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잡하고 다정하게 (63)화 (63/83)

63화.

유정은 두 팔로 그의 목을 껴안았다. 태경이 이렇게 목덜미에 얼굴을 묻을 때면 이상할 정도로 명치가 일렁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꼭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요.”

“…….”

“기다렸어요. 정말 많이요.”

“…….”

“와 줘서…… 고마워요.”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그녀는 절실하게 말하고, 또 말했다. 그렇게 해도 다 전달할 수 없었다. 마음을 꺼내 보여 줄 수 없어 애가 탔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유독 붉었다. 벼랑 끝에 선 듯 위태위태한 표정이었다. 걱정스럽게 손을 뻗자, 그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얹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고, 기다려 왔으니 마음대로 만지라는 것 같았다. 이마의 뜨거운 열기가 번졌는지 뺨이 너무 뜨거웠다. 아니, 잡은 손도 마찬가지였다. 태경의 체온이 무섭도록 끓어오르고 있었다.

유정은 언젠가 입 맞춰 달라 요청하던 그가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감싸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을 태경의 입술에 붙였다가, 떼었다. 그의 어깨가 난폭하게 팽창하는 게 보였다. 목이라도 졸린 듯한 침음성도 들렸다.

“이렇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유정은 감동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를 어루만졌다. 얼굴, 강인한 목, 너른 어깨. 간절한 손길을 받던 태경은 무언가를 인내하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곧 유정은 무너지듯 눈을 감았다. 그가 입술을 부딪쳐 온 탓이다. 이번에는 부드러웠다. 쪽쪽, 잘게 쪼듯이 입을 맞추며 그는 셔츠 단추를 풀었다. 한쪽을 벗어 내면서도 붙인 입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턱으로 흐른 침을 핥아 먹고는 귓구멍으로 옮겨 갔다.

좁은 귓구멍을 혀로 살살 문지르다가 푹푹 쑤셨다. 그녀가 앓는 소리를 내자 낮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태경이 살짝 몸을 떼고 웃통을 벗었다. 팔꿈치에 걸린 소매를 슬쩍 빼내는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잘 짜인 상체는 못 본 새 철갑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유정이 홀린 듯 손을 뻗어 그를 어루만졌다. 태경이 숨을 토하며 눈을 감았다.

“태경 씨, 안아 주세요…….”

태경이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그녀를 덜렁 안아 들었다.

* * *

침대로 걸어가면서도 태경은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매트리스에 그녀를 눕힌 후 눈꺼풀을 들어 올린 그의 눈가가 진해졌다. 그는 곧장 유정의 니트 끄트머리를 잡고 위로 빼냈다. 훌렁, 옷이 벗겨지고 드러난 가슴의 정점을 물어 왔다. 한 손에 꽉 차는 젖을 부드럽게 주물럭거렸다.

유정은 뒤통수를 베개에 붙인 채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쭉쭉거리며 젖을 빠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동시에 청바지 버클이 풀리고, 지퍼가 내려갔다. 팬티 속을 파고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먼저 수풀을 한 움큼 쥐었다 풀어 준 후 은밀한 부위로 접근했다. 두툼한 중지가 짓쳐 들어오자 유정은 자지러지는 신음을 터뜨렸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순간을 너무도 기다려 왔기에.

“태경 씨, 그냥…….”

“……그냥?”

그가 잠긴 목소리로 되물으며 바지 버클을 풀었다. 지퍼가 직, 내려가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시선을 유정에게 고정한 채 바스락거리며 콘돔 껍질을 벗겼다.

“그냥…… 주세요.”

눈물은 이제 말랐는데, 유정은 눈이 뜨겁다고 느꼈다.

“……넣어 주세요.”

태경이 실낱처럼 가늘게 웃었다. 야경이 그의 눈에 다 갇힌 것처럼 희한하게 반짝거렸다. 그는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는가 싶더니, 어느새 콘돔을 씌운 성기를 질구에 맞추고 푹, 쑤셨다.

내부는 이미 흥건하게 젖었는데도, 어쩐지 진입이 쉽지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그가 귓구멍에 입을 맞추고는 허리를 돌렸다.

“하, 진짜.”

유정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태경이 몸을 희미하게 떨었다. 만족할 만한 자극이 멈추었다. 심지어 그조차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급함에 유정이 쳐다보았다. 애원하는 말간 눈을 보며 태경은 욕을 씹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뜨거워.”

그가 퍽, 퍽, 퍽 부드럽게 치받았다. 그때마다 말이 스타카토로 끊겼다. 기실 그랬다. 애무를 길게 하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밑은 용암처럼 뜨거워져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면 흔적도 없이 녹을 텐데. 태경의 성기는 존재감이 뚜렷하다 못해 안에서 더욱 커졌다.

유정은 아래가 뻐근할 정도로 자라나는 부피감을 느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태경은 그녀의 얼굴을 가린 여린 팔을 치워 냈다.

“나 봐요.”

