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드디어 재판의 날이 밝았다.
기다렸던 날이 되었지만, 막상 오늘 모든 것이 끝이 난다고 하니 믿기지 않았다.
아직 재판의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분명 필베르타 공작가는 해체될 것이고, 분명 가문 외에도 세자르에게 개인적인 처벌이 내려질 것이다.
‘세자르는 실형을 받으려나? 아니면 그간 가문이 힘써 온 충정이 있으니 실형을 면하려나.’
실형이 아닌 귀양 정도로 끝이 날지도 몰랐지만, 제국민들의 분노를 생각해 보면 약한 처벌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노역은 안 나오겠지.’
제국 서부의 끝자락에 있는 외딴섬 르나베, 그곳은 중한 죄를 지은 범죄자들의 도망갈 곳 없는 교도소였다.
흔히 노역 섬이라고 불렀는데 대부분 귀족들은 이곳에 가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리 중한 죄를 지었다 한들 세자르는 이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마님, 표정이 어두운데 괜찮으신가요?”
“아, 미안. 이제 가야지.”
생각이 많다 보니 예정보다 출발이 조금 늦어졌다.
재판의 결과는 분명 적당한 처벌이랄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제리를 한번 보고 가고 싶은데 역시 무리겠지?”
“마님, 시간이 촉박해서 힘들 것 같습니다. 아직 하소 경이 곁에 있으니 도련님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셔요.”
어떻게든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어 꺼낸 말이었으나 그녀 역시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실망하지 않았다.
‘역시 어제 곁을 지킬 걸 그랬나.’
지난 오후, 검진하러 온 하소가 제리를 곁에서 자세히 지켜보고 싶다고 말하였고, 에블린은 그녀가 불편하지 않도록 자리를 피해 주었다.
평소와 달리 지난밤에 이어 오늘까지 제리의 얼굴을 보지 못했음에 마음이 무거웠다.
‘매일매일 인사를 해 주고 싶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제리를 보살펴 주는 의사 선생님께 이런 말로 부담을 줄 수 없었다.
에블린은 단정한 남색 드레스를 입고, 눈가까지 가릴 수 있는 모자를 쓰고서야 저택을 나섰다.
마차에 오르고서도 세자르의 처벌에 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역시 가망성이 높은 건 종신형이려나.”
귀족인 걸 고려하면 종신형을 내리고, 특별 사면을 노려 어영부영 입소를 끝내고 돌아갈지도 모른다.
‘똑같은 짓을 번복하면 어떻게 하지?’
아무리 후회하고 있다고 하지만 에블린은 그의 눈에 서린 독기와 원망, 강력한 바람을 가까이서 마주하였다.
그때를 떠올려서일까?
자꾸만 심장이 빠르게 뛰고, 긴장감에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이리 더 고통스러워하다니. 참으로도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이럴 때 체이서가 옆에 있었으면 기분이라도 조금 나았으려나.”
이상하게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았다.
에블린은 턱을 괴고 한숨을 내쉬다가 무심코 창밖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파가 장난이 아니네.”
사람들이 재판장 건물 근처에 모여 앉아 있거나, 혹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많은 이들이 분노와 슬픔에 가득한 모습으로 애타게 재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블린은 제 심장 위에 살짝 손을 얹어 보았다.
저들과 마찬가지로 분노와 슬픔으로 거칠게 뛰고 있었다.
‘내가 재판장에 가는 이유를 기억해야지.’
이 비극적인 사건의 피해자이자, 저들과 같은 유족임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
에블린이 도착하였을 때 재판은 이제 막 시작한 상태였다.
긴장된 모습으로 밖에서 진행되는 재판의 내용을 듣고 있자니 어느덧 증인이 소환될 때가 되었다.
증인실에서 대기하던 에블린은 저를 부르는 직원의 부름에 담담한 얼굴로 그의 뒤를 따랐다.
“에블린 루이사를 증인으로 소환합니다.”
판사의 말이 들리자 눈앞의 작은 문이 열렸다.
에블린은 숨을 크게 내쉬고서는 재판장 안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인파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
‘과연, 대규모구나.’
제국의 내로라하는 귀족들부터 신관, 의회에 참석하는 평민 모두가 그녀가 서 있는 증인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두가 그녀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설마하니 증인으로 공작 부인이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대부분 현장에 있던 기사들이 증인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했고, 체이서 또한 그리하자 권유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약해.’
에블린은 세자르가 마땅히 그가 받아야 할 죗값을 받기를 바랐다.
