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말고 니 형-37화 (37/77)

제37화. 지연이

2018.06.09.

“여보세요.”

지연은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인사고 예의고 차릴 정신이 아니었다.

“수현 씨는요? 진수현 씨는요?”

다급한 목소리로 수현을 찾았지만 전화기 너머엔 소음에 가까운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뿐 사람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침묵이 지연을 더욱 불안케 했다.

“여보세요, 저 송지연이에요. 이사님, 이사님!”

잠시 후, 주행하는 차 소리와 섞여 묵직한 중저음이 들렸다.

“나야, 지연아.”

환청처럼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

“네? 누구라고요?”

“나야, 내 목소리도 잊었어? 나 수현이라고.”

지연은 휴대폰을 내려 액정을 확인했다. 분명 개민흰데?

“어떻게 된 일인데요?”

“아우, 이 여자 미쳤어. 사고로 내 휴대폰 박살 나서 이 여자 전화로 건 거야. 혹시 걱정할까 봐.”

“안 다쳤어요? 교통사고라면서요.”

“차가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넘긴 했는데 내가 빛의 속도로 핸들을 틀었지. 다행히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고 혼자 가드레일 부딪히면서 멈췄어.”

“흐윽, 놀라라.”

지연은 제 심장에 손을 올려 쓸어내렸다.

얼마나 놀랐는데. 사고났을까 봐, 다쳤을까 봐.

“혹시 걱정했어? 나 다쳤을까 봐?”

걱정뿐일까, 두뇌 회로가 멈춰버리는 줄 알았는데.

“걱정은요, 뭐 쉽게 다칠 사람 같진 않았어요.”

맘에도 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가 괜찮다는 걸 확인하니 이 와중에 자존심이 살아났다.

그러게 왜 날 두고 그 여자 차를 타고 가.

그런데 그가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하긴,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할 때야.”

“네?”

“아니,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의 음성에 우려가 담겨 있었다.

뭘 알고 하는 말인가?

“무슨 일이요?”

슬쩍 한 번 떠봤는데 그도 역시 그녀를 떠본다.

“동료들 사이에서 뭐 불편한 거 없나 싶어서.”

아는구나……. 알고 있구나.

모르는 척 입 밖으로 내뱉지만 그는 지금 그녀가 처한 상황을 알고 있구나.

순간 울컥하면서 참고 있던 감정이 해일처럼 몰아닥쳤다.

넘어진 아이가 툭툭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가 다가오는 엄마를 보고 다시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마음이랄까?

갑자기 눈가가 시큰하니 욱신거렸다.

열 번이나 헹궈낸 입안에 다시 고추냉이의 알싸함이 올라왔다.

참았던 눈물이 존재감을 드러내려 부글부글 폭파 직전.

하지만, 그에게 말해 무엇할까.

어차피 이 일은 그녀가 해결해야 할 몫이다.

지연은 꿀꺽 차오르는 눈물을 넘기며 서러움도 함께 넘겼다.

“불편한 거? 관광버스 춤추자고 하는 거? 하하.”

그는 잠시 시간을 두었다. 그러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맞장구쳤다.

“추지 그랬어.”

“그런데 언제 올 거예요? 올 수는 있어…….”

“일단 끊어. 내 전화도 아니니까.”

툭. 전화가 끊겼다.

치, 조금만 더 통화하지.

아쉬우면서도 야속했다.

‘내가 궁금하면 오면 되잖아.’

줄리한테 말했다던 비밀은 거짓말인 것 같다.

날 좋아한다는 말.

괜히 또 섭섭해지는데 그녀의 마음은 자존심도 없다.

‘안 다쳤음 됐지.’

그가 별 탈 없다는 이유로 안도하고 있으니까.

야속함을 뒤로하고 쓱쓱 휴대폰을 닦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그녀의 귀로 단합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 이사님 사고 때문에 잠시 지체됐습니다. 이제 출발하니까 자리에 앉으세요.”

서 있던 사람들이 제 자리를 찾으며 부릉부릉, 다시 차가 출발을 위한 시동을 거는데,

“흡!”

일순 사람들이 호흡을 멈춘 것처럼 버스 안이 고요해졌다.

놀라운 걸 봤거나 겁을 먹었을 때 나오는 자동반사적 반응.

뭔가 싶어 지연도 고개를 들었다. 버스 통로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

매무새는 흐트러졌지만 버스 통로를 런웨이로 만들며 버스 천장에 닿을 듯 말 듯한 훤칠한 키를 과시하는 남자.

방금 통화를 끝낸 수현이었다.

