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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자제가 안 돼 (59/88)

59. 자제가 안 돼

도훈이 5분 만에 뚝딱 만들어 온 샌드위치는 제법 그럴듯했다.

한입 덥석 베물고 우물우물 씹어 넘기자, 도훈은 주스가 담긴 컵을 얼른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치켜뜬 눈으로 슬쩍 그를 살핀 수안이 주스를 얌전히 받아마셨다.

한쪽 무릎을 세워 수안을 뒤에서 감싸듯 앉은 도훈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달랑 파자마 차림에 헝클어진 머리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는 기품 있어 보였다.

아마도 깊게 가라앉은 진중한 눈빛 때문이리라. 아니면 선이 분명한 데다 더없이 우아해 보이는 입술 때문이든가.

뭐가 됐건, 완전 사기다.

깎아놓은 듯 단정한 저 얼굴이 그렇게 색정적으로 변할 줄 꿈엔들 알았을까.

상당히 모범적으로 생겨서 결재서류에 사인하는 데 어울릴 것 같았던 저 손이 그렇게나 선정적인 움직임을 보이리라고 짐작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싫었다는 건 아니고, 마냥 좋다고 하기에는 조금 지나치다 할까.

너무 긴장한 나머지 뭐가 뭔지도 모르고 황홀한 고통에 허덕여야 했던 처음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자꾸 주춤거리고 멈칫대는 수안을 어르고 달래는 도훈의 다정함에 사로잡힌 사랑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재워주겠다며 부둥켜안고 있다가 시작된 두 번째는 처음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격정적이고 놀랍도록 선정적인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비교군이 없으니 멀쩡한 허우대와 정력의 상관관계를 유추해 낼 수는 없겠지만, 도훈의 허우대는 완벽하게 제 값을 하고도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그래서 도훈이 허리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수안은 배가 고프다며 징징댈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으면 허기진 채로 또다시 홀딱 잡아먹혔을 터였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얻어낸 샌드위치는 완전 꿀맛이었다.

격한 운동 뒤에 침대에 앉아 극진한 시중을 받으며 먹는 샌드위치니 오죽할까.

“수안아, 꼭꼭 씹어서 조금만 빨리 먹자.”

이게 뭔 소리래? 이렇게 근엄한 표정으로 애처럼 졸라대는 건 좀 소름인데.

“꼬꼬 이으려면 빠이 모 머거여.”

“해보지도 않고 못 한다고 하면 안 되지.”

마치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을 나무라는 것 같은 말에 수안은 샌드위치 씹는 것도 잊고 그를 어이없는 눈길로 올려다봤다.

“여기 소스 묻었다.”

원래 이렇게 능글맞은 사람이었을까?

수안의 어이없음 따윈 알 바 아니라는 듯, 도훈은 그녀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아내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손으로 닦아내도 될 걸 굳이 입을 활용해서 말이다.

“맛있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맛있다는 소리가 너무도 야하게 들렸다.

그 말을 하는 차도훈도 무척이나 야해 보였다.

자신의 입술을 혀로 나른하게 핥는 도훈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던 수안이 저도 모르게 입안의 샌드위치를 꿀꺽 삼켜 버렸다.

“그만 먹을 거면 치울까?”

대답도 하기 전에 남은 샌드위치를 빼앗겼다. 항의의 말은 도훈의 혀에 얽혀 흐지부지 스러져 버렸다.

실용적인 일을 하고 있던 입이 믿을 수 없게도 너무나 빠르게 비실용적인 감각에 잠식되어 간다.

목덜미를 휘감고 있던 도훈의 손이 이내 은밀한 유영을 시작했다.

두 번을 벗었다 입었던 슬립이 부드러운 손길에 어깨를 미끄러져 내려간다.

순식간에 차오르는 열망이 온몸을 저릿하게 휘저었다.

이미 두 번의 경험으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한 몸이 먼저 뜨겁게 내달았다.

도훈이 이다지도 쉽게 자신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수안은 순간 겁이 덜컥 났다.

누가 낚고 누가 낚였건 분명 그녀의 의도대로 상황이 진행된 건 맞는데, 뒤늦게 이게 정말 맞는 건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서적 교감 없이 신체적인 경계를 넘어버린 것에 대해서도 뒤늦게 후회가 됐다.

사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도훈을 유혹할 결심을 했으면서도, 그가 이렇게 쉽게 넘어오리라곤 짐작도 못 했다.

도훈이 무슨 의도로 자신의 유혹에 호응을 해준 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한 발 경계를 넘은 남녀 사이에 어떤 과정이 남아 있는지도 잘 몰랐다.

