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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잡하고 다정하게 (7)화 (7/83)

7화.

당혹감에 휩싸인 유정은 굳어 버렸다. 하지만 침범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입술 사이, 작은 틈 사이로 축축하고 말캉한 것이 느릿하게 훑고 지나갔다.

입술은 꾹, 하고 짓눌렸다 빠르게 부풀어 올랐으나 전과 같지 않았다. 믿기지 않지만 입술 안에서부터 뜨거운 소름이 일었다. 알 수 없는 짜릿함이 폭풍처럼 전신으로 번졌다. 걷잡을 수도 없이 빨랐다.

그녀의 동공이 나약하게 흔들렸다. 숨을 쉬는 대신 눈을 깜빡였다. 그럴 때마다 끝에 뭐가 걸리적거렸다. 얼굴이 너무 가까이 붙은 탓인지 속눈썹이 자꾸만 태경의 얼굴을 긁고 있었다.

간지러울 텐데도 그의 감은 눈두덩이는 잠잠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질긴 넝쿨이 심장을 친친 감고 옥죄는 것처럼 숨이 벅찼다.

그가 미간을 찡그리며 동시에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을 뜨고 있는 줄은 몰랐다는 듯, 눈썹을 휘며 입술을 뗐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자극에 빠트린 사람치고는 태평해 보였다.

유정은 백 미터 달리기라도 막 끝낸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입술은 마취제라도 맞은 듯 감각이 없었다.

태경은 변명도 없이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툭, 쥐었다가 놔주며 말했다.

“잘 자요.”

탁, 하고 옆에 눕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이불도 들렸다가 덮였다. 유정은 그제야 떨리는 손으로 입술을 만져 봤다. 전에 없이 뜨거웠다. 손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방금… 방금 그건, 키스……?

제대로 인식하자, 심장이 파열할 듯 뛰어 댔다. 그에게 들릴까 걱정이 될 정도로.

물기로 촉촉한 유정의 눈이 등 돌린 태경을 바라봤다.

도저히 잠들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는 잘 자라니. 심보가 고약하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 속이 답답해졌다.

* * *

“유정아, 똑바로 잡아야지.”

이불의 한쪽 끝을 잡고 비틀거리던 유정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동료들은 밤새 잠을 설친 탓에 영 맥을 못 추는 그녀를 걱정했다.

“돈 벌어 다 얻다 쓰는 거야? 살이 늘지를 않아, 왜.”

“무슨. 체구는 우리 반만 해도 얼마나 야무진데. 눈 밑이 시커멓게 내려온 거 보니까 어제 잠을 못 잤네? 자, 이리 내.”

금산댁이 혀를 차며 말하자, 파주댁도 거들었다. 각각 한국의 충남 금산, 경기도 파주가 고향이어서 일할 때는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유정은 두 여인의 경력에 한참 못 미치는 데다 나이가 젊어, 따로 호칭이 없었다. 한번은 불릴 호칭을 지어 볼까 했지만, 고향이 서울이라 포기했다.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이리 내. 어차피 다 같이 하는 일. 네 일, 내 일이 어딨어?”

그렇게 말하며 이불을 빼앗아 간 파주댁은 금산댁과 함께 노련한 몸짓으로 이불을 탁, 털어 내더니 한 번에 빨랫줄에 걸었다.

“얼마 전에 결혼식에서 무슨 총격 사건인지 뭔지, 한참 뉴스에서 떠들었잖아. 그 이후로 동네 사람 몇 명이 없어졌대. 글쎄, 우리 옆집 사람도 사라졌는데, 나 정말 등골이 오싹하더라니까?”

“집도 싹 처분됐던데? 가족이 와서 처분한 건지 알 수가 있나, 어디.”

게다가 성당에서 일어난 일이니, 대형 사건이긴 했다.

유정은 지아를 떠올렸다. 그녀의 집은 사람만 없어졌지, 물건은 그대로였다. 어쩌면 잡혀간 게 아니라 은신 중일지도 모른다.

대체 지아는 그 사건에 어디까지 개입된 걸까.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 중 멀쩡히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은 태경과 그녀뿐이었다.

