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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동상이몽 (58/88)

58. 동상이몽

바짝 당겨진 부드러운 몸이 단단한 그의 가슴에 짓눌렸다.

‘헉’ 하고 숨을 몰아쉬는 수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능할 것 같진 않지만, 여기서 멈추길 원한다면 말해.”

한층 더 가까워진 도훈이 상당히 위험스러운 목소리로 전혀 위험스럽지 않은 제안을 해왔다.

“뭐, 뭐를…….”

“아니, 됐다. 그냥 말하지 마라. 차라리 나쁜 놈 하고 말지, 이대로는 정말 제명에 못살겠다.”

푸념처럼 말을 늘어놓은 도훈이 다급하게 입술을 겹쳐왔다. 그리고 그보다 더 다급하게 따뜻하고 물컹한 것이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팽배해 있던 긴장감이 야릇한 흥분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너무도 바라던 일 앞에서 수안은 겁도 없는 스무 살답게 무작정 휩쓸려들었다.

도훈이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서 더 깊숙이 입을 맞췄다. 거칠어진 숨결이 경계 없이 뒤섞였다.

“하아, 너 술 마셨어?”

간신히 놓여났나 싶은 순간, 도훈이 입술 위에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 그, 너무 긴장돼서, 조금.”

말하는 중에도 도훈의 입술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바람에 수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취했어?”

“아, 아니요. 하나도 안 취했어요.”

“그거 다행이네. 안 그래도 나쁜 놈 확정인데, 술 힘까지 빌리면 안 되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와중에도 도훈의 다행이라는 소리는 참 좋았다.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다정한 손놀림도 좋았고, 잠시도 떨어지기 싫은 듯 여기저기 찍어대는 부드러운 입술도 더할 수 없이 좋았다.

“정말 좋아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수안이 까치발을 해서 도훈의 목에 팔을 감으며 와락 속삭였다.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마구 비벼대자 도훈이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진짜 미치겠네.”

거칠고 낮은 웅얼거림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당연하다는 듯 입술이 겹쳐졌다.

부드러운 혀가 뜨겁게 뒤엉켰다. 고삐 풀린 손은 거침없는 행보로 수안을 달뜨게 했다.

단단한 몸과 말랑한 몸이 한 쌍인 것처럼 맞물렸다.

커다랗고 뜨거운 손으로 수안의 등을 애달프게 어루만지던 도훈이 낮은 신음을 토해내며, 그녀를 번쩍 들어 침대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까마득해지는 정신에 질끈 눈을 감았다가 뜨니 도훈이 하늘인 듯 바로 위에서 그녀를 바라기하고 있었다.

“너 뭐야? 뭔데 이렇게 사람을…….”

쥐어짜듯 이어지던 목소리는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들끓는 열망에 고통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눈이 눈꺼풀 아래로 잠기는 것과 동시에 뜨거운 입술이 귓불에 닿았다.

귓불이 뭉근하게 빨리자,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수안의 호흡이 급격하게 흐트러졌다.

아름다운 미끼는 오히려 도훈이었던 듯, 그에게 낚인 수안은 아프게 몸을 비틀며 헐떡였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도훈의 입술은 귓불과 목 쇄골을 쉴 새 없이 오갔다.

탐욕스러운 입술이 영역을 넓혀가며 부드럽게 혹은, 강하게 빨아들일 때마다 수안의 심장은 무섭게 뜀박질을 했다.

혼미하게 이지러지고, 황홀하게 잠식되어 갔다.

어디에도 없을 신세계가 도훈의 손끝과 입술 아래에서 펼쳐졌다.

놀랍게도 감당하기 힘든 흥분과 두려움, 기대감이 동시에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몸 전체가 녹아 없어질 듯 흐물거렸다가, 데일 것 같은 열기에 아릿하게 조여들었다.

어느새 천 조각 하나 남지 않은 수안의 몸 위를 이글거리는 도훈의 시선이 집요하게 미끄러진다.

너무나 노골적인 시선에 부끄러워진 수안이 막상 어디를 가려야 할지 몰라 손을 움찔거리다가, 결국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려 버렸다.

그 모습에 도훈이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럴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이렇게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게 예쁠 거라고는…….”

찬사를 보내듯 부드러운 입맞춤이 수안의 몸 곳곳에 내려앉았다.

“백수안, 너 어쩔 거야? 응? 내가 너한테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면, 너 이제 어쩔래?”

나직한 목소리로 위협하듯 물은 도훈이 동그란 어깨에 입술을 눌렀다가 이내 이를 세워 물었다.

“아, 아파요.”

수안이 울상을 지으며 몸을 비틀자 또다시 낮게 웃음을 흘린 도훈이 그녀를 꽉 부둥켜안았다.

“넌 그냥 아프고 말지, 난 아주 죽겠다.”

어쩐지 투정처럼 들리는 말에 웃음을 터뜨린 것도 잠시, 도훈이 수안의 입을 막듯 격렬하게 입술을 겹쳐왔다. 농밀하게 빨리고 진하게 삼켜졌다.

