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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잡하고 다정하게 (40)화 (40/83)

40화.

고의는 아니겠지만, 그녀는 김이 새 버렸다. 물론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저 편한 티셔츠를 대충 주워 입고 나가는 태경을 야속하게 바라봤다.

문이 닫혔다. 열기가 남은 내부는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불꽃을 머금은 듯 달궈진 다리 사이가 허전했다. 달리 풀 방도도 없고. 이대로 내버려 두기에는 찝찝했다.

유정은 이불을 걷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샤워 부스에서 가랑이 사이를 씻어 내고, 들어간 김에 샤워까지 해서 흥분이 가시지 않은 육체를 누그러뜨렸다. 예상외로 그가 빨리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기도 했으나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밤이 될 때까지 태경은 돌아오지 않았다. 괜히 심술이 난 유정이 너른 침대를 데굴데굴 구르며 탄식했다. 숨을 헐떡이며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그의 갈급했던 태도가 떠올랐다.

둘 사이에 두 차례의 공백 아닌 공백을 겪은 후, 그는 부쩍 자제심을 잃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태경을 진정시키기 위한 보잘것없는 손길조차 그의 흥분감을 부추기는 모양새가 될 정도로.

유정은 뒤통수를 베개에 비비적거렸다. 작은 변화인데도 그저 반갑고 기뻤다.

* * *

그를 기다리다 지쳐 잠든 유정이 수마에 완전히 삼켜졌을 무렵이었다. 가랑이 사이가 간지러워 잠결에 손으로 쳐 냈다. 문득 손바닥에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게 빗겨 간 것 같기도 했다.

“윽.”

잠든 귓가에 억눌린 신음이 흘러 들어왔었다. 하지만 잔뜩 흥분했다가, 긴장이 완전하게 풀려 버린 정신과 육체가 수마에서 빠져나오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집요하게 몸에 달라붙어 젖을 빨아 댔다. 표면이 오돌토돌한 게 유두를 반복적으로 핥았고,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유륜을 짓눌렀다.

“으음…….”

가슴이 축축하게 늘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숨까지 가빠 오자 유정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틀었다. 물컹한 게 아쉽다는 듯이 젖의 옆면을 할짝거렸다. 하지만 더는 가슴을 공략해 오지 못했다. 유정은 그 점이 잠결에도 만족스러웠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이윽고 모로 누운 자세가 좀 더 앞으로 기울어지더니, 엉덩이 골을 무언가가 쓸어내렸다. 이상했다. 샤워하고 나와서 분명히 바지를 입었던 것 같은데. 유정이 눈썹 앞머리를 가파르게 휘며 신경질적으로 숨을 쉬었다.

하지만 몸은 완전히 엎드린 상태가 되었다. 숨이 막히자, 유정은 고개를 옆으로 틀어서 숨 쉴 틈을 확보했다. 그러는 사이 엉덩이 골이 벌어지며 긴 막대기 같은 게 안으로 짓쳐들어왔다.

아래에서 눅진한 점성의 물기가 범람했다. 막대기가 음부를 마구 비비고 문댔다. 아래에 열기가 고이고, 이상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음부와 마찰할 때마다 찌걱찌걱, 소리가 났다.

“흐응……. 하으…….”

축축한 살덩이가 어깻죽지를 핥아 댔다. 유정은 짓눌린 얼굴을 비틀며 울먹였다. 곧 등허리로 뜨끈한 점액질이 후드득 쏟아졌다. 뒤통수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짧게 터진 것도 같았다.

이윽고 게슴츠레 뜬 시야에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쳐들어왔다. 그것도 빛이라고 적응하기 위해 눈을 씀벅거렸다. 몽롱한 정신이 점진적으로 뚜렷해졌다. 가장 먼저 자세가 불편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유정은 뻣뻣한 몸을 뒤틀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엉덩이 사이가 화끈거렸다. 등허리도 찝찝하고. 팔을 뒤로 뻗어 살갗을 더듬어 보니, 묻은 건 없었지만 어쩐지 끈적거렸다.

씻고 싶다는 격렬한 갈망에 유정이 이불을 걷고 일어섰다. 그러자 아래에서 질척한 액이 사타구니를 비죽이 타고 흘렀다. 유정은 당혹감에 몸을 굳히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다리 사이로 줄줄 흐르는 애액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러고 보니 입고 잤던 상, 하의도 증발했다. 드러난 나신에는 울혈이 더 늘어나 있었다. 어리둥절한 시선 끝에 가지런히 개켜진 제 옷이 보였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태경의 솜씨였다.

머리가 간밤의 기억을 뒤늦게 떠올렸다. 자는 동안 받았던 이상한 감각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던 모양이다. 내벽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으니, 삽입까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엊저녁에 그녀를 애태웠던 행위를 밤에도 지속한 게 분명했다.

그것도 모르고 잠만 잤다니. 유정은 그간 칭찬받았던 자신의 무던함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그토록 기다려 놓고서, 아무것도 몰랐다니. 유정은 뒤늦은 아쉬움에 속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새벽부터 나간 모양이었다. 일이 있다고 했던 것도 같았다.

