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외전 1화
활활 불타오르는 루이사의 시험장,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두 명의 아이.
과도한 힘의 사용으로 기절했다가 눈을 뜬 어린 에블린이 마주한 것은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끝, 났구나.”
에블린의 목소리에 그제야 뒤를 돌아본 두 아이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응, 끝났어.”
“무사히 끝났다고!”
체이서와 블러드윈의 기쁨이 어린 목소리에 에블린은 그제야 긴장감을 벗어 던지고서는 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곧 루이사에서 사람이 오겠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체이서의 말에 찬물이 끼얹어진 듯 입가의 미소가 지워졌다.
“너희는 루이사에 가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봤어?”
그의 물음에 에블린과 블러드윈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먼저 대답한 것은 블러드윈이었다.
“루이사의 애들이 되면 공자가 되는 건가? 그럼 난 그냥 편하게 살래. 돈 팍팍 쓰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음, 그런 게 가능할까?”
에블린의 물음에 블러드윈은 당당한 표정으로 외쳤다.
“안 되면 되게 하면 되는 거 아냐? 우리 셋이서 함께면 할 수 있을 거야!”
희망찬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런 블러드윈과 달리 쉽게 답할 수가 없었다.
‘게임은 어떻게 흘러갔더라.’
어른이 된 루이사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다 사악하고 못된 이들이 가득하였었다.
‘어린 시절이 생략되어서 잘 모르겠네.’
“넌 하고 싶은 것 없어? 아, 귀족이어서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라 생각하는 건가.”
블러드윈의 말에 에블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귀족이어도 다 똑같은 게 아니야. 무려 루이사잖아.”
그래, 무려 루이사 공작가.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귀족, 누구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위대한 이능력자들의 가문.
그 속에 숨겨진 참상은 어둡고 끔찍하였으나 겉으로는 모두의 존경을 받는 위대하고도 빛나는 가문이지 않나.
하지만 들뜨기는커녕 막상 살아남고 나니 착잡함이 밀려왔다.
언젠가 여자 주인공이 나타나 집안에 혼란이 찾아올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나는 조용히 살고 싶어.”
시시하다는 두 아이의 눈빛이 와 닿았지만, 에블린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에게 너희가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
그녀를 사랑해도 된다. 다만 그녀에게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긴 싸움 끝에 그녀에게 패배하여 무릎 꿇고 사랑을 애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적당히 좋은 사람이랑 사랑해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
“정말 그게 다야?”
체이서의 예리한 시선이 닿았다. 무언가 숨기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당연하지. 난 조용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이라고.”
에블린이 어깨를 으쓱이며 능청 떨자 체이서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건 뭔데?”
이러다가는 끝도 없겠다 싶어 던진 물음에 체이서는 잠시 침묵하더니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공작이 되고 싶어.”
“와우.”
블러드윈의 나지막한 감탄사에 에블린 또한 공감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굉장한 포부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이으려는 찰나,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그들을 데리러 오기로 한 루이사의 사람들인 듯싶었다.
이곳에 찾아온 이들은 저택 밖에 있는 세 아이와 불타는 시험장을 보더니 당황을 숨기지 못했으나 이내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그들이 합격자인 것을 확인하고서 마차에 태웠다.
비록 각자 탄 마차가 달라 뒤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지만 각자 어떻게 살고 싶은지 솔직하게 알게 되었으니 충분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마차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그들을 기다리는 미래는 이곳에서 겪었던 것보다는 희망차리라 믿으며 말이다.
기다리는 곳이 이보다 더 지옥 같은 곳임을 알지 못한 채.
***
“한심한 것들.”
고저 없는 목소리, 경멸스러운 것들을 보듯 싸늘한 시선을 내비치는 더스틴의 앞에는 두 사내가 서 있었다.
어느덧 성인을 훌쩍 넘긴 체이서와 블러드윈은 뒷짐을 진 채 가주인 그가 하는 폭언을 얌전히 들어야 했다.
“고작 빈민가다. 빈민가에 나타난 마물 하나 조용히 처리하라고 했더니 그걸 제대로 못 해 소문이 퍼지게 만들어?”
말하면 말할수록 분노가 차오르는지 더스틴은 주먹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네놈들이 할 줄 아는 게 무엇이냐. 분명 이능력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걸 잘 활용해서 쓸모 있게 만들라 그렇게 말하고 또 말했는데!”
