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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 3화 (144/159)

IF 외전 3화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체이서는 에블린에게 배신당한 사람처럼 굴었지만, 그 또한 옛날의 일이었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는데. 이 정도로는 턱이 없단 말이지.’

에블린은 제 손을 내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멍청이.”

처음 더스틴의 애정을 받을 때, 에블린은 그의 웃음이 제게 향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에블린의 능력은 좋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이능력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이능력이 얽히지 않는 한 아무 쓸모가 없는 능력이었기에.

루이사 공작가가 뛰어난 가문으로 유명한 것은 이능력자, 비능력자 관계없이 모두 감탄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블린은 이능력을 가지고서도 일반인들을 거느리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오히려 체이서의 화염 혹은 블러드윈의 기억 조작이나 뒤늦게 나타난 데몬스의 염력이 더 강력한 인상을 주기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라면 자랄수록, 더스틴의 옆에 서서 괴로움에 발버둥 치는 제 형제들을 보며 에블린은 서서히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더스틴은 권력 욕심이 강했고, 자신이 지닌 권력을 다스릴 만큼 강한 힘을 지닌 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이를 먹으며 늙어 가고 있었고, 나머지 세 사람은 젊고 앞으로도 성장할 가능성이 큰 아이들이었다.

혹시나 자신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을 온전히 배제하기 위해 저주를 걸어 놓았지만, 그의 능력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대신하여 강력한 사냥개들의 목줄을 채울 족쇄를 원했고, 그다음 타자로 에블린이 결정된 것 같았다.

남들의 눈에 에블린은 분명 부족할 것 없이 자란 고귀한 아가씨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울리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채 더스틴의 손아귀에 들려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형이나 다름이 없었다.

설명이 길어서 그렇지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냥 이용해 먹기 좋아서지.”

물론 그대로 이용만 당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데 만만하게 생각하는 건 데몬스에게도 그런 것 같던데. 목소리만 높아져도 벌벌 떨게 만든 주제에.’

세 사람의 뒤를 이어 뒤늦게 루이사에 입적이 된 막내를 떠올리니 그녀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아이의 가족과 친구 이웃들 모두 어떻게 잔혹하게 죽었는지 알기에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린 에블린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결국 에블린이 할 수 있는 건 데몬스에게 피해가 덜 가기 위해 더스틴의 의도대로 그 아이를 사생아로 대하는 것밖에 없었다.

“아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번 빈민가에 나타난 마물 때문에 과도하게 능력을 썼다가 기절한 뒤로 심하게 앓고 있다고 들었다.

그냥 아프다면 모를까. 이능력으로 인해 아프다고 하니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쓰였다.

‘왜 갔냐고 물어보면 다정한 누나 연기 좀 했다 하지 뭐. 따져 물으면 나중에 톡톡히 받아 낼 거라 해야겠어.’

에블린은 지친 몸을 일으켰다.

생각에 잠긴 채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던 것인지 창문 밖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돌아다니는 이가 적다면 더 좋지.’

아직 실외복 차림이기에 굳이 숄을 걸칠 필요도 없었다. 에블린은 누구를 부르는 대신 홀로 방을 나섰다.

***

에블린이 데몬스의 방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앞을 지키는 불량한 자세로 입을 쩍쩍 벌리며 하품하고 있었다.

사생아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꼴이 뻔했기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차라리 그냥 도망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루이사의 이름을 달게 된 이상 도망갈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애초에 루이사로 오지 말고 도망갔어야 했어.’

그랬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마음 편하게 또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에블린은 구겨진 미간을 펴고서는 입가에 익숙한 미소를 만들어 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기사가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르게 세웠다.

“아, 아가씨! 이 시간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픈 동생의 방에 찾아오는 이유가 병문안이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던가?”

“아, 그, 그렇지요.”

기사는 빠르게 대답은 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에블린은 모두의 앞에서 사생아와는 말도 하지 않는 몹시 나쁜 누이였으니 당연했다.

“얼마나 아프길래 가족회의 때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지 궁금해 직접 보러 왔으니 문을 열거라.”

