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잡하고 다정하게 (1)화 (1/83)

1화.

“일만 하다 죽는 수가 있다, 너.”

고정적인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만 했다간 입에 풀칠도 힘들었다.

습도까지 높은 마카오의 무자비한 폭염에 삼십 분이나 걸어와 땀을 한 바가지 쏟은 유정이 턱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웃었다.

한국인 이민 가정의 가사 도우미로 주 6일 근무이니, 한 달에 많게는 다섯 번, 적게는 네 번의 휴무가 있다. 대부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지만.

말을 건넨 지아는 아르바이트를 주선하면서도 늘 마뜩잖은 얼굴을 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알아서 부서질 것 같은 애를 제 손으로 사지에 모는 것 같다나.

유정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다행히 몸은 튼튼해요.”

“튼튼하긴 얼어 죽을.”

사실 지아가 주선하는 아르바이트는 본래 유정이 하는 일보다 훨씬 수월했다.

마카오 여행객 가이드 혹은 음식점과 술집에서 하는 서빙 같은 건 정말 돈을 거저 버는 편이니까. 일당은 현금으로 바로 수령 가능하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다.

한국인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타국에서 고국의 사람을 만나면 잠깐이지만 한국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었다.

“결혼식 서버 일인데, 그냥 음식 날라 주고 술이나 음료만 재깍재깍 갖다 주면 돼.”

어학연수를 핑계로 홍콩에 가서는 가족들 몰래 성전환 수술을 하는 바람에 마카오에 아예 눌러앉은 지아는 인맥이 넓은 편이었다. 당장 현재 유정의 고용주 아들과 친구인 데다 누가 봐도 혹할 예쁜 외모도 한몫했다.

담뱃갑을 찾아 들고 창틀에 걸터앉은 지아가 내키지 않는 듯이 말했다.

“신랑 쪽 하는 일이 좀, 그러니까 깡패 같은 거거든? 뭘 들어도 발설하지 말고, 함부로 말 섞지도 마.”

지아의 손가락 사이에 낀 주소가 적힌 쪽지를 유정이 받으려 했지만, 지아가 도로 물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너 진짜 조심해야 한다?”

그동안 주선했던 안전하고 편한 아르바이트와는 확실히 다른 듯했다.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유정이 더 명랑하게 웃었다.

“걱정도 팔자셔.”

머뭇대는 손에서 유정이 얼른 쪽지를 낚아채, 상의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현관문을 열자 숨 쉬기도 버거운 공기가 맹렬하게 덮쳐 왔다. 해진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유정이 걸음을 재촉했다.

6000HK$. 그거면 이번 주도 걱정은 덜었다. 한시름 놓은 유정이 쪽지를 눈으로 훑어 내리며 장소로 향했다.

적혀 있는 주소는 유정이 근무 중인 빌리지 근처, 성당이었다. 개나리 빛깔의 아름다운 성당에서는 종종 결혼식이 진행되곤 했다.

안 그래도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성당 문 앞에 무장한 가드가 서 있었다.

신랑의 직업이 위험하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하객들은 물론이고 고용인들까지 출입문을 통과하려면 불심 검문을 받았다.

길게 늘어진 줄의 끝에 서 있던 유정은 제 차례가 오자 긴장했다. 이미 지아를 통해 신분 검증은 되었을 테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글라스를 쓴 가드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턱을 까딱였다.

“일용직 서버예요. 서유정입니다.”

유정이 재깍 신분증을 내밀자, 가지고 있던 내장객 정보와 대조해 본 가드가 금속 탐지기를 들이댔다.

유정은 기겁하며 양팔을 높이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금속 탐지기가 훑고 지나갔다. 소지한 무기 같은 건 없는데도 괜히 불안으로 두근거렸다.

곧 가드가 지나가도 된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까딱였다. 작게 묵례한 유정이 도망치듯 안으로 들어와서는, 가드가 안 보일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거기. 일하러 온 거 아니야? 뭘 꾸물거리고 있어?”

정장 투피스를 입은 중년 여인이 신경질적으로 유정에게 소리쳤다. 적응 안 되는 철통 경비에 잠깐 넋이 나갔던 유정은 그제야 평소처럼 기합이 들어갔다.

“네! 지금 갑니다.”

중년 여인을 따라간 유정은 로커에서 유니폼으로 환복 후 평소 잘 신지 않던 구두까지 신었다.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성당 결혼식의 특성상 조용하고 성스럽게 흘러갔고, 2부 행사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곳곳에서 가드들이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통에 꼭 독 안에 든 쥐 신세 같았지만, 그걸 의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정은 음식을 세팅하고, 빈 접시를 나르는 일을 무한 반복하느라 신랑 신부의 춤을 감상할 여유도 없었다.

빗발치는 샴페인 요구에 뛰다시피 주방으로 달려갔다.

열 잔의 샴페인을 부지런히 쟁반으로 옮겨 담으며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때였다.

탕-!

끔찍한 총성이었다. 도무지 결혼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하지만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고작 한 발.

불심 검문에서 수상한 사람이 발견되어 선제 조치를 취했을 확률이 높았다. 험한 타국에서 제법 강심장이 된 유정은 침착하게 쟁반을 들고나왔다.

