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 말고 니 형-1화 (1/77)

제1화. 원 나잇 in 뉴욕

2018.02.03.

펑펑-

최고급 샴페인 터지는 소리가 짜릿하게 울려대는 이곳은 미국 최고의 부촌 뉴저지 알파인.

돈과 명예,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번지수를 없애버려 유령의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이런 최고의 부자 마을 알파인에서도 가장 크고 고풍스런 한 저택에서 지금 성대한 축하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손님들은 미끈하게 잘빠진 샴페인 잔을 머리 높이 들어 올렸다.

손님 대표로 휴고보스의 그레이 슈트로 멋을 낸 한 남자가 이렇게 외쳤다.

“오늘로서 공식적으로 세계적 기업 ‘줄리아나’의 후계자가 된 팀 몬테규를 위하여!”

사람들의 잔은 그들 중심에 있는 한 남자를 향했다.

금발 머리를 하고 있지만 뿌리에서 보이는 까만빛으로 원래의 머리색을 짐작케 하는 남자.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만 움푹 파인 검은 눈동자를 예리하게 빛내는 남자.

동양인이면서도 우월한 체격의 서양인들을 훤칠한 키와 단단한 가슴으로 제압하는 남자.

바로 그가 오늘의 주인공 팀 몬테규다.

팀은 감동에 쩐 눈물의 건배사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냈다.

‘어떻게 웃어야 자연스럽게 보일까?’

속으론 지어내야 할 표정을 고민하면서.

사실 그는 친구들이 몰래 만든 이 파티가 맘에 들지 않았다.

아니 오늘 줄리아나 기업의 회장인 엄마 로즈 몬테규의 발표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회사의 이사들, 그리고 수많은 프레스(press)들 앞에서 팀에게 그 어떤 사전 고지 없이 일방적인 발표를 했다.

“앞으로 1년 후 저는 40년을 몸담았던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줄리아나에서 퇴직해 자유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신 줄리아나는 제 아들 팀 몬테규가 맡을 겁니다.”

부담스러운 발표였다.

겨우 32세의 나이에 세계적 기업의 수장이라니.

줄리아나는 샤넬, 디올 같은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엄청난 기업이다.

그런 기업의 총수 자리를 아무리 아들이라지만 총괄경영팀에 들어간 지 이제 막 2년 된 팀에게 맡긴다는 건 파격을 넘어 혁명이었다.

하지만 경영이사들은 그녀의 발표에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주식회사지만 몬테규 회장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압도적이었고 몬테규라는 가문이 미국 상류사회에서 갖는 파워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기 때문에.

당장 내일부터 수많은 언론, 특히 말 많고 탈 많은 싸구려 타블로이드지들은 이렇게 떠들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파워풀한 새엄마를 만난 아들.

-안젤리나 졸리에게 입양된 아이들이 행운아일까? 팀 몬테규가 행운아일까?

그렇게 그가 몬테규 회장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팀은 이 건배 제의에 진심이 없다는 걸 안다.

‘나를 향한 이 샴페인 잔들이 언젠가는 날카로운 칼날로 돌아오겠지.’

하지만 몬테규 집안의 아들이 된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그의 운명.

팀은 머리 높이 잔을 올려 위트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이 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손님들은 그의 짧은 건배사에 마치 오바마 대통령의 감동적인 취임 연설이라도 들은 양 감격에 찬 눈빛과 미소로 환호했다. 누군가는 눈물까지 그렁거리며.

팀은 그들이 던진 미소에 작은 턱짓으로 응수해주었다.

마음으론 내가 나가면 사라질 저 가증스런 미소들, 이라고 생각하면서.

건배 후 시선이 흐트러진 틈을 타 파티장 출구를 향해 터벅터벅 긴 다리를 움직였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더욱 자유롭게 자신의 뒷담화를 할 수 있도록.

*

뉴욕의 한인 타운, Korea way 3번가의 한 후미진 건물 411호 앞.

사무실 문 위에 ‘폐업’이라고 쓰인 성의 없는 손 글씨를 보고 한 여자가 절규하듯 내뱉었다.

“말도 안 돼! 나쁜 새끼!”

그녀는 두 손으로 문을 쓸어내리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어떻게 사무실까지 닫을 수가 있어?”

봉두난발한 모습으로 차마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멍해버린 여자,

그녀의 이름은 송지연.

원래대로라면 바로 내일 한국으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한국을 떠난 지 5년 만의 방문이다.

그런데 그놈이 사라졌다!

비행까지 24시간도 남겨 두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일이 생겨버리다니.

오늘 하루,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뛰어다녀 신음 소리 낼 힘조차 없었다.

