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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9화 (134/159)

외전 9화

“어려서 능력 조절이 어렵겠지만 보호자 모두가 이능력자이니 교육은 어렵지 않을 거예요.”

“고마워요. 몇 마디 말로 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고마워요.”

에블린이 고개 숙여 감사를 표시하자 하소가 빠르게 그녀를 일으켰다.

“에이, 저도 지켜보는 동안 제리에게 정이 많이 들었는걸요. 제리가 깨어나길 간절히 바란 사람 중 두 번째가 바로 저라고요?”

당당하게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러니 혹시 제리의 몸에 특별한 이상이 생긴다면 연락해 주세요. 제리의 일이라면 저도 곧바로 달려올게요.”

에블린은 기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하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돌아가 볼게요. 제리도 안녕. 다음에 누나 보면 아는 척해 주는 거 잊지 말기?.”

“누나, 잘 가!”

“제리, 윗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써야지.”

“잘 가요!”

씩씩하게 인사하는 제리의 모습에 모두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소가 떠나고, 세 사람은 환영회가 준비되었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체이서와 즐겁게 떠드는 제리의 모습을 보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언제까지 곁에 둘 수 있을까?’

제리가 깨어난 것은 기뻤지만 이는 제리와의 헤어짐이 빨리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오롯이 기뻐만 할 수 없음에 안타까움을 삼키는 순간, 세 사람이 식당에 도착했다.

“나 배고픈데. 맛난 거 마나요?”

“당연하지. 맛있는 거 많이 준비했으니 기대해.”

자신만만한 대답에 제리가 즐겁다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제리의 콧노래를 배경 음악 삼아 문을 열자 갑자기 펑, 하고 폭죽이 세 사람의 위로 터졌다.

반짝이는 가루와 종이들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것을 보며 제리는 손을 뻗으며 좋아했고, 에블린은 폭죽을 터트린 두 사람을 보면서 웃고 말았다.

펼쳐진 식당에는 풍선이 곳곳에 놓여 있었고, 창문에는 꽃과 함께 꾸며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런 짓을 계획하고 실행할 사람은 블러드윈밖에 없었다.

“뭐야, 두 사람도 알고 있던 거예요?”

머리에 붙은 종이들을 털어 내며 묻자 블러드윈이 씩 웃었다.

“그럼, 당연하지. 여기서 몰랐던 건 우리 형수님뿐이라고?”

“제리 군이 비밀로 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 환영회를 비밀로 하자는 건 첫째 형님이셨고요.”

‘당연히 블러드윈이 계획한 줄 알았는데?’

자연스럽게 에블린의 시선이 제리를 안고 있는 체이서에게로 향했다.

제리가 신나는 얼굴로 고개를 휙휙 내저으며 제 머리에 붙은 반짝이 가루들을 털어 내고 있었고, 체이서는 혹시나 떨어지지 않도록 두 손으로 아이를 꽉 붙들고 있었다.

“만약 제리가 비밀로 하지 말자 했으면 알려 줬을 거야.”

“그러니까 비밀로 한 건 제리 탓이다?”

고개를 들이밀며 장난스러운 얼굴로 물으니 체이서가 씩 웃고는 에블린의 입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럴 리가. 부인을 깜짝 놀라게 하며 기쁘게 해 주고 싶은 내 마음 탓이지.”

“한 번 더 해 주면 봐줄게요.”

그에 체이서가 빠르게 입을 맞추었다.

가벼운 입맞춤에 아쉽다는 듯 시선이 서로의 입술에 닿고 있으니 보다 못한 블러드윈이 핀잔을 했다.

“여기는 두 사람의 결혼식 장소가 아니라 제리의 환영회라는 것 잊은 것 아니길 바랍니다만?”

“웅?”

그제야 반짝이를 다 털어 낸 제리가 무슨 일이냐는 듯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에블린과 체이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으며 준비된 자리로 향했다.

놀랍게도 가장 상석의 주인공은 제리였다.

이래도 되냐는 듯 체이서를 보니 그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블러드윈은 제리의 머리 위에 마치 생일인 것처럼 고깔모자를 씌워 주었고, 데몬스는 근엄한 얼굴로 의자 양옆에 풍선을 매달았다.

“히히,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거 같다!”

티 없이 맑은 웃음에 전염이 되듯 식당에 모인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곧 테이블 위로 따끈한 음식들이 올라왔다. 

제리의 앞에는 부드럽지만 맛있는 유동식이 있었고, 위에 부담스럽지 않은 음식이 찬찬히 테이블을 채웠다.

기쁜 날이어서 그런지 네 명의 어른 옆에는 샴페인 잔이 놓였고, 제리에게는 사과주스가 배정되었다.

“자, 그럼 제리의 보호자님. 축사 한마디 올리시죠.”

