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팀 몬테규와 문태규의 만남
2018.03.31.
도대체 누가 아직 판매도 시작 안 한 지연에게 반 트럭이나 되는 분량의 화장품을 샀을까?
이 커다란 미스터리로 인해 지연에게 사악함을 드러내던 민희도 그녀에게 맞서던 지연도 상황을 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 다 아무 말도 못 하며 사무실에 정적이 흐르자 눈치 빠른 미선이 나섰다.
“지연아, 팀장이 너 당장 내려오래. 야, 주문한 거 다 구하려면 시간 걸려. 어서 빨리 내려가.”
두 손으로 등까지 떠미는 미선의 재촉에 지연은 얼떨결에 하던 얘기도 못 끝낸 채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미선이 긴장된 두 손을 맞잡고 민희 앞으로 다가갔다.
“첫날부터 엄청 큰 고객을 물다니, 우리 송지연 씨 대단하죠? 중국 고객인가?”
민희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장난 전화일지 어떻게 알아? 아님 지가 지한테 주문한 건지.”
미선이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우리 지연이, 한 번만 눈감고 예쁘게 봐주세요. 영어도 잘하니까 외국 고객도 상대할 수 있고 또 성격은 얼마나 싹싹한지, 헤헤헤. 고객들한테 인기 만점일 거예요.”
민희는 분이 올랐지만 미선의 말을 반박할 구실을 찾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으니까.
게다가 어떤 경유로 팔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에 반 트럭이나 되는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능력의 직원이라면, 그녀로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그녀가 부임하고 실적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던 찰나, 자신이 센터장으로 있는 뷰티 센터의 매출이 올라간다는 건 그녀에게 유리한 일이니까.
민희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길게 얘기하지 않는다.
지연의 얘기는 싹 거두고 다른 화두로 돌렸다.
“다음 주부터 부사장님 새로 오는 거 알아?”
“네, 이사님 약혼자…….”
“뭐?”
“죄송합니다. 미국에서 스카우트해온 분…….”
미선은 그녀의 강한 레이저에 금세 꼬리를 내렸다.
지금 회사 안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라는 걸 아니까.
평소 나름 합리적이라는 평을 듣는 오드리 화장품 강회장의 치명적 아킬레스건은 외동딸 민희였다.
학창시절 지지리도 못하는 공부는 그렇다 치고 심성이라도 착하면 다행인데 온갖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녀 늘 학교에서 스스로만 모르는 왕따.
강 회장이 학교에 후원도 하고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도 주며 이미지 세탁으로 겨우 버텼지만 성인이 되면서 남자 문제까지 섞이며 더 이상 뒷수습을 해주기에 힘든 상황까지 돼버렸다.
양다리도 아니고 오징어 다리까지 엮어버리는 그녀의 남성 편력으로 한국의 상류 사회에선 도저히 시집가기 힘들다는 평판까지 도는 것.
할 수 없이 뉴욕으로 유학을 보냈지만 이미 온몸에 스며든 사악함과 불성실함, 몹쓸 남자 욕심은 외국에 나간다고 사라질 리 없었다.
거기서도 그 흔한 컬리지 졸업장 하나 못 따고 어학연수만 5년째.
오만 패션쇼는 다 쫓아다니며 쇼핑을 다니는 것이 그녀의 일과였다.
그런데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그녀가 여태 만났던 남자들보다 집안의 명성이나 재력은 떨어졌지만 ‘미국 변호사’란 반듯한 직업의 소유자였다.
민희는 남자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남자를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강 회장이 알아본 바, 그 남자는 생각보다 훌륭한 남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던 사무실까지 접게 하고 한국으로 데려왔는데 이제 와서 팽 시킬 순 없었으니까.
할 수 없이 내년 봄 약혼을 결정하고 남자를 오드리 화장품의 부사장으로 앉히기로 했다.
능력 없는 딸을 이사로 들이고 예비 사위까지 회사에 데려온다 하니 직원들 심기는 불편했다.
강 회장은 이 때문에 최근 민희에게 엄청 역정을 냈다는 소문이 있다.
안 그래도 예민한 사안인데 미선이 툭, 이사님 약혼자라는 발언을 했으니 민희는 짜증이 날 수밖에.
그래도 바로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천성적 유들유들함에 튀어나올 뻔한 욕을 꾹 참았다.
“직원들한테 말해. 부사장님 오시면 깍듯하게 대하라고.”
“네…….”