바닥에 앉은 김에 쉬고 싶었지만 복도를 지나가는 청소 아줌마를 발견하고는 다시 벌떡 일어나 뛰었다.

아줌마의 멱살이라도 잡듯 옷깃을 쥐고 물었다.

“저기 411호 말이에요, 언제부터 폐업한 거예요?”

성가신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치우며 아줌마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벌써 꽤 됐는데? 몇 달?”

“몇 달이요?”

“그런데 폐업 안 했어도 쫓겨는 났을걸? 건물주가 그러는데 보증금도 다 까먹었다는 거 같아.”

“다 까먹어요? 그 보증금을 다요?”

“생각해봐. 허울만 변호사지 손님도 없는데 무슨 돈을 벌겠어? 그리고 출근도 거의 안 했어.”

출근을…… 안 해?

그럼 그동안 나한테 사무실 간다고 했던 건 다 거짓말?

파리하게 변해버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아줌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아가씨 그 변호사한테 돈 떼였어? 그런 사람 많다던데.”

아줌마의 물음에 그녀도 잠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돈을 떼였나?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그 돈은 그냥 준 거였다.

“아니요.”

그녀의 부정적 대답에 아줌마는 한 번 더 넘겨짚었다.

“그럼 저 변호사가 아가씨 변호사 해주기로 했었어?”

그녀는 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변호사 해주기로 한 적 없다. 대신……

남편을 해주기로 했었다.

*

파티장을 빠져나와 자신의 세단을 타고 언덕 아래로 내려 온 팀 몬테규.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알파인 입구에 있는 작은 공원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그는 혹시나 있을 파파라치들을 경계했다.

이 길은 알파인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이다.

오늘 파티가 있다는 걸 알고 기자들과 파파라치들이 셀럽들의 슈퍼카라도 찍으려 골목을 지키고 있을 게 뻔했다.

물론 그는 지금 금발로 염색하고 선글라스를 써 철저히 위장하고 있다.

상류층의 화장실 생활까지 캐내려는 타블로이드지의 기자들과 파파라치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가 종종 쓰는 방법이다.

‘이 정도면 못 알아보겠지.’

오늘은 유독 염색도 잘됐고 선글라스 렌즈의 채도도 짙었다.

11월 뉴욕, 살을 에는 칼바람은 아니지만 충분히 온몸을 시리게 만들 만큼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는 그 바람이 맞고 싶었다.

그 바람으로 머리를 비우고 싶었다.

팀 몬테규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단 한 시간만이라도.

*

지연은 무슨 정신으로 그 삐걱거리는 건물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어둑해지는 뉴욕의 한인 거리.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의 시비도 벌어지고 이권 다툼을 하는 무리들끼리의 패싸움도 일어나는 곳이다.

심지어 총을 소지한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여자 혼자 걸어 다니는 건 자살행위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위험한 동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겐 이 거리가 얼마나 위험하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갱보다도 총보다도 지금 가장 위험한 건 그녀 자신.

스스로를 어떻게 해버릴지도 모르는, 미치기에 딱 직전인 상황이었으니까.

고통과 번뇌, 실망, 좌절, 충격 등 이 세상의 모든 비극적인 감정들은 다 그녀가 독점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갱들한테 시비 걸어 총이라도 맞을까? 생각하다,

그래도 죽을 순 없었다. 그러면 한국에 계신 아빠가 얼마나 슬퍼하실까?

죽지 않기 위해선 이 위험한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해갈해야 하는데…….

초점 없는 그녀의 눈동자에 이제 막 불을 밝힌 한국 주점이 들어왔다.

그녀의 두 발이 그녀의 몸뚱이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영혼 없는 좀비처럼.

*

언덕을 걷고 있던 팀 몬테규.

그렇게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공원을 돌았다.

시원한 시야를 선사하는 언덕에 오르니 파티에서 있었던 불쾌했던 기분이 조금 사그라졌다.

다행히 쥐새끼들처럼 숨어 있는 파파라치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

여기저기 번쩍거리는 카메라 불빛이 아직까진 없었으니까.

‘걷는 김에 몇 걸음 안 남은 뷰포인트(view point)까지 가볼까?’

공원의 끝 쪽으로 가면 맨해튼의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가 트인 곳이 있었다.

맨해튼의 한 중심에서 일하는 그에게 맨해튼 전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

그런 기억이 난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긴 한데 그 뷰포인트 앞에서 맨해튼을 향해 소리를 질렀던.

한국인인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는 귀족학교 애들 때문에 차오르는 분노를 쏟아부을 장소가 필요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저곳 뷰포인트였다.

그곳에서 어린 팀은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두고 봐! 다 가져버릴 거야! 내가 다 가져버릴 거야, 저 맨해튼을!’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는데 어쨌든 그때 한 번도 터지지 못했던 서러움을 시원하게 터트렸던 기억이 난다.

