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잡하고 다정하게 (75)화 (75/83)

외전 1화.

영광원은 언뜻 보면 어둠에 파묻힌 듯 보이는 건물이었다. 내부는 시간마저 정지된 양 고요했다. 시커멓게 먼지가 앉은 창틀이나 군데군데 녹이 슨 철제문, 때 묻은 계단이며 마룻바닥에서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묻어났다.

음침하고 스산한 기운의 중심은 원장실에서 기인했다. 인자한 미소를 짓는 원장의 사진이 담긴 액자에 비친 거대한 인영.

찬 달빛을 받은 남자의 실루엣이 푸르게 번쩍였다. 그는 소가죽 재질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체격에 비하면 턱없이 협소한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의자는 위협적으로 삐걱거리고, 남자는 나태하게 고개를 뒤로 젖히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 얼굴 위로 두려움에 질린 원장의 시선이 슬금슬금 기어 다녔다. 원장의 몇 가닥 남지도 않은 듯 보이는 머리는 심지어 희끗희끗했다. 축 처진 기름진 두 뺨은 간헐적으로 경련하고 있었다.

“태, 태경아…… 내가 미, 미안하구나. 그땐 정말 내가 잘못을…….”

주태경이 시꺼먼 눈알을 굴려 응시했다. 블랙스완에 스카우트된 지 한 달째. 스물한 살 이후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발을 디딘 건 처음이었다.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비쩍 마른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었던 도심은 별것도 아니었고, 제법 위압적이었던 원장은 신장이 170을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으며 영광원은 낡고 허름했다. 나른하게 떨군 그의 팔목이 까딱거렸다. 권총이 검지에서 하릴없이 돌았다. 이윽고 상체를 의자에서 일으키며 그가 입을 뗐다.

“……뭐가.”

움직임에 맞추어 짓이겨지는 가죽 소리가 음험하게 울렸다. 긴 침묵 끝에 낸 목소리는 입 안에서 맴돌다 사라지는 바람에 원장은 목을 세워 경계했다. 그러자 태경은 부드럽게 되물었다.

“뭐가 미안해요?”

경직된 심장을 살살 어루만지는 친절한 뉘앙스였다. 원장은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였어. 남자애들은 사춘기가 되면 어디로 튈지 모르니 특히 엄하게 훈육해야 했지. 그때마다 마음은 찢어졌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 네, 네가 이렇게 훌륭한 어른이 되어 돌아온 걸 보면…… 결국 내 교육법이 옳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니?”

그는 시선을 내리뜨고서 그래서 결론이 뭔데, 라고 묻듯이 쳐다봤다. 원장은 마른침을 연거푸 삼켰다. 주태경의 길쭉한 눈매 속 고혹적인 동공이 얼핏 너그러워 보였다. 원장은 뭐에 씐 듯이 중얼거렸다.

“제발, 살려 줘.”

그의 한쪽 입매가 비죽이 올라갔다. 결국 단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있는 말을 원장은 참 길게도 지껄였던 거다.

“내가 왜?”

질문을 던지며 태경은 책상 위의 명패를 여상히 매만졌다. 원장 주원일. 이 명패 앞은 명당이었다. 이 자리에서 둔부의 피가 터지도록 두들겨 맞고 사탕을 받았다. 추억에 잠긴 그의 귓속으로 원장의 가래 낀 목소리가 불협화음처럼 흘러 들어왔다.

“널 아들처럼 생각했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널 얼마나 아꼈냐! 그 정을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해.”

구태의연한 레퍼토리였다. 태경은 심상한 얼굴로 읊조렸다.

“그러네. 내 부모나 다름없어. 이름도 원장님이 지어 줬고.”

그는 서슴없이 서랍을 열었다. 안에 있는 것들이 그 반동으로 우르르, 밀려 나왔다. 사탕이었다.

“아직도 그 짓거리 하나 보네.”

영광원은 주태경을 내세워 매스컴을 타는 바람에 당시 후원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간식거리도 넘쳐났다. 원장은 그걸 남몰래 감추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써먹었다.

주태경은 중학생 때 이미 독학으로 4개 국어를 했고, 그 바람에 보육원의 얼굴이 되었다. 원장은 그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다가도 조금만 수틀리면 후려 팼다. 기강을 잡는다는 명목이었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면 냉골에 가두어 삼 일 밤낮으로 쥐어팼다. 밥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배식했다.

대장정의 끝에는 한껏 누그러진 얼굴로 간식을 쥐여 주었다. 주로 사탕이었고. 그는 그걸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어찌나 달고 맛있었는지 아직 군침이 돌았다.

태경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전신이 달빛에 휘감겨 눈까지 부셨다. 그 바람에 원장은 뒤늦게 자신에게 겨눠진 총구를 마주했다. 희게 질린 원장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주태경은 비장하지도 않았다. 무슨 게임이라도 하는 듯 태평했다. 그 점이 더욱 공포심을 부채질했다. 원장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사죄하기 시작했다.

