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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 9화 (150/159)

IF 외전 9화 

가르티아가 루이사에 온 지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생각 이상으로 가르티아의 능력은 뛰어났다. 어쩔 수 없이 가르티아를 받아들인 더스틴마저도 태도를 바꿀 정도로.

‘확실히 나라도 외상을 입은 환자 열 명을 한 번에 치료하는 것을 보면 욕심날 거야.’

에블린을 제외한 모두에게 공평히 대하던 쌀쌀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그는 가끔 그녀를 위한 선물을 사 왔고, 능력에 대해서 조언하더니 이내 직접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어떻게든 제 손에 쥐어 이용하고 싶을 것이다. 가르티아는 밝고 활기찼으며, 사람을 잘 믿으니 이용하기는 더욱 쉬워 보였다.

그 때문인지 더스틴이 에블린을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평소라면 저녁 후에 차를 마시자거나, 혹은 능력의 진척도를 보자거나 하며 시간을 냈을 인간인데.’

가르티아에게 했던 것처럼 가끔 선물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니 꼭 자리를 뺏긴 것 같네.’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저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 뒤로 제게 향하던 편애가 그 아이에게로 간 것뿐.

아쉽지도 않았다. 불편한 시간을 억지웃음을 지으며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편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이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했다.

홀로 산책을 나왔던 에블린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 양산을 들고나오다니. 정신이 이상해도 단단히 이상해진 모양이다. 심지어 어둑한 하늘이 꼭 에블린의 미래 같아 보였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가르티아의 등장으로 에블린의 앞날에 갈림길이 생겨났다. 

지금껏 해 온 대로 더스틴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인형인 척을 하며 뒤통수를 칠 때를 노릴 것인가, 아니면 정해진 흐름대로 가도록 가르티아에게 가주 자리를 넘겨 줄 것인가.

후자로 가는 것이 쉬운 방법임을 알면서도 처음 본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이에게 가주의 자리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는 이유가 왜인데. 체이서에게 가주 자리를 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체이서는 가르티아를 이용해 가주 자리를 노리려는 속셈이겠지만 만약 게임 속과 내용이 변치 않는다면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갈구할 것이다.

무릎 꿇고 간절히 애원하는 장면이 떠오르자 절로 기분이 나빠졌다.

역시 힘들더라도 마음이 가는 전자의 길을 선택하고 싶다만…….

‘……만약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라면 가르티아의 뒤에는 플레이어가 있다는 거려나? 만약 그렇다면 내 뜻을 이룰 가능성이 거의 없지 않나.’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그 전에 싹을 잘라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무언가 실적을 세우기 전에, 더스틴의 관심이 온전히 그리로 쏠리기 전에, 그리고 가족들의 호의마저 그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양산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만약 그녀의 손에 검이 잡혀 있고, 앞에 가르티아가 서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베어 버렸을지 모를 정도로 충동적인 감정이 일렁였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멀리 떠났던 이성이 천천히 돌아왔다.

계획이야 쉽다. 하지만 만약 가르티아를 죽이려다가 실패한다면?

착한 여주인공에게 악한 짓을 일삼다가 쫓겨나는 소설 속에서나 보던 악녀가 따로 없었다.

‘곱게 쫓겨나면 다행이지.’

죽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에블린은 실타래처럼 얽힌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체이서와 말다툼을 한 뒤로부터 지끈거리는 두통이 떠나지를 않았다.

이 갈림길에서 전자를 선택해도 문제가 있었다.

‘만약 더스틴의 관심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에블린이 아무리 노력해도 만약 그가 마음이 바뀌어 가르티아를 루이사의 가주로 만들고자 한다면…….

‘그럼 내가 여기에 남아 있는 이유가 없지 않나?’

“하.”

기가 차 내뱉은 탄식과 함께 머리를 짓누르는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하지만 어디로 갈지 스스로 선택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떠민다면 그리로 가는 것이고, 못 가게 막으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내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삶이라는 거지.’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싶어 한 산책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스스로의 멍청함을 탓하는 순간, 에블린은 주위의 공기가 제가 걷던 정원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야 눈치챘다.

