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9화.
그는 줄곧 대답하지 않았다.
핏줄로 이어진 생명 같은 건 없어도 된다.
그나마 서유정의 피와 섞여 중화되겠지만, 어쨌거나 분신 같은 자식 따위는 질색이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떻게 되는 건지도 모르고, 뭔지도 모르는데. 누굴 책임지고 사랑이라는 걸 주는 존재는 서유정 하나면 족하다.
뭣보다, 그녀를 만난 후에 삶에 지향점이라는 게 생겼다. 그전까지는 부유하는 인생이었다. 애를 낳아 키워 봤자 놈이 서유정 같은 존재를 만날 확률은 희박하잖아. 그럼 아무 의미도 없는 삶을 연명하는 수준일 텐데, 그렇다면 태어나지 않는 게 맞는 거다.
“태경 씨…….”
유정의 흔들리는 동공 안에서 타격감이 느껴졌다. 사랑은 결국 번식욕에서 기인한 감정이라는 놈도 있었는데. 여자도 생명을 잉태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금껏 요구한 적이 없었다. 태경은 그녀의 심중을 파악하려는 듯 뚫어지게 응시했다.
유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죄도 없는 입술을 혹사하는 버릇은 어지간히 질겼다. 태경이 제지하려고 손을 뻗었지만, 닿기도 전에 그녀가 멀어졌다. 아니, 유정은 방으로 도망쳤다. 상처받은 눈으로.
따라가서 손목을 붙잡았지만 내쳐졌다. 처음으로 뿌리침을 당했다는 사실에 태경은 잠깐 얼이 빠졌다. 그러는 사이 문이 닫혔다. 잠금장치를 누르는 소리도 뒤따랐다.
이거 지금 뭐지.
잠깐 황량하게 서 있던 태경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우선 차분하게 노크를 했다. 하지만 곧장 유정의 냉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혼자 있고 싶어요. 잠시라도.”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우기처럼 축축하기도 했다. 운다. 울고 있다. 태경은 노크를 하느라 들어 올린 손을 말아 쥐었다.
눈앞에 있으면 달래 줄 텐데 구태여 숨었다. 사람 미치게 하려고 작정이라도 했나. 태경은 발로 문을 걷어찼다. 쾅, 소리에 안에서 약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녀 스스로 문을 열어 주는 기대를 잠깐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유정도 고집을 부릴 때는 제대로 부리는 편이었다. 물론 지금의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받아 줄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태경은 침착하게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긴 다리를 접었다가 뻗으며 문에 꽂아 넣었다. 그것도 여러 번.
쾅, 쾅!
제법 두꺼운 문이 포악한 발길질 몇 번에 박살이 났다. 태경은 구멍이 나서 너덜거리는 부위를 대강 뜯어내고 그 안으로 손을 넣었다. 손의 감각만으로 잠금쇠는 금방 찾았다. 태경은 망설임 없이 잠금을 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녀가 원망스러운 눈을 들었다.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맺혀 있었다. 기가 찼다. 지금 울고 싶은 게 누군데.
“왜…… 혼자 생각도 못 하게 해요?”
“무슨 생각.”
“그야…….”
“뭘 혼자 생각할 건데.”
다그치는 목소리에 유정은 퍽 억울해졌다. 따져 묻고 싶은 사람이 정작 누군데. 그는 어째서 이렇게 당당한 걸까. 유정은 눈꼬리를 파르르 떨면서도 야무지게 입을 열었다.
“나도 아이를 갖고 싶단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막상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오니까 기뻤단 말이에요. 태경 씨와 나의 결실이니까. 우리가 사랑해서 생긴 생명이니까. 그런데 태경 씨는 마치 방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는 있어도 미래는 없을 거라는 암담함. 그건 사형 선고처럼 느껴졌다.
“만약 임신이었으면…… 지우라고 했을 거잖아요.”
그 말을 하는데, 서러움이 북받쳤다. 유정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았다.
“나는 그런 태경 씨한테 실망 안 하려고, 이해해 보려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에요.”
“만약이라고 했잖아요! 진짜 만약에 임신이었으면, 그랬으면…….”
“낳았겠지.”
늘어지는 말꼬리를 태경이 대신 채웠다. 그러면서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유정은 푸른 불꽃 같은 게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어떻게든 사랑해 보려고 하고 아껴 주겠지.”
“…….”
“서유정은 내가 사랑하는 여자고, 그런 여자가 낳은 아이니까.”
유정은 그렁그렁한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읊조렸다.
“그런데 왜…….”
“서유정만큼 사랑할 순 없을 거 같았거든.”
“…….”
“나 같은 걸 세상에 또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그 말에 유정은 심장이 욱신거렸다. 상처라고는 없을 거 같은 그는 사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오랜 기간 부정해 왔던 게 아닐까. 어떤 상처보다 사실은 그게 가장 고독했을 텐데.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말을 해요. 도망가지 말고. 나 진짜 돌아버리니까.”
그가 말했다. 유정은 그게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으나 목이 잠겨서 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무작정 태경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고 입술을 갖다 붙였다.
이런 귀여운 짓은 어디서 배웠을까. 씨발, 다 씹어 먹어 버리고 싶게.
