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그의 향기에 취해 용기가 불쑥 올라온 유정이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있잖아요. 태경 씨.”
계속 말하라는 듯 그가 상체를 세웠다.
유정은 살포시 눈을 내리깔았다.
“태경 씨와 입을 맞출 때 맡아지는 레몬 향, 좋다고 느꼈어요.”
사실은 입을 맞추기 전부터 줄곧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원래도 향기로운 사람이었고, 그냥 그에게서 나는 모든 향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걸 깨달은 지금. 말을 더 이으려고 하는데 그가 더 빨랐다.
“똑같네.”
“…….”
“나도 유정 씨 혀에서 나는 단맛이 좋아요.”
그녀가 사 준 사탕을 먹고 키스를 하면, 안 그래도 달콤한 그녀의 입술이 더 달아졌다.
그리고 그 사실은 유정도 알았다. 키스를 끝내면 마치 저가 레몬 사탕을 먹은 것처럼 입 안에 레몬 향이 퍼졌기 때문에.
유정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그가 있는 쪽을 보고 눕게 될까 봐 신경 쓰여 뒤척이던 밤들이 있었다. 이런 심장 소리가 들릴까 조마조마했던 날들이었지만, 지금과는 달랐다.
좋아하는 것 같다 했고, 그도 그렇다고 했다.
서로를 좋아했다.
유정이 두 팔을 뻗어 태경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 상태로 힘주지도 않고 당기는데, 커다란 그의 상체가 부드럽게 끌려와 그녀를 안아 줬다.
묵직한 무게가 그대로 느껴졌다. 허리를 감싸는 손길에 유정은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입술에 닿는 숨결이 가까워지더니 이내 다시 입이 맞물렸다.
미끈한 감촉이 치열을 훑고, 목구멍까지 삼켜질 듯 깊이 들어왔다. 코끝이 스치며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톱니바퀴처럼 꽉 맞물린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오갔다.
허리를 감싸던 태경의 손이 등 뒤로 넘어가 옷 사이를 파고들면서 유정의 숨은 더 가빠졌다.
그 모습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내려다보던 태경이 눈꺼풀을 내리깔며 고개를 숙였다.
단정한 목덜미에 음염한 입술이 내려앉았다. 턱 밑에서 흔들리는 그 머리칼을 넋 놓고 보던 유정의 옷이 자연스레 벗겨졌다.
새하얗고 동그란 어깨를 둥글게 매만지던 태경은 이내 귀를 어루만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여체가 파들파들 떨렸다.
“떨고 있네.”
목덜미에 내려앉은 숨에 웃음이 섞였다.
“다리 힘 풀어요.”
곧이어 오금이 잡힌 유정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옷차림이 완벽한 그를 보며 지나치게 야하다고 생각했다.
보드랍고 하얀 허벅지를 쓸어내리던 태경이 그녀의 발목을 잡아 올려 입을 맞췄다.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뜨겁고 촉촉한 기운이 가느다란 발목을 간질이자, 유정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발갛게 물든 뺨에, 숨은 벌써부터 헐떡였다. 뭔가 나쁜 생각을 하는 얼굴로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가 그녀의 둥근 엉덩이를 움켜쥔 채 주물럭거렸다.
“엎드려요.”
대답을 하기도 전에 몸이 뒤집혔다. 유정은 이불에 묻은 얼굴을 옆으로 돌렸지만,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눈가를 찌푸렸다.
“태경 씨?”
그 순간 음모를 헤집고 들어온 손이 회음부를 길쭉하게 쓰다듬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몸을 바르르 떤 그녀가 신음을 삼키자, 질구에 손가락 하나가 푹 꽂혀 들었다. 그 반동으로 좁은 구멍에서 애액이 주욱 흘러내렸다.
“빨아 주기도 전에 젖으면 어떡하지.”
곧이어 구멍에서 나온 손가락이 톡 튀어나온 발간 음핵을 건드렸다. 미끈미끈한 애액 때문에 스치듯 지나간 자극에 이불에 완전히 얼굴을 묻은 유정이 하반신을 떨었다.
“흐으으응……!”
손가락 하나 맛봤다고 금세 허전해진 구멍에 둔탁한 성기가 밀고 들어왔다. 무지막지한 두께에 내벽 주름이 하나하나 펴지며 안이 꽉 들어찼다. 안기듯 하는 자세와는 차원이 달랐다. 뿌리까지 들어온 게 여실히 느껴졌다.
움직일 수나 있을까. 유정은 지레 겁을 먹고 이불에 대고 있던 손바닥을 웅그렸다.
“우, 움직이면 안 돼요.”
“그냥 박고만 있어요?”
활처럼 휜 여린 등에 손을 얹은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좆 크기대로 우악스럽게 벌어진 그녀의 밑을 쳐다봤다.
“여긴 받아먹겠다고 조여 대는데.”
귓속을 파고드는 말에 유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밑에서 그의 성기가 훅 빠지며 몸이 다시 뒤집혔다. 깜짝 놀라 눈을 뜬 그녀는 꺼떡거리는 성기를 보며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밑구멍처럼 보이는 입술을 잔잔히 내려다보던 태경이 상체를 숙여, 입을 맞췄다. 혀가 유정의 입술 사이로 뭉근하게 들어오는 순간, 그의 성기도 그녀의 질구에 푹푹 박혀 들어갔다. 흥분하여 더 크기를 키우고, 무지막지하게 헤집었다.
