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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8화 (133/159)

외전 8화

놀라 파르르 떨리는 밝은 녹색 눈동자 안에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담겼다.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봤다는 듯 에블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서서히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제리?”

에블린의 기억보다는 조금 자란, 하지만 언제나 그녀에게만 보여 주었던 맑고 깨끗한 미소를 지은 제리가 꽃다발을 내민 채 서 있었다.

“누나, 잘 잤어? 내가 누나가 조아하는 꽃 들구 왔어!”

‘……꿈인가?’

자신이 너무 가족들을 그리워하니 이제는 미쳐서 환상이라도 보는 게 아닐까.

에블린은 차마 가만히 서 있는 제리를 향해 손을 뻗지도 못했다.

정말로 무사히 깨어난 제리가 환상일까 봐, 손에 닿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놀란 얼굴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으니 보다 못한 제리가 슬쩍 꽃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피, 누나 내가 안 반가워?”

살짝이지만 닿았던 손이 따뜻했다.

놀랍게도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아, 아.”

무슨 말이든 꺼내고 싶었다. 

제리가 깨어나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어찌나 목이 메는지 끅끅 울음을 참는 소리만 간신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에블린은 말을 하는 걸 포기하고 온몸으로 제리를 끌어안았다.

흐어엉, 하고 크게 울음을 터트리자 그녀의 품에 안긴 제리도 글썽이기 시작하더니 훌쩍이며 눈물을 터트렸다.

“누나, 누나. 나 누나 너무 보고 시퍼써. 나 너무 무서워써.”

어리광을 부리며 에블린의 품에 고개를 묻은 제리는 정말로 따스했다.

“늦게 인나서 미안해. 나 다음부터 절대루 늦잠 안 잘게에.”

평소 어눌한 발음에 형, 누나들이 아기라고 놀리는 게 싫다며 또박또박 발음하던 제리는 발음을 고치는 것도 잊고 그녀의 품에 안겨 서러움과 반가움을 토해 냈다.

“아냐, 아냐. 돌, 돌아와 줘서, 흑, 고마워.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누나는 제리가 깨어났으니까 괜찮아, 정말로, 정말로…….”

에블린은 엉엉 울면서도 눈물을 닦을 기세 없이 손을 들어 제리의 뺨을 만져보고,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가에 피어난 미소는 근래 보여 주었던 표정 중 가장 밝았다.

“지금 누나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 거야. 정말로. 우리 제리, 긴 꿈 꾸느라 수고했어.”

에블린이 눈가에 가득한 눈물도 닦지 않고 제리를 꼭 끌어안고 있으니 보다 못한 체이서가 나섰다.

“조용히 지켜보려고 했는데 이러다 둘 다 탈진 오겠군.”

체이서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에블린의 눈가를 부드럽게 훔쳤다.

“내일 둘 다 눈이 퉁퉁 붓겠는데.”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에 에블린의 시선이 그제야 체이서에게 닿았다.

그는 흐뭇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제야 에블린은 지금 제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제리가 왜 여기에 있지……? 분명 제리는 하소 경이 보살펴 주고 있다고 했는데?’

그녀의 눈이 혼란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떨리자 체이서가 피식 웃고서는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드디어 치료제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어제 제리가 깨어났어.”

“네?”

“하소 경이 곧바로 너를 부르자고 했는데 제리가 말리더라고. 누나가 많이 놀랐을 거니까 선물을 주고 싶다고. 선물이 없으면 안 된다고 어찌나 고집을 부리던지.”

“선물이라니……?”

체이서는 붉게 물든 제리의 코를 가볍게 꼬집었다. 아프지 않은 손길에 제리가 간지럽다며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마자! 누나가 그랬잖아! 멀리 여행을 다녀오면 선물을 줘야 한다구!”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언젠가 마을의 친구가 여행을 다녀오고서 기념품을 가져왔을 때, 기념품에 관해 설명해 주던 걸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웅!”

“마침 네가 다음 날 외출을 한다는 소식에 누나한테 직접 꽃을 꺾어 주겠다며 하루만 비밀로 해 달라고 하더군.”

“써푸라이즈야!”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기쁜 마음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에블린은 양손으로 제리의 뺨을 매만지며 활짝 웃었다.

“누나는 선물 필요 없어. 제리, 깨어나서 누나한테 안겨 준 게 그 어떤 선물보다 기쁜걸.”

“히히. 사랑해, 누나!”

어느덧 두 사람의 눈가에 고였던 눈물이 마르고,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였다.

“근데 다른 형이랑 누나들은 없눈 고지?”

