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이불 속 고양이
2018.02.24.
한참을 머뭇대던 그에게서 나온 소리는 지연이 상상도 못 한 말이었다.
“못, 못, 못 나갑니다.”
“……네?”
“못 나간다고요!”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암튼 안 나가면 안 됩니까?”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무작정 못 나간단 수현의 말에 지연은 정신이 멍했다.
조금 전엔 제발 좀 빨리 나갔음 하는 눈초리로 줄리를 보지 않았나?
지연은 금세 바뀌어버린 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수현의 눈동자를 빤히 보았다.
하지만 수현은 그녀의 시선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없었다.
‘무슨 핑계를 대야 하나…….’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손으로 짚은 채 회색이 돼버린 머리를 바삐 굴릴 뿐.
사실 조금 전만 해도 수현은 어떻게 해서든 빨리 지연과 줄리를 내보낼 생각이었다.
이 모녀와 함께 있으면 자꾸 다른 사람이 돼가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굉장히 신경이 쓰였으니까.
지연은 어차피 지낼 데를 구하러 다닐 것이다.
선심 쓰듯 짐을 맡아주겠다고 하고 짐을 볼모로 가지고 있다가 찾으러 왔을 때 저녁이면 도착할 로버트와 딱 마주치게 하면 끝!
이렇게 계획도 완벽했다.
그런데 정확히 2분 전 로버트에게서 전화가 왔다.
분명 태평양 하늘을 가르고 있어야 할 그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했다.
‘저는 지금 독일로 가고 있습니다. 회장님 지시고 회사 기밀이라 자세한 말씀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도, 도, 독일?
그럼 지금 이곳에 못 온단 얘기야?
그가 오기만을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기다리던 수현은 너무 화가 나 온몸에 가시가 돋는 듯했다.
꾹 쥐고 있던 참을성과 인내심을 놓아버렸다.
‘그럼 나도 더 이상 이 모녀 일에 관여하지 않겠어!’
불같은 화를 내려는데 로버트는 난류를 핑계로 툭 전화를 끊어버렸다.
황당함에 전화기만 멍하게 들고 있는 그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힘드시겠지만 애런 도련님을 생각해주세요.
‘…….’
로버트는 결정적 순간에 수현의 가장 치명적 아킬레스건인 애런 카드를 내밀었다.
이런 영악한 사람 같으니!
그건 그렇고 로버트가 언제 올 지 기약이 없어졌으니 이제 저 모녀는 어떡하지?
그런데 이 지옥 같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모녀가 방 밖에서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녀를 붙들 핑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작정 달려 나가 못 나간다 할 수밖에.
‘못 나갑니다! 그냥 좀 여기 있으면 안 됩니까?’
말도 안 돼는 떼를 쓰긴 했는데 뒷받침해줄 논리가 부족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황당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지연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에너지를 쥐어짜고 있는데 불쑥 줄리가 나섰다.
“아저씨 혹시 룸 쉐어(share) 할 사람 구해요?”
뭐?
“미국에서 엄마도 한 집에서 여러 명 살았잖아. 아저씨도 룸메이트 구하는 거 아냐? 이 큰 집에 혼자 살 리 없잖아.”
줄리의 말에 지연도 혹시 그런 의미냐는 듯한 눈빛으로 수현을 보았다.
룸메이트라…….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는데.
하루 이틀 정도? 애런과 연락이 닿을 때까지만 있었으면 싶었던 건데.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또랑또랑한 여자아이가 뱉은 말 이외에는 이들을 붙들고 있을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일단 그렇다고 하자. 애런이 오면 그때 다시 집을 구해주면 되니까.’
그는 굴욕감에 벌겋게 된 표정을 거둬내고 다시 진지하게 입술을 열었다.
“맞습니다. 사실 집을 쉐어(share) 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줄리는 퀴즈 대회 우승이라도 한 아이처럼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다.
“야호! 내 말이 맞았다.”
“제가 집만 있지 현금은 하나도 없거든요. 직장도 없고. 혼자 이 집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지연은 수현의 말에 수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돈을 주고 제대로 들어오라 이 말씀이죠?”
“당연하죠. 돈을 꼭 주셔야죠. 안 그래도 사람을 구하려고 했는데 아주 모르는 사람들보다 지연 씨가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또 금방 그녀의 눈빛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저도 지낼 데가 필요하니 좋은 제안이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급하게 결정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녀의 신중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이 많겠지.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데 젊은 남자 혼자 사는 집이 편할 린 없으니까.
수현으로선 그녀의 갈등을 종결시킬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순간 어제 벽난로 앞에서 서럽게 울던 지연의 눈물이 떠올랐다.
