 했지만 그는 단 한 번 잡지도 않았고 심지어 왜 헤어지려고 하는지 이유도 묻지 않았다.
‘이렇게 되길 내심 바라고 있었던가?’
이제는 그와의 모든 사랑이 다 꿈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면 자신은 신데렐라였고 12시가 되어 마법이 풀리며 다시 재투성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충분히 이별을 체감하고 충분히 슬퍼할 새도 없이 그의 차는 벌써 지연의 새 직장인 갤러리 앞에 도착했다.
도대체 어떤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나 싶은데 그녀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던 수현의 고개가 내려야 할 때쯤에야 그녀에게 향했다.
“지연아…….”
한참 만에 마주 본 그의 눈동자에 벌건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혹시 눈물을 참고 있었어?’
그런데 여태 그가 보여준 행동이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기에 상기된 그의 눈동자의 의미를 모르겠다.
그의 눈빛을 읽을 수 없으니 그의 마음이 어떤 건지도 모르겠고.
그녀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그를 보고만 있었다.
그도 그녀의 이름만 부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그러다 그가 어금니에 힘을 꾹 주며 나직한 중저음의 음성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음 단단히 먹어.”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설명도 없는 무심한 한마디.
“뭘요?”
지연이 묻자 그가 그녀의 두 볼을 양손으로 감쌌다.
열이라도 오른 사람처럼 그의 손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전해진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 손이 뭔가를 꾹 참는 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이별의 키스를 하려는 걸까?
지연은 지금 그의 눈빛, 손길, 그의 말, 그 어떤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수현 씨…….”
그녀가 뭔가를 말하려는데 수현이 그녀를 감쌌던 손을 확 내리며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내려.”
외면하듯 차가운 음색이었다.
‘이게…… 마지막 인사야?’
온몸의 기운이 바닥으로 녹아드는 것 같다.
그녀도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젠 정말 이별하는 수밖에…….
“그래요. 잘 가요, 수현 씨.”
수현의 옆모습에 대고 그녀가 인사했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화가 난 사람처럼 갤러리 입구로 툭툭 소리를 내며 걸었다.
‘혹시 날 잡지 않을까? 부르지 않을까? 한 번 뒤를 돌아볼까?’
헛된 기대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그가 부를까 싶어 뒤통수로 모든 감각이 몰려 있다.
그런데 그때 거친 자동차 엔진 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찢듯이 울렸다.
저도 모르게 그녀는 그만 뒤를 돌아버렸다.
그의 차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멀어져간다.
“…….”
그녀의 눈물샘은 이 상황을 예감하고 있었나 보다.
어느새 똑- 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
.
.
백미러로 지연이 보인다.
출발하는 자동차 소리에 그녀가 뒤를 돌았다.
그도 모르게 수현은 브레이크 위에 발을 놓았다가…… 오히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버렸다.
여기서 멈춰버리면 그대로 달려가 그녀를 안아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졌다.
‘독해져야 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커다란 각도로 차를 꺾었다.
끼이이이이익-
차를 틀어 지연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는 차를 세웠다.
그대로 핸들 위에 얼굴을 묻었다.
핸들 사이로 차올랐던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터지려는 눈물을 참아내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던가.
그래서 그녀를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그래서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래서 전속력을 내어 그녀를 내려주고.
수현은 흐느끼는 입술로 차마 그녀 앞에서 하지 못했던 말을 토해냈다.
“미안해, 지연아.”
이별의 인사가 아닌 사과였다.
*
애런은 줄리아나 코리아가 있는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수현이 애런에게 맡긴 ‘줄리아나 모델 에이전시’ 사무실이 오늘부터 오픈한다.
원래의 애런이라면 화려한 파티를 열어 자신의 성공적인 데뷔를 주변에 알렸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형식적인 오픈식도 거절하고 바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 일을 잘해내 엄마와 형에게 받은 사랑을 되갚아주고 싶으니까.
아직 직원들도 세팅되지 않은 빈 사무실, 그는 오직 딱 한 사람을 초대했다.
“애런, 나 왔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태규였다.
애런은 제 책상에 앉아 통화 중이었다.
불쑥 들어온 태규를 보고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제 앞으로 다가오는 태규를 경계하며 급하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알았어, 형.”
태규는 애런이 급하게 휴대폰을 내리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며 걸어왔다.
“누구랑 통화했어?”
비릿하고 음흉한 미소로 제 앞에 선 태규.
애런은 그런 태규를 향해 눈앞에 있는 찻잔이라도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를 보면 겁에 질려 있던 줄리가 떠올라서.
‘개새끼.’
하지만 그는 머릿속으로 수현의 당부를 되뇌었다.
‘이제부터 오로지 너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줘야해.’
그래, 형 말대로 이 일은 오로지 나만 할 수 있지.
애런은 굳었던 얼굴을 풀고 반가운 미소로 태규를 맞았다.
“그냥, 예전에 사귀던 여자.”
“아…….”
다행히 태규는 애런이 통화하고 있던 사람이 수현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깔끔하게 정돈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오늘이 오픈식이라면서 왜 이렇게 조용해? 이 정도 급의 회사라면 연예인이라도 초빙해서 파티를 해야 하는 거 아냐?”
예전의 나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아.
애런은 마음을 숨기고 일부러 불만 가득한 음성으로 투덜댔다.
“아직은 이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
태규가 애런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맨 꼭대기 층? 위에 누가 있는데?”
“진수현. 아직까진 그가 줄리아나와 이 건물의 주인이야.”
수현의 이름이 나오자 태규의 미간이 깊게 흐트러졌다.
“언제까지 그 인간을 그대로 둬야 해? 너네 엄마의 친아들도 아니면서.”