애석하게도 그건 안전 불감증이었다.

철컥.

누가 머리에 총구를 겨눈 적은 처음이었다.

총이 장전되는 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들은 것도 처음이고. 그게 이렇게 선명하게 와 닿을 줄 알았다면, 주방에서 안 나왔을 텐데.

상상을 초월하는 두려움에 턱이 덜컥 내려앉았다. 차마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일단 저항의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양손을 허공에 들고, 눈을 내리깔았다.

흙먼지가 묻은 워커가 보였다. 발 크기는 280mm 정도로 추정됐다.

“저는…….”

본능이 모국어를 뱉어 냈다. 살려 달라고 빌까. 아니면 밀치고 도망을 갈까. 별의별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어떤 것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저만치서 총성이 연발로 터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대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머리에 겨눠진 총이 스륵, 빗겨 나가더니 다른 곳을 겨냥했다. 곧 총이 들썩거리며 귀가 찢어질 듯 크고, 끔찍한 소리가 났다. 연발로 들려오던 총성은 그때 멎었다.

처음부터 표적이 따로 있었던 거다. 극도로 안심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순간, 닥치는 대로 밀치며 도망가는 인파에 치여 넘어진 유정이 인상을 찌푸렸다.

바닥과 부딪힌 무릎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기껏 가져온 샴페인은 마룻바닥에 쏟아진 지 오래고, 텅 빈 버진 로드에는 다른 이의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마저도 자욱한 연기에 가려졌다. 이제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코를 찌르는 탄약 냄새.

순간 유정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외국인이 거주하기 힘든 동네에서 2년을 살았다. 실종은 다반사고 총성도 비일비재했으며 위험한 구석이 천지였다.

꾸물거리다간 휘말려 죽을 수도 있다.

등골이 오싹해진 유정은 뭐에 씐 것처럼 몸을 움직였다.

엉금엉금 기어서, 기다랗게 늘어진 붉은 벨벳 커튼 뒤로 숨어들었다.

커튼 위에 납작 엎드려 발소리에 귀 기울였다. 일제히 한 방향으로 달려가던 발이 돌연 고꾸라지거나, 기겁하며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그때, 흙먼지가 묻은 새까만 워커가 유유히 걸어왔다. 여유롭다 못해 나른해 보일 정도로 느긋한 속도였다.

제 머리에 총구를 겨눴던 남자라는 걸, 유정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저벅, 저벅, 저벅.

유난히 귀에 박히는 발소리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안 그래도 작게 구부린 몸을 더 웅크릴 만큼 압도적으로 음산했다.

숨소리가 새 나갈까 봐 본능적으로 입을 틀어막은 유정의 커다란 두 눈이 불쌍할 정도로 떨렸다.

애석하게도 워커는 유정이 숨어 있는 커튼 앞에 멈췄다. 커튼 밖으로 천천히,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커튼이 휙, 걷히는 순간 공포감으로 점철된 유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아주 잠깐이지만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속눈썹을 파르르 떨던 유정이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린 순간, 놀라울 정도로 새까만 눈과 정통으로 마주쳤다.

독이 떨어지듯 검은자위가 머리부터 웅크린 등, 관절이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그러쥔 손등과 비루하게 모은 다친 무릎을 싱겁게 훑어보다가 다시 눈을 맞춰 왔다.

일자로 길쭉한 눈매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상처가 없는데도 어쩐지 눈매 끝이 붉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남자의 유백색 피부에서는 빛이 났다. 하관을 가린 시커먼 복면 위로 선이 굵은 콧날이 우뚝 서 있었다.

쭈그려 앉아 저가 들어 올린 커튼 밑을 들여다보는데도 전혀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는 남자가 고개를 옆으로 까딱, 기울이더니 복면을 끄집어 내렸다. 사탕을 먹고 있었다. 그러고는 아랫입술이 좀 더 도톰한 입술을 열어 복화술로 물었다.

‘한국인?’

혀를 굴려 사탕을 입 안쪽으로 보낸 남자의 한쪽 뺨이 느른하게 부풀었다. 그리고 귀에 붙인 핸드폰을 무성의하게 고쳐 잡더니 검지 끝으로 핸드폰 뒷면을 툭툭, 두드렸다.

그 모든 게 너무 아름다워서, 정말 현실감이 없었다. 목구멍으로는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어쨌거나 이 상황에 혼자만 태연한 걸 보면 위험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고,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체념한 듯 유정이 눈을 내리감았다. 암전된 상태에서도 얼굴 위로 시선이 느껴졌다.

느긋한 태도만큼이나 느릿한 눈길로, 얼굴 곳곳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시선의 강도 역시 약해지지 않았다. 맹수 앞에 토끼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목덜미에 끈적한 감촉이 느껴졌다. 달갑지 않은 피 냄새도 났다.

혹시 목이 베인 걸까?

겁을 집어먹고 번쩍 눈꺼풀을 들어 올린 유정은 당황했다. 남자가 바닥에 흥건한 피를 제 손에 묻혀서는 그걸 유정의 목에다 펴 바르고 있었다.

유정이 눈만 깜빡이는 사이 시선을 거둔 남자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근사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처리됐어.”

눈앞에서 커튼이 사라락,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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