버스 안의 수많은 눈들이 그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 시선들을 뚫고 큰 걸음으로 버스 뒤로 향한 그가 멈춘 곳은 지연의 옆.

그는 양손에 든 물건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배고프지? 먹어.”

막 전자레인지에서 데웠는지 손끝으로 따끈함이 전해지는 핫바.

“이거 뜨거워, 조심해.”

혹시나 손을 델까 컵홀더를 두 개로 겹친 핫초코.

멍하니 보고 있는 그녀에게 빨리 받으라는 듯 턱짓을 했다.

지연은 얼떨결에 한 손엔 핫바, 한 손엔 핫초코를 쥐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못 볼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그녀의 눈이 크게 확장됐다.

분명 온다는 말 없이 끊었는데.

“먹기나 해. 뛰어오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말 시키지 말라는 듯, 툭 한 마디 내뱉고 그는 다시 머리를 턴다.

‘전화를 급히 끊은 이유가 혹시 이걸 사느라?’

지연은 아직도 통로에 서서 툭툭 비를 털어내고 있는 그를 물끄러미 올려보았다.

비에 젖어 축축한 머리카락, 고속도로 칼바람에 상기된 양 볼, 달려왔는지 아직도 잰 숨.

“…….”

그가 알았던 걸까?

서글픔에 아무것도 못 먹고 마른침만 삼키고 있던 내 지금의 모습을?

그래서 사고를 당했으면서, 비가 오는데도, 이렇게, 와준 거야?

‘무안했을 내 맘, 녹여주려고?’

어린아이 같은 어리광인지 감동인지 목구멍이 울컥울컥.

‘아, 미치겠다. 이러면 또 반칙이지.’

핫바와 핫초코, 비를 뚫고 와준 그의 모습에 겁이 날 정도로 맘이 쏠린다.

이렇게까지, 이렇게까지 감동하면 안 되는데.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하긴 싫은데.

지금 그의 행동이, 그의 친절이, 또 장난이면 어떡하라고.

그럼, 또 상처받잖아. 바보처럼.

시큰한 눈가를 보여주기 싫어 턱 끝을 바닥으로 내리는데 그의 타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 먹어? 식을까 봐 뛰었구만.”

할 수 없이 핫바를 한입 베어 물었다.

기름진 어묵의 고소한 육즙이 입안으로 쭉 퍼지는데 동시에 눈가의 시큰함도 함께 퍼졌다.

겨우 진정했던 눈물주머니가 다시 꿈틀대는 것.

그녀의 눈 주변이 빨갛게 변해가니 그의 고개가 기우뚱했다.

“왜? 매워? 이상하네, 안 매운 맛 사 왔는데.”

맵긴,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는데.

차오른 눈물을 목 뒤로 넘겨버리려 급하게 핫초코를 입에 담았다. 그런데,

“앗, 뜨거!”

열기를 참지 못하고 그만 핫초코 방울들이 입 밖으로 분사되었다.

“이봐, 이봐, 조심하라니까.”

수현은 쯧쯧, 혀를 차며 주머니 속 휴지를 꺼내들었다.

한 손엔 핫바, 한 손엔 핫초코를 든 그녀를 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닦을 손이 없네.”

손가락에 휴지를 말아 입 주변으로 튀어버린 핫초코 잔재를 꾹꾹 눌러 닦았다.

“더럽게.”

말은 퉁명스러운데 닦아주는 그의 손길은 핫초코 거품처럼 스르르 녹는다.

그의 손길이 스칠수록 그녀의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을 쳤다.

심장은 솔직한데 그녀의 입술은 거짓말은 한다.

“그만해요, 사람들 보는데 창피하게.”

“그런가?”

그는 손길을 멈추더니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핫초코를 앞좌석 주머니에 끼우고 아직도 통로에 서 있는 그에게 옆자리를 가리켰다.

“앉아요. 여기 빈자리니까.”

그런데 그가 커다란 몸을 그녀의 귓가로 내렸다.

조용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다른 자리 앉을게.”

그러더니 지연과 통로 반대쪽 비어 있는 자리에 털썩 자리했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헤드레스트에 젖혀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말도 섞지 않겠다는 무언의 신호.

그런데…… 이상하게 서운하지가 않았다.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이 공간에서 두런두런 둘만의 대화가 부를 파장.

그 마음을 알기에, 지연도 피식 흐리게 웃고는 그를 향했던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시선 끝에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앞좌석 주머니에 꽂아둔 핫초코가 보인 것.

마실 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컵 뚜껑에 까만 매직으로 이름이 쓰여 있다.

