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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 15화 (156/159)

IF 외전 15화

은신처로 무사히 돌아와 창밖을 보니 낮임에도 금방 비바람이 몰아칠 것처럼 주위가 어두컴컴하였다.

“오늘 비가 온다더니. 바람이 심상치 않네.”

마음 같아서는 오늘 밤 당장 떠나고 싶었지만 이런 날씨에 이동하는 것은 오히려 더 눈에 띄기에 수상해 보일 확률이 높았다.

에블린은 현관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이어 창문들까지 단단히 틀어막았다.

‘부디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야지.’

벽에 걸린 검을 슬쩍 바라본 에블린의 눈매가 매섭게 빛났다.

태풍이 불어오는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 

2층 침실에서 고요히 잠에 빠졌던 에블린을 깨운 건 누군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쾅, 쾅, 쾅.

필사적인 노크에 에블린은 올 게 왔다는 듯 굳은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래, 내가 너무 편히 생각했지.’

더스틴이 자신을 놔준다면 그건 죽음으로 자유를 선물해 주는 방법밖에 없는데 너무 이상론에 심취해 있었다.

닫힌 창문 너머 들려오는 스산한 바람 소리를 뒤로한 채 그녀는 소리가 들리는 아래로 내려갔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주먹으로 문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티팩트를 부시고 들어왔나 보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곧바로 그녀의 은신처를 찾았을 리가 없다.

시리도록 찬 눈으로 문을 응시하던 그녀는 곧 몸을 움직여 낮에 보았던 검을 챙겨 들었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자 청량하면서도 섬뜩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조금 전 잠에서 깨어난 것이 무색하게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질 테니 떼로 몰려오지는 않았을 거야.’

체술 쪽으로 특화된 능력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공작가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자기 몸을 지키는 호신용 검술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적지 않은 인원이라면 적당히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검을 손에 쥔 채 천천히 문을 향해 다가갔다.

‘문이 부서질 때를 노려야겠지?’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상 먼저 덤벼드는 건 위험했다. 에블린은 그 순간을 기다리며 앞으로 다가갔고, 곧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누님! 안에 계십니까, 누님!”

거센 빗소리와 바람 소리에 가려져서 묻혔던 희미한 울음기가 이제야 들려온 것이다.

“제발, 제발요, 제발! 누님! 안에 계시면 답해 주세요. 저는 누님을 도와드리러 온 겁니다. 제발!”

‘데몬스?’

에블린은 곧바로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그대로 동작을 멈추었다.

‘이게 나를 불러들이기 위해 일으킨 계략이면 어떻게 하지?’

과연 데몬스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애초에 데몬스는 이곳을 어떻게 찾아온 것일까? 혹시 더스틴이 보낸 것은 아닐까?

“제발요, 누님. 제가 미덥지 않다면 체이서 형님을 믿어 주세요. 형님께서 저를 누님께 보냈습니다.”

애절한 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한시가 급합니다……!”

잠깐 사이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체이서가 보냈다고 한들 그가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데몬스를 보냈다면?

아니면 자신을 험히 대하던 누이를 죽이러 온 거면 어찌하지?

혹은 정말로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체이서라면 더스틴의 수상한 행동은 금방 눈치챘을 테니.

고민은 길었지만, 에블린은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덜컹, 하고 쇠로 만들어진 잠금쇠가 큰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끼익, 하고 문이 열리자 건너편에 비에 흠뻑 젖은 데몬스가 문을 두드리다 말고 굳은 채로 서 있었다.

“누, 님…….”

데몬스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빗물에 쫄딱 젖은 모습에 이어 얼굴까지 잔뜩 일그러져 더더욱. 

“체이서가 뭐라 하며 보냈니? 나를 죽이라 했니?”

“아, 아닙니다!”

순간이지만 데몬스의 눈이 에블린의 손에 있는 검에 닿았다. 

“그럼 네 개인적인 목적으로 나를 죽이러 왔니?”

“절대로 아닙니다! 저, 저는 누님께서 상냥한 사람인 걸 알아요. 지난번 제가 아팠을 때도 찾아와 저주를 약화시켜 주셨잖습니까!”

‘……깨어 있었구나.’

에블린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원하지 않은 선행을 들킨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럼 아버지, 아니 더스틴이?”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정말로 누님을 도우러 왔습니다. 그분께서 계속해서 누님을 찾고 있고, 이곳까지 시선이 닿았다는 소식에 급히 왔습니다.”