관련된 사람이 다 위험해진다면…….

생각해 보니, 그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잔인하게 보복당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긴 했지만 자기 집도 아니고, 몸도 성치 않았다.

앞으로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누구에게 공격당한 건지 몰라도, 살아 있다는 걸 그쪽에서 안다면 다시 찾아올 테니까. 그럼 그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여기 오래 있는 건 불가능할 수도…….

유정은 무의식적으로 태경이 머무른 날짜를 세었다. 오늘이 십일 일째였다. 처음에 열흘만 있겠다고 했으니, 어쩌면 퇴근하고 돌아가면 이미 떠나고 없을지도 모른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침에 인사라도 하고 나오는 거였는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평소보다 빨리 도망치듯 나온 게 후회가 된 유정은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어젯밤 왜 그랬는지 묻지도 못했는데.

“이 집 아들 내일 오니까 방 좀 싹 치워야겠어.”

“제가 청소기 가지고 갈게요.”

부리나케 이 층으로 올라가려는 두 여인에게 외친 유정이 재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몸은 바쁘게 움직여도 속은 말도 못 하게 침울했다. 차라리 청소라도 아주 늦게 끝나길 바랐으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집까지는 물리적으로 꽤 먼 거리인데도, 오늘따라 빠르게 도착한 기분이었다.

유정은 성치 않은 지붕이 눈에 들어오자 절로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죄 없는 땅바닥을 발로 툭, 차 보기도 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염치없다 진짜…….”

언제부터 집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고? 주제 파악을 못 해도 정도껏이지. 가고 없을 사람한테 시위라도 하겠단 거야, 뭐야. 원망이라도 해? 웃기다. 정말.

온종일 제가 하는 꼴이 고까웠던 유정이 저를 다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뭐가 무서워.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인데. 가는 게 맞는 사람인데. 얼마나 힘을 주고 걸었는지 눈이 시큰했다.

손등으로 대충 눈을 비비적거리는데, 익숙한 실루엣이 담벼락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낮은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실루엣이.

그걸 본 순간, 독하게 먹은 마음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가 지난 열흘 간 그랬던 것처럼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들떴다.

걸음을 멈추고, 두 손으로 눈을 꾹꾹 누르며 다시 앞을 봤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였다.

태경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 입 안에서 반쯤 녹은 사탕을 구석으로 굴려, 오른쪽 뺨이 봉긋하게 솟았다. 튼튼한 어금니로 사탕을 짓이기자 와그작, 소리가 나며 산산이 부서졌다.

혀에 사탕 부스러기가 흩뿌려졌다. 그는 그것마저 자근자근 씹어 먹으며 다가와서는 유정의 손에 있는 짐을 낚아챘다.

“시장 다녀왔어요?”

유정은 비어서 허전한 손을 아무렇게나 만지작거렸다.

“아니요. 사모님이 주셨어요.”

그는 몇 가지 채소가 들어 있는 가방 속을 건성으로 훑어보고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입꼬리가 주책없이 씰룩였다. 괜히 팔로 입을 가리며, 유정도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론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여러 번 호흡을 맞춰 왔던 대로, 몇 가지 반찬을 뚝딱 만들어 밥상을 차리고 식사를 했다.

태경은 숟가락에 밥을 듬뿍 떠서 먹었다. 입에 묻히거나 밥알을 흘리지도 않았다. 정말이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안 먹고 뭐 하냐는 듯이 쳐다보자 유정은 얼른 밥에 코를 박았다.

태경은 밥이 문제가 아니었다. 유정이 슬슬 눈을 피하더니 식사가 끝나자마자 상을 치우며 부지런을 떨었다. 그러더니 먼저 씻겠다고 욕실로 들어가는 바람에 기가 찼다. 욕실이 무슨 쥐구멍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러니, 편치가 않았다.

마뜩잖은 얼굴로 닫힌 욕실 문을 보다 보니,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생전 남자라고는 모르고 산 것 같은데 어제 일이 적잖이 충격이었나 보지.

그러게 어지간히 말을 예쁘게 했어야지.

