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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잡하고 다정하게 (69)화 (69/83)

69화.

유정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무심한 그의 얼굴을 보자 심장이 쓰렸다.

“저는…….”

말을 하려는데 목이 메었다. 괴로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유정이 자신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내가 나를 외면하면서 남을 위해 헌신하는 거, 이제는 안 할 거예요.”

스스로 그 말을 하는 순간 굳은살이 배겼다고 생각했던 심장이 허무하게 찢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오랜 시간 애정에 허덕여 왔다.

착하게 굴면.

열심히 하면.

성과를 이루면.

보탬이 되면.

짧은 순간이나마 애정이 오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멀리 와 있었다.

“하지만요. 그게 바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느리더라도, 제 방식대로…… 그러려고 했어요.”

오랜 시간 굳어진 버릇을 고치는 데 시일이 걸리는 것처럼, 가족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게 다 태경 씨 덕분인데…….”

웃는 유정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닦아도 닦아도 계속해서 얼굴을 적셨다.

“뭘 노력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날… 아무 조건 없이 날 위해서… 그래 주는 사람이 처음이니까…….”

“…….”

“저한테 태경 씨는 너무……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랬어요.”

집에서 그저 돈 버는 기계였다. 무슨 일만 터지면 해결해 주는 호구. 그런 일을 태경의 어깨에도 짊어지게 하기 싫었다. 가족들과 함께 만난 건, 그에게 온전히 가기 위한 일이었는데.

“무조건 해결해 주려고 하지 말고 한 번만 물어봐 주지.”

“…….”

“그래 주지…….” 

태경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우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발은 척척한 늪에 빠진 것 같고, 질긴 넝쿨에 목이 졸린 기분이었다. 헛숨을 내뱉으며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얼굴을 누른 손이 부들, 떨렸다. 울컥 치밀어 오른 비대한 감정이 목구멍을 짓눌렀다.

“……데.”

그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 끝에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유정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 냉소를 머금은 태경의 입매가 비스듬하게 틀어졌다.

“그건 안 되겠다고.”

태경은 음울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조소했다. 그래. 이게 문제였다. 정작 그녀는 제 사랑을 바라지도 않는다. 죽음이 드리워도 밀어내지 않았던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바닥까지 긁어서 저만 다 주고는 언제든 떠날 것처럼 굴었다. 그가 줄 기회는 주지 않고서.

실제로도 그랬다. 그녀는 한국에 돌아갈 거라고 간단하게 말했다. 그게 서로에게 좋은 선택이라고. 홀가분했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럼 혼자 남을 나는. 남은 나는 어쩌라고.

“…….”

태경이 그녀의 붉은 눈시울과 발갛게 물든 코, 잘근잘근 씹어 부르튼 입술을 차례차례 훑어보았다. 이 얼굴을 안다. 이 표정으로 무슨 말을 했었는지 잊은 적이 없었다.

‘사랑해요.’

구질구질한 단칸방의 곰팡이 냄새가 그리도 달았었지. 사탕마저 시시해질 정도로. 근데 그때는 뭐라고 지껄였더라. 병신 같은 말이나 내뱉었겠지.

한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아니, 서유정이 처음 그 단어를 입에 올렸을 때.

아니, 처음 그 단칸방에서 눈을 떴을 때.

아니, 성당의 커튼 뒤에 숨어 있던 너와 눈이 마주친 순간에. 그때 했어야 할 말이 좀 늦었다.

태경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사랑해.”

천박하고 가볍기 그지없는 그 감정에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사랑해요. 유정 씨.”

살아 있는 내내 한 점 신뢰하지 않았던, 하찮았던 그 감정에.

* * *

유정은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사랑을 말하는 두 번째의 그는 어쩔 수 없이 짓씹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가는 그녀를 잡기 위해 무너지듯 뱉어 내어 그녀까지도 무너지게 만든 말이 아니었다.

사랑해. 사랑해요. 유정 씨.

충격적으로 감정적인 직설이었다.

유정은 비 오는 날 마카오 항구를 기억했다. 사랑하니 이제 됐냐는 듯 황폐한 감정마저도 좋아 허겁지겁 그의 몸을 부여잡은 순간이 생각나,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소파 바닥에 대고 있던 손을 주먹 쥐어 그저 멍청히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곧게 밀고 들어오는 태경의 눈빛이 찰나 흔들렸다. 시커먼 눈동자 안에는 오로지 저만 비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정말.

유정은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눈을 감았다.

눈꼬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투박하게 훔쳐 준 손이 유정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녀가 눈꺼풀을 천천히 올려 뜨자, 입술이 맞닿았다.

물컹한 혀가 입술 사이를 쑥 비집고 들어와 입천장을 살살 긁더니, 안에서 얌전히 있는 조그만 혀를 뭉개며 핥았다. 유정의 입술이 부르트도록 고여 있는 타액까지 빨아 마시던 태경은 그녀의 몸을 그대로 눕히고 올라탔다.

가느다란 등허리에 맴돌던 손이 앞으로 올라와 홀쭉한 배를 덮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입술을 뗀 태경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집요한 그의 시선이 제게로 얽혀 들자, 유정은 오히려 입을 더 다물었다.

뭔가 서럽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감정이 벅차올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라도 말하려 하면 아이처럼 엉엉 울 것만 같았다.