“그래……. 체이서는 내가 이곳에 사는 걸 진작에 눈치챘던 모양이네.”

그에 돌아오는 말이 없다. 그토록 조심하여 만들어 낸 은신처이건만 고작 이 정도의 주의로는 모든 이들의 눈을 피하기 어려웠나 보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건 더스틴보다 체이서가 먼저 찾아냈고, 그가 에블린을 도와줄 마음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래……. 지금 가면 되니?”

“……믿어 주시는 겁니까?”

“믿어야지. 동생이 울며불며 찾아와 같이 가 달라고 제발 부탁하는데.”

에블린은 한쪽에 놓인 수건을 꺼내어 데몬스의 머리와 젖은 얼굴을 닦아 주었다.

“로브는 새로 챙겨 입어야겠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도르륵 눈을 굴리는 모습이 그 나이대의 소년 같아서 귀여웠다. 

‘매번 딱딱한 모습만 봐서 미안했는데.’

어차피 도망친 이상 예전처럼 굴 필요가 없을 테니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었다.

에블린은 미리 준비해 놓은 짐가방을 들었다.

“미리 준비해 놓으셨군요…….”

“쫓기는 삶이니 언제든 도망갈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니.”

“……적어도 밖에서 사는 삶이니 마음은 편할 줄 알았습니다.”

“도망쳤으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지. 어쩌겠니.”

비가 오는 밤은 피하고 싶었지만 혼자가 아니라 데몬스도 함께니 어떻게든 될 듯싶었다.

에블린 또한 새로운 로브를 챙겨 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거센 비바람이 그녀를 반겨 주었다.

그녀의 마음만큼이나 휘몰아치는 날씨였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이동하겠습니다.”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자 데몬스는 앞장서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숲속을 헤쳐 나가는 것이 꼭 그녀의 앞날 같았다. 

비식거리며 한참을 뒤따라가는데 잘 가던 그가 갑자기 뚝 멈췄다.

“……데몬스?”

의아한 부름에 대한 답은 그의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역시 이 근처에 계셨군요, 공녀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내밀려고 하는데 데몬스가 손을 뻗어 그 앞을 막았다.

“제 뒤에 계세요.”

“……그래.”

곧 어둠 속에서 몇몇이 나타났다. 낮에 마을에서 본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중심에는 익숙한 사내가 한 명 서 있었다.

‘트렐로니 백작…….’

“공녀님, 가출은 끝내고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더스틴과 사이가 안 좋은 이로 알고 있는데. 그의 명령을 받고 직접 나를 찾으러 온 건가?’

물에 젖은 풀이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지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데몬스의 어깨가 경직되었다.

에블린 또한 허리춤에 매단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러자 가까이 다가오던 트렐로니 백작 일행이 멈췄다.

“어째서 갑자기 반항심이 드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춘기라면 그러실 수 있습니다. 공작님께서 더 노여워하시기 전에 돌아가시지요.”

“이분은 돌아가시지 않습니다. 억지로 데려가고자 하면 나를 넘어야 할 겁니다.”

“이런, 삼 공자님. 저희가 왜 공녀님을 억지로 데려갑니까. 잠깐 사춘기가 오신 거를 이해 못할 리가 없잖습니까. 그저 대화로 곱게 모셔갈 겁니다. 물론 삼 공자님도 함께요.”

두꺼운 빗소리에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데몬스의 손에 작은 빛이 어리는 것이 보였다. 능력을 써서 이들을 쫓아낼 생각인 것 같았다.

“저희를 따라가야 하실 겁니다.”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분은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어떤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정 방법이 없다면 손에 피를 묻혀서라도 도망치려고 하였다.

“따라오셔야 할 겁니다. 소중한 형제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하지만 이어진 심상치 않은 말에 그럴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야?”

“체이서 도련님께서 아프십니다.”

“……!”

트렐로니 백작이 던진 말에 에블린이 흠칫 떨었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있는 데몬스는 이미 알고 있는 듯 침착한 반응을 보였다.

“……진짜인 거야, 데몬스?”

답이 없다. 사실인가 보다.

“어째서 숨긴 거야? 잠깐, 설마 나 때문에 체이서가……!”

“형님께서!”

버럭 외친 데몬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한탄과 함께 터져 나온 말에 에블린의 두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형님께서 알리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의 외침 뒤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그냥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때문인지 머릿속이 새하얬다.

“이 모든 것은 형님의 의지입니다! 그러니 누님께서는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만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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