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외전 7 - 지나친 욕심
분식집 앞에서 배에 손을 올린 채 깊게 심호흡을 한 수안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도어벨이 청명하게 울렸다.
“어서 오세요.”
뒤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중년여자가 온화한 미소로 수안을 반겼다.
점심때를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여섯 개의 테이블은 모두 비어 있었다.
여자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 천천히 걸어간 수안은 주방과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문하시겠어요?”
“어, 저는, 김밥 주세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어 보인 여자가 주방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 쪽을 마주하고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제법 손놀림이 빠른 여자가 김밥과 장국을 쟁반에 담아 내오는 사이, 수안은 집요하게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임신했나 보네. 몇 개월이에요?”
“아, 네, 6개월째 접어들었어요.”
테이블에 음식을 내려놓은 여자가 자신의 휴대폰이 놓여 있는 옆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이 동네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아 네, 누굴 좀 만나러 왔어요.”
딱히 관심이 있어서 물은 건 아닌 듯, 여자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더 이상의 대화를 원치 않는다는 제스처임을 알면서도 수안의 시선은 중년여자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오뚝한 콧날과 단정한 입매가 자리한 여자의 얼굴에선 피로감이 물씬 느껴졌다.
현진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10년 전 교통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진 남편을 대신해 그녀가 생계를 책임져 왔다고 했다.
전문적인 기술이 없는 사람의 돈벌이가 대부분 그러하듯, 그녀 또한 온갖 고생스러운 일들로 8년을 보낸 뒤, 재작년에서야 겨우 이 협소한 분식집을 개업했다고 했다.
현진의 보고로도 이미 짐작은 했지만, 상당히 지난한 삶을 살아왔다는 걸 그녀의 표정에서 새삼 읽을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도훈을 생각하면 자업자득이라 해야 맞는데, 대놓고 미워하기엔 여자는 너무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시 입맛에 안 맞아요?”
“예?”
“김밥이요, 맛이 없어서 그러고 있는 건가 해서.”
수안만 그녀를 유심히 살폈던 게 아니었던가 보다.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수안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듯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내 고민하고 있던 수안이 의미 없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저어, 차도훈이요, 그 사람이 제 남편이에요.”
머뭇거리며 꺼낸 말에 여자의 입가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이 테이블 위로 툭 떨어졌다.
“남편은 저 여기 온 거 몰라요. 한 번 뵙고 싶어서…….”
“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나는 그런 사람 몰라요.”
눈도 깜빡거리지 못하고 굳어 있던 여자가 너무 늦게 수안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김밥이 맛이 없나 보네요. 돈은 안 받을 테니, 그만 가주세요.”
잔약한 떨림이 깃든 목소리로 말을 끝낸 여자가 수안을 등지고 돌아섰다.
“여기 오기까지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저도 아는 걸 남편이 모를 리가 없는데, 찾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듣건 말건 여자의 등 뒤에 대고 무작정 말을 쏟아냈다.
모르는 사람이라며 외면부터 하는 것에 울컥해서, 여기로 올 때의 망설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저도 그럴 걸 그랬나 봐요. 아예 찾지 말걸, 달라질 것도 없는데 뭐 하러 굳이…….”
“몇 년 전에 다른 사람이 찾아왔을 때, 만나고 싶지 않다는 의사 분명히 밝혔잖아요.”
거칠게 돌아선 여자가 사나운 얼굴로 쏘아붙였다. 아마도 기석이 일을 꾸미기 위해 그녀를 찾았을 때를 얘기하는 것 같았다.
“대체 뭘 바라요? 내가 그 애한테 잘못했다고 빌기라도 해야 하나요?”
안타깝게도 잘못을 말하는 여자의 얼굴에선 뉘우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달랑 하나 가지고 있던 사진까지 내어줬을 땐, 어떤 식으로건 엮이고 싶지 않다는 소리잖아. 왜 잊을 만하니까 찾아와서 사람을 괴롭혀.”
수안이 선량하다 생각했던 얼굴은 그저 먹고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속이 쓰렸다.
표독스럽게 벼려진 얼굴을 마주하고 어쩐지 슬픔이 밀려왔지만, 울고 싶진 않았다.
수안은 그저 고요히 앉아 있다가 자신의 배 위에 양손을 올렸다.
좋은 것만 주고 좋은 소리만 듣게 하고픈 소중한 존재를 품어,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진 지 오래였다.
