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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7화 (132/159)

외전 7화

“좋다. 그렇다면 그대의 처벌에 대해 발표하겠다.”

황태자는 이곳에 모인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목소리를 더 키웠다.

“이 사건은 죄질이 악독하고 잔인하여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범죄행위로 본다. 그렇기에 죄인 세자르 필베르타의 신분은 평민으로 강등한다. 또한, 르나베 교도소에서 10년 노역을 명하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처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무거운 형벌이 내려졌다.

모두가 이렇게까지 강력한 형벌이 내려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재판장 내가 소란스러워졌으나 황태자는 형량을 거두지 않았다.

황태자는 세자르를 매섭게 내려보았고, 그는 조금 전 자신이 말한 것처럼 묵묵히 형량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재판은 마치도록 하겠다.”

황태자가 판사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당장 이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들과,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니냐며 모여 속삭이는 귀족들이 보였다.

‘귀족들은 자기 일이 아니니 저리 나올 수 있는 거겠지.’

마찬가지로 에블린 또한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이기에 누구보다 이런 결과를 바랐던 것이었다.

‘끝이구나.’

그대로 연행되는 세자르의 모습을 보니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났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기뻐 웃어도 부족할 날이건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고여 눈앞이 흐려졌다.

하지만 보는 눈이 많은 이곳에서는 눈물을 보일 수 없기에 조금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돌아가지.”

호위로 따라온 기사와 함께 나서려는데 1기사단의 기사가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부인. 단장님께서 귀가를 함께 하자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그래요? 기사단 앞으로 갈 테니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전해 주세요.”

기사는 알겠다 답한 뒤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는 이들을 힐긋 보던 에블린은 눈물이 말랐음에 헛웃음을 짓다 조용히 재판장을 빠져나갔다.

***

묵묵히 감옥으로 향하던 세자르는 주위가 조용해졌을 때 입을 열었다.

“체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들어 주지 않겠어?”

“그냥 해.”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래.”

제 범행을 자백하는 것 외에 지금껏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그였다.

평소의 체이서였더라면 범죄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 따위는 없었겠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체이서는 눈을 매섭게 빛내는 기사들에게 잠시 거리를 두라 명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이 자리를 뜨자 세자르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게 사과하지 못한 것 같아서. 지금이 마지막 만남일 테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이 사과가 뜬금없는 건 알고 있겠지?”

그리 말했지만, 체이서는 그리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마지막 말이 뭔가 했더니. 대충 예상했던 대로군.’

비록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지만 그가 봐 왔던 세자르의 인성 자체는 정의로운 편에 속했다.

‘물론 그렇다고 범죄자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을 올곧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스스로의 잘못을 자각할 기회를 놓쳐 되돌리지 못할 실수, 아니 범죄를 저지른 이.

체이서에게 세자르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 이기적인 마음으로 너희 가족에게도 큰 피해를 주지 않았나. 받아 주지 않음에도 해야 한다 생각했어.”

순간 체이서의 머릿속에 에블린이 납치당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짜증이 나는 표정을 숨기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끝인가?”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네.”

“뭔데?”

세자르는 망설이는 모습으로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다.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테니 얼른 말해. 시간이 없으니.”

함께 돌아가자는 말을 전했으니 분명 에블린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니 쓸데없이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가문의 재산이 모두 몰수된다고 들었어.”

“……일부를 빼서 영치금이라도 넣어 달라는 건가?”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알려진 것 외에도 아버지가 보유한 재산이 있는데 차명으로 은행에 보관되어 있어.”

“……횡령?”

“아마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내가 부탁할 건 말이지.”

세자르는 부끄러움과 후회가 서린 얼굴로 힘겹게 마지막 부탁을 내뱉었다.

“그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보상해 주었으면 해.”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체이서가 놀란 표정을 감추기 위해 슬쩍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유가족들이나 피해자들이 받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네게 부탁하는 거야. 괜찮다면 루이사 공작가의 이름으로 해 주었으면 해서.”

