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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6화 (141/159)

외전 16화

순간적으로 안도감이 퍼진 후 몸을 지배한 것은 강력한 욕망이었다.

에블린은 저를 감싸는 체이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서는 있는 그대로의 그의 애정을 받아들였다.

아무도 없는 복도, 벽에 기대어 서로의 입술을 탐하던 그들의 얼굴은 열에 들떠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간 오래 참아 왔던 감정은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스스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로의 입술을 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기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약속이라도 한 듯 빈방을 찾았다.

잘 관리된 공작성에는 훌륭한 빈방이 많았고,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눕고 나니 그제야 홀린 듯 멀리 날아가 있던 정신이 돌아왔다.

에블린뿐만이 아니라 체이서 또한 마찬가지인지 그가 옅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었다.

“괜찮겠어?”

직접적인 질문에 에블린은 평소의 부끄러움도 모두 잊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이서의 커다란 손이 에블린의 어깨에 닿았다. 외출용으로 갖춰 입은 복잡한 드레스가 빠르게 어깨를 타고 흘러 내려갔다.

얇은 슈미즈가 드러나고, 그마저도 벗겨지고서야 하얗고 가느다란 몸이 드러나자 체이서의 시선이 더욱 불타올랐다. 

‘뜨거워.’

마주한 시선이, 서로 맞닿은 곳 모두가 뜨거워 몸에 자꾸만 열이 올랐다. 

“나, 나 혼자만 벗고 있는 건 부끄러운데. 불공평하다고요.”

에블린이 드러난 제 몸을 팔로 감싸고 고개를 틀자 그녀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더욱 뜨거워졌다.

“그래. 나도 벗어야 공평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추를 풀어 헤치는 소리가 나더니 그의 몸을 감싼 셔츠가 스르륵 떨어졌다.

에블린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훤히 드러난 그의 상체를 보고 얼굴을 화르륵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왜? 벗으니까 다시 눈을 돌려?”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에블린은 다시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렸고, 넓은 가슴과 그 아래 자리 잡은 근육질 몸에 이번에는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너무…….”

“너무?”

“부담, 부담스러워요.”

마른 에블린의 몸과 달리 두꺼운 체이서의 몸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시각적인 자극이 굉장했다.

“……싫은가?”

“싫은 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부끄러워하는 에블린의 모습에 체이서는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설마 내 몸이 드러날 때마다 시선을 피했던 것도…….”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서.”

솔직한 대답에 체이서의 입에서 가벼운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적응해야 하지 않겠어? 앞으로 많이 보게 될 텐데.”

능글맞은 목소리에 에블린이 용기를 내어 손가락을 살짝 펼쳤다.

손 틈새로 비추는 그의 몸은 여전히 자극적이지만 올곧게 마주할 때보다는 괜찮은 것 같았다.

“왜 이렇게 귀여운 짓만 하는지 모르겠네.”

하지만 그런 에블린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체이서의 인내심은 더욱 닳고 말았으니.

“어차피 부끄러움 같은 건 금방 잊게 될 테니까.”

그는 그녀의 손을 떼어 내고서는 제 어깨에 두르게 하더니 그대로 다시 그녀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손이 제 몸을 매끄럽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에블린은 연신 달뜬 숨을 내뱉었다.

맞닿은 체이서의 모든 것은 달콤하고 또 놓치고 싶지 않은 온기였기에 그녀는 그대로 제 몸을 그에게 맡겼다.

꿈에서만 보았던 놀랍고도 황홀한 밤이었다.

***

“으으으.”

에블린은 몸이 무겁게 짓눌리는 것 같은 느낌에 앓은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커튼 아래로 환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벌써 아침이 밝았나 보다.

일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이던 그녀는 곧바로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윽.”

격렬한 운동을 한 다음 날처럼 온몸이 무거워 죽을 것 같았다.

‘몰랐는데 생각보다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하는 거구나.’

에블린은 지난밤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대충 시트로 몸을 감싼 채 뒤를 돌아보았다.

“깼어?”

어제의 흐트러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깔끔하게 치장을 마친 체이서가 막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언제 일어났어요?”

“얼마 안 됐어.”

“벌써 아침이라니.”

“놀랍게도 점심을 향해 가고 있지.”

체이서는 에블린의 입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서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런 그와 달리 에블린의 표정은 뾰로통했다.

“몸이 너무 무거워요. 이게 맞아요? 원래 이런 거야?”

“…….”

체이서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럴 만했다. 

에블린이 힘들다고 몇 번이고 말했음에도 그는 괜찮다며 그녀를 달래고 한참이고 그녀를 괴롭혔으니 말이다.

에블린이 눈을 가늘게 뜨며 보니 체이서는 괜히 헛기침하며 들고 온 것을 내려놓았다.