새틴처럼 매끄러운 말투가 귀를 간질였다. 유정이 습윤한 눈을 들었다. 그 순간 태경의 복근이 난폭하게 조여들었다. 그가 허리를 뒤로 반쯤 뺐다가 단숨에 질 안에 처박았다. 유정이 흣, 하고 몸에 힘을 주었다. 순간 내벽이 좆을 꽉 물었다. 교접한 부위가 아릿하게 마찰했다.

“뭐가 이렇게 예뻐.”

그가 자세를 낮추며 입술에 촉, 하고 입을 맞췄다. 그 감촉을 음미하듯이 입을 붙인 채 머리를 털었다. 태경의 기분 좋은 듯한 한숨이 입술 위에 흩뿌려졌다.

유정은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문득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 *

잠결에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희미하게 눈을 뜬 유정은 허겁지겁 주변을 살피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찾으려는 이가 바로 눈앞에서 굽어보고 있었다. 유정은 허전한 상체를 이불로 가리며 몸을 일으키고 물었다.

“안 잤어요?”

태경이 대답 대신에 빤히 쳐다보았다. 유난히 또렷한 동공이 들이치는 햇살과 함께 곧게 뻗어 왔다.

“살이 좀 빠진 거 같은데.”

귀신 같은 눈썰미였다. 실제로 그녀는 그간 살이 좀 내렸다. 굳이 체중계에 몸을 달아 보지 않아도 잘 맞던 바지가 헐렁할 정도였다. 끼니를 편의점의 유통 기한 지난 삼각김밥이나 김밥으로 때워 왔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요? 난 잘 모르겠는데…….”

둘러대는 말에 그는 다시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대신에 움켜쥔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버석하게 마른 손이 거칠었다. 태경의 시선이 손으로 내려오려 하자, 유정은 황급히 손을 빼내고는 그의 팔뚝을 붙잡았다.

“일은요? 다 끝난 거예요? 다시 안 가도 돼요?”

태경의 눈이 느릿하게 올라왔다. 호수처럼 깊어 위화감마저 느껴졌다. 그렇다고 대답이 느린 건 또 아니었다.

“네. 잘 마무리됐어요.”

“다행이다…….”

그녀의 얼굴에 안도감과 그리움이 스쳤다. 그러면 준우와 에이든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잘 있느냐고, 여전히 하나는 밝고 하나는 무심하냐고. 묻고 싶은 말들이 입 안에서 배회했다.

선뜻 뱉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 말들이 문장으로 만들어졌을 때 더 뚜렷해질 그리움 때문이었다. 대신 지나간 어느 날을 회상이라도 하는지 흐뭇한 얼굴을 했다. 태경이 눈을 고정한 채 감상하는 줄도 모르고.

“아! 지금 몇 시지?”

문득 그녀가 혼비백산한 눈으로 시계를 찾는지 사위를 훑어보았다.

“아침 열 시. 왜요?”

그 말에 유정은 마음을 놓았다.

“일 가야 하는데…… 늦은 줄 알았어요.”

어젯밤 그에게 몇 번이고 안긴 후에 지쳐 잠이 들었다. 그것도 아래에 태경의 것을 물고서. 알람도 미처 맞춰 놓지 못했기 때문에 늦게 일어난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망측한 기억에 유정은 목구멍으로 뜨거운 침이 넘어갔다.

“일?”

그가 고개를 사선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태양을 등진 얼굴에 새카만 음영이 내려앉았다. 일순 명치가 욱신거렸다.

가벼운 물음일 뿐인데도 위압감이 있었다. 그는 대개 말을 한 문장으로 끝낸다. 자주 하지도 않고. 말투가 빠르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필요한 부분을 짚는 그 방식은 상대를 긴장하게 만든다. 아마 그래서 누구와 대화해도 주도권이 그에게 있는 것 같았다. 의도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더 휩쓸리는.

“네. 두 시부터 여덟 시까지 근무해요.”

그 말과 동시에 배에서 꼬르륵, 하고 허기진 소리가 터졌다.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인데도 유정은 민망함에 숨고 싶었다.

그가 태연히 쳐다보는 바람에 더 곤란했다.

“밥 먹어요.” 

그렇게 말하는 태경의 입매에 실처럼 가는 웃음이 번졌다.

“아…… 네.”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창피했다.

입고 왔던 니트는 호텔 측에 세탁을 요청한 바람에 그의 셔츠를 입었다. 허벅지를 절반까지 덮은 길이감은 원피스라고 해도 의심받지 않을 것 같았다. 소매도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희한한 핏을 막막하게 보던 유정은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나왔다. 다이닝 룸에는 그새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로 가득했다. 식탁을 차지한 로브스터와 스테이크 등을 그녀가 훑어보았다.

“언제 사 왔어요?”

“여기 식당에서 주문한 거예요.”

홀린 듯 식탁 앞에 앉아 유정이 음식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태경은 조각낸 스테이크를 그녀의 앞접시에 옮겨 주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음식들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부지런히 운반해 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동작이었다.

살이 빠졌다고 말했다. 그간 무슨 고생을 그렇게 했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거칠어진 손을 바로 눈치챈 듯했다. 무슨 일을 하기에 그 지경이 되었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대신 필요하다 싶은 걸 준비했다. 매끄러운 배려였다.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으며 그를 응시하던 유정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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