“……응. 수녀님이랑 알렌, 리모, 리사, 수잔은 먼저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어.”

“……웅. 나중에 만날 때 꼭 안아 줄래.”

어린 나이답지 않은 씩씩한 말에 에블린은 슬피 웃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 못 하는 나이라고 해도 제리가 자신보다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와 함께 제리를 위해서라도 더욱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나 지켜 줬다구 자랑할구야!”

“맞아, 무서운데도 제리가 누나 지켜 줬지? 이제는 누나가 제리 지켜 줄게. 누나 지켜 줘서 고마워.”

“웅!”

그렇게 한참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체이서가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지. 제리의 환영회가 준비됐어.”

“그런 것도 준비했어요?”

“이런 기념적인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잖아.”

체이서의 말에 에블린의 눈에 감동이 차올랐다.

몰래 제리를 보호하고 있을 때도 그랬지만, 그토록 무섭고 냉정했던 사내가 자신과 제 가족을 위해 준다는 것이 이토록 벅차고 기쁠 줄 몰랐다.

“제리, 누나는 힘드니까 형 품에 안기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체이서가 눈높이를 맞추며 몸을 굽히고서는 팔을 활짝 펼쳤다. 제리가 신나게 그의 품에 안겼고, 안정적으로 안아 든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들어가자.”

한쪽 팔로 제리를 안아 든 체이서는 빈손을 에블린에게로 내밀었다.

“안 무거워요?”

“제리가 무겁다고 힘들어하면 기사단장 자리 반납해야지.”

능청스러운 말에 에블린은 살풋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손을 들어 살포시 제리의 눈을 가렸고, 잠깐 사이에 체이서의 입에 제 입술을 가볍게 눌렀다 뗐다.

“고마워요.”

“……이건 너무한데.”

“왜요?”

“품에 애가 있으니 그 이상을 할 수 없잖아.”

천연덕스러운 말에 에블린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때마침 제리가 고개를 휙휙 내젓는 것에 손을 거둔 그녀는 씩씩하게 앞장서며 말했다.

“어서 들어갈까요!”

“방금 제리 몰래 둘이 뭐 해써?”

“누나가 형한테 선물 줬어.”

“나두 선물!”

아무것도 모르는 제리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체이서는 빙긋 웃었다.

“안 돼. 이 선물은 형한테만 줄 수 있는 거거든. 그렇지?”

체이서의 시선이 에블린에게 닿자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가볍게 소리를 질렀다.

“체이서!”

“그런 게 어디써.”

당황함이 가득한 에블린의 표정과 목소리에 체이서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유쾌한 두 사람과 달리 제리는 입을 댓 발 내밀며 투덜거렸지만.

***

환영회가 열리기 전, 에블린은 하소에게 제리의 상태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많이 놀라셨죠? 어제 오후에 제리가 깨어났고, 정밀 분석을 해 보니까 몸 상태는 아주 좋았어요. 매우 건강하더라고요.”

“정말요? 다행이다.”

에블린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자 하소 또한 진심으로 기뻐하며 마주 웃었다.

“제리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치료제의 효과를 장담하지 못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참, 또 희소식이 하나 있어요.”

“희소식이요?”

“네, 깨어난 제리를 분석해 보니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능력 검사를 해 보았는데요.”

갑작스러운 이능력의 등장에 에블린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녀의 뒷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이능력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아직 정확하게는 판정이 나지 않았지만, 해독 계열의 능력 같았어요.”

“해독이요?”

“네! 제리가 마물이 되었다가 사람이 된 것도 이능력 영향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스스로 제 몸에 주입된 감염체를 해독시키고 있었나 봐요!”

상상치도 못했던 소식에 에블린은 눈을 깜빡였다.

‘이능력이라니?’

에블린은 고개를 돌려 로피와 놀고 있는 제리를 보았다.

‘제리가 여섯 살이니 발현의 기미가 보일 즈음이기는 한데.’

“짐작 못 하셨죠?”

“네, 네.”

“아무래도 확인하기 어려운 능력이잖아요. 직접 독을 먹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겠어요. 아마 부인의 능력에 영향도 받아 이번 일이 없었더라면 발현 시기가 늦었을 거예요. 곁에 두고 보살피던 아이라고 하셨잖아요.”

처음에는 에블린의 능력 때문에 특이 사항이 생긴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제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 낸 것이었다.

기특하기 짝이 없어 다시금 에블린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이런, 오늘 내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겠어.”

옆에서 함께 설명을 듣던 체이서가 아니었더라면 에블린은 다시 엉엉 울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또한 기쁨의 눈물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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