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잡하고 다정하게 (76)화 (76/83)

외전 2화.

세르게이는 법정에서 열과 성을 다해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그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주태경은 진작부터 몸이 전율했다. 놈을 죽이지 않은 건 다시 없을 좋은 결정이었다. 까딱하면 서유정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가정만으로도 심장이 끊어질 거 같은데. 끔찍한 가정을 잠깐이라도 하게 만든 세르게이는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그날을 후회해야 했다. 그게 공평하다.

“내가 많이 고민했거든. 어떤 병신으로 만드는 게 좋을지.”

그가 짐짓 힘들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다리 병신이 좋겠어. 여기서 기어나가지도 못하고.”

썩 훌륭한 결정이라는 듯 태경이 흡족한 얼굴을 했다. 세르게이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놈의 집요한 성정이 이제는 진절머리가 났다.

“……다 무사하잖아.”

세르게이가 쇳소리를 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된 거잖아!”

급기야는 새된 비명으로 번졌다. 하지만 그의 절박한 읍소 역시 통할 리 만무했다.

“아니지.”

주태경이 시멘트 바닥을 발아래 두고 일어섰다.

“유정이가 결혼식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걸 네가 망쳤잖아.”

그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꼭 위로라도 받아야 할 것 같은 침통한 안색을 보며 세르게이는 공포에 휩싸였다.

“오, 오지 마!”

그의 거대한 몸이 세르게이의 몸을 개기일식처럼 덮었다. 그 사이로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진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아아악……!”

* * *

12월에는 이른 눈이 그렇게 내리더니 겨울이 무르익을수록 눈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렇듯 금세 따듯해진 날씨는 변덕이라도 부리듯, 이른 봄에는 갑자기 매서운 추위가 왔다.

호오-.

넓게 트인 거실 창에 입김을 불어 낙서를 끼적이던 유정은 카디건을 여몄다. 왼편에 멀리 보이는 동호대교 밑으로 한강이 반짝이며 물결쳤다. 어렸을 적 부족한 것 없이 살았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조망이라 아침에 눈을 뜨면 마당으로 나가거나, 이렇게 창 앞에 서 있는 게 습관이 돼 버렸다.

이런 습관이 생긴 지도 어느덧 두 달가량 됐나.

유정은 팔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켜다가 뒤를 돌았다.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그랜드 피아노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자리했다.

한국에 집을 준비해 놨다는 태경은 몸이 회복되자마자 유정을 이곳으로 데려왔다. 모든 게 그의 말대로였다. 최상급 스프루스로 만들어진 피아노는 그녀가 제 실력에 비해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좋은 피아노였다.

너무 좋아서 문제지. 그는 저 자신에게도 아끼지 않지만, 유정에게는 밑 빠진 독처럼 뭐든 퍼다 주었다. 고급 악기를 가지기엔 손도 굳었고,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 필요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언젠가 말해 준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개같이 벌어서 개같이 쓴다고.

성인이 되고서부터 사회에 던져진 후로 생활비에 관한 생각을 안 한 날이 없던 그녀로선 덜컥 걱정부터 됐다. 그리고 그 걱정을 태경에게 표현하자, 다음날 그가 침대에 유정을 앉혀다 놓고 서류들을 펼쳐 보였다.

‘현금은 여기 매입하느라 많이 빠지긴 했어요. 유정 씨.’

아니, 많이 빠졌다기엔 남은 액수도 큰데요…….

조서처럼 나열된 그의 재산 목록을 보며 웅얼거림을 삼킨 유정은 부동산 문서를 읽어 내렸다. 이 집은 지금 살고 있으니 당연히 알고 있고, 프랑스 남부 쪽에 집이 하나 더 있었다.

여긴 뭐지? 궁금증이 드는 순간 그가 말했다.

‘다 줄게요. 유정 씨가 관리해요.’

재산 관리는 해 본 적 없어서 자신 없다고 고개를 흔들자, 한 번도 자세히 말해 준 적 없던 일에 대해서도 말해 줬다. 한국에서 파병 나간 게 아니고 계약직이라고. 계약금도 받고, 평범한 월급도 받고, 임무에 따라서 추가로 급여되고, 포상금도 나온다고.

‘부족하다고 느끼면 더 불릴게요. 투자는 귀찮아서 안 한 거라.’

전혀 부족하지 않은데. 오히려 태경의 씀씀이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유정은 그가 무일푼이어도 상관없지만, 더 힘들게 일할까 봐 걱정됐다고 했다. 그 뒤는 당연하듯 그가 입을 맞춰 왔고, 침대 위에서 더는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건 나한텐 과분한데.”

보면대를 매만지며 그날을 떠올리던 유정은 후끈 달아오른 뺨을 손등으로 꾹 누르며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슬리퍼를 끌리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태경이 없는 집은 고요했다. 결혼식이 있던 날, 또 사건이 터졌다. 그래서 그런지 다쳤는데도 불구하고 바빴던 그는 이번엔 짧은 일정으로 러시아에 가 있었다. 왜 하필 러시아일까. 불안하면서도 내색하지 않던 유정은 목걸이를 매만졌다. 목걸이에는 음성 출력기가 있지만, 그는 듣지 않을 터였다.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피식 웃은 그녀는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 * *

태경이 돌아온 건 그날 밤이었다.

걱정과 달리 위험한 일은 없었던 것처럼 구겨짐 없는 슈트 차림에 유정은 내심 안도하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보통은 어딜 갔다 오면 냅다 달려와 안기는 게 순번이어서 그런지, 그는 팔짱을 낀 상태로 벽에 기대섰다.