결국 그는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책상 위에 있는 크리스털 재떨이를 그대로 그들을 향해 던졌다.
“기껏 1기사단 단장 자리에 앉게 해 주었더니 이딴 것 하나 처리하지 못하나? 네놈이 그러고도 루이사의 이름을 달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체이서의 머리에 제대로 맞은 크리스털 재떨이는 그대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플 법도 했건만 체이서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죄송하면?”
그의 매서운 눈빛이 이번에는 그의 옆에 있는 블러드윈에게 향했다.
“너는 기껏 그 능력을 두었다 무얼 하는 게냐. 기사로서의 실력도 좋지 못하면 네 그 비루먹은 능력이라도 광범위하게 사용해야지! 목격자 몇몇 기억 조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쩌자고!”
“죄송합니다.”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똑같은 대답에 더스틴을 이를 갈더니 결국 책상을 거칠게 내려쳤다.
“어디서 마물에게 물려 왔는지는 몰라도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처리했어야지! 네 놈들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냐? 자칫하다 수도에 이상한 병이 퍼질 뻔하지 않았느냐!”
두 사람이 변명하지 않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도 더스틴은 쉽사리 화를 가라앉히지 않았다.
“감염병이 퍼졌어 봐라. 황실의 위상이, 이 일의 책임을 맡은 루이사의 신뢰가 단번에 무너졌을 거야!”
씩씩거리던 그의 시선이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는 한 여인에게로 향했다.
“아들놈들이 둘 다 미덥지 못하니 다른 이들이 루이사를 어찌 볼지 뻔하구나! 내가 아주 폐하를 뵐 면목이 없다!”
시선을 느낀 에블린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서는 단정한 얼굴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아버지. 오라버니들께서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저 두 사람의 능력과 맞지 않는 상황일 뿐이었는걸요.”
“그게 문제라는 거다! 노력했는데 안 되는 건 재능이 없고, 가능성이 없다는 거지! 감히 루이사의 이름을 달고서 재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게 만드는 게 잘한 것 같으냐? 내 한심해서 진짜!”
조용히 서 있는 두 사람과 달리 에블린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분노를 재울 말을 꺼내었다.
“그래도 일은 무사히 해결되었잖아요.”
“그래, 에블린, 네 덕에 무사히 해결되었지.”
갑작스럽게 빈민가에 나타난 이상한 마물, 마물에 물리는 이들까지 감염되는 것이 수도에 소문이 퍼졌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기사단이 나서서 수습하려고 했지만, 마물을 사살하는 것 외에 특별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감염된 피해자이자 유가족들의 분노를 살 뿐이었다.
그때 마물을 마주한 에블린은 그들의 몸에서 이상한 기운을 발견했다며 그 능력을 억눌렀고, 이를 통해 그들과 의사소통에 성공하여 이들이 이상한 실험에 참여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멍청한 새끼. 열등감에 휩싸여 살더니 그딴 실험을 실행했을 줄이야. 이능력이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인 줄 알았다면 괜히 선택받은 이들이라 불리겠나.”
필베르타 공작이 조용히 진행한 실험장은 곧 기사단에 의해 조사가 들어갔고, 공작은 제 죄를 시인하며 공작자리에서 내려왔다.
“아무튼 매번 열등감에 서린 눈으로 노려보는 것도 귀찮았는데 잘되었지.”
귀찮게 하는 정적 한 명이 사라진 것이 후련한지 더스틴의 표정은 언제 구겨졌었냐는 듯 사악한 미소로 가득했다.
“그래, 이게 다 에블린, 네 덕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효도를 다 하는구나. 역시 자식은 딸이라더니.”
“별것도 아닌데 이리 칭찬을 들으니 부끄럽네요.”
에블린은 입가를 가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칭찬에 기뻐 어쩔 줄 모른다는 얼굴에 더스틴의 얼굴에도 흐뭇함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여전히 정면을 유지한 채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재떨이에 맞은 체이서의 이마는 찢어졌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할 분이었다.
“에블린을 봐서 너희들의 무능함은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도록 하마. 대신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도록. 아, 내일부터 새로운 임무로 출장을 간다고 했던가? 그럼 내일까지 제출하고 가거라.”
그는 곧 두 사람의 대답도 듣기 싫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이제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꺼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