“지연 씨도 저희 집에 있으면 아버지한테 가시기도 편하잖아요.”
“아, 아빠요?”
“용서…… 구하셔야죠? 딸인데.”
“…….”
아버지 코드가 제대로 통한 듯.
똑 부러진 그녀의 눈빛이 안개처럼 뿌예졌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월세는…… 얼만가요?”
수현의 반듯한 입매에 안도의 미소가 걸렸다.
*
지연은 다시 한 손엔 짐, 한 손엔 줄리를 잡고 방으로 돌아왔다.
‘정말 이 집에서 살게 되는 건가?’
원래는 더 이상 민폐 끼치지 않고 당장 나갈 생각이었으나 수현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 아빠한테 용서를 구해야지.’
그러기엔 아빠 집과 가까운 이 집만 한 집이 없었고 그냥 있으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고 있으라니 신세를 지는 게 아닌 타당한 거래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큰 힘 들이지 않고 줄리와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다행이다.
심지어 이 집은 지연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시절에 살았던 집이고 줄리가 살고 싶어 하던 이층집.
행운을 잡은 것 같기도 하면서 느낌이 기분 좋게 묘했다.
그런데 문득 그녀가 간과하고 지나간 일이 떠올랐다.
‘내가 왜 줄리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애초에 이 집에서 빨리 나가려던 이유가 수현이 줄리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인데.
아빠 얘기에 현혹돼 제일 중요한 걸 빠뜨린 것이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함께 지내기 힘들 수도 있어.’
줄리를 쳐다보니 어느 틈에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뻗어버렸다.
아까부터 그렇게 졸려 하더니 여기서 살게 됐다니까 맘 놓고 잠이 들어버린 듯.
잘됐다. 줄리가 잠든 사이 그 사람과 얘기를 해봐야지.
지연은 잠든 줄리를 잠시 짠한 눈으로 응시한 후 그녀의 목 위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줄리, 잠시 자고 있어 그럼.”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며 방을 나왔다.
*
-BOA(뱅크 오브 아메리카)로 오십만 달러가 입금되었습니다.
“뭐? 오십만 달러?”
막 휴대폰에 뜬 메시지를 확인한 애런은 끓어오르는 짜증에 심하게 이마를 구겼다.
로버트에게 요구한 돈은 백만 달러였는데 반밖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도쿄 롯폰기의 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한 달째 일본인 애인과 생활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가 비로소 이틀 전 로버트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돈이 똑 떨어졌으니까.
하기 싫은 연락 할 수 없이 해줬더니 겨우 요구한 돈의 반만 줘?
“오십만 달러로 몇 달이나 쓰라고!”
휴대폰을 들어 로버트에게 항의전화를 하려는데 바로 문자가 왔다.
-한국으로 가서 팀 도련님을 만나세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그 어떤 돈도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으로 형을 찾아가지 않으면 돈줄을 끊겠다는 협박이지, 지금?
쨍그랑!
애런은 들고 있던 위스키 잔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무어라도 화풀이를 해야 하니까.
“내가 왜 팀을 봐야 하는데!”
애런은 팀을 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요즘 같은 시기엔 더욱더.
얼마 전 팀이 엄마의 기업 줄리아나의 공식적 후계자가 됐다는 사실을 기사를 통해 알았다.
집안에서 더욱 위치가 굳건해진 팀의 얼굴을 보는 건 전용 화장실만 쓰던 그가 공중 화장실을 쓰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었다.
“그런데 팀은 한국에 왜 갔을까?”
갑자기 커다란 궁금증이 파도처럼 일었다.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애런은 세상 누구보다도 팀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적을 알아야…… 복수도 가능하니까.
팀은 그의 인생의 모든 걸 앗아간 남자다.
엄마의 사랑도 세상 사람들의 관심도 그리고 엄마의 기업 줄리아나도.
그는 의붓형 팀의 소중한 무엇을 하나라도 뺏는 것이 인생 일대의 목표다.
그게 곧 그를 향한 복수다.
너도 무언가를 뺏겨봐야 너랑 살면서 내가 겪어야만 했던 피가 솟는 고통을 새털만큼이라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모든 걸 다 가지고 태어난 다이아몬드 수저에게 감히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콤플렉스를 안겨준 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게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진 네가 마음 놓고 나를 동정할 수 있도록 잔잔한 사고나 치면서 주변을 맴돌 거야.
한 방에 너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을 때까지.
어쨌든 한국에 가긴 가야 한다 이거지?
팀이 한국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한국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분명 갑작스러운 한국행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설마 나 때문인가?’
비록 문자였지만 로버트의 말투에서 왠지 자신을 나무라는 고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뭘 한 거야?’