유정은 삐딱한 시선을 잠시 마주하며 흘러내리는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피아노 치는 모습은 일부러 보여 주지 않았었다. 조금 감을 잡은 뒤 완벽하게 보여 주려고.

그가 며칠씩 자리를 비울 때마다 틈틈이 연습했었던 유정은 심호흡하며 손가락을 유연히 움직였다. 쇼핑 에튀드 10-12. 오른손으로 화음 잡는 게 불편했지만, 다른 에튀드에 비하면 난이도 있는 편도 아니고 한창 피아노를 할 때의 연습곡이어서 금세 손에 익었다.

“…….”

금방이라도 그녀를 낚아챌 것처럼 보던 태경의 시선이 조금 누그러졌다. 조금도 쉬지 않고 흐르는 곡조에 다문 입술이 조금 움직이다가 말았다.

눈을 내리뜨고 있어, 태경의 반응을 확인하지 못한 유정이 연주를 마치며 고개를 들었다. 뜀박질을 한 것도 아닌데 숨이 찼다. 곧게 들어오는 눈빛에 얼굴이 뜨거워지기도 했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앞으로 더 연습해서 더 많은 곡 들려줄게요. 태경 씨.”

숨을 내쉬며 가슴이 크게 오르내리던 태경이 겹친 팔을 풀고 유정에게 다가왔다. 기다란 손가락이 유정의 턱을 붙들고 위로 올렸다. 그 상태로 가만히 바라보던 태경은 상체를 숙이고는 고개를 비스듬히 내렸다. 입술이 진하게 맞붙으며 혀가 깊게 파고들었다.

유정은 그의 혀가 고픈 듯 응응, 앓는 소리를 내며 목덜미에 팔을 감았다. 목구멍까지 쑤셔질 듯 고개가 뒤로 젖혀졌고, 이내 단단한 그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잠시 입술이 떨어진 사이, 슈트 재킷 단추를 풀며 바닥에 툭 내려놓은 태경은 유정이 입은 실크 잠옷 사이로 손을 넣었다.

“유정 씨.”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이 태경의 손아귀에 우악스럽게 잡혔다.

“날 위해 연주해 준 유정 씨 손가락을 핥아서 씹어 삼키고 싶어요.”

“으흣, 태경 씨…….”

“진심인데.”

빨딱 선 유두가 달랑달랑 만져지자, 유정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내 윗옷이 위로 훌렁 벗겨지더니 브래지어가 단숨에 풀어졌다. 손가락으로 유두를 꼬집듯 비틀던 태경은 진분홍빛 유륜을 넓게 핥으며 빨았다.

뒤로 밀리는 힘에, 유정의 등이 피아노 옆면에 맞닿았다. 그녀는 잠옷 바지 채로 음부를 감싼 커다란 손을 보며 눈꺼풀을 떨었다. 그러는 순간, 하의가 통째로 내려가며 완벽한 나신이 되어 버렸다. 가슴은 여전히 쭉쭉 빨리며 둥실거리는 중이었다.

혀로 유두를 뭉개며 입을 뗀 태경은 금세 습해진 음부 사이를 비집고 갈랐다. 쫀득한 소리를 내며 벌어지는 대음순 사이로 붉은 속살이 훤히 보였다. 발기한 것처럼 톡 튀어나온 돌기를 내려다보던 그가 방심하고 있는 질구에 손가락 세 개를 꽂았다. 이미 애액이 넘쳐나는 그녀의 안은 미끌미끌했다.

“아핫, 읏!”

간지러운 곳을 긁어 주는 것처럼 내벽 주름을 펴 내리는 손짓에 유정의 상체가 들썩들썩 튀어 올랐다.

“다리 더 벌려요.”

안 그래도 쑤셔질 때마다 맞닿는 엄지로 클리토리스도 자극당하는 바람에 허벅지가 후들거리는데, 태경은 더 벌릴 것을 요구했다.

“으, 흐으.”

유정은 울 것 같은 신음을 흘리며, 그의 손가락이 꽂힌 상태로 다리에 간신히 힘을 줬다. 태경이 잘했다는 듯 입매를 올려 웃었다. 잠시 멈췄던 동작이 다시금 이어졌다. 쯔압, 쯔읏, 찐득하고 야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릴 때마다 본능적으로 허벅지가 조여드는데, 그럴 때마다 태경이 엉덩이를 쥐어 비틀어 다시금 벌리게 했다.

유정은 시선을 내려, 제 몸에 행해지는 손짓을 쳐다봤다. 야살스러운 자세가 수치스러웠지만, 그의 손바닥에 더 가까이 닿고 싶어 은근하게 더 비볐다. 그럴 때마다 그의 손목에 자리한 무거운 시계까지 애액이 뚝뚝 흘렀다. 거실에 거울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흣, 태경 씨…….”

유정이 촉촉한 눈망울을 위로 올렸다. 그녀가 바라는 게 뭔지 아는 태경은 얼른 주겠다는 듯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 주며 바지 버클을 풀었다. 이미 앞섶은 찢어질 것처럼 툭 불거졌다. 드로어즈 중심을 밑으로 살짝 내리는 순간, 커다란 성기가 꺼떡거리며 튀어나왔다. 반질반질한 선단에는 쿠퍼액 범벅이었다. 그가 손으로 위아래를 쓸어내리자, 침을 뱉는 것처럼 밑으로 주욱 늘어진 쿠퍼액이 바닥에 한 방울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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