“나 약속 있어 나가니까 들어오면 저 미스 송한테 주문 들어온 거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보고하고. 장난 전화나 뭐 그런 거기만 해봐!”
“네, 알겠습니다.”
미선의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민희는 가방을 챙겼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조금 전 동공이 탈루될 것처럼 쏘아보던 표정을 풀고 그녀는 트로트 가수보다 더 간드러진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태규 씨~ 나 지금 나가는 길이야.”
그녀가 나간 후 미선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태규? 새로 들어오는 부사장 이름인가 보지?”
또 한 명의 진상을 맞을 것 같은 불길함이 스쳤다.
*
“여기가 맞지?”
지연은 미선 말마따나 반 트럭이나 되는 화장품을 싣고 회사 차를 이용해 센터에서 알려준 주소로 도착했다.
센터 팀장은 호들갑을 떨며 지연에게 말했다.
‘내 뷰티 카운슬러 생활 20년 만에 처음이야. 한 번에 개인 카운슬러한테 이렇게 많은 화장품 주문이 들어온 건. 이것만 팔아도 이번 달 판매 왕은 되겠다. 호호호.’
아직 회사 제품의 장단점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큰 고객을 만난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진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본인을 찾는다니 일단 와보는 수밖에 없었다.
알려준 주소는 광화문의 한 6성급 호텔.
“스위트룸이라 그랬지?”
지연은 기사에게 룸까지의 배송을 부탁하고 프런트 직원의 안내를 받아 룸으로 올라갔다.
똑똑-
도대체 누구일까?
첫 출근에 첫 고객, 심지어 회사가 뒤집어질 정도의 엄청난 화장품을 주문한 사람을 마주하려니 손바닥이 흥건히 젖을 만큼 긴장됐다.
그녀의 노크에 안에서 높은 톤의 남자목소리가 들렸다.
“Who is it?”
응? 영어?
외국인인 게 분명했다.
마른침을 삼키고 큰 숨 한 번 들이쉬는 사이 문이 열렸다.
“Hey, baby…….”
녹진한 음성으로 초면에 지연을 baby라 부르며 문을 연 사람은 금발 머리, 파란 눈을 한 건장한 체격의 서양 사람이었다.
혹시 할리우드 배운가?
일단 첫 느낌은 숨이 멎을 정도로 미남이었다.
‘그런데 왜 날 baby라 불러?’
지연은 본능적 경계심에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남자는 그녀가 당황했다는 걸 알면서도 오히려 한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부담스럽게.
지연은 일단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Hello, my name is Jiyeon Song. I am…….”
긴장감에 유창한 영어 솜씨를 발휘하지 못하고 더듬대는데 남자가 대뜸 한국말을 했다.
“모르는 척하네. 나를.”
“…….”
지연의 머릿속이 한 번도 밟지 않은 눈밭처럼 하얘졌다.
날 알아? 어떻게?
혹시 만난 적이 있나? 미국에서?
잔뜩 얼어버린 머리로 최대한 기억을 소환시키는데 뭔가 의미를 담은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황당함으로.
“나 몰라?”
“……알아야 하나요?”
“송지연 아니야?”
“맞는데요…….”
깜박깜박. 지연의 커다란 눈이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정말로 너를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이 스며든 눈동자.
애런은 마음속으로 터지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요망한 여자네. 일단 모른 척하겠다는 건가?’
얼굴색 하나도 변하지 않고 빳빳하게 날 쳐다보는 배짱도 맘에 들고.
그는 지연과 얘기가 잘 통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의 느끼했던 표정을 풀고 밝고 다정한 눈빛으로 바꾸었다.
“들어오시죠, 우린 해야 할 얘기들이 많으니까.”
지연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누가 날 알고 이렇게 많은 화장품을 주문했겠어?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
뭐가 잘못된 건진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화장품은 꼭 판매하고 싶었다.
지연은 단단하게 주먹을 움켜쥐고 애런이 열어준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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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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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은 스위트룸의 넓은 거실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녀가 소파에 앉는 걸 확인하고 그는 냉장고에서 탄산수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애런은 생각했다.
‘진짜로 뻔뻔한 거야? 성격이 좋은 거야?’
애런은 그녀가 자신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앉았다.
마주 보는 소파와는 거리가 있으니 간이 의자를 가져와 그녀 앞으로 바짝 당겼다.
그녀는 어색한 분위기를 면하려는 듯 일부러 크게 웃음 지었다.
“한국말을 참 잘하시네요. 한국에서 오래 사셨어요?”