곧 그의 얼굴에 네가 그럼 그렇지라는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고, 에블린의 눈초리가 뾰족해지자 기사는 재빨리 표정을 관리했다.

“언제까지 이리 나를 세워 둘지 참 궁금하구나.”

건방진 태도를 지적하니 기사가 정신을 차리고서는 다급히 노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련님, 아가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문을 열겠습니다.”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닌 통보 후 문이 활짝 열렸다.

에블린은 불조차 켜지지 않은 어둑한 방을 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문이 닫혔음에도 방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끙끙 앓는 소리만 들려올 뿐.

에블린은 한숨을 내쉴 틈도 없이 다급히 소리가 들려오는 침대로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예상대로 데몬스는 고통을 참기 위해 몸을 웅크린 채 색색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능력을 많이 썼다더니 폭주 직전의 고통이 아니라 더스틴의 저주 때문에 아픈 것이었다.

‘재수 없는 더스틴 루이사.’

에블린은 속으로 더스틴을 욕하며 데몬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에블린의 이능력은 타인의 이능력을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기에 데몬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맞닿은 피부를 통해 그녀의 기운이 서리자 잠시 후 데몬스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 편안해지는 것이 보였다.

‘이 정도면 며칠 뒤면 일어나겠네.’

에블린은 대충 침대 옆에 의자에 걸터앉아 참고 있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이번에는 짜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힘들잖아.’

에블린의 이능력은 생각보다 강대했고, 웬만한 이능력의 조절은 가능하였다.

다만 그녀가 아는 이능력자들 중 유일하게 조절 못 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더스틴이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에블린은 더스틴에게 알린 것과 달리 그의 능력 또한 진정시키고 조절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감출 필요가 있었기에 제 능력의 일부만 보여 주었을 뿐이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는 데몬스를 괴롭게 하는 저주의 고통을 조금 남겨 놓아야 했는데, 그 조절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에 지친 것이다.

“미안해, 데몬스.”

세밀한 조절을 하느라 힘이 들었지만 아파 누워 있는 데몬스보다는 덜 힘들 것이다.

“완전히 없애 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너무 오래 있으면 의심을 사기에 이만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몸을 일으키려는 그때, 그녀를 부르는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님?”

“…….”

흐린 시선이 그녀가 앉아 있는 곳에 닿았다. 데몬스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다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누님이 왜 나를 보러 와. 하하.”

비웃음이 섞인 자조적인 목소리에 에블린은 머리를 짚었다.

가장 아픈 손가락이 저리 말하니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잠꼬대였는지 데몬스는 금방 잠이 들었고, 에블린은 그제야 땀에 젖은 데몬스의 이마를 보았다.

“어차피 잠들었으니 상관없겠지.”

스스로를 설득하며 에블린은 땀에 젖은 데몬스의 이마를 수건으로 닦아 주고서는 그제야 방을 나섰다.

“아, 나오셨습니까!”

기운찬 기사의 말에 에블린은 힐긋 시선을 주었다가 방에서 보였던 걱정스러운 모습을 감추고서는 웃었다.

“아프다더니 사실인가 보구나. 내가 왔음에도 눈을 뜨지 않던데.”

“예에. 아무리 그래도 데몬스 공자님께서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십니다.”

‘너무 안 해서 문제지.’

에블린은 속마음을 삼키고서는 시린 눈으로 그에게 명령했다.

“내가 왔다는 것은 말하지 말거라.”

“예? 하지만……. 병문안 오셨다는 것을 알면 도련님께서 분명 좋아하실 텐데요.”

“내가 저 아이가 기뻐 실실 웃는 걸 보고 싶어 여기에 온 줄 아나 보구나. 나는 그리 한가한 이가 아니란다.”

“그럼 왜…….”

참으로 눈치가 없다는 시선에 기사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에블린은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틀었다. 뒤에서 그녀를 배웅하는 인사가 들려왔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왜긴 왜야. 진짜 병문안을 찾아온 거니까 그렇지.’

하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을 어찌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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