“엄마의 정신이 더 흐려지실 때까진 버텨야지. 완전히 정신을 놓으셨다 싶을 때 유언장을 행사해야 위험 부담이 없지.”
태규는 못마땅한 듯 화를 냈다.
“아무튼 난 진수현이 언제 쫓겨나는지 그날만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지연이까지 떠났으니 그때가 되면 그놈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병신이 되는 거지.”
지연 씨가 떠나?
수현에게 듣긴 했지만 애런은 다시 한 번 태규에게 확인했다.
“지연 씨가 형이랑 헤어진다고 했어?”
“응, 나한테 줄리 달라고 무릎 꿇고 빌기에 진수현이랑 헤어지면 준다고 그랬더니 두말없이 헤어진다고 그러더라. 하하하.”
악마는 또 아이를 볼모로 잡고 엄마를 협박했다.
애런은 불쑥불쑥 터지려는 분노를 꾹 참았다.
“지연 씨랑 형이랑 헤어졌으니까 약속대로 지연 씨에게 줄리를 줄 거야?”
그런데 태규가 애런의 물음에 실소를 뿜었다.
“하하하, 애런 너 바보 아냐? 그럴 리가 있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 다음 단계는 뭔데?”
“나한테 다시 오라고 그래야지. 아마 올걸? 그래야 줄리를 볼 수 있으니까.”
역시…….
그가 악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미친놈일 줄은 몰랐다.
사랑하는 남녀를 억지로 찢어놓은 것도 모자라 자신을 원수보다 더 미워하는 여자에게 다시 자기의 여자가 되라고 협박을 하겠다니.
“지연 씨를 사랑은 해?”
태규는 이 질문 또한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받아넘겼다.
“오늘 따라 너 이상하다. 사랑은 무슨. 다만 지금 내 형편엔 그만한 여자가 또 없을 것 같아서. 모텔 생활이나 하는 나한테 어떤 여자가 오겠어?”
정말 미치겠다.
목이라도 졸라 쓰러뜨리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하지만 그는 다시 수현의 지시를 떠올렸다.
‘문태규의 믿음을 완전히 살 수 있도록 해.’
그는 있는 힘껏 입매를 위로 끌어올려 좋은 친구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걱정 마. 너 미래는 내가 책임질게. 이 회사의 고문 변호사가 돼줘. 그러니까 내 회사의 1호 직원이 돼달란 얘기야.”
“내…… 가?”
태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동자를 부리부리하게 떴다.
모텔 생활을 생각하니 은근히 자신의 처지가 짜증나고 있는 찰나였다.
그런데 나보고 이 엄청난 회사의 고문 변호사를 하라고?
“정…… 정말이야?”
듣고도 믿을 수 없는 파격적인 제안.
그가 못미더워 하자 애런이 친근하게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넌 지금 나의 베스트프렌드일뿐 아니라 가장 큰 나의 약점이자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잖아. 우린 평생 운명을 함께하는 거야.”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었다.
민희에게 쫓겨나 이젠 집도 없고 수입도 없는 그에게 예상을 뛰어넘는 이런 큰 오퍼가 오다니.
태규는 두 손을 뻗어 애런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고맙다, 애런. 내가 평생 너의 베프가 되어줄게. 비밀도 지켜주고. 하하하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그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애런은 악마의 웃음을 뚫어지듯 쳐다보았다.
그러다 은밀한 얘기를 할 것처럼 그에게 머리를 가까이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비밀이란 소리에 큰소리로 웃고 있던 태규의 눈동자가 호기심에 번뜩였다.
“뭔데?”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지만 애런은 그의 귀에 입술을 가져갔다.
비밀은 비밀스럽게 얘기해야 하니까.
그리고 나직한 음성으로 태규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 그게 사실이야?”
애런의 속삭임을 들은 태규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
지연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첫 출근이라는 특성상 긴 시간을 업무 파악으로 보냈고 부서마다 인사도 드렸고 나중엔 실습처럼 갤러리에서 손님도 맞았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정신없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수현의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바로 이게 나를 위한 마지막 배려였나?’
갤러리에 취직은 됐지만 지연은 다닐지 말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빨간 지붕 집을 나와 봉수네로 거취를 옮겼으니 적응도 필요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줄리와 잠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봉수 집이 태규가 모르는 안전가옥이라 해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한 불안감이라고 해야 하나?
완전히 줄리가 자신의 딸이 되기 전까진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
그런데 수현이 마지막 부탁이라며 새로 취직된 직장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게다가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며 굳이 오늘 갤러리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별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게 자신의 취직에 대한 것이라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내가 좋은 모습으로 있어야 그도 날 떠나기가 쉬웠겠지.’
어쨌든 일분일초의 여유도 없는 하루를 보내고 지연은 늦은 퇴근을 준비했다.
가방을 열어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수현과 헤어지고 난 후 한 번도 휴대폰을 보지 않았다.
갤러리라는 조용한 곳의 특성상 또는 업무를 보느라 휴대폰을 봐서는 안 되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휴대폰을 보면 혹시나 수현에게 전화를 해버릴 것 같아 일부러 피하기도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부재중 전화가 스무 통이 넘게 와있다.
그것도 다 봉수와 금화댁이 번갈아서.
‘줄리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놀란 그녀가 빨리 봉수에게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다시 금화댁에게 하니 그녀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뭐지?’
불길한 공기가 그녀의 숨을 턱턱 막았다.
점점 손가락이 떨려왔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줄리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다행이 두 번 벨이 울리자 연결이 됐다.
지연은 경직된 심장을 쓸어내리며 줄리를 불렀다.
“줄리야, 엄마야. 너 지금 어디…….”
그런데 줄리의 휴대폰에서 낯선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송지연 씨입니까?”
그녀의 머릿속에 백 가지 생각들이 들이차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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