참 고마운 곳. 그리고 의미 있는 곳.

그곳으로 발길을 올릴까 하다가…… 그냥 차로 돌아가기로 했다.

언제 파파라치들이 그가 팀 몬테규라는 걸 알아채고 귀찮게 따라붙을지 모르니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트는데,

“야! 뭉태구우~~~!!”

“!”

응? 무슨 소리지?

한 여자의 꼬이고 뭉개진 음성이 귀를 울렸다. 그것도 코끼리 포효만큼 커다랗게.

팀은 재빨리 이곳저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

언뜻 들었지만 왠지 들어선 안 될 소리를 들은 듯했기 때문이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살피는데 다시 한 번 여자의 괴성이 들렸다.

“야! 뭉태구우! 이 나쁜 시키야아!”

이번엔 꽤 긴 문장의 괴성이 주변을 울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낯익은 소리야?

오늘 하루 천 번은 더 들은 그의 이름, 몬! 테! 규!

‘혹시 몬테규라 부른 거야?’

여자가 또 한 번 소릴 질렀다. 마치 확인을 시켜주려는 듯.

“에라이 뭉태규우, 이 나쁜 시키야아!”

뭐? 애런 몬테규? 이 나쁜 새끼야?

팀의 두 다리가 그대로 바닥에 붙어버렸다.

자신을 부른 게 아닌 건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큰 다행은 아니었다.

애런 몬테규라니, 애런 몬테규라니,

어쩌면 더 큰 불행일 수도.

어떻게 저 여자가 애런 몬테규를 알고 있지?

이 동네에선 보기 힘든 한국 사람의 한국말.

술에 취했는지 꼬인 발음이었지만 분명히 애런 몬테규라고 말했다.

그의 촉이 단단히 예민해졌다.

날카로운 눈매로 여자의 행동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자는 뷰포인트 앞에서 오징어처럼 몸을 흐느적거리며 위태롭게 서 있었다.

언덕 아래로 떨어지지 못하게 막아놓은 난간을 붙들고 거의 밖으로 몸을 던질 듯 비틀비틀.

‘저러다 떨어질 수도 있겠는데?’

술에 취한 건지 슬픔에 취한 건지 아님 기운이 없는 건지,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몸을 아래로 쭉 뺐다가 다시 다리가 풀리며 뒤로 물러났다.

누가 봐도 정상처럼 보이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이었다.

가서 애런을 어떻게 아냐고 묻고 싶었지만 주변에 보는 사람이 있을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냥 먼발치에서 주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가 활시위를 팽팽히 당겼다 놔버리듯 몸을 뒤로 쭉 뺐다 다시 앞으로 튕기며,

“에라이 이 뭉태규우! 이 나쁜 새끼, 뭉태규우 이 나쁜 자식아! 뭉태규! 뭉태규! 뭉!”

끝임 없이 그의 이름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음악처럼!

‘안 되겠다.’

후다다닥-

지체할 수 없었다.

팀은 절대로 불러서는 안 될 그 이름을 상스럽게 부르고 있는 여자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여자가 다시 한 번 몸을 뒤로하고 그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

“에라이, 이 나쁜 뭉태기유……!”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

“흡!”

웬 남자의 손이 자신의 입을 막자 여자의 입에서는 괴성에 가까운 신음소리가 나왔다.

“흡흡흡! 흡! 꽥!”

여자는 또 두 팔과 두 다리를 한껏 버둥거렸다.

그는 그녀의 입을 막은 채 뒤에서 백허그하듯 그녀를 꽉 껴안았다.

“조용히 해!”

갑작스런 남자의 출현에 여자는 당연히 혼비백산!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팀의 두 손을 잡고 버둥거렸다.

“읍! 읍! 읍읍읍!”

팀은 그녀의 귀에 입술을 가져가 목소리를 최대한 누른 채 물었다.

“너 누구야! 누군데 몬테규를 알아?”

“흐흡?”

여자의 신음 소리가 순간 다른 버전으로 흘렀다.

당혹스러움에서 궁금함으로.

아마 여자도 남자가 몬테규라는 이름을 알고 있음에 놀란 듯.

그러다 상황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자신의 입술을 막고 있는 팀의 손을 꽉 물었다.

“으악!”

팀은 그녀에게서 손을 떼고 그만 물린 손을 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가 몸에서 벗어나자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너 누구야? 너 누군데 문태규를 아는 거야?”

여자의 음성이 꼿꼿해졌다. 위험한 상황을 맞으며 정신 줄이 컴백한 것.

