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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 18화 (159/159)

IF 외전 18화

자유는 짧고, 속박은 길었다.

에블린은 성인식이 이루어지기 직전까지 단 한 번도 방 밖을 나설 수가 없었다.

협박을 위해 던져 둔 체이서가 방을 빠져나가고, 하녀들이 매끼와 물을 가져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고작 가출 가지고 아버지도 참 유난이라니까.”

성인식을 기념하는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오래간만에 치장하던 에블린은 제 처지가 웃긴다며 하녀들에게 그렇지 않냐며 물었다.

“다 아가씨께서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이지요. 삐쩍 말라서 돌아오셨으니까요.”

“맞아요, 공작님께서 과하시기는 하셨지만 다 아가씨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해요.”

“어쩜 내 생일인데 아무도 내 편을 들어 주지 않는구나. 속상해서 이거 원. 그럼 아버지의 화라도 풀어드릴 수 있게 가장 예쁘게 꾸며 주거라.”

에블린이 뺨에 손을 얹고는 한숨을 내쉬니 하녀들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웃으며 치장에 더욱 힘을 쓰기 시작했다.

거울 앞에 비치는 화려한 미인을 보며 에블린은 가볍게 물로 목을 축였다. 분홍빛 입술 위에 연신 자리한 해맑은 미소는 생일을 맞이하는 그녀의 기쁨이 엿보였다.

“정말 아름다우세요.”

“과연 파티의 주인공이에요!”

겨우 치장을 끝낸 하녀들은 에블린의 모습에 손뼉을 치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에블린의 치장은 끝났느냐.”

때마침 밖에서 더스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났으면 나가 봐도 되겠니?”

“네, 그럼요! 아가씨, 정말 진심으로 생일 축하드려요.”

“좋은 시간 보내고 오셔요!”

에블린은 치장을 도와준 하녀들에게 고맙다고 손을 흔들었다. 문을 여니 바로 앞에 예복을 잘 차려입은 더스틴이 서 있었다.

“오늘도 예쁘구나.”

“그럼요. 제가 누구 딸인데요.”

잔뜩 자부심 어린 목소리에 더스틴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그럼 더 늦기 전에 가 볼까?”

“예.”

더스틴이 내민 손을 잡고 에블린은 찬찬히 밝은 조명이 켜진 복도를 그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몰라도 복도 내에는 사용인이나 손님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파티는 별관이 아닌 본관에서 열릴 것이다.”

“오라버니들 때는 별관에서 하지 않았나요?”

“후계자를 발표하는 자리이니 본관이 적절하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딸의 성인식인데 쫓기듯 별관에서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순진한 질문에 더스틴은 짧게 실소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딱 자르는 말에 에블린은 기쁘다는 듯 빈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이번 성인식은 가신들만 초대했지만, 후에 크게 연회를 열어 줄 테니 그때 친구들도 초대하고 그러려무나.”

“역시 아버지밖에 없어요.”

“아무렴. 잘 기억해 두거라, 에블린. 피가 이어진 것만큼 확실한 아군은 없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제 편은 오로지 아버지겠어요. 제가 아버지 편인 것처럼.”

“당연한 소리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더스틴의 모습에 에블린은 눈가를 살포시 접으며 웃었다. 

“감사해요, 아버지. 저를 낳아 주셔서. 앞으로 효도할게요.”

평소와 달리 애교가 어린 목소리에 더스틴의 입가가 씰룩였다.

언제나 어색하게 감정을 숨기던 딸이 기어코 가출하며 상상하지도 못할 방법으로 뒷목을 잡게 하더니 결국에는 진실을 알게 된 후로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암, 혈연만큼 끈끈한 관계는 없지.’

그간 제 피를 루이사 가문에 흐르게 하도록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였던가.

드디어 오늘, 그 결실을 보는 날이 찾아왔다.

*** 

“생일 축하드립니다, 공녀님.”

“성인이 되셨으니 기념이 될 만한 것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올해 저희 영지에서 나오는 모든 와인에 공녀님의 이름을 붙였답니다.”

“수도 근교에 작은 별장 하나가 있는데 휴양지 근처라 여름에 방문하시기 좋은 곳입니다.”

“대륙 건너에서 수입한 비단이라는 옷감입니다.”

“이건 특이한 약초로 우린 차로 체력 회복의 증진을 도와준다고 합니다.”

과연 미리 들은 대로 중요한 가신들만 모였다는 말이 사실인지 파티장 안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가는 선물의 규모가 달랐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에블린이 가주가 되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사 가문의 비밀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겠지.’

미래의 공작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이리 굉장한 선물들을 들고 왔을 것이다.