애런은 속으로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분석했다.
이것 봐라……. 내가 미국에서 산다는 걸 알면서.
하지만 일단 그녀의 페이스대로 따라가 주기로 했다.
그도 모르는 척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새아버지랑 의붓형이 한국 사람이에요. 덕분에 어릴 때부터 한국말을 배울 수 있었죠.”
“아, 그러시구나…….”
‘뭐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우리 의붓형 알잖아! 진수현!’
계속되는 그녀의 모른 척에 답답한 애런의 맘도 모른 채 화장품을 꼭 판매하고 싶은 지연의 의지가 시작되었다.
“화장품은 왜 이렇게 많이 주문하셨어요? 혹시 고국에 돌아가실 때 가져가시려고? 탁월한 선택입니다!”
“…….”
갑자기 웬 화장품 얘기?
화장품을 주문한 건 그녀를 만나기 위한 구실이었을 뿐인데.
심부름센터에서 그녀가 한 화장품 회사에서 방문 판매 사원으로 일한다는 걸 알려줬으니까.
애런의 머릿속을 파악하지 못한 그녀의 노력은 계속됐다.
“솔직히 저 오늘 화장품 판매 처음이에요. 그래도 오랜 기간 화장품을 제가 직접 제조해서 썼어요. 그 말은 화장품에 대해 좀 안다는, 하하하.”
누가 지금 화장품 얘기를 하재?
우린 미국의 대 명문가 몬테규를 얘기해야 하잖아!
애런은 더 이상 산으로 가는 그녀의 대화에 말려들 순 없다고 생각했다.
아주 중요한, 아주 노골적인 단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몬테규!”
“…….”
발랄하게 벌어졌던 그녀의 입술이 스르르 닫혔다.
“이제 알겠어? 몬테규라고 하니까?”
“…… 네?”
그녀의 얼굴이 파리해지는 걸 보곤 애런은 슬슬 그녀가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몬테규라고, 애런 몬테규. 바로 그 몬테규!”
몬테규란 이름을 세 번이나 외치자 그녀의 동공에 파장이 몰려왔다.
애런은 이제 모든 게 드러났다고 확신했다.
“이제 알겠어?”
그녀의 연기든, 기억상실증이든 모든 게 다 드러났다고.
그런데 한참을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애런을 보던 그녀의 입에서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몬테규……. 제가 아는 사람이랑 이름이 참 비슷하네요.”
“……?”
“그 사람 이름은 문태균데, 물론 한국 이름이긴 하지만.”
“!”
지금 이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몬테규 얘기를 하는데 웬 문태규?
왜 이렇게까지 모른 척하지?
그런데 그녀가 깜찍한 연기를 한다고만 생각하기엔 눈동자가 너무 맑았다.
나, 진실만 얘기하는 여자예요, 라고 얘기하듯이.
이 정도 되면 그녀가 정말 ‘몬테규’를 모른다고 의심해 봐야 한다.
애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구심이 떠올랐다.
‘누구냐 넌…….’
*
-입사카드 보고 지연이 몰래 문자 드리는 거예요. 지연이 아마 잘릴 거 같아요. 오늘 집주인님 안 오셨다고 이사님이 또 ㅜㅜ. 제가 이런 문자 보낸 건 비밀이에요.
미선에게 문자를 받은 수현은 딜레마에 빠졌다.
애런을 보고 나니 지연과 한층 더 벽이 생긴 느낌이다.
이제 곧 애런과 결혼할 여자니까.
이런 상황에서 그녀를 도우러 또 달려가야 해?
그런데 지연이 자신 때문에 곤란에 빠졌단 문자를 보곤 또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 미친 여자가 또 지연 씨를 괴롭히면 어떡하지?’
머리는 혼란스러운데 어느새 그는 옷을 입고 있었다.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
.
단걸음에 뷰티 센터로 달려온 수현은 지연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연 씨, 저 고객접견실에 있습니다.
답장을 기다리는 데 오지 않았다.
미선에게 다시 문자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 그녀가 먼저 그를 발견하고 접견실로 들어왔다.
“어머, 오셨네요.”
“네, 제가 좀 늦었죠? 볼일이 있어서. 지연 씨는…….”
“그래도 일이 잘 해결됐어요. 그 이사님 지랄에…… 아, 죄송, 그 이사님 변덕에 회사 못 다니나 싶었는데 어떤 백마탄 왕자님이 구해줬지 뭐예요?”
“백마탄 왕자님이요?”