팀은 대답 대신 방어적 자세로 그를 노려보고 있는 그녀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그녀의 옷깃을 쥐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제발 조용히만 말해. 너 몬테규를 어떻게 알아?”

그의 윽박지름에 갑자기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얀 이마에 파란 핏줄이 올라오며 억울한 목소리를 뱃속부터 올렸다.

“야! 나!”

그를 향해 폭발하듯 날카로운 음성을 터트렸다.

“나…… 그 새끼 애를 키운 여자다, 왜!”

“!”

애…… 애를 키운 여자라고?

그러니까 애런, 애런 몬테규의 애를 키워?

가까스로 비웠던 팀의 머리에 다시 복잡한 생각들이 들어차며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버렸다.

‘소문이 사실이었어…….’

그런데 그 순간,

찰칵찰칵-

건너편 빽빽한 나무 사이로 플래시 터지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젠장!’

파파라치가 분명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큰소리로 몬테규 이름을 불러대는데 촉 좋은 파파라치들이 못 알아챘을 리 없지.

빨리 이곳을 떠야한다. 안 그러면 다른 파파라치들까지 파리 떼처럼 몰려들 것이다.

팀은 재빨리 몸을 틀어 차가 있는 곳을 향했다.

“잠깐!”

그런데 그녀의 팔이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팀은 뒤를 돌아 그녀를 보았다.

“당신 문태규를 어떻게 알아요?”

그녀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도 처연해서, 너무도 절박해서.

“당신이 말하는 몬테규는…….”

순간 입술 사이로 대답이 나오려다…… 이내 멈췄다.

함부로 얘기해줄 순 없지.

그는 다시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뒤를 돌았다. 그런데 그녀가 또다시 그를 잡았다.

“나 그 사람한테 데려다줘요.”

여자는 눈물을 지으며 훌쩍대기 시작했다. 눈동자 가득 쌓여 있던 눈물을 똑똑 흘리며.

“나 그 사람, 그 사람한테 데려다 줘요.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애원의 몸부림이었다. 온몸으로 흐느끼는 처절한 몸부림.

돌아서려던 팀의 발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애절한 팔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도저히 판단이 서질 않는 찰나,

“나…… 나…… 그 사람…… 만나야 해…….”

깜박깜박.

여자는 느리게 두 번 눈동자를 깜박이더니 이내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무릎에 힘을 빼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이, 이봐!”

팀은 바닥에 쓰러진 여자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으나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봐요, 여기서 쓰러지면 어떡합니까?”

큰소리를 내며 다시 한 번 여자를 흔들었지만 역시 꿈쩍도 안했다.

난감한 상황, 도대체 어찌할지 몰라 주변만 살피는데 저 멀리 파파라치들이 조금 전 보다 더 큰 무리를 지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젠장.”

팀은 주먹으로 세게 바닥을 쳤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였다.

엎고 뛰자!

.

.

.

두둥실, 구름 위에 몸을 싣고 떠 있는 느낌.

온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처럼 가벼웠다.

여긴 어디일까?

지연은 가만히 귀 기울여 오감이 들려주는 소리에 집중했다.

세상에, 이렇게 보드라운 쿠션이 있다니.

감자처럼 포실포실하다 해야 하나? 실크처럼 나긋나긋하다 해야 하나?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이 아닌 건 확실하다.

우리 집이라면 스프링의 튕김이 전신에 흡수되는 싸구려 침대였을 테니까.

그럼 여기는 어디? 천국?

나 뉴욕 밤거리를 술 취해 돌아다니다가 총 맞고 죽은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분명 한인 타운의 주점에서 나와 지하철 타고 뉴저지로 들어온 기억이 있다.

‘그럼 나 지금 어디 온 거야?’

뭔가 눈을 뜨기엔 상당히 꺼림직 했다.

지연은 눈을 뜨는 대신 몸으로 이 상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최소한 지금 어디에 누워 있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오른쪽으로 뒹굴.

바닥과 똑같은 재질의 패브릭이 얼굴에 닿았다.

‘침대 헤드는 아니고…….’

이번에는 왼쪽으로 뒹굴. 그런데,

“으악!”

쿵!

아무것도 가로막힌 게 없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그런데 바닥이…… 바닥이 아니네?

팀은 자신의 가슴 위에서 커다란 눈동자를 올리고 있는 지연과 세로로 시선을 마주했다.

“아…….”

놀란 그녀의 입술이 스르르 벌어졌다.

그녀의 숨결이 코끝에 닿자 팀의 입에선 짧고 굵은 실소가 터졌다.

“하!

너무나 기가 막혀서, 너무도 어이없어서.

거센 파도가 그의 머리를 강타한 기분이랄까?

하룻밤을 보내버렸다.

애런 몬테규,

동생의 여자와.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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