태경은 눈물에 젖은 입술을 집어삼켰다. 원피스형 파자마를 젖히고 팬티부터 끌어 내렸다. 실크 재질의 팬티가 다리를 타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 급하게 음부에 손을 갖다 댔는데, 거긴 달궈 줄 필요도 없이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태경은 드로어즈와 바지를 한꺼번에 내리고 좆대가리를 밀어 넣었다.
“아……!”
완전하게 푹 익지 않는 내벽이 귀두를 밀어냈지만, 유정은 흥분감에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말은 난잡하게 해도 그는 매번 정성스럽게 애무를 한 후에 삽입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급했다. 유정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의 이성을 날려 버릴 수 있는 건 저 하나임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아파요? 미안.”
그가 좆을 반쯤 뺐다. 목에는 핏줄이 곤두서 있었다. 유정은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 그의 성기를 붙잡아 안으로 넣었다. 그러자 태경이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처박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여자는 욕심이라고는 없었다. 심지어 사랑한다면서 막상 저한테 돌아오는 사랑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 주제에 사랑의 결실이니 뭐니, 또 낭만적인 사고로 욕심내는데 안 줄 수가 있나. 몇 번이고 씨를 뿌려서 아이를 원하는 대로 몇이든 만들어 줘야지.
태경은 파자마를 끌어 올린 후에 가슴을 베어 물었다. 아기처럼 유두를 쭙쭙 빨아 대며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
“임신하면 여기서 젖 나오는 거예요?”
잠깐 상상만 했는데도 극락의 맛이다. 태경은 유정의 두 다리를 팔에 걸친 채 허리를 쳐올렸다. 그는 선 채로 좆을 처박고, 유정은 중력에 의해 자꾸 밀려 내려오니 밑이 알아서 깊게 맞붙었다.
“읏, 아앗, 천, 천히!”
“빨리 싸고 더 해야죠. 많이 싸야 임신 될 거 아니야.”
그 말에 유정의 밑구멍을 조였다. 태경이 짧은 신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내벽 안에서 성기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넝쿨처럼 핏줄이 선 성기가 맥동했다.
유정은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고, 목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태경은 관자놀이를 시퍼렇게 세우며 욕을 씹었다. 어떤 때보다 빠르게 허리 짓을 했다. 애액과 음액으로 밑구멍은 허연 포말로 뒤덮이고, 덩어리진 액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너, 너무 깊어……!”
그 말에 태경이 허리를 돌렸다. 성기가 주름진 내벽을 마구 헤집었다. 가파른 굴곡 끝, 부풀어 오른 살점을 귀두가 자꾸만 처박았다. 아랫배에 성기 모양이 새겨지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머리끝이 쭈뼛 서고 뱃속이 진동했다.
“아흐응!”
유정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태경은 자비 없이 손을 밑으로 내려, 팽창한 클리토리스를 엄지로 아무렇게나 비볐다. 내벽이 꽉 찬 상태로 클리토리스까지 자극이 들어오자, 유정의 입이 헤벌어졌다. 침까지 질질 흘리며 주르륵, 아래로 미끄러졌다. 다행히 태경이 둔부를 붙잡아 올렸다. 그 바람에 음부가 귀두만 간신히 머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에 불과했다. 태경이 둔부를 붙잡은 채로 아래로 끌어내리고, 자신의 골반을 밀어 올렸다.
콱, 하고 좆이 내벽 깊숙이 찔러졌다. 그 순간에 유정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발가락을 경직시킨 채 바들바들 떨었다. 태경은 엉덩이를 부드럽게 돌렸다가, 다시 허리를 쳤다. 유정의 입에서 기어코 짐승 같은 울음이 터졌다. 태경은 밀어붙이듯이 허리 짓을 계속했다. 사정감이 치밀어 오르는 순간, 그녀의 둔부를 더 끌어와 자신의 하반신에 맞붙였다. 밑이 빈틈없이 붙은 상태로 동시에 절정에 올랐다.
길게 쏘아진 정액은 줄줄 흘렀다. 태경은 그녀를 품에 안고 침실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희뿌연 액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졌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소중한 보물을 대하듯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후희의 입맞춤을 온몸에 남겼다. 기진맥진해서 늘어진 유정은 눈시울을 붉혔다.
“왜 울어.”
그가 미간을 좁혔다. 유정은 배시시 웃었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는 따듯한 사람인데……. 원래 그렇지 않던 사람이더라도 지금은 아니잖아요.”
유정이 울상을 하고 웃었다. 변화했다고 철석같이 믿는 얼굴이었다. 안타깝지만 변한 건 없다. 여전히 타인의 친절은 천부적인 아부 정신에서 기인한 것이며 사과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굴복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인 서유정을 이해하는 일은 죽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태경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그러니 좋은 아빠가 될 거예요.”
여자의 이런 생각은 언제 종말을 맞을까. 애석하게도 영원할 것이다. 서유정에게는 다정할 테니까. 앞으로도. 그러면 의심 없는 여자는 그게 전부인 양 인식하며 평생을 살아갈 거다.
이 사기극은 서유정의 피가 흐르는 아이에게도 가능할까.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향한 사랑에 종말은 없으니.
[난잡하고 다정하게,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