그는 엄지로 교활하게 휜 입술 선을 훑었다. 어김없이 순하게 젖은 눈을 보면 싫지 않았던 모양인데.

아무래도 좋으면 부러 피하고 보는 버릇이 있나 보다.

특이했다. 좋으면 달라붙지 못해 안달인 유형만 질리게 봐 왔던 지라. 적응 안 되는 반응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살살 피해서 짜증스럽던 어젯밤과는 달랐다.

유정은 곧 젖은 머리를 수건에 감아올린 채로 나왔다. 그리고 뭔지 모를 비장한 기세로 곧장 태경에게 다가왔다.

“저기, 있잖아요.”

“네.”

“열흘만 계신다고 했었고, 벌써 열흘이 넘었잖아요.”

예상치 못한 말에 표정을 굳힌 태경이 계속하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래서 부탁할 게 있는데, 들어주실래요?”

유정이 긴장으로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슥 문지르며 말했다.

“혹시 떠나게 되시거든 저한테 먼저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가 빤히 쳐다봤다. 무슨 뜻으로 보는 건진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유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눈치였다.

“잠깐 간 건지, 아예 가 버린 건지 저는 모르니까……. 걱정도 되고요.”

“…….”

“네?”

태경이 가벼운 한숨을 내뱉었다. 거절하려는 건가 싶어 유정은 순간 몸이 경직됐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대답은 걱정과 달랐다.

“그럴게요.”

그의 순순한 대답에 기쁨과 안도감을 얻은 유정이 바지를 움켜쥐었다. 그가 오묘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어제 키스…… 말이에요.”

민망한 유정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제대로 꺼내 본 건 처음인 단어였다. 막상 질문하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녀는 침착하게 다음 말을 골라 말을 이어 가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짐승이 먹잇감을 낚아채듯 그가 유정의 목덜미를 잡아당기고는 그대로 입술을 붙여 왔다. 놀랄 틈도 없었다.

“…흡……!”

신음을 뱉느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는 쉽게 파고들었다. 몸이 휘청거렸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의 가슴팍에 손을 대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태연한 얼굴과는 달리 태경의 흉곽이 크게 부풀었다가 줄어들었다. 몸을 물리려고 하자, 악력에 오히려 질질 끌려 들어갔다.

단숨에 혀뿌리까지 진입한 그의 혀가 부드럽게 선회했다. 달래듯이 혀를 살살 쓸어 주다가 돌연 휘감고 억압하기도 했다. 오돌토돌한 미뢰를 삭삭 핥아 댈 때는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았다.

유정이 급격하게 가슴을 들썩이자 안쓰러웠는지 쭙, 하고 그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누구의 타액인지 모르는 것이 실처럼 가늘게 늘어났다. 그것까지 처리할 시간은 없었다. 유정이 숨을 들이마시는 걸 본 태경은 다시 입술을 집어삼켰다.

이번에는 더 간단하게 침투한 혀가 입천장을 긁었다. 생경한 느낌에 눈물까지 눈꼬리에 맺혔다. 그러자 태경이 달래듯이 송곳니를 톡톡, 두드렸다.

고개를 저었더니 그는 안 된다는 듯 목덜미를 쿡 눌렀다. 동시에 목이 더 젖혀지며 입이 아까보다 현저히 벌어졌다.

목구멍 근처까지 혀가 배회했다. 아프긴커녕 배 속이 이상하게 저릿했다. 정신이 흐물흐물할 정도가 되어서야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유정은 타액으로 범벅된 입술을 닦아 낼 생각도 못 하고 헉헉거렸다.

“유정 씨.”

그가 그녀의 양어깨를 쥐고 말했다. 긁혀서 나온 목소리가 쓸데없이 근사했다.

“키스는 이건데. 이거 말하는 거예요?”

유정은 고개를 숙여 숨이 차서 벌게진 얼굴을 가렸다. 곧 그의 뜨겁고 큰 손이 양쪽 뺨을 감싸, 올렸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유정은 그의 팔을 잡고 버텼다.

태경은 집요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열기로 번들거리는 눈이었다.

“씻고 올게요. 먼저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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