‘여기는…….’

지난번 체이서와 단둘이 만났던 곳이었다.

자각하기 무섭게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체이서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아무리 깊이 생각에 빠졌어도 또 여기를 오다니.’

지금은 체이서를 보고 싶지 않았다. 도무지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표정을 관리하며 그와 척지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저쪽도 나랑 대화할 생각은 없어 보이고.’

둘 사이를 오고가는 긴 침묵이 반가운 건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에블린은 쇠약해진 자신의 정신상태를 비웃으며 등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요새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형식적인 물음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날을 세울 필요 없는 평화로운 대화에 순간이지만 머리를 잠식하던 고통이 흐려졌다.

“……아니. 특별히 그럴 일은 없는데?”

“거울은 보고 다니나? 안색이 안 좋아.”

‘언제부터 내게 관심이 있었다고.’

에블린은 괜히 제 뺨을 만지작거리며 슬쩍 눈을 피했다.

우습게도 진심이 아닌 걱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생각보다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당장 자리를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하지만 머릿속에 찾아온 평화는 너무도 빠르게 끝나고 말았다.

“말 못 할 고민이 있다면 가르티아에게 해 보는 건 어때?”

갑자기 나온 고민의 원흉에 다시금 지끈거리는 고통이 머리를 잠식했다.

에블린은 인상을 찌푸리려다 필사적으로 참으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같은 여자고, 앞으로 자매가 될 사이니 서로 고민 같은 걸 나누며 친해지면 얼마나 좋겠어?”

에블린의 속을 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어쩌면 내 속을 다 알기에 저렇게 박박 성질을 긁는 것일지도 모르지. 역시 곧바로 자리를 떠났어야 했는데.’

순간의 유혹에 져 제 선택을 뒤로한 것이 후회되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일부러 연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절로 까칠한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에블린은 서늘하게 굳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속내를 읽은 듯 체이서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비웃음이 섞인 미소에 에블린은 겨우겨우 지어낸 웃음기 어린 표정마저 지워 버렸다.

툭, 하고 간신히 유지하던 이성이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는 왜 데리고 왔어?”

“다 들었잖아. 직접 루이사의 피를 물려받았다 주장했고, 능력이 확인되었고, 검증이 끝나서 자식으로 받아들여진 거야.”

“네가 그런 귀찮은 짓을 나서서 했다는 걸 나보고 믿으라고?”

속내가 있는 것이 뻔하다는 투에 체이서는 피식,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는 그저 루이사답게 행동했을 뿐인 일인데.”

“…….”

“이게 이렇게 네게 추궁받을 만한 일인가?” 

그리 말하는 체이서의 얼굴은 여전히 가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마치 일부러 호감을 얻으려고 작정하고 꾸며 낸 모습과 같아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래, 알겠어. 루이사답고 좋네.”

에블린은 더 묻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체이서는 쉽게 보내 줄 생각이 없는지 다시금 그녀의 속을 뒤집는 말을 꺼내었다.

“물론 사심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고.”

“……뭐?”

설마 벌써 가르티아에게 호감이 생긴 걸까?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흐름에 다시금 혼란이 더해졌다.

에블린의 두 눈이 잘게 흔들리는 것을 포착한 체이서는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

날씨에 맞지 않게 펼쳐진 양산 아래로 그가 몸을 숙여 안으로 들어왔다.

단번에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다가온 체이서를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응시하고 있으니 그가 웃음기 섞인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난 내 목에 목줄을 걸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에블린은 단번에 지금의 말이 지난번 대화의 연장선인 것을 깨달았다.

목줄을 걸어 제게 쥐어 달라는 말에 뒤늦은 답으로 가르티아라는 복병을 데리고 나타났다고.

절대로 에블린의 뜻대로 해 줄 생각이 없다는 말에 그녀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네 손에 목줄을 쥐여 줄 생각도 없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손이 그대로 에블린의 목을 감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그러니 네 목에 목줄을 걸어 내게 주는 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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