“보상은 네가 하고 생색은 내가 해라?”

“아무리 너라도 그간 힘들었을 것 아냐. 그리고 네…….”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네 가족도 말이야.”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초연한 모습에 체이서는 쯧, 혀를 찼다.

“억울하지는 않나?”

“내 잘못이 맞는데 억울해해서는 되겠나. 저지른 죄에 비해 단 벌을 받은 거지.”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알겠다. 마지막 부탁이니 그 정도는 들어줄게.”

“고맙다.”

“더 할 말은?”

“없어. 들어줘서 고맙다.”

체이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난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그들이 다가오자 다시금 임시 감옥으로 향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세자르는 그간 머물렀던, 이제는 익숙해진 지하 감옥에 들어서기 전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악역의 최후가 정해진 참으로도 맑고 희망찬 날씨였다.

***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에블린은 체이서의 어깨에 기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 잠들고 싶었지만 간절한 마음과 달리 잠은 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났음이 믿기지 않기 때문일까?

‘원하는 대로 되었는데 왜 이리 기분이 뒤숭숭할까.’

목을 막고 있던 것이 내려가듯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다행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알겠다. 그리운 거였구나.’

지독한 그리움이었다.

불쑥 떠오른 라사냐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제 여린 동생들의 웃는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간 모든 일이 끝나면 가족들을 마음에 품으며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건 에블린의 착각이었다.

지켜 주지 못했음에 미안하고, 참으로도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끝나고 나니 더더욱 그들이 그리워지다니 참으로 나약한 마음이지 않은가.

재판장에서 참아 왔던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에블린은 참아 냈다.

이 기쁜 날 슬퍼하며 울고 싶지 않았기에.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공작저에 도착하였다.

마차에서 내리기 위해 몸을 일으켰지만, 현기증이 일어나 몸이 휘청거렸다. 체이서가 다급히 그녀를 붙잡고서는 조심히 부축하며 마차에서 내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에블린, 안색이 안 좋아.”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봐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더라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 말대로 증인으로 참석하지 말 걸 그랬어요.”

“내 걱정이 괜한 게 아니었군. 그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조금 산책이라도 하고 들어갈까?”

“그래요.”

확실히 저택 안에서 멍하니 있는 것보다는 몸을 움직이며 마음을 좀먹어가는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떼어 내고 싶었다.

체이서는 마중을 나온 집사에게 무어라 말한 뒤, 그녀를 이끌고 정원에 들어섰다.

하지만 에블린의 바람과 달리 산책하고 있어도 그리운 감정이 사그라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제리를 보러 가는 게 낫겠어.’

그만 돌아가려고 말하려는 찰나, 그녀의 곁을 지키던 체이서가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에블린, 이제 재판도 끝났는데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없나?”

“하고 싶은 거요? 딱히 없는데…….”

지난번에 체이서에게 말했듯, 에블린은 그저 편히 쉬고 싶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쉬지도 못할 것 같지만.’

차라리 취미 생활이든 무언가에 집중하면 조금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 보이던 미소와 달리 차분히 가라앉은 얼굴에 체이서는 슬며시 그녀를 이끌어 정원 중앙에 있는 벤치에 앉혔다.

우습게도 안 좋은 생각 같은 건 그만하기로 했는데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체이서가 에블린의 기분 전환을 시켜 주기 위해 나온 이 순간마저도 그녀에게는 버거웠다.

“이런 말 해서 미안해요. 그런데 정말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에블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껏 우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우리랑 함께 행복한 추억들을 쌓아 보는 건 어때요?”

“……우리라니요?”

그 순간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 앞으로 불쑥 작은 꽃다발 하나가 튀어나왔다.

“꽃……?”

아무래도 재판이 끝난 오늘을 위해 준비한 모양이다.

‘그래, 오늘은 기쁜 날이잖아. 언제까지 이럴 수 없어. 이겨 내야 해.’

에블린은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고, 이내 두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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