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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1화 (136/159)

외전 11화

저녁 시간 내내 마야는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와 다름없는 행동을 이어 갔지만 한 번 보였던 그 표정이 쉽사리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에블린에게 말하기 힘든 사정이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주인으로서 도와줄 게 있다면 도와주고 싶은데.’

이렇게 혼자 끙끙 앓는다고 해도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것이다.

고민에 잠기느라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으니 체이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입맛이 없나?”

“네? 아니에요.”

“엄마, 입맛이 업써?”

“아니야, 제리. 괜찮아.”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제리의 울상 진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제리는 제 그릇에 있는 분홍빛 소시지를 콕 집더니 냉큼 에블린을 향해 내밀었다.

“이거 마시써. 이거 줄게.”

“제리가 좋아하는 거잖아. 제리가 안 먹고 엄마 주게?”

“웅!”

활기찬 대답에 에블린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제리가 내민 음식을 받아먹었다.

“그걸로 되겠어?”

음식을 다 씹고 넘기기 무섭게 이번에는 체이서가 스테이크 조각을 집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저 혼자서도 잘 먹어요.”

“알겠으니 내가 주는 것도 먹어. 아들한테 질투하기는 싫어.”

어쩔 수 없이 체이서가 내민 것도 받아먹고 있으니 제리가 또 다른 소시지를 집어 그에게 내밀었다.

“아빠도 줄게.”

“……아빠한테 줘도 괜찮아?”

“웅!”

에블린 때와 마찬가지로 기운찬 대답에 체이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체이서는 소시지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제리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제게 줬다는 사실에 기뻐 그대로 먹었다.

“제리가 줘서 맛있네. 고마워.”

그리고는 제리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접시에 덜어 주며 챙겨 주는 것이 퍽 자연스러웠다.

‘함께 지내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말하면 좀 너무하겠지만 체이서는 생각보다 다정한 부모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기대 이상이어서 놀라울 정도라니까.’

좋은 일이기에 훈훈하게 웃으며 넘어가려는 찰나 건너편에 있는 마야가 아까 보였던 것과 비슷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표정을 숨겼지만 역시 심상치 않은 무언가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

저녁 식사 후, 에블린은 제리를 세 형제에게 맡겨 두고 오래간만에 마야에게 목욕 시중을 부탁하며 단둘이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있지, 마야.”

“예, 마님.”

“오늘따라 표정이 안 좋아 보이던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제가 신경 쓰이게 해 드렸군요. 죄송합니다.”

욕조에 몸을 편히 기대고 있던 에블린은 그녀의 사과에 몸을 일으키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사과는 하지 말아. 걱정이 돼서 그랬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야는 머뭇거리더니 숨기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 솔직히 숨겼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두 분께 언제 좋은 소식이 들려올지 걱정이 되어서 그래요.”

에블린은 혹시 제가 잘못 들은 것일까 싶어 두 눈을 깜빡였다.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스러운 에블린과 달리 마야의 표정은 진지했다.

“제리 도련님께서 루이사에 들어오신 후 가문의 분위기가 더욱 활발해진 것은 좋으나…….”

자꾸만 말을 머뭇거림에 에블린의 애가 탈 지경이었다.

“두 분께서는 아직 신혼이지 않습니까. 지금이야 사이가 좋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니 하루빨리 후계를 만들어 조금 더 내실을 탄탄히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마 고민이 공작 부부의 밤일에 관한 내용인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아니, 누가 남의 고민을 그리 심각한 표정으로 해!’

무언가 속은 기분에 억울했으나 마야는 말이 나온 김에 마음에 담아 둔 것을 모두 이야기할 생각인지 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랫사람이 이리 말을 불경한 말을 올리는 것이 송구한 줄 아오나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드리자면……. 아직 두 분께서는 제대로 된 첫날 밤도 못 치르지 않았습니까. 신혼이라면 보통 서로 떨어지지 못해 안달이 나는 것이 맞습니다. 특히 두 분은 더더욱 그래야 하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둘을 가까이서 모시는 마야를 속일 수는 없었기에 더더욱.

“심지어 제리 도련님께서는 두 분과 같은 방을 사용하시지요. 아프셨던지라 걱정되는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여섯 살이면 침실을 분리해도 충분할 나이라 생각합니다.”