하물며 그게 생물학적 의미일망정 친할머니에게서 듣는 소리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내가 얼마나 거지같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야? 남자한테 눈이 뒤집혀 제 새끼 버리고 가더니 꼴좋다 비웃어야 속이 시원하겠냐고?”
저 혼자 흥분해서 마구 쏘아붙인 여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느라 가슴을 들썩였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수안이 조용히 일어나 삐죽이 자리를 벗어난 의자를 밀어 넣었다.
아무도 앉았던 적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저는 좀 더 그럴듯한 이유이길 바랐나 봐요. 정말 그런 이유로 버림받은 거라면, 그 사람이 너무 안됐잖아요.”
나직이 읊조리는 수안의 입가에 서글픈 미소가 드리워졌다.
날카롭게 눈꼬리를 치켜세우고 노려보던 여자는 곧게 바라보는 수안의 맑은 눈빛을 견디기 힘든 듯, 고개를 돌려 시선을 빗겼다.
“찾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건데 말이에요. 제 욕심이 너무 지나쳤나 봐요.”
뭐든 해주고픈 마음이 앞서 괜한 욕심을 부렸다.
“제 아버지가 그렇듯 없느니만 못한 부모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의 행복이 너무 고맙고 소중해서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멍청하게도 말이죠.”
수안이 한쪽으로 내려놓았던 백을 어깨에 메기 전에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마음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해요. 오늘 일은 잊어주세요. 저는 여기 그냥 손님으로 왔던 거예요.”
내내 자신을 외면하고 있는 여자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수안이 돌아가려고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젊은 여자가 유리문 사이로 고개부터 집어넣고 ‘엄마’ 하고 불렀다.
수안은 저도 모르게 막 들어서는 여자를 살폈다.
은연중에 도훈과 닮은 부분을 찾고 있는 제 자신을 깨닫고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반쪽짜리일망정 도훈의 동생이라 생각하니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원치 않는 인연은 이대로 잊히는 게 서로에게 좋았다.
한 줌 남은 미련마저 떨쳐 내고 분식집을 나서는 수안의 뒤로 짜증이 섞인 모녀의 대화가 들려왔다.
“왜 나왔어? 주말만이라도 아빠 옆에 좀 있으라니까.”
“자꾸 소리만 질러대는데 어떻게 옆에 있어.”
“하여튼 계집애, 답답해서 그러는 걸 텐데 비위 좀 맞춰주지, 어쩌면 넌 저밖에 모르니.”
“나밖에 몰랐으면 벌써 집 나갔지, 이러고 살겠어?”
“이놈의 계집애, 말하는 것 좀 봐.”
닫히는 문틈 새로 젊은 여자의 앙알대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끊겼다.
분명 듣기 좋은 대화는 아니었는데, 누가 뒤통수를 잡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주차된 차로 다가가는 수안의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짧은 거리를 느릿느릿 걸어서 차에 올라탔을 때는 정말 긴 여정을 끝낸 것처럼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단지 기분만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수안아, 울어?”
“예에? 울긴 내가 왜, 어? 정말이네. 나 울고 있었네.”
“허,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 그 여자가 뭐라 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흣, 괜히 왔어. 그냥 언니 말 들을걸.”
딱히 영문을 모르겠는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어린애처럼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 내봐도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흣, 아마 콩이 때문인가 봐.”
얕은 한숨을 내쉰 현진이 티슈를 뽑아 건네고는 생수병 뚜껑을 열었다.
“진정하고 물 좀 마셔.”
눈물을 닦아낸 수안이 코까지 야무지게 풀고는 생수병을 받아 물을 마셨다.
“언니, 오빠한테는 절대 비밀이에요.”
자신이 왜 엄마에게 버림을 받아야 했는지, 듣기조차 민망했던 그 이유를 도훈은 절대로 몰라야 했다.
“비밀로 하고 싶으면 그만 울어. 눈 퉁퉁 부어서 가면 잘도 속여먹겠다.”
“눈 부었어요?”
“조금.”
“하아! 어쩔 수 없이 비장의 무기를 사용해야겠네요.”
“비장의 무기?”
“부은 눈 같은 건 알아채지도 못하게 하는 수가 있죠. 아무튼, 시간 없으니까 빨리 출발해요.”
의문스레 쳐다보던 현진이 수안의 재촉에 차를 출발시켰다.
“회장님이 물어보시면 난 거짓말 못 한다.”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뭘 어쩌려는 건데?”
“우리 콩이까지 꾸며야 해서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그것만큼 잘 먹히는 게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미인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