블러드윈이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면서 슬쩍 제안하자 모두의 시선이 에블린에게 향했다.

“축사는 무슨. 그냥 짠 하면 되는 거지.”

“축사가 머야?”

처음 듣는 단어에 제리가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을 해 주는 건 조금 떨어진 곳에 데몬스였다.

“축하하는 기쁜 자리에서 모두를 대표하여 축하의 인사를 대신 전하는 겁니다.”

“누나, 나 축하해조!”

차근차근 이어진 설명 덕에 빠르게 알아들은 제리는 눈을 반짝 빛내며 에블린을 바라보았다.

“제리도 저렇게 기대하는데 해 주는 게 어때?”

“갑자기 하라고 하니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아, 그럼 나 말고 체이서가 하는 건 어때요?”

“뭐?”

“보통 축사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에게 부탁하는 법이지.”

의견에 힘을 실어 줄 생각인지 블러드윈이 근거 없는 말로 동조해 주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형님의 축사가 있어야 조금 더 뜻깊은 자리가 되지 않을까요?”

“나눈 용병 형아가 해 주는 것두 조아!”

제리가 양손을 번쩍 들며 반겼다. 

네 사람의 의견이 똑같으니 체이서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본격적이야.”

“과연 형님은 무슨 축사를 해 주실까요?”

체이서는 일부러 기대감을 높이는 두 형제를 살짝 흘겨보다가 이내 표정을 가다듬었다.

“제리, 너를 처음 봤을 때가 기억이 나는구나. 내가 무서울 법한데도 너는 밝은 얼굴로 다가와 내게 오렌지 주스를 건네주었었지.”

맙소사, 오렌지 주스를 먼저 준 사람이 제리였다니! 

좋아하는 것에 욕심이 많은 제리가 선뜻 주스를 내밀었다는 것에 웃음이 흘러나올 뻔한 것을 꾹 참아 냈다.

“어른들도 힘들어하는 병을 이겨 내고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해 줘서 고맙단다. 진심으로 너와 이리 마주 볼 수 있게 된 게 기쁘구나.”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깔끔하고도 진지한 축사가 이어졌다.

“이 자리는 네가 병을 이겨 낸 것을 축하하는 자리기도 하지만, 내가 그때 받은 오렌지 주스를 갚을 날이기도 하단다. 내가 아끼는 사과주스인데 맛있니?”

“네!”

진지하게 가던 축사에 장난기가 스며들었다. 제리를 제외한 성인 세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참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했다.

“제리, 어제도 말했지만 나와 네 누나는 결혼했어. 함께 사는 부부지.”

“그럼 누나랑 형은 서로 사랑하는 거에여?”

“맞아, 가족이지. 제리가 누나와 가족인 것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란다. 그리고 나는 제리가 나도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어지는 말에 에블린은 웃음을 멈추었다.

‘잠깐만. 조금 전의 그 말은…….’

고개를 돌리자 찰나의 순간, 체이서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씩 미소를 지으며 남은 축사를 이어 갔다.

“비록 환경이 갑작스럽게 바뀌어 혼란스럽겠지만 앞으로 이곳이 너의 집이라고 생각하며 편히 지냈으면 해. 나는 네가 이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아 가며 건강하게 자라나기를 바란단다.”

“형이랑 가족이 되면 앞으로도 여기서 지낼 수 이써요? 누나 옆에서?”

“물론이지.”

줄곧 제리에게 향했던 체이서의 시선이 에블린에게 닿았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체이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족이 떨어져서는 안 되잖아.”

분명 제리를 위한 축사인데 마치 에블린에게 전하는 말 같았다.

“그, 그래도 돼요?”

제리가 깨어났음에 기뻤지만 보살핌은 잠시뿐, 좋은 곳에 입양을 보내어 멀리서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은 변치 않았었다.

“루이사 방계에 제리의 이름을 올렸어. 오래전 부모가 사망했고, 친척들의 손에 자라다 블러드윈에게 발견되어 이곳에 왔다고 설정했는데. 어때?”

“정말……?”

에블린의 목소리가 가냘프게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 깨어난 제리를 만났을 때처럼.

“루이사의 방계는 거의 없기에 혈족이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거든. 그러니 직계가 거두어 돌봐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도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에블린의 마음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어마어마한 선물을 남몰래 준비한 사랑스러운 이를 더는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에블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뺨을 붙잡았다.

웃음을 참으며 두 사람을 지켜보던 블러드윈이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벌떡 일어나 제리의 눈을 가렸다.

제리의 눈이 가려지던 순간, 에블린은 까치발을 들어 체이서가 말리기도 전에 그의 입술을 훔쳤다.

조금 전과 달리 깃털처럼 가벼운 입맞춤이었지만 기쁜 마음을 온전히 전하겠다는 듯 키스는 여러 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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