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가지런히 모은 유정의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태경은 그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 잡았다.
“유정 씨.”
“네?”
“울고,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무서워해도 돼요. 억누르지 말고.”
“하지만…….”
“유정 씨가 그럴 때마다 좋아 죽거든요, 나는.”
순간 목이 꽉, 하고 가라앉았다. 홍콩에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그녀가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왔을 때도 이랬었다. 일기 예보에도 없는 비가 오면 부모들이 학교로 우산을 들고 와 자기 아이를 챙겨 데려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혼자 남았었다. 그 비를 다 맞으며 혼자 걸어가던 기억 따위는 잊은 줄 알았었는데. 그게 떠오르더란 말이지.
태경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보는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고는 숨을 뱉었다.
유정은 그런 그의 머리를 감싸며 작게 말했다.
“그럼…… 도저히 못 참겠을 때만 표현할게요.”
“……그래요.”
애정을 줄곧 비웃어 왔다. 그게 추잡한 욕심이나 동경과 뭐가 다른지도 몰랐다. 그런데 서유정의 온정 앞에 무릎을 꿇고 좋아서 빌빌거리고 있다니. 꼴이 우습게 되었다. 태경은 피식 웃었다.
“올라와요.”
“…….”
“내 위로.”
유정이 주춤하며 침상 끝에 엉덩이를 걸치자, 태경이 제 허벅지를 툭툭 두드렸다.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던 유정이 눈꼬리에 맺혀 있는 눈물을 훔치며 귀를 붉혔다.
“태경 씨, 여긴 병원이에요.”
“네.”
“……다쳐서 입원했다고요. 그러다 상처 벌어지면…….”
“그러니까 유정 씨더러 올라오라고 했어요.”
“…….”
“키스하고 싶으니까 얼른 와 줄래요?”
태경이 베개에 등을 푹 기대며 손을 내밀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내민 손끝을 살며시 잡은 유정은 갑자기 휙 잡아당기는 힘에 끌려 그의 허벅지 위에 안착했다.
“태경 씨.”
유정은 앙다문 입술을 풀며 태경의 어깨 위로 올린 손을 말아 쥐었다.
“세르게이…… 감옥 가는 거 맞죠? 그 사람이 태경 씨 또 다치게 하는 건 아니죠?”
태경은 바르르 떠는 유정의 눈꺼풀을 응시했다.
“네.”
“……다행이에요.”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유정의 손을 잡아, 제게로 더 당겼다. 가까워진 얼굴 사이 서로의 숨결이 어지러이 부딪쳤다. 유정의 시선이 밑으로 도르르 내려간 순간, 다문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입 맞춰 줄래요?”
유정이 움찔 놀라며 몸을 뒤로했지만 이내 눈을 스르르 감고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입술이 맞붙으며 뜨거운 온기가 오갔다. 태경은 그 상태로 가만히 있는 유정을 잠시 떼어 냈다.
“혀 넣어요.”
“어떻게…….”
“깨물어도 좋고, 빨아도 좋으니까 마음대로 해요.”
번듯한 얼굴을 마주하며 유정은 달아오른 볼을 문질렀다. 홍조 가득한 그녀의 입술이 다시금 그의 입술에 닿았다. 부드럽고 말캉한 혀가 조심스레 그의 입술 사이를 벌리고 들어왔다. 살짝살짝 건드는 식으로밖에 움직이지 않는 행위에 태경이 목 안을 진동하며 신음했다. 그러자 유정도 응, 으응, 하며 반응했다. 어떻게 해도 그가 해 주는 것만큼 깊어지지 않아 아쉬운 듯 눈가를 찌푸렸다.
“아, 으흣…….”
그 순간 태경이 유정의 목덜미를 잡고 그녀의 입 안을 침범하며 빨아 마셨다. 부드럽게 맞닿았던 입술이 질척해지며 미끈한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유정은 가빠진 호흡을 다잡았다. 밑에서 쿡 찔러 오는 성기 때문에 몸이 간지러워 유두가 바짝 서자, 얇은 티셔츠 밖으로 도톰한 윤곽이 드러났다.