웃음 한 자락, 숨결 한 조각도 제 것으로 허용된 건 없는 듯 모두 도훈에게로 옮겨갔다. 거친 숨결이 벅차게 차올랐다.

몸 전체가 바글바글 끓는 것 같은 느낌에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빈틈없이 맞닿아 있는데도 무언가 충족되지 않은 것 같은 애달픔에 몸을 떨던 수안이 그의 셔츠를 잡아 뜯을 것처럼 벗겨냈다.

뜨겁게 달구어진 도훈의 숨결이 수안의 얼굴 위로 흩뿌려졌다.

모든 게 완벽하다 느꼈다. 열망에 휩싸여 나른하게 흐트러진 도훈의 표정도,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수안의 달아오른 얼굴도.

그런데 한순간 도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가 잘못된 건지 미처 살피기도 전에 도훈이 앓는 소리를 내며 수안의 어깨 너머로 머리를 박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대던 도훈이 묵직한 한숨을 토해내며 수안의 옆에 털썩 드러눕고 말았다.

‘설마, 이게 끝이야?’

순간 수안의 머릿속을 강타한 생각이었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이 불순해졌다.

‘이 아저씨 어딘가, 뭔가가 잘못된 거 아니야? 아니면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아닌데. 분명 막 달아올랐었는데.’

후끈하게 달아올랐던 열기가 서늘하게 식어가며 민망함이 물밀 듯 밀려왔다.

울상이 된 수안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이불을 주춤주춤 끌어 올리자, 고개를 돌린 도훈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가 된 기분이야.”

이불을 덮어주는 손길은 하염없이 부드럽건만, 목소리엔 은근한 짜증이 섞여 있었다.

수안은 자신의 짐작에 확신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뭉근한 실망감이 엄습해 왔지만, 축 처진 도훈의 모습이 너무나 측은해서 자신의 감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우선은 도훈을 먼저 위로해야 할 것 같았다.

“저기,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잘은 몰라도 남자들, 막 피곤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고 그러면 잘 안 되기도 하고 그런다더라고요.”

“뭐?”

너무 정곡을 찔린 게 창피한지 도훈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런 도훈이 더욱 안쓰러워진 수안이 쩍쩍 갈라진 복근 위에 가지런히 놓인 그의 손을 토닥였다.

멀쩡한 허우대와 정력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게 분명하다는 뜻밖의 깨달음에도 실망하지 않고, 부족한 내 남편 열심히 보듬고 살아보리라 양처다운 결심을 불태웠다.

“괜찮아요, 괜찮아. 나는 뭐 그런 거 크게 신경 안 쓰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나는 이 정도로도 설레고 좋아요.”

수안의 위로가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도훈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짙게 일그러졌다.

“정말 괜찮다니까요. 어차피 이런 거 잘 몰라서, 안 한다고 해도 아쉬운 것도 모를 거야. 그러니까, 꺄아아.”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날렵하고 우아하게 움직인 도훈이 수안의 몸을 덮쳐 눌렀다.

“그거 유감이군. 나는 아쉬워서 미치기 직전인데 말이야.”

여전히 열기가 식지 않은 도훈의 눈이 수안을 삼켜 버릴 듯 쏘아봤다. 얇은 이불 위로 단단한 몸이 뭉근하게 비벼졌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미안한데, 안 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준비를 못 해서 할 수가 없는 거야.”

“아, 아아!”

뒤늦은 깨달음에 ‘아’를 연발하던 수안의 코가 아프게 잡혔다.

“아, 아, 아파요.”

“넌 좀 아파도 돼.”

말은 심술 맞게 해도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도훈이 수안의 코를 살살 문질렀다.

“내가 뭘 준비했는지 알면 아저씨 내 코 비튼 거 완전 후회할 텐데.”

의미심장하게 입을 삐죽거린 수안이 도훈의 품에서 벗어나 침대 옆 협탁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놨다.

“아무래도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

편의점에서 소주와 함께 거의 쓸어 담다시피 구입할 때보다 더 부끄러워진 수안이 도훈의 시선을 피하며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어떤 걸 사야 할지 몰라서어, 크기별로 종류별로 다 사긴 했는데요. 너, 너무 많이 샀죠? 그렇다고 뭐, 이걸 다 써보겠단 건 아니니까 부담 가질 필욘 없구요오. 아저씨한테 맞는 거 골라서…….”

“백수안, 너를 진짜 어쩌면 좋지?”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듯 성마르게 터져 나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뜨겁게 안겼다.

“아악, 아저씨 숨 막혀요.”

커다란 품에 옴짝달싹 못 하게 안겨 앙탈을 부리듯 발을 동동거렸던 이때만 해도, 수안은 한 치 앞에 닥쳐올 일은 짐작도 못 하고 자신의 철저한 준비성에 뿌듯해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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