부르르 떠는 유정의 입술을 응시한 태경이 손을 점점 더 올려 그녀의 목덜미를 매만졌다.

“……목걸이, 음성 출력기도 달려 있는데.”

그는 상체를 곧게 세웠다.

“한 번도 안 켰어요.”

말을 이으며 테이블 위 놓여 있는 콘돔을 자연스럽게 움켜쥐었다.

몰랐던 사실에 유정이 놀라며 눈을 크게 뜨는 순간, 태경은 콘돔 포장을 이로 찢은 후 손을 내렸다.

“떨어져 있는 동안 왜 연락 안 했는지 알려 줘요?”

배꼽 위까지 거대하게 세운 성기에 콘돔이 슥슥 씌워졌다.

“목소리 들으면 미친놈처럼 달려와서 이러고 붙어먹을까 봐.”

유정의 발목을 그러쥔 태경은 뽀얀 허벅지를 핥으며 제 어깨에 걸쳤다. 수풀 사이로 보이는 빨간 속살로 잠깐 내려간 시선이 다시 위로 올라와 그녀의 떨리는 동공과 마주했다.

푹, 푹, 푹.

그 순간 손가락 두 개가 질구에 박혀 들며 느리게 움직였다. 유정이 반응하여 엉덩이를 위로 튕기자, 태경은 그녀의 골반을 잡아 내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갈라진 틈새에 꽂힌 손가락이 반복적으로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동안 음핵에 닿는 엄지손가락이 좌우로 비벼졌다.

“아흐윽!”

유정이 신음을 내지르며 고개를 세워 밑을 내려다봤다. 태경의 손가락과 제 음부 사이에 거미줄처럼 쩍쩍 늘어나는 애액이 거품처럼 불어났다.

도무지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광경에 눈을 질끈 감으려는데, 그 순간 그가 제 손에 흐르는 애액을 성기 위로 펴 발랐다. 불투명한 비닐에 쌓여 있는데도 파동 하는 핏줄이 적나라하게 보일 만큼 크기를 점점 키운 성기는 벌름거리는 구멍에 맞춰졌다.

매끈한 귀두가 질구를 툭툭 건드리자, 유정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더할 나위 없이 몰려드는 기대감에 심장이 찢어질 듯 뛰는데, 천천히 들어올 줄 알았던 그가 그녀의 구멍을 단번에 꿰뚫었다.

푹! 

손가락이 들어갔을 때와는 다른 질펀한 소리가 크게 울렸다.

흐윽…….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목구멍으로 신음을 삼킨 유정은 하반신을 찧어 대는 그의 몸짓에 가슴을 출렁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유정의 머리가 소파 팔걸이에 닿을 듯 밀쳐지자, 태경은 그녀의 허벅지를 틀어잡아 밑으로 쭉 내렸다. 절반가량 빠져나온 좆을 다시 구멍에 푹 끼워 맞추며 흔들리는 가슴 둔덕에 고개를 묻은 그는 눈앞에 바짝 선 진분홍빛 유두를 핥으며 깨물었다.

“아앗……!”

자극을 받은 유정이 허벅지에 힘을 주자, 숨을 길게 내쉬며 눈썹을 설핏 찡그린 그가 눈을 위로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의 몸은 진동하는 것처럼 떨리고 움직이는데, 마주한 시선은 틀어짐이 없었다.

덜렁덜렁 흔들리는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싼 유정은 제 머리 위를 짚은 단단한 팔뚝을 부여잡고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태경의 중얼거리는 입술을 보고, 몸을 들썩이면서도 그의 입술 모양과 목소리에 집중했다.

“어차피 미친놈인 건 매한가진데. 이러고 있을걸 그랬나.”

그는 허리를 퍽퍽 치받으며 눈가를 찌푸리다가 웃었다.

“답도 없네. 씨발.”

태경의 웃음 섞인 숨이 유정의 입술 사이로 파고들었다. 밑을 뚫는 동작만큼이나 거친 키스였으나 애틋했다.

마음이 간지럽고 뭉클한 유정은 차오르는 눈물을 흘러내렸다. 어떻게든 그에게 맞추기 위해 엉덩이를 움직이는데 달군 것처럼 음부가 뜨거워졌다. 좆이 미끄러지듯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내벽 주름이 펴졌다. 

“앗, 하으읏……! 으아앙!”

결국 정신을 놓은 채 짐승 같은 울음만 뱉던 유정은 그의 것이 어딘가를 쿡 짓누르자 강한 자극에 몸을 떨었다.

눈물을 줄줄 흘려 대며 동공이 확장되는 순간, 미친 듯이 조여 대는 구멍 사이로 맑은 애액이 분수처럼 칙칙 뿌려졌다.

아, 아아…….

유정의 등허리가 활처럼 휘며 뻣뻣하게 굳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빠르게 쑤시던 태경도 어느 순간 움직임을 뚝 멎더니 유정의 가녀린 몸을 꽉 껴안았다.

옅게 떨던 팔 힘이 느슨해지고, 다시 상체를 세운 태경은 엉망으로 젖은 접합 부위를 보며 입을 뗐다.

“…….”

야트막한 숨을 뱉어 낸 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좆을 다시 느리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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