“흣…… 태경 씨. 안 돼요.”
“뭐가?”
드러난 윤곽을 입술로 씹던 태경이 시선을 올리자, 유정이 닫힌 병실 문을 쳐다봤다.
“누가 들어올 수도 있어요.”
“에이든은 그렇게 눈치 없지 않아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눈 뜨자마자 아내랑 붙어먹는 중이라고 생각하겠죠.”
유정이 눈을 키우자, 태경은 유정의 허리를 한 팔로 감싸며 촉촉하게 젖어 가는 그녀의 밑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여기선 안 해요. 다른 새끼들이 유정 씨 냄새 맡게 할 순 없으니까.”
중얼거리며 고개를 기울이는데, 다시금 눈가에 눈물이 차오른 유정이 그에게 풀썩 안겼다.
태경은 커다란 손으로 유정의 등을 매만지며 귓가에 얘기했다.
“내 생각이 짧았어요. 다시는 유정 씨 걱정할 만큼 다치지 않을게요.”
넓은 품에 얼굴을 박은 유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하는 일을 생각하면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제발 그래 주기를.
읊조리는 생각이 태경에게 닿아,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 * *
태경은 결국 뜻대로 이른 퇴원을 했다.
대신, 안정을 취하고 움직이지 않기로 유정과 단단히 약속한 터라 웬만하면 침대 밖으로는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불편함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유정은 직접 만든 죽을 떠먹여 줬고, 달콤한 간식도 꾸준히 입에 넣어 줬다. 그녀는 지금도 따듯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그의 몸을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근육으로 굴곡진 복부 중앙으로 내려간 손은 행여나 뚫린 상처 쪽이 아플까, 솜털이 간질이듯 움직였다.
한쪽 눈썹을 구부린 태경의 눈동자가 유정의 하얀 얼굴을 배회했다.
“그때랑 똑같네요.”
정수리로 떨어지는 목소리에 유정이 멈칫 고개를 들었다.
“그때도 유정 씨가 주워 와서 이렇게 했잖아요.”
유정은 이마에 새어 나온 땀을 손등으로 쓱 닦았다.
“……그러게요.”
태경은 해맑게 웃는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아직도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하다가, 괜히 딴청을 부렸다가, 그만 보라며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는 서유정을 보며 심장이 뻐근했다. 다친 건 복부인데 심장이 맛이 간 기분이었다.
그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무조건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입을 붙였다. 다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말랑한 입술을 한입에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고이는 타액을 빨아 마시고, 갈증을 해소했다.
“밑에 빨아 주고 싶은데 못 하니까, 위로 올라와요.”
올라오라고 말을 하면서도 태경은 잡은 유정의 손목을 당겨, 제 위로 올라오게 했다.
“엉덩이 들어요.”
유정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놀란 두 눈을 끔뻑거리는데, 잠옷 바지와 팬티가 밑으로 훌렁 내려갔다. 곧이어 뜨거운 손이 음모를 헤집고 들어와 날개처럼 펼쳐진 살덩이와 음핵을 부드럽게 짓누르며 만졌다. 미끈한 액이 질질 새어 나와 음모가 축축하게 젖었다.
“아…….”
금세 달아오른 음부가 성난 듯 우뚝 선 성기에 비벼졌다. 유정이 스스로 엉덩이를 움직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자,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밑을 내려다봤다. 그러고선 쿠퍼액이 질질 흘러내리는 좆을 문지르며 꺼냈다.
“넣고 싶은 건 알겠는데 유정 씨 여기 먼저 풀어 줘야죠. 좁아터져서 그냥 박으면 아파할 거잖아.”
“괘, 괜찮… 으응…….”
“괜찮아?”
애액이 후드득 떨어지는 구멍에 손가락 두 개를 쑤시며 묻던 태경은 이내 그녀의 골반을 두 손으로 잡아 눌렀다.