대책 없이 휩쓸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란 존재는 다 녹아서 도훈에게 잠식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이한 불안감에 휩싸여 수안은 살짝 몸을 굳혔다.

이 순간이 미치도록 좋아서 두려운,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런 마음이 전해지기라도 한 걸까? 격렬한 키스를 퍼부어대던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하아! 조금만 더. 응?”

도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정 같은 간절함이 새어 나왔다.

뭘 조르는 건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수안은 가슴부터 덜컥댔다.

“백수안 때문에 말이야, 내가 저딴 빵 쪼가리를 다 부러워하고.”

정수리와 이마에 닿는 입맞춤이 애틋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건 알겠는데, 도저히 자제가 안 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수안의 양손을 그러쥔 도훈이 마치 고귀한 것에 입맞춤을 하듯 입술을 부드럽게 내리눌렀다.

그러곤 무언가를 확인시켜 주고 싶은 것처럼 그녀의 손을 끌어다가 제 가슴 위에 가져다 붙였다.

매끈한 피부 아래에서 심장이 요란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더없이 정적이면서 동시에 격하게 소란스러운 것 같은 순간이었다.

“처음이라 힘들 거 뻔히 아는데, 사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이대로는 내가 정말 죽을 것 같거든.”

알아들을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말에 골몰하는 사이, 정말 몸에 이상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의 가슴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이거 말고 다른 건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거세게 요동치는 심장 위에 놓여 있던 수안의 손이 도훈에 의해 점점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와중에도 간절한 도훈의 눈빛은 수안의 눈에 고정된 상태였다.

점점 거칠어지는 수안의 숨결 위로 그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겹쳐졌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 그 무엇이라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녀 하나를 바라 이토록 애절하게 허락을 구한다.

모든 걸 내어주기만 했던 그가 처음으로 내보이는 간절함 앞에서 그녀가 느꼈던 두려움은 서서히 옅어져 갔다.

마침내 수안의 손이 뜨겁게 달아오른 도훈의 열망을 확인하는 순간, 나붓나붓 붙었다가 떨어지던 입술이 격하게 삼켜졌다.

미지근하게 남아 있던 두려움은 모조리 산화되어 격한 열망으로 되살아났다.

무람없이 삼켜지고 뒤엉키는 입술 새로 여리게 신음이 터졌다.

온몸을 저릿하게 휘젓는 쾌감을 견디지 못한 수안이 잘게 흐느끼며 그의 품을 파고들자, 도훈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엉덩이를 감싸 자신의 허벅지 위로 당겨 안았다.

어미 품에 안긴 새끼처럼 자신의 품 안에 쏙 파묻혀 어깨에 얼굴을 부비는 수안을 보는 도훈의 눈빛이 뜨겁게 일렁였다.

“너를 어떻게 참았지?”

숨결처럼 토해낸 말끝에 가녀리고 섬세한 목에 입술을 눌렀다가 지그시 머금었다.

“흐, 간지, 큭큭, 간지러워, 아앗!”

목을 움츠리며 키득거리던 웃음소리는 금세 앓는 듯한 신음 소리로 바뀌었다.

어느새 푹신한 침대가 등 뒤로 닿고 탄탄한 도훈의 몸이 곧바로 겹쳐졌다.

그녀의 뺨과 턱에 자잘한 키스를 흩뿌리던 입술이 점점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수안이 가쁘게 숨을 들이켰다.

도훈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여린 피부를 살랑살랑 간지럽혔다. 전율에 휩싸인 수안이 그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얽어 헤집었다.

수안의 몸 곳곳을 탐닉하던 도훈이 다시 거슬러 올라와 격렬하게 키스를 퍼부으며 그녀를 감싸 안았다.

투정 같은 신음은 도훈의 입으로 모두 삼켜졌다.

한계치까지 능력을 이끌어내는 데에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태성그룹 차기 회장님답게 선정적인 감각에 몸서리치는 수안을 부추겨 저릿한 쾌락의 늪으로 이끌었다.

미칠 것 같은 격정이 두 사람을 동시에 집어삼켰다.

“하아, 아저씨. 이거 너무, 너무 좋아요.”

수안이 참기 힘든 신음을 토해내며 아찔한 절정에 애처롭게 허덕였다.

도훈이 그런 수안을 달래려는 듯이 입술과 뺨, 눈꺼풀 위에 쉴 새 없이 입을 맞췄다.

“그래.”

상당히 모호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뜻이 담긴 것 같은, 너무나 익숙한 도훈의 ‘그래’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수안의 입에서 또르르 구르는 것 같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홀린 듯 입술을 내리는 도훈의 가지런한 입가에도 그림 같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나, 졸려요.”

“그래.”

피식거리던 수안이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다정한 손길에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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