반대로 입맞춤은 섬세했고, 부드러웠다. 기분이 좋은지 유정의 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물기도 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둔탁한 환락에 취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돼 버린 유정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녀가 끙끙대며 안겨 들자,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은 커다란 손에 핏줄이 불거졌다. 얼굴을 숙여, 바짝 선 유두를 빨아 마시듯 핥은 태경이 허리를 털었다.
“아… 아으읏…….”
눈꼬리에 눈물이 맺힌 유정은 벌릴 대로 벌려진 다리를 그의 몸에 감았다. 멈칫한 태경이 그녀를 옭아매며, 제 온몸을 덮치듯 비볐다. 가슴 둔덕에 얼굴을 묻은 그는 뜨거운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동시에 속도를 줄이지 않고 몰아치던 움직임이 조금 차분해졌다.
유정은 제 가슴에 묻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상하게도 애틋했다. 그와 닿은 온도가 따듯하다 못해 데일 듯 뜨거웠다.
그도 참을 수 없다는 듯 끈적하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강하게 박아 대며 사정했다. 숨을 헉, 들이마신 유정은 찌릿찌릿한 쾌감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를 온몸으로 휘감고 있던 태경이 상체를 곧게 세웠다. 나른한 사정감에 단단한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유정의 눈꼬리에 다시 한번 눈물이 맺혔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해 준 태경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광으로 인해 어떤 표정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왜 울 것 같은 얼굴이지.”
그는 잠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서 입으로 숨을 내쉬고 있던 유정이 입술을 호선으로 휘었다. 눈물이야 생리적으로 맺힌 거고, 표정은 그저 마음이 겉으로 드러났을 뿐이었다.
북받치는 뭉클함, 떨려 죽을 것 같은 그런 마음.
유정은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았다.
그가 땀에 절은 이마를 손바닥으로 훑어 줬다.
이렇게 소중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 또 있었나. 낳아 준 엄마도 이러지 않았는데. 이렇게 따듯한 적이 없었는데.
역시 그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고작 그 정도 선에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그를 향한 마음은 이미 그보다 더 비대하게 몸집을 키운 상태였다.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순간에도 그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당연한 것처럼 어느 새부턴가 특별했다.
같이 먹을 장을 봐 오고, 걸음을 맞춰 나란히 걷고, 시답지 않은 얘기를 귀담아들어 주는 그의 옆에서 여름밤 냄새를 맡는, 그 모든 것들이 일상이었고…… 각별했다.
“……태경 씨. 저는 태경 씨를 좋아해요. 생각보다 많이, 그런 거 같아요. 좋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유정은 요란하게 뛰는 가슴에 두 손을 올렸다.
“이런 감정은…… 사랑인 거겠죠?”
특히 그에게 안기는 순간엔 그 마음이 절정에 다다랐다.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그러니까…… 사랑해요.”
떨리는 입술을 다물며 시선을 드는데,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역시나 잘 보이지 않았다.
달빛은 그의 등 너머로 온전히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태경 씨는 저를…….”
좋아한다고 처음 고백했을 때처럼 그의 마음을 물었다. 줄곧 저가 받아 오던 게 사랑이었다는 듯 부푼 마음으로.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멈춰 있던 태경이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을 들어 유정의 얼굴을 문질렀다.
“아니요.”
차분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였다.
유정의 눈이 크게 뜨였다.
좋아한다고 해도 모호하게 좁혀지지 않던 간극의 이유가 그녀의 마음을 할퀴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벌거벗은 마음이 찰나에 갈 곳을 잃었다.
그러나 번복은 없었다. 태경은 단호했다. 만지면 부서질까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는 손길로, 그는 사랑하지 않는다 했다.
차라리 못 들은 게 낫다는 듯 그의 동공이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너무 깊어서 그 끝을 파헤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반문조차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 *
지아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호텔로 온 유정은 삽시간에 기가 빨렸다. 빠른 비트의 팝송이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다. 문을 열어 준 지아는 다시 풀장에 몸을 담갔고.
유정은 본능적으로 두 귀를 틀어막았다. 서둘러 확인한 블루투스 오디오 볼륨은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 정도면 다른 객실에서 항의가 안 들어오는 게 이상한 수준인데.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당장 볼륨을 줄였다. 갑작스럽게 내려앉은 적막에 청각이 적응하기까지는 좀 걸릴 것 같았다.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팔만 걸친 지아가 칵테일을 마시며 키득거렸다.
“오느라 힘들었지?”
둘러매고 있던 크로스백을 머리 위로 빼내며 유정이 대꾸했다.
“방금 그 잠깐이 더 괴로웠어.”
그녀는 무슨 팔십 먹은 노인처럼 중얼거렸다. 그게 클럽용이지 객실용이냐고.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지아는 깔깔거리며 체리를 하나 집어 먹었다. 취향에 있어서 양극단에 있는 두 사람이 친해진 이유는, 본인들에게도 아직 미스터리였다.
유정은 생수를 마시며 선베드에 앉았다. 태양이 멀리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고층인 데다 도심의 풍경까지 발아래 두고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란 이런 걸까. 가슴이 웅장해졌다.
지아는 사다리를 밟고 올라왔다. 타월로 젖은 머리를 가볍게 털어 내는 그녀의 몸매는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여성의 육체가 실로 아름답다는 걸 지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육감적인 몸매는 곧 가운에 가려졌다. 지아는 남은 과일을 들고 옆 선베드에 앉았다.
“그 남자랑 잘 돼 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