“간단히 먹을 걸 좀 가져왔으니 먹고 조금 더 쉬고 있어.”

말을 돌리는 모습은 퍽 필사적인지라 에블린은 봐줬다는 듯 눈썹을 들썩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가 들고 온 식사는 1인분이었다. 

“체이서는요?”

“일하러 가야지.”

당연하다는 듯 꺼내진 말에 에블린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아침에 함께 침대에서 일어나는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첫날밤을 치른 것치고 너무 무드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여유로운 그녀와 달리 체이서는 바쁜 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도 했다.

에블린은 왠지 모르게 긴장하고 있는 체이서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의 뺨을 붙들었다.

“아니, 밥은 먹었냐고요. 어제보다 뺨이 야윈 것 같은데?”

“……먹었지.”

“정말?”

“정말.”

시원찮은 대답이었지만 에블린은 더 이상 의심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의 입술에 살짝 입 맞추고는 그를 놔주었다.

“참, 일은 금방 끝내고 돌아올 테니 오늘 오후부터는 함께 시간을 보내자.”

“그럼 나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는 거죠?”

“그래.”

“다행이다. 더 이상 내 남편을 다른 사람들에게 뺏기지 않아도 돼서.”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체이서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밖에 하녀가 있으니 식사 다하면 부르고. 저녁에 봐.”

“그래요, 오늘도 힘내요.”

체이서는 골골거리는 그녀와 달리 멀쩡한 모습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에블린은 물로 마른 목을 축이며 입가에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써야 했다.

‘생각보다 좋았어.’

몸이 힘들기는 했다만 지금까지 참은 게 억울할 정도로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것에 취해 잊으면 안 될 것이 하나 있었으니.

“제리한테는 뭐라고 하지…….”

지난밤, 두 사람을 기다리다 홀로 잠든 제리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

하지만 에블린의 걱정과 달리 제리는 아주 씩씩했다.

걱정스럽게 찾아온 두 사람을 보며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고, 혼자 자게 해서 미안했다는 둘의 사과에 이런 대답을 한 것이다.

“나 슬슬 혼자 자고 싶어써.”

“으응?”

“엄마랑 아빠가 날 너무 걱정하니까 같이 자 준 거지. 난 애기 아냐.”

“……!”

에블린의 얼굴에 큰 깨달음이 떠오르기 무섭게 제리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나 동생 조아.”

“……!”

“언제까지 제리가 막내일 수는 없자나.”

“제리, 막내 탈출하고 싶었니?”

“웅!”

체이서의 물음에 제리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장난꾸러기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구 삼촌들이 그래써. 동생 가지고 싶으면 엄마랑 아빠랑만 자게 하라고.”

“뭐? 누, 누가 그랬다고?”

“삼촌들!”

정확하게 삼촌들이란다.

“……내 동생들은 참 오지랖이 넓단 말이야.”

블러드윈뿐만 아니라 데몬스도 함께 제리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큰 충격이었다.

체이서 또한 처음 듣는 소식인지 미세하게 그의 표정이 떨리는 게 보였다.

“그, 그랬구나.”

떨리는 에블린의 목소리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제리는 맑게 웃으며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동생 생기면 제리한테 먼저 말해조야 해? 동생한테 내 장난감도 양보할 거야!”

참 귀여우면서도 당찬 말이었다.

숨이 막힌 것처럼 심장이 콱 조였다가 풀어진 것 같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에블린은 참지 못하고 씩씩한 제리를 안아 들고는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간지러!”

꺄르르 웃는 제리의 목소리에 체이서도 무심한 듯한 손길로 아이의 머리를 쓸어 주기 바빴다.

양쪽에서 향해지는 애정에 지금껏 보았던 것보다 기뻐하는 제리의 얼굴이 보였다.

“제리, 동생이 생겨도 장난감은 양보해 줄 필요 없어.”

“진짜?”

의젓하게 말했던 어린이는 어디 가고 눈을 반짝이는 귀염둥이만 남았다.

“물론 동생이 생기려면 아직 멀었지만.”

에블린의 말에 제리는 살짝 실망하다가도 다시 힘껏 외쳤다.

“앞으로도 나 혼자 잘 거야! 그러니까 동생 만드러 줘야 해!”

또박또박 내뱉은 발음에 두 사람은 놀라 눈을 크게 뜨다 이내 크게 웃고 말았다.

“노력해 보마.”

체이서의 답에 에블린은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동생도, 앞으로 행복해질 나날도.”

체이서의 솔직한 말에 에블린은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르는 행복감에 기쁘게 미소를 지었다.

“함께라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체이서는 제리를 안고 있는 에블린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내일은 뭘 할까?”

“바다! 어제 갔던 바다 또 가요!”

즐거운지 까르륵 웃는 제리의 웃음소리에 맞추어 두 사람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체이서의 말대로 행복해질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일 테니까.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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