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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 7화 (148/159)

IF 외전 7화 

소름이 끼치는 발언에 에블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녀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체이서는 미소를 띤 채로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강하게 쥐지 않았음에도 맞닿은 손바닥 너머로 에블린이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이 생생히 느껴졌다.

“늦은 시각, 사람들에 눈에 띄지 않는 장소, 둘밖에 없는 상황. 내가 너를 죽일 생각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적합한 상황이 있겠어?”

그 말을 끝으로 체이서는 붙잡은 에블린의 목을 놔주었다.

‘…….’

에블린은 겁에 질린 것을 숨기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큰 힘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억지로 숨통이 조여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 목을 감쌌던 체이서를 힘껏 노려보았으나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때, 아직도 생각엔 변함이 없나?”

변화가 없으면 지금이라도 죽이겠다는 어조였다. 

‘무서워.’

지금껏 더스틴의 비호 아래서 형제에게 위협을 느껴 본 적이 없었기에 당황스럽고 두려웠다.

‘그리고 서러워.’

괜히 오지랖을 부려 스스로 이러한 사달을 만들어 낸 것 같아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럼에도 에블린은 물러설 수가 없었다.

‘솔직히 흔들렸어.’

체이서가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당장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 조용히 평화롭게 살다가 그대로 생을 끝마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아직 일러.’

체이서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더스틴을 이기기에는 부족한 실력이다. 적어도 에블린이나 체이서가 더스틴을 꺾어 끌어내리기 전까지 그녀는 저택에 있어야 했다.

“응.”

잔뜩 겁에 얼린 얼굴을 지우고, 평소의 평온하고 뻔뻔한 낯을 깔았다.

에블린은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으며 싱긋 웃어 보였다.

“내 생각은 그대로야. 오라버니가 아버지를 꺾을 만큼 대단한 힘을 가지지 않는 이상.”

퍽 자존심이 상하는 말일 텐데도 체이서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맞아, 나 이런 살벌한 가문 싫어. 마음 같아서는 당장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고 싶어. 그런데 내가 도망치면 이 상황이 해결될까?”

조금의 떨림도 없는 은은한 미소, 공식적인 석상에서 보이는 꾸며진 미소에 마찬가지로 에블린 또한 가식으로 답했다.

“고작 저주에 휘둘려 자신의 힘도 제대로 못 다루는 오라버니들을 내가 어떻게 믿겠어. 제힘도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내가 있는 곳을 밝히면 어떻게 하라고?”

“…….”

에블린은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며 사교계에서 주로 보이는 오만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내 편이 되고 싶다면 오라버니의 목에 목줄을 걸고 내게 쥐여 줘.”

“목줄?”

기가 막힌다는 어조에도 에블린은 싱긋 지어진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래, 오라버니들과 데몬스의 목줄을 내게 쥐여 줘. 형제들의 힘을 모으면 원하는 대로 아버지를 몰아내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게 네 답인가?”

“응, 나는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고 싶거든.”

최악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도망치는 것이요, 차악은 이곳에 남아 마저 제가 목표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었다.

만약에 체이서의 도움으로 루이사 공작저를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더스틴의 권력이 살아 있는 이상 그녀는 금방 잡혀 올 가능성이 컸다.

그때는 그녀의 목에도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탈출이 요원해지고, 찰나의 욕심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단순히 가문의 권력과 재산에 욕심이 가지 않음을 알리며, 그에게도 선택지를 던져 주었다.

“오라버니도 잘 생각해 봐. 최악이 괜찮을지, 아니면 차악을 선택할지 말이야. 그런데 잘 생각해야 해? 최악인 방법을 선택해 나를 빼돌렸다가 괜히 들켜 미움을 사면 어떻게 해.”

더스틴의 성미라면 고작 미움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속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체이서의 이마가 미미하게 구겨졌다.

“아무튼 괜히 도와줬네.”

기껏 평온을 찾았건만 이곳에 오기 전보다 훨씬 더 머릿속에 짜증이 가득 찼다.

에블린은 한숨을 내쉬며 마도구로 감춰진 수상쩍은 이곳을 나가기 위해 발을 옮겼다.

“하나만 묻지.”

‘왜 자꾸 가려고 할 때 붙잡는 거야.’