-지연

그냥 이름인데, 평범한 이름인데, 아무것도 아닌 두 음절인데,

그가 핫초코를 주문하며 불렀을 그녀의 이름에 새삼 설렌다.

지연은 핫초코를 꺼내 한 모금 입에 담았다.

뜨거웠던 핫초코는 그사이 식어 먹기 좋게 따뜻했다.

꿀꺽꿀꺽.

온몸으로 퍼지는 달콤한 핫초코와 함께 차올랐던 서러움이 녹아내렸다.

하늘에선 아직도 굵은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엔 비가 그쳤다.

*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속초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미선은 회사의 지침대로 우수 고객인 애런을 회사에서 내준 고급 렌터카에 모셨다.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애런 몬테규라는 미국 손님은 지연에게 웬만한 고객이 열 번 주문할 물량을 한 번에 구입한 빅 고객.

성원에 보답한단 의미에서 이번 단합회에 초대했다.

뒷좌석에 앉으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조수석으로 들어오는 애런.

“레이디가 운전하는데 뒷좌석에 앉는 건 실례죠.”

우와…….

첫 등장부터 입이 떡 벌어졌다.

금발 머리에 파란 눈, 높은 콧날이 눈에 띄는 전형적인 미남.

“박미선 매니저라고 했죠?”

한국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

목소리는 왜 달달해?

“이런 옷 입고 가도 되나? 그래도 초대받아 가는 건데 좀 갖춰 입고 올걸 그랬나?”

청바지에 네이비색 블루종을 입은 그가 혹시 의상을 미스 컨택했나 싶어 요리조리 살폈다.

“아니요, 퍼펙트 하십니다.”

고객님이라면 거적때기라도…….

“속초는 여기서 얼마나 걸려요? 구글 보니까 두 시간 걸린다던데.”

아니요, 열 시간 걸릴 수도 있어요. 둘이 가면요.

“늦으면 안 되는데.”

애런과 혼자 속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던 미선이 고객의 불안한 기색에 귀를 기울였다.

“빨리 가야 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송지연 씨 빨리 봐야 해서요.”

“뭐 또 화장품 주문한 거 있으세요?”

애런은 수현이 지연을 혼자 차지하기 전에 가야 한다는 말은 못 하고 불특정 다수를 핑계 댔다.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면 안 되니까? 하하.”

“…….”

다른 사람들 차지할 일 없는데.

서로 안 차지하려고 해서 곤란할 텐데, 지연이 지금.

애런을 보기 전까진 민희의 심복 단합회장에 의해 곤란을 격고 있을 지연이 걱정돼 수현에게까지 문자를 했던 미선이지만,

그녀를 걱정하는 애런의 말 한마디에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또, 익숙한 대화가 시작될 거 같아서.

“지연 씨는 뭐 좋아하나? 뭘 좀 사가야 하나?”

이것 봐. 생각하기 무섭게 시작됐다. 아주 익숙한 대화가.

“미선 씨, 지연 씨랑 젤 친한 친구라고 했죠? 그럼 지연 씨 뭐 좋아하는지 알겠네?”

또 대화는 이렇게 흘러간다. 남자는 지연에 대해 묻고 미선은 지연에 대해 답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의 맘에 들어온 남자들은 늘 이런 식이었다.

‘너 송지연 친구지? 걔는 어떤 애야?’

금사빠라는 놀림을 듣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막 대면한 애런이 맘에 들어온 건 아니다.

하지만 직원의 90%가 여자들인 음기 가득한 직장,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카운슬러들에 비해 몇십 명이나 되는 그들을 관리해야 하는 매니저로서 아침 8시에 출근해 개민희 비위까지 맞추고 집에 가면 열두 시가 넘는다.

하루에 이렇게 가까이 할 수 있는 남자라곤 지옥철의 정체 모르는 변태들뿐.

그런 와중에 고객이긴 하지만 비슷한 또래의, 그것도 풍기는 향기가 귀족처럼 고급스러운 남자를 의전 하라는 지시가 왔을 땐,

오랜 근속으로 인한 회사에서 내린 선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우려했었던 일이 실제로 펼쳐지니 익숙하면서도 매번 서운하기만 한 이 분위기가 한껏 들떴던 마음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예쁜 친구를 베스트 프렌드로 둔 여자는 모두 나 같은 운명일까?’

그런데 이번엔 아니라는 듯,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혹시 미선 씨는 아이 있어요?”

“아니요!”

기대하지도 않았던 개인적인 질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차를 울렸다.

“결혼도 안 했어요. 엄마가 국제결혼도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뭔 소리야…….

주책없이 튀어나온 소리에 남자가 비웃으면 어떡할까 싶은데 이런 걱정도 기우였다.