눈치뿐 아니라 촉도 감도 빠른 그에게도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이 뭔가 큰일을 저질렀다면 방어할 뭔가는 대비하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얄미운 팀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죽어도 싫은 일이 생길 테니까.
애런은 휴대폰을 들어 한 타블로이드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애런이 부자 친구들의 비리를 제공해주고 대신 자신의 비리는 덮어주는 전략적 관계에 있는 기자다.
“요새 나에 대해 도는 소문 있어?”
전화기 건너편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애런의 눈동자가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너무 흥미로운 얘기였으니까.
설마, 내가 형을 봐야 하는 이유가 이건 거야?
세상사람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지만 가능성 1%도 없는 일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 굳이 한국까지 가지 않고 전화로 해결할 수 있다.
애런은 팀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팀, 당장 그런 사기꾼 여자와 아이를 내치고…….
문자를 보내다…… 지워버렸다.
머릿속에서 순간 전원 켠 전구처럼 뭔가가 떠올랐기 때문에.
그는 스위트룸 전용 버틀러에게 전화를 했다.
“한국행 비행기 한 장. 아, 퍼스트 클래스로.”
전화를 끊는 그의 입매 가득 익살스러움이 번졌다.
“기다려, 앙큼한 내 여자.”
왠지 아주 재밌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
수현과 지연이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마주 앉았다.
줄리 없이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서로를 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똘똘하게 하고픈 말 잘했던 지연이 작은 입술을 조물대며 아무 말도 안하자 수현의 신경이 바짝 날이 섰다.
‘내가 애런의 형인 걸 혹시 눈치챘나?’
벌써 알게 되면 곤란한데…….
여태 왜 모른 척하고 있었냐고 따지면 할 말도 없고.
사실 그 불편한 진실을 하루 빨리 밝히고 싶은 건 나였다고 말하면 믿어주려나?
나도 애런의 행방을 모르니 그를 찾을 때까진 함부로 내 신분을 발설할 수 없던 것뿐인데.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의외였다.
“줄리 때문에 힘드시죠? 새벽부터 괴롭혔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다행히 애런의 얘기는 아니었다.
아마 줄리가 새벽에 그의 방에 왔었다는 얘기를 한 모양이다.
“괴롭힌 것까진 아닙니다.”
예의 상 아니라고 했지만 이왕 말이 나온 거, 앞으로 트러블 없이 잘 지내기 위해 확실히 말을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건 자제시켜달라고.
그런데 그녀가 그의 생각을 그대로 읽은 듯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앞으로 수현씨 방에 들어가는 건 절대 못 하게 하겠습니다. 그건 정말 예의가 아니니까요.”
그러더니 예고도 없이 훅 고백을 시작했다.
“아빠가 없어요, 줄리는.”
아무런 준비 없이 듣고 있던 수현이 더욱 놀랐다.
여태 조금도 얘기하고 싶지 않아보였던 얘기를 이렇게 바로 꺼내버리다니.
이 여자는 한 번 결심을 하면 과감한 편인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을 해놓고 또 오해받기는 싫은지 설명을 했다.
“아, 아예 없다는 건 아니고요 연락이 닿지 않고 있어요.”
그래놓고 또 다른 설명.
“뭐 있었을 때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복잡한 심경으로 털어놓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긴, 애런이란 놈을 설명하긴 힘들겠지.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녀석이니까.
그런데 담담했던 그녀의 눈빛이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줄리는요, 자기 아빠 나이의 남자 어른만 보면 유달리 응석을 부려요.”
줄리 얘기를 꺼내자니 마음이 아픈 듯.
“아마 새벽에 이불 안으로 들어가서 놀라게 했을 거예요. 슬금슬금 발부터 올라오면서.”
그녀는 마치 줄리의 모든 행동을 본 사람 같았다.
“그래도 새끼 고양이처럼 귀엽지 않나요? 하하.”
말로는 죄송하다 그러면서 자신의 딸의 행동을 상상하며 혼자 예뻐 죽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대변하듯.
“사실 예전에도 집에 손님이 오면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는 이유를 물어보니 아빠의 품이 따뜻한지 궁금했대요.”
아빠 품?
“그러니까 한 번도 따뜻하게 아빠가 자기를 안아준 적이 없으니까 아빠 품이라는 건 어떤지 느끼고 싶어서 그랬다나 봐요. 프리스쿨 가면 다른 애들은 아빠 품은 따뜻한 거라고 얘기하니까.”
“하…….”
그의 입술 사이에서 작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줄리의 그런 엽기적 행동에 사연이 있었다니.