“뭐 손 큰 고객 하나 만났단 얘기에요. 그나저나 수현 씨는 일하실 건가요?”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억지로 한 계약도 계약이니 어길 순 없겠지만 나중에 애런이 그가 지연과 같은 직장까지 다녔다는 걸 알면 이상한 오해를 받을까 신경 쓰였다.
하지만 지연을 생각하면 또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일해야죠. 계약을 했으니.”
애런이 다시 올 때까진 어쨌든 그녀를 지켜줘야 하니까.
애런이 부탁했고 또…… 그의 마음이 그래야 편안할 거 같았다.
그가 회사에 나오겠다고 하자 미선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수현 씬 내일부터 일하시면 될 거 같아요.”
그런데 기분 좋게 얘기하던 그녀의 얼굴이 무언가를 보고 갑자기 굳어졌다.
“어! 저기 이사님이다. 그런데 표정이 왜 저러지? 무섭게?”
유리 벽 너머 보이는 건물 앞에서 차에서 막 내린 민희가 잔뜩 골이 난 얼굴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친이랑 싸웠나? 저런 때 마주치면 작살인데.”
제발 그녀가 고객접견실을 못 보고 지나가길 바랐으나 유리 너머 보이는 훤칠한 수현을 민희가 못 봤을 리 없다.
그녀는 수현을 발견하자마자 화가 나 하늘 높이 올렸던 눈썹의 힘을 풀고 환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진수현 씨 오셨군요.”
수현을 보면 늘 하는 그녀의 행동이 있다.
눈빛을 빛내려 일부러 눈을 흘기며 눈웃음을 치는 것.
수현으로선 부담스러운 눈빛이었지만 여자들의 이런 부자연스러운 표정에 많이 익숙하기도 했다.
그를 유혹하려 덤비는 여자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니까.
그는 담담하게 그 눈빛을 받아들였다.
“왔습니다.”
필요한 대답만 짧게 하면서.
“안 오셔서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저랑 제 사무실로 가시겠어요? 낼부터 찾아뵐 고객도 소개해드리고…….”
“지금 여기서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보니까 다른 카운슬러들은 다 1층에서 일을 하시는 것 같은데.”
“우수 고객들을 소개해준다니까요? 특별히?”
민희가 한 번 더 졸랐지만 수현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민희를 지나 미선에게로 가 있었다.
“지연 씨가 어디 있다고요?”
오로지 지연에게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데 그때 접견실 문이 열렸다.
“민희야!”
잔뜩 기가 죽은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발견한 민희는 짐짓 당황하며 작지만 매서운 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따라오지 말랬지? 어서 나가. 여기 내 업무 장소야.”
그 소리에 남자는 꼬투리라도 잡은 사람처럼 발끈했다.
“자기 업무 장소라니? 다음 주부턴 내 업무 장소도 되잖아.”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미선이 상황 파악을 시작했다.
‘다음 주부터 이곳에서 근무한다고? 그럼…… 부사장?’
파악이 끝나자마자 미선은 남자 앞에 서서 허리를 숙였다.
“부사장님이세요?”
남자는 누군가 자기를 알아봐주는 게 신이 나는지 어깨를 펴고 고개를 빳빳이 들며 자신감 넘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다음 주부터 부사장으로 올 문태규입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민희는 짜증이 올라왔다.
조금 전 식사를 하며 대판 싸운 후 안 그래도 그가 꼴 보기 싫었다.
그런데 남자가 자존심도 없이 졸졸 회사까지 쫓아왔다.
빨리 태규를 따돌리고 수현과 얘기를 하고 싶은데 기어이 접견실까지 따라 들어왔다.
게다가 여기서 사람들한테 ‘부사장’이다, 하며 설쳐?
수현 앞이라 겨우 성질을 죽이고 어금니를 꽉 문 채 태규를 째려보았다.
“어서 나가, 이제. 나 이분이랑 할 일 있어.”
그런데 눈치 없는 태규가 갑자기 수현 앞으로 다가갔다.
수컷의 본능일까?
자신의 약혼녀가 앞에 있는 훤칠하고 고급스러운 자태의 한 남자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
그래도 그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자신은 이제 곧 이 회사의 ‘부사장’이 될 거니까.
태규는 단단한 우월함을 어깨에 장착하고 고개를 바짝 올린 건방진 표정으로 수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 회사 부사장 문태귭니다.”
수현은 결코 반갑지 않은 한 남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두 남자가 만났다.
팀 몬테규와 문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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