“지연 씨는 아이가 있으니까. 아이가 있는 여자는 뭐 좋아할까 싶어서요.”

아, 이것도 지연이 때문에 물은 거구나.

“고급 선물도 싫어하고 미워할 만한 사람, 대신 혼내준대도 싫어하고. 이것 참, 뭐로 어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지만 그녀는 안다. 결국엔 그녀의 조언을 구하고 있다는 걸.

씁쓸하긴 한데 또, 익숙한 답변이 입에서 나왔다.

“지연이한테 관심 있으세요? 제가 좀 도와드려요?”

기다렸다는 듯 애런이 파란 눈을 반짝였다.

“네, 도와주세요, 부탁이에요.”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거 다 가르쳐드릴게요.”

그녀는 습관적으로 착한 친구의 미소를 입에 걸었다.

자존감은 또 바닥을 기고 있다.

오작교의 까마귀, 해드리지요.

*

오전에 출발한 버스는 동해바다에 어둠이 깔릴 때에야 비로소 속초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두어 시간이면 올 거리였지만 민희의 사고 소식에 휴게소에서 잠시 대기하느라 늦춰지고,

또 노선 중간에 있는 오드리 화장품 공장에 들러 신제품에 대한 기능과 효능, 마케팅 전략에 대한 강의를 듣느라 지체됐다.

하지만 이박 삼일 동안 있을 단합회의 스케줄 중 중요한 건 첫날 밤 환영 파티, 둘째 날 밤 환송파티.

그리하여 진짜 중요한 스케줄은 지금부터 시작이란 말씀.

“다들~~~~ 단체 문자 다 받았죠? 우리 카운슬러들의 단합된 모습을 보이기 위한 단합된 맞춤 의상, 갈아입으세요.”

조별 활동 시작으로 각 조의 숙소로 들어온 직원들은 각자의 짐에서 가져온 맞춤옷을 꺼냈다.

지연은 누구보다 빠른 동작으로 탈의를 했다.

행동까지 느린 밉상까지 되고 싶진 않기에.

물론 속으로 구시렁거리고는 있다.

‘바닷가에 오면서 무릎 시리게 짧은 스커트는 뭐야?’

어제 지연도 단체 문자를 받았다.

-걸크러쉬를 보여줍시다! 가지고 있는 스커트 중 젤 짧은 걸로! 상의는 검은 가죽점퍼!

옷장을 다 뒤져 대학 때 입었던 미니 청치마에 뉴욕 아울렛에서 구입한 가죽점퍼를 꺼냈다.

그땐 무슨 용기로 입었나 싶을 손바닥만 한 스커트를 입으며 그래도 단체로 입으니 민망함은 덜하겠다 싶었는데,

어라?

다른 조원들의 의상을 보니 모두 지연 빼고 검은 패딩에 발목까지 야무지게 감싸주는 청바지.

그녀의 차림새를 본 조원들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단합회 왔음 싫어도 단체 활동해야 하는 거 아닌가? 혼자 튀네.”

“징 박힌 워커는 안 가져왔어? 그 필인데?”

“다리에 자신 있다 이거지. 그치?”

지연이 문자를 보낸 조장을 쳐다보니 그녀는 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이것도 그거였어? 고추냉이 김밥 2탄?

지금에 와서 따져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에 지연은 애써 무안함을 숨겼다.

“그럼 다시 입고 왔던 옷이라도…….”

그런데 이미 조원들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방문 잠근다며 빨리 나오라는 재촉까지 하면서.

이 상황에서 갈아입고 가겠다고 우길 수도 없고.

지연은 할 수 없이 두 손으로 청치마 밑단을 잡아당기며 그들을 따랐다.

그들과 지연의 거리는 불과 2미터 안팎.

하지만 앞서가는 그들과 뒤따르는 그녀의 사이엔 먼 거리감, 그리고 두꺼운 벽이 하나 존재했다.

회식 장소를 들어가니 그녀의 튀는 옷차림에 모두들 얼음 시선.

설상가상, 첩첩산중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의 테이블에 태규가 앉아 있다.

쟨 또 뭐야? 하는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한쪽에선 유독 더 싸늘한 눈동자가 그녀를 주시했다.

‘어디 니들 둘, 지켜볼게.’

걸리기만 해보라는 매서운 표정의 민희.

느껴지는 따뜻한 시선은 오직 하나, 저 멀리 앉은 수현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함께할 수 없기에 안타까운 눈빛.

“휴…….”

각오를 다지듯 지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셔 세차게 내뱉었다.

이제, 뭔가를, 해야 할 시간이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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