‘내 가슴을 그래서 파고든 거였니? 따뜻한지 아닌지 느끼고 싶어서?’
그녀를 귀찮게만 여겼었던 그의 냉정한 심장이 꼭꼭 찔렸다.
따지고 보면 아이가 그렇게 된 게 아이 스스로의 탓만은 아닌데 말이다.
내 동생, 애런의 탓인데.
지연은 선생 앞에 불려온 사고 친 학생의 부모처럼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주의를 주겠지만 애가 좀 버릇이 없더라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숙이며 보이는 그녀의 정수리가 수현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과를 받을 건 내가 아닌데.’
나는 아이가 놀리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쌩한 찬바람을 일으키며 방으로 왔을까?
그의 심장에 또 다시 묵직한 울림이 느껴진다.
미안함에, 안쓰러움에, 부끄러움에.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조아린 적 없고 크게 사과할 일도 없이 살아온 수현에게 이 여자는 자꾸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이런 기분, 이런 느낌, 참 낯선데 말이야.
하지만 왜 자꾸 내가 잘못했단 생각을 들게 만들지?
왜 자꾸 내가 보듬어줘야 하는 책임감이 들게 만드느냔 말이야.
혹시…… 그녀가 예뻐서?
그녀를 마주치면 자꾸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게 된다.
처음엔 그녀가 뉴저지 언덕에서 마주친 그녀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랬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도 없는데 또다시 그러고 있다.
그녀의 눈, 코, 입, 그리고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면,
슬퍼 보이지만 원래는 굉장히 잘 웃고 밝을 것 같은 인상, 조막만한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 그 작은 얼굴에서 잠깐씩 보이는 미소가 귀엽다.
결정적으로 백인의 하얀 그것이 아닌 동양인이면서 맑고 깨끗해 보이는 투명한 피부가 그의 시선을 잡아끈다.
지금도…… 눈을 뗄 수 없다.
그러면 아무 대답 없이 그녀를 보고 있는 그를 그녀가 오해한다.
뭔가 기분이 풀리지 않아 굳게 입을 다문 줄 알고.
“어쨌든 죄송합니다.”
그녀가 눈치를 보며 뭔가 다시 말을 한 후에야 이성이 돌아온다.
“아, 아, 그렇군요.”
뭐가 그런지도 모르면서 바보같이!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순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줄리에게 따뜻한 아빠 품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말이었나?
그렇다면 그렇게 해줘야지 뭐.
그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진심어리고 넉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줄리에게 전해주세요. 잠이 안 오면 언제든지 건너 오라고.”
그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들며 환하게 웃었다.
“정말요?”
그런데 이 말은 하는 게 아니었다.
정확히 16시간 후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몰랐으니까.
.
.
.
다음 날이 되었다.
밤새 빨간 지붕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하얀 눈에 반사된 햇살은 더욱 더 작렬하게 창을 뚫고 들어왔다.
그 환한 빛이 수현의 짙은 눈썹을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번쩍 올려준 것처럼 눈꺼풀이 가볍게 올라갔다.
며칠 만에 가진 숙면인지 모른다.
한국에 온다는 설렘에 미국에서 설치고 비행기 안에서 설치고 집에 와서도 줄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틀째라 그런가?
어제는 줄리를 꼭 껴안고 잤는데도 오히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말랑말랑한 아이의 피부가 보송한 코튼의 베개처럼 느껴졌나?
머리 위까지 푹 이불을 덮고 있는 새끼 고양이는 아직도 수현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작은 몸짓으로 꼼지락거린다.
‘귀여운 것.’
다시 팔에 힘을 줘 이불 안에서 두 팔로 머리를 꼭 껴안아주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혹시 울 엄마 보셨어요?”
문 밖에서 들리는 음성이 익숙하다.
무의식적으로 의미 없는 물음이 입에서 나왔다.
“누구세요?”
많이 듣던 음성은 그 물음이 조금 이상하다는 듯 의구심을 담은 말투로 대답했다.
“저는 줄리죠.”
아, 줄리구나, 줄리야.
너무 뻔한 걸 물었나 싶어 스스로도 피식, 실소가 흘렀다.
당연히 줄리……
당연히 줄……
“뭐? 줄리!”
수현은 불길한 고갯짓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이건 뭐야?
하얀 시트에 폭 싸여 있는 이불 속 새끼 고양이를 손으로 더듬었다.
“흐헉!”
수현의 머리카락이 한 가닥 한 가닥 곤두서기 시작했다.
밤새 품을 파고든 새끼 고양이의 정체가 손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정체는, 바로 지금 그의 손끝에 느껴지는 이 정체는, 바로 그것은!
“오 마이 갓…….”
고양이 엄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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