“보육원생들 중 널 가장 많이 사랑했다! 애들이 널 편애한다고 쑥덕거리기도 했잖니!”

알량한 애정까지 들먹이는 원장의 모습이 퍽 필사적이었다. 저러다 오줌이라도 지리겠네, 하던 찰나에 진짜 하반신을 발발 떠는 게 아닌가.

똥오줌 못 가리는 개새끼도 아니고.

그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웃었다. 버릇없다며 그때처럼 얼굴이라도 후려갈길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쉬워도 어지간히 쉬워야지.

원장은 결국 강자에게 굴복하고, 약자 위에는 군림하는 세상의 섭리대로 착실하게 움직였던 거다. 당시의 그는 나이, 힘, 경제력에서 월등히 약자였기에 당했던 거고.

“재미없다.”

태경은 겨누었던 총을 슥, 내렸다. 마룻바닥에 처박힌 원장의 뒤통수가 흠칫 떨렸다. 그것마저 지루했다. 그는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 벌레를 보듯 원장을 지나쳤다. 원장실 문을 드르륵, 열자 복도의 창문을 통해 달빛이 들이쳤다. 달빛에 스며들 듯이 그가 복도로 발을 내디뎠다.

한국의 그 무엇도 이제 흥미가 일지 않았다. 따분함의 극치였다. 다시 이곳에 방문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다음 날, 대한민국은 뉴스 속보로 온종일 시끄러웠다.

「영광보육원, 십여 년째 후원금 횡령한 사실 밝혀져 파문!」

「보육원생 학대 증언 속출, 원장 구속……」

* * *

현재.

치료감호소는 평화로웠다. 체력 증진을 위한 오전 운동을 마친 세르게이는 개운한 얼굴로 복도를 걸었다. 입원 복장이 무색할 정도로 건장한 세르게이의 표정은 속세에 있을 때보다 더 거만했다. 옆에 붙은 감시인이라는 작자도 감시는커녕 하수인처럼 시중을 들고 있는 모양새였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면회 불가로 밖의 사정이 오리무중인 점인데, 그것도 이제는 개의치 않았다. 마침 아들인 발렌틴이 정신병을 핑계로 갇혀 있어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유전적 요소를 들먹이며 정신적인 결함을 주장했다. 그간 문어발식으로 관리해 둔 인맥도 있고, 목격자에게 위증을 시키고 합당한 금액도 지급했으니 내일이면 원하던 결과가 나올 것이다.

감시인이 문을 따고 비굴한 묵례를 했다.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고는 안으로 들어서던 세르게이의 안색이 굳어졌다. 방을 나갈 때만 해도 비어 있던 맞은편 침대에 누군가 있었다.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쓴 바람에 얼굴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신장과 체격으로 보아 보통 놈은 아니었다.

세르게이는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고 눈썹을 구겼다. 병원 측에 상당한 액수의 금액을 지불하고 2인실을 독방으로 쓰기로 했는데. 며칠을 못 참고 사람을 들였다. 세르게이는 부원장의 탐욕스러운 얼굴을 떠올리며 욕설을 삼켰다. 대신에 침대에 드러누운 놈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너, 일어나.”

놈이 순순히 이불을 까고 상체를 세웠다. 하지만 그 얼굴을 목도한 세르게이의 얼굴은 검게 질렸다.

“……?!”

주태경. 입에 담는 것조차 꺼림칙한 그 이름이 세르게이의 입 안에서 그대로 잠식했다.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주춤, 발을 물렸다.

왜 불렀냐는 얼굴로 보던 태경은 입을 벌리고,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인 얇고 평평한 물건이었다. 주태경이 손으로 대강 조작하자, 간단하게 펼쳐진 그것은 초소형 접이식 나이프였다.

치료감호소에 처음 갇혔을 때는 억울함에 잠도 이룰 수 없었다. 저를 그렇게 만든 원흉이 눈앞에서 그날의 일을 재현하자 세르게이는 혀를 씹어서 욕을 참았다.

“오랜만이야.”

마치 반가운 친우에게 인사를 건네는 뉘앙스였다.

미친 새끼.

세르게이의 입술이 분노로 바들바들 떨렸다.

“낯짝이 반질반질하네. 잘 지냈나 봐.”

소름 끼칠 정도로 새카만 검은자위가 세르게이의 얼굴을 훑었다. 예리한 칼에 살갗이 베이는 느낌에 세르게이는 치를 떨었다.

“너……, 너!”

말도 다 잇지 못하던 세르게이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치료감호소는 방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지내는 동안 그토록 없애고 싶었던 존재가 지금은 유일하게 비빌 언덕이었다. 다행히 적색 불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세르게이는 눈에 띄게 안도한 얼굴이었다.

그 시선을 따라 눈을 옮긴 주태경은 피식 웃었다.

“이틀 전 녹화본으로 돌아가는 중이야.”

세르게이의 목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왜 쇼를 해. 정신적 결함을 진짜 만들면 되잖아. 자기 손으로 불구가 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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