그녀는 침울한 얼굴로 터덜터덜,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욕조에 물을 받아 반신욕을 좀 즐기다가 나왔다. 그랬는데도 시간은 아침 8시였다.

태경이 없는 하루가 길다는 것을 이미 경험해 본 그녀는 진작부터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마냥 시간을 죽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밥부터 걱정하던 그를 떠올리면 더욱 그랬다.

유정은 짐가방에서 긴팔과 긴바지를 꺼내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목까지 가려지는 옷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장 구할 수 없으니 임시방편으로 손수건을 목에 감아 묶었다. 여러 각도에서 거울에 비춰 보며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서야 방 밖으로 나갔다. 긴 복도를 지나 공용 거실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대신 어제 준우가 일러 주었던 복도 방향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유정은 용기를 내어 그쪽으로 걸어갔다.

개방형 주방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식사하던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유정의 타오르던 용기는 탐색하는 듯한 그들의 눈빛 앞에서 단번에 꺾였다. 그 순간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역시 여기에 섞이려고 하는 건 과욕이었던 걸까. 자신감을 잃은 유정의 발뒤꿈치가 들썩였다. 금방이라도 몸을 돌려 줄행랑을 쳐도 이상하지 않은 기세였다. 그때, 준우가 요란하게 의자를 밀고 일어나며 그녀를 반겼다.

“왔어요? 완전 다행이다. 전 유정 씨가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았잖아요. 어서 앉아요, 앉아.”

유정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다가온 준우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옆자리로 이끌었다. 광현과 에이든의 무덤덤한 눈이 그 움직임을 좇았다. 사실 그들은 그녀가 정말로 이슬만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해도 과장이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주태경이 어지간히 끼고돌아야지. 그들에게 서유정은 비현실적인 존재, 그러니까 유니콘 같은 영물로 느껴질 정도였다.

어제도 오붓한 시간을 방해했다는 죄목을 앞세워 어찌나 비협조적으로 구는지. 아주 치가 떨렸다. 평소처럼 특수 경호에 필요한 인원을 차출해서 그녀에게 붙여 주었으면 될 일이었다. 그랬다면 이런 성가신 동거가 이루어질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광현은 그녀를 보자마자 밥알이 아니라 조약돌을 씹는 기분이었다. 제가 세웠던 계획이 틀어지는 바람에 서유정에게도 빚이 생겨 어쩔 수 없이 현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언짢은 건 에이든도 마찬가지였다. 피가 섞인 가족보다도 붙어 지내는 시간이 긴 블랙스완 팀은 팀워크가 생명이다. 불필요한 마찰은 에이든이 질색하는 일 중 하나였다. 한국 속담을 빌려 말하자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는 격이었다.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물론 강준우가 그걸 산산이 깨부쉈다.

“차돌박이 볶음밥? 아니면 베이컨을 곁들인 스크램블드에그? 어떤 게 더 끌려요?”

준우가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물었다. 유정은 재빨리 다른 이들의 앞에 놓인 그릇을 훔쳐봤다. 광현의 앞에는 차돌박이 볶음밥으로 추정되는 것이 수북했고, 에이든의 앞에는 바싹 구운 베이컨과 샛노란 스크램블드에그가 가득했다.

종류가 뭐가 됐든, 어쨌거나 양이 기함할 정도로 많다는 게 공통점이었다.

준우가 문득 돌아보며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어쩌죠. 된장찌개는 1인분뿐이라. 방금 말한 두 가지 중에 선택하셔야 할 것 같은데.”

“어…… 저기, 전 그냥 저기에 남은 거 먹을게요.”

유정이 아일랜드 식탁 위에 쥐꼬리만큼 남아 있는 음식들을 눈짓하며 말했다. 준우는 접시에 옮겨 담은 후에 남은 볶음밥과 베이컨, 스크램블드에그를 심각하게 쳐다봤다.

성인의 위장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저나 팀장, 에이든에게 저걸 먹으라고 권유한다면 간식쯤으로 여길 것이다. 거기에 더해 고작 그만한 양을 권유한 놈에게 굶주림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알려 주었을 테고.

준우는 정말로 이 정도로 되겠냐는 듯 의심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유정에게 음식을 밀어 주었다. 에이든은 그녀를 챙기는 준우를 못마땅하게 노려보며 물을 마셨고, 광현은 고개를 그릇에 처박고 묵묵히 식사를 계속했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서, 준우는 그녀를 미덥지 않은 눈빛으로 주시했다. 저걸로 배를 불릴 수 있다는 게 영 신뢰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유정은 그가 왜 미덥지 않은 눈빛을 보내는지 알 길이 없었고, 그저 식사에 충실할 뿐이었다.

맛은 제법이었으나, 음식의 출처가 궁금했다. 가스레인지나 싱크대에서 요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서였다.

“어때요? 입에 맞아요?”

준우가 물었다. 저야 없으면 돌도 씹어 먹을 테지만, 여자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네. 식사는 직접 준비하시는 거예요?”

“간단한 건 하는데, 대부분 사 와요. 지금 먹는 것도 식당에서 사 온 거고요.”

유정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사이에 식사를 끝낸 광현이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섰다. 그는 빈 그릇을 싱크대에 담아 두고는 그대로 주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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