“넣어요, 그럼.”
유정은 주저앉듯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찔꺽-.
뭉툭한 귀두가 입구를 비벼지며 안으로 들어갔다. 배꼽 밑까지 차오른 느낌에 가슴을 헐떡이던 유정이 태경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아픈 사람 붙들고 뭐 하는 짓인지 싶다가도, 서둘러 움직이라는 듯 엉덩이를 움켜쥐는 그 때문에 멀쩡한 이성이 날아갔다.
“으읏, 흐응!”
허리를 꿈틀대며 움직이는데 소름이 돋을 만큼 감각이 예민해졌다. 내벽을 긁으면서 올라오는 성기는 엉덩이를 힘껏 들어도 좀처럼 빠지지 않고 귀두 끝에 걸쳐졌다. 그 크기에 어쩔 줄 몰라 윗니로 입술을 씹는 순간, 태경이 짧게 입을 맞추며 더는 깨물지 못하게 했다.
곧이어 그는 제 위에서 흔드는 엉덩이를 붙잡아 좌우로 비틀고, 위아래로 힘을 줬다. 스스로 조금씩 조절하던 유정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제멋대로 움직여지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봐주지 않고 쑤셔지는 내부가 진동하며 질액을 뱉어 냈다.
“아, 아앗, 읏, 흐응.”
붉게 달아오른 음부는 투명한 액으로 흠뻑 젖어 야한 소리를 울렸다. 이대로 가다간 정신이 어떻게 될 것 같아 울음 섞인 신음을 흘리는 순간, 그의 성기가 빠져나가며 밑이 뻥 뚫렸다.
애액 범벅인 제 것을 손으로 흔들던 태경이 미간을 구겼다.
유정은 아랫배부터 가슴까지 튀어 오르는 하얀 정액을 보며 정신이 멍해졌다.
목구멍이 바짝바짝 말라 가는데 그가 입을 맞춰 왔다. 그리 길지 않은 키스인데도 유정은 숨을 헐떡거렸다. 점차 이성이 돌아오고, 그의 배를 단단히 감싼 붕대가 먼저 보였다. 피가 새어 나오진 않았나 뒤늦게 살펴보는데, 떨어진 시선 끝에 제 왼손 약지를 차지한 반지가 보였다.
“…태경 씨…….”
유정이 멈칫 굳으며 입을 떼자, 태경은 그녀의 손을 겹쳐 잡았다. 나른하게 내리뜬 그의 시선이 반지로 향했다가 천천히 올라왔다.
“집은 한국에 사 뒀어요. 아무래도 유정 씨는 한국이 편할 테니까.”
“…….”
“피아노도 거실 중앙에 뒀는데. 언제든 치고 싶을 때 쳐요. 누구도 아닌 날 위해서.”
유정은 손바닥으로 눈가를 슥슥 비비며 태경을 바라봤다. 어떻게든 울음을 참으려 하는데, 코끝이 시리며 붉어졌다.
뭔가를 바라지 않는 삶이었다. 구원조차 그리지 않는 그런 썩은 인생 속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결국은 치르지 못한 결혼식 날. 그녀는 자신이 몸을 숨겼던 커튼에 특히 시선을 오래 주었었다. 그 커튼을 걷고 등장하던 태경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고약하리만큼 매캐한 냄새도 아득하게 멀어지고, 청각을 후려치던 총소리도 희미했던 순간.
“사랑해요. 태경 씨.”
어쩌면 그때 이미 알았던 것 같았다. 그 순간의 영원을.
“처음 본 순간부터, 늘.”
태경의 눈매가 가늘어지다가 이내 동공이 커졌다.
유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하게 웃으며 그의 뺨에 입술을 댔다.
고단한 하루 끝에 당신이 날 기다리고 있으면 난 그걸로 충분했어요.
속삭이는 유정의 목소리가 녹녹하게 닿았다.
등장부터, 따분한 제 나날을 깨부수고 각인 된 남자에게로.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