에블린은 멈춰 선 채 경계 서린 눈으로 뒤돌아봤다.

쫓아왔던 조금 전과 달리 적당히 거리를 둔 체이서가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또다.’

무언가 열망이 서린 눈.

아까까지만 해도 그것이 저를 살해하고 싶은 마음이라 생각했는데 멀리서 보니 그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였다.

“왜 나를 도왔지?”

“……뭐?”

“너는 나를 싫어하지 않나?”

“……오라버니가 아까 말했잖아? 내가 오지랖이 넓어서 그런가 보지.”

“단순히 오지랖이 넓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을 도와준다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불만스럽게 고개를 기울이는 것에 숨이 턱 막혔다.

더는 이 답답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 걱정돼서 그랬다. 걱정돼서! 내일 당장 임무나 가는 인간이 골골거리는 게 신경 쓰여서 그랬다! 아무튼 도와줘도 욕먹고, 목숨을 가지고 협박받고! 내가 괜한 짓을 했어!”

에블린은 있는 힘껏 짜증 가득한 말을 내뱉고서는 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친 걸음으로 정원을 벗어났다.

그녀가 빠져나간 뒤, 홀로 남은 체이서는 낯선 기운이 어린 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하아.”

한참의 정적 끝에 그가 내뱉은 것은 무언가 깨달은 것 같은 깊은 한숨뿐이었다.

* * *

체이서와 뜻밖의 만남 이후로 에블린은 심한 감기에 걸려 며칠을 앓아누웠다.

‘내가 그날 밤에 밖에 나가는 게 아니었는데.’

싱숭생숭한 마음 정도 그냥 잠으로 꾹 눌러 버렸어야 했는데 선택지를 잘못 선택해 버렸다.

“그래도 오늘은 열이 좀 내려서 미열 정도네요. 다행히 회복세에 들어갔으니 며칠 동안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금 더 쉬셔야 합니다.”

의사의 말에 에블린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미열 정도에 이리 골골거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도 좀 루이사답게 튼튼한 체력을 물려줬으면 몰라.’

고작 찬 바람 조금 쐤다고 몸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쩌겠어. 내 설정이 엑스트라인 걸 탓해야지.’

죽어야 할 운명을 바꿔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니 앞으로도 무사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그나저나 슬슬 여자 주인공이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나?’

평상시에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는데 아프다는 이유로 쉬고 있으니 머리가 사소한 것들을 모두 끄집어내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맞아, 체이서가 가주가 되기 전에 등장했으니까.’

내년이 되면 에블린도 성인이 되니 분명 가주 경합 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정말 그녀의 등장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겨지니 이건 또 이거대로 새로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에블린은 팔짱을 낀 채 과거 게임 속에서 보았던 일러스트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경합전을 통해 가주가 된 여자 주인공에게 체이서가 간절히 고백하는 장면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네게 바치겠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너만 내게 주면 돼.’★

자존감과 오만함에 똘똘 뭉친 사내가 고작 여자 주인공 한 명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체이서는 꽤나 인기가 있는 공략 상대였다.

만약 게임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더라면 에블린은 주위에서 아무리 체이서가 사랑꾼이 된다고 해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가주가 되고 싶다고 날뛰는 애가 사랑에 미쳐서 모든 걸 포기한다고?’

에블린은 제가 생각해도 우스운지 피식 웃음을 터트리더니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자며 처방해 준 약을 꺼내 꿀꺽 삼켰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일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오늘까지만 좀 쉬자고.’

약이 체내로 스며들자 서서히 약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노곤해지는 감각에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지려던 찰나.

“아가씨!”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예의도 없이 노크 한 번 안 하고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에블린은 반쯤 감긴 눈에 억지로 힘을 주어 뜨고는 문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그녀의 처소에 배정된 하녀가 서 있었는데 톡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엉망인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노크도 없이 들어온 것을 보면 그만큼 다급한 일일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난 에블린은 헤드에 몸을 기대어 앉아 물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러니?”

조곤조곤하게 물었을 뿐인데 하녀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그대로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울음을 참아 내며 하녀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달했다.

“이러실 때가 아니에요! 주인님께서 새로운 아가씨를 데리고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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