속사포처럼 내뱉은 말이 겨우 끝이 났다.

숨이 벅찬지 거친 숨을 고르던 마야가 당황한 에블린을 보고서야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님! 제가 감히 주제넘은 말을 지껄였습니다!”

“아니야, 우리 사이에 무슨. 걱정해서 그런 거잖아. 이해해.”

다행히 곧바로 마야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지금껏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아낌없이 했더니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그와 달리 평온했던 에블린의 마음은 잔잔한 물에 돌이 던져진 것처럼 크게 요동쳤다.

확실히 두 사람이 제대로 된 잠자리를 갖지 못한 것은 그녀도 신경 쓰였던 일이기는 했다만 조금 전 마야의 말에서 조금 걸리는 게 있었다.

“그런데 후계는 아직 이르지 않나……?”

슬쩍 제 의견을 전파하니 마야의 눈이 매섭게 뜨였다.

“이르긴요! 전혀 이르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주인님께서 첩이라도 들이시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뭐? 첩이라니.”

서로 마음을 확인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첩을 들인다는 소리가 나올까.

에블린은 체이서의 옆에 낯선 여자가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상상했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팔짱을 끼기도 전에 내쳐질걸.’

지금이야 서로의 마음이 닿았으니 체이서는 다정함을 보이고 있지만 수도원에서 만났을 때 얼마나 성격이 나빴는지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물론 누군가 체이서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있다면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만.

‘일단 당당한 루이사 공작 부인이니까.’

“체이서는 그럴 리 없어.”

물론 마야의 눈초리가 무서워 이 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남자의 마음은 모르는 겁니다, 마님. 속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첩을 들이고, 정부를 품에 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두 분은 아직 제대로 잠자리를 가지지 않으셔서 아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이건 결혼생활에 중요한 문제입니다.”

“음, 그것도 그렇지만.”

마냥 듣다 보니 마야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이 시대는 그런 게 흠도 아니니까.’

오히려 능력이 있다며 치켜세우는 이들도 있으니 저리 생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지금까지 보던 것이 있으니 어쩔 수 없나. 하지만 체이서가 내 몸에 손을 안 대는 걸 어떻게 해.’

처음에는 몸의 상처가 낫지 않아서, 그 후에는 제리와 함께 침실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가질 기회는 사라졌다고 봤다.

“제리와 함께 자는 건 체이서가 먼저 제안했는걸. 우선 적응 기간을 두고 제리가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으면 침실을 분리할게.”

당장 제리를 쫓아내고 체이서를 덮칠 수도 없는 일이니 이렇게 걱정을 덜어내 주는 게 우선이었다.

“마님께서도 잘하실 텐데 제가 괜한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으니 마저 시중들어 줘. 너무 오래 있었다.”

에블린은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으나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속이 타들어 가는 것같이 답답해졌다.

‘그러고 보니 체이서는 괜찮은 걸까?’

에블린이라고 조금 전의 마야와 같은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상처가 낫기 전에는 그가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했고, 제리와 함께 자자고 했을 때는 기뻤지만 내심 서운함도 있었다.

‘혹시 나를 안고 싶은 마음은 없는 걸까.’

첫날밤은 최악이었고, 여러 문제로 바쁘다 보니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으니 둘 사이에 무언가 간질간질하고 즐거운 기억이 없기도 했다.

‘연애하고 결혼한 것도 아니니까.’

어찌 보면 계약 결혼이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을 쓰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이미 잠옷까지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라? 언제 침대에 왔지?’

눈을 깜빡이며 당황하는데 뺨이 간질거렸다. 지금 보니 커다란 손이 그녀의 뺨을 매만지고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길래 한참을 건드렸는데도 멍하니 있었어?”

“어……. 제가 언제 욕실에서 나왔죠?”

“한참 됐지.”

“헉, 제리는……!”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런 그녀를 체이서가 붙잡았다.

“여기 우리 사이에 잠들어 있잖아.”

그제야 시선을 내리니 새근거리며 잠든 제리가 보였다.

“오늘은 내가 재웠어. 등을 좀 두드려 주니 금방 자던데? 누구 닮아 성격이 이리 좋은지 모르겠네.”

그의 입가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귀찮을 법도 한데 그의 눈에는 필시 애정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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