단순히 긴 형량, 노역 같은 재판소에서 내려지는 최종 판결 같은 게 아닌 진정한 죗값 말이다.
‘모두가 알아야 해. 저들이 어째서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잔혹한 일들을 벌였는지. 숨김없이!’
신분을 막론하고 많은 이가 모인 이곳에서 필베르타 가문의 죄를 낱낱이 밝혀 그가 저지른 처참한 사태를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그녀가 행할 사명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에 더더욱.
에블린은 제게 쏠리는 시선들을 무시하고서는 안내해 주는 이를 따라 증인석에 자리를 앉았다.
차분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제일 상석에 황제 대신 자리에 참석한 황태자와 그 아래 판사 세 명이 자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
‘다시 긴장되는 것 같아.’
조금 더 시선을 내리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세자르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의 곁에 서 있는 체이서와 눈이 마주쳤다.
놀랍게도 그 순간부터 가슴이 울렁거리던 감각이 사그라들었고, 긴장감이 달아났다.
같은 공간에 체이서가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 것이다.
“루이사 공작 부인, 맹세를 부탁합니다.”
“예, 저는 이 자리에서 조금의 거짓도 입에 담지 않고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다.”
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증인, 증인께서는 필베르타 공작저 지하에 있는 연구실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어떻게 연구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까?”
판사의 말에 다시금 모든 시선이 에블린에게 쏠렸다. 그녀는 제가 행할 사명을 생각하며 머릿속에 정리한 말을 차분히 꺼내었다.
“저는 마지막 마물이 수도 상공에 나타났을 당시, 피곤인 세자르 필베르타에 의해 납치당한 상태였습니다.”
쉬쉬하던 소문이 사건의 피해자로부터 직접 밝혀지자 사람들은 놀라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피고인이 어째서 증인을 납치한 것인지 아십니까?”
“예, 피고인은 마물화 사태를 일으킨 불법 약물을 제조하였으나 기대한 것과 달리 약물의 완성도는 떨어졌고, 약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일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피고인, 사실입니까?”
판사의 물음에 에블린은 이 자리에 들어서 처음으로 고개를 든 세자르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예전에 보았던 생기가 가득한 표정도, 최고를 향한 열정도, 언젠가 보여 주었던 따스한 모습도 사라진 상태였다.
“……사실입니다.”
세자르의 답에 조용해졌던 재판장이 다시금 소음에 휩싸였다.
“모두 정숙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증인께서는 그날 연구실에서 목격한 것을 상세히 증언해 주길 바랍니다.”
“예.”
에블린은 제가 보았던 끔찍한 장면들을 떠올렸다.
눈을 떴을 때 마주한 넓고 어두운 연구실, 주위에 선명히 남은 연구 자료의 증거물, 마지막으로 거대한 시험관 안에 들어 있는 약물과 그 안에 잠들어 실험체로 쓰인 사람.
결국 그 사람들이 마물로 변해 다시금 끔찍한 사태로 이어질 뻔한 것을 기사단에 의해 막을 수 있었다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이 선대 필베르타 공작 때부터 행해진 끔찍한 인체 실험의 결과라는 것을 입에 담기가 무거웠으나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상입니다.”
상세한 증언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언제 수군거렸다는 듯 재판장은 다시금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보다 자세한 증언 고맙습니다.”
에블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세 명의 판사들은 머리를 맞대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꽤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들은 결론을 내렸고, 황태자에게 의견을 전달해 주었다.
황태자는 내용을 확인 후 고개를 끄덕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모든 사건의 시초는 선대 필베르타 공작인 오첼 필베르타의 욕심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본다. 그의 자제인 세자르 필베르타 또한 아버지의 죄를 숨기고, 유지를 이어받았다고 판단, 따라서 황실은 필베르타에 내려진 공작위를 거두도록 하겠다.”
설마 공작위를 거둘 줄은 몰랐는지 모두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또한 오첼 필베르타의 시신을 거두어 성벽에 효수할 것이며, 그가 쌓아 온 모든 기록을 말소하도록 하겠다.”
이로써 오첼 필베르타는 간악무도한 테러리스트라는 단 한 줄의 설명만이 역사서에 남을 것이다.
“죄인 세자르 필베르타는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세자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태자는 그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억울하다, 다시 판결해 달라, 혹은 용서해 달라.
“없습니다. 제게 내려진 판결이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떠한 말이라도 할 수 있었음에도 세자르는 침묵으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