파티장의 중심에 있는 에블린의 주위로 가신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그와 대비되게 체이서와 블러드윈 그리고 데몬스는 벽에 붙어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자, 모두들 집중해 주게. 오늘 드디어 내 뒤를 이을 후계자를 발표할 테니!”

계단을 올라 파티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선 더스틴이 모두를 집중시켰다.

기분 좋은 날이라며 제일 먼저 술잔을 들어 올리더니 취한 모양이다.

“나는 내 자식들을 모두 공평히 사랑하며, 바로 아이들의 곁에서 누가 가장 공작위에 적절한 이인지 오랫동안 고민하였네. 그리고 신중히 결정을 내렸지.”

겉으로 만들어 낸 멋진 아버지의 이미지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발언들이 이어졌다.

“에블린, 나의 자랑스러운 딸! 능력이 완벽하지 않은 형제들을 따스하게 품어 주고, 함께 이끌어 갈 힘이 있다고 판단하였단다.”

에블린은 마치 처음 듣는 사람처럼 두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크게 뜨인 눈을 보며 주위에 모인 모두가 호탕하게 웃으며 축하를 건네주었다.

“체이서, 블러드윈, 데몬스 너희 모두가 부족하다는 게 아니었으니 이에 대해 자존감을 갉아먹지는 말거라.”

벽을 기대고 서 있는 형제들에게 제법 아버지다운 말까지 건넨 더스틴은 다시금 에블린에게 시선을 던졌다. 반짝거리는 눈이 환희에 차 있었다. 

“어서 올라오렴, 에블린! 네가 다음 후계자가 되었으니 모인 이들에게 소감을 이야기해 주어야지!”

밝은 목소리에 에블린은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었음을 망각한 듯 급한 걸음으로 뛰어올라 더스틴의 옆에 섰다.

에블린은 더스틴을 와락 끌어안았다. 

“감사해요, 아버지. 저를 후계자로 삼아 주셔서요!”

“나야말로 훌륭히 자라 줘서 고맙구나.”

감동적인 모습에 모인 가신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훈훈한 부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축하해 주었다.

“자, 어서 모두에게 소감을 말해 주렴.”

“아, 그럼요. 우선 이 자리에서 이 좋은 소식을 그대들과 함께 즐길 수 있음이 참으로 기쁩니다. 생일에 이어 뜻밖에 선물을 받았으니 정말 행복하네요.”

에블린은 수줍게 볼을 붉혔다. 사랑스러운 얼굴에 서린 것은 그녀가 밝힌 대로 오롯이 기쁨뿐이었다.

“하지만 저는 이 자리로 만족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도 이런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트릴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뜬금없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보던 이들 뒤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무, 문이!”

문이 안에서 열리지 않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앞에는 데몬스가 무표정으로 가만히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블러드윈이 함께였다.

두 형제와 다르게 체이서는 파티장 중앙으로 뚜벅뚜벅 나오더니 갑자기 품속에 숨겨 온 단검을 꺼냈다. 체이서가 그대로 트렐로니 백작의 목을 꿰뚫었다.

그는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뜨고 뒤로 무너졌다.

갑작스러운 축제를 망치는 행동에 더스틴의 입가가 씰룩였다. 

“이게 무슨 짓…….”

그가 놀라며 소리 지르려는 찰나였다.

“그래서 지금 당장 공작위를 받고자 해요.”

에블린이 말을 이었다.

“에블린, 조금 전부터 자꾸 무슨 이상한 소리를…….”

버럭 소리친 목소리의 끝이 얼버무려졌다. 푸욱 하고 무언가가 살점을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으윽……!”

갑작스러운 고통에 더스틴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그의 뱃가죽 너머 기다란 검 한 자루가 튀어나와 있는 게 보였다.

그제야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타들어 가는 고통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아버지가 죽는다면 후계자인 제가 공작이 될 수 있는 거겠죠?”

“너, 너…….”

매섭게 뜬 눈 너머로 활짝 웃는 에블린의 모습이 보였다. 더스틴이 에블린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했으나 그녀가 검을 뽑아내는 것이 더 빨랐다.

검이 뽑히자 다량의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아, 묻어 버렸네요.”

에블린이 제 뺨에 튄 피를 닦으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현실을 부정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으아악!”

“미, 미친! 나, 나는 죽이지 말아 줘!”

“사, 살려 주게. 살려 줘!”

한 사람이 터트린 비명은 마치 물속에서 물감이 번지듯 빠르게 주위로 퍼져나갔다. 

루이사 형제들의 갑작스러운 미친 짓에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기사를 찾았으나 애석하게도 기사들은 모두 파티장 밖에 있었다.

그사이 더스틴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루이사답게 단단히 훈련된 그였지만 역시나 이번 경우는 회복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너무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검에 독을 발라 둬서 발발거릴수록 독이 빨리 퍼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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