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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화 (128/159)

외전 3화

서로 마음속에 있던 고통을 꺼낸 덕에 힘겹게 마련된 자리었다.

체이서와 블러드윈 또한 데몬스를 기다려 주고 있었기에 흔쾌히 수락했지만, 막상 마주하려고 하니 그들도 내심 두려웠던 모양이다.

방문 너머에 있을 서툰 형제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에블린은 작게 웃었다.

어렵게 마련된 자리인 만큼, 세 사람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바라며 그들을 위한 다과라도 준비해 오기 위해 자리를 벗어났다.

***

체이서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데몬스를 보다가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방이 어둡군.’

커튼이 쳐진 방에 유일한 빛은 중앙에 있는 전등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주홍색 빛뿐이었다.

‘안 좋은 생각하기 딱 좋은 공간이야. 그간 아무도 안 만나고 여기서 지냈으니 맘고생 꽤나 했겠군.’

그는 커튼을 걷을까 생각하다가 데몬스가 편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까 뭐라 이야기해야 하지.”

어색한 분위기가 싫은지 블러드윈이 괜히 자신의 머리를 헤집으며 어수선하게 집중하지 못했다.

뻔뻔함으로 무장한 동생도 진심 앞에서는 제 장점을 내세울 수 없는 모양이다.

“우선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마.”

블러드윈의 망설임에 체이서가 그를 대신하여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루이사의 시험을 거치고 이곳에 들어왔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왔단다. 이건 블러드윈에게 들어 알고 있겠지?”

“……예.”

“우리가 루이사에 들어온 지 오래 지나지 않을 때의 일이다. 더스틴은 훌륭한 이능력자가 나타났다며 흥분하며 이야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너를 데려왔지.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말이야. 우리는 내막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다.”

두 사람 또한 어린 나이에 학대당하는 후계자 후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우리는 네가 진실을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여러모로.”

깊은 한숨 뒤로 데몬스가 충격받을 만한 비밀이 뒤따라왔다.

“루이사 공작위에 오를 후계자를 제외하고는 비밀을 아는 이가 가문 내에 남아 있는 건 용납할 수 없거든.”

“……그 뜻은?”

“공작이 되지 못하면 죽는다는 거야.”

데몬스의 물음에 지금껏 입을 달싹이던 블러드윈이 답을 해 주었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죽음이니까.”

“그렇다면 두 분은 왜 서로 라이벌이 되어 견제하지 않으셨습니까? 목숨이 달린 일인데…….”

데몬스는 혼란스러웠다. 

더스틴의 활동이 불가해지자 체이서가 공작위에 올랐고, 블러드윈은 진심으로 기뻐해 주지 않았던가. 

“나는 죽어도 상관없었거든.”

블러드윈은 턱을 괴고선 씨익 웃었다.

“우리가 루이사 공작저에서 끝까지 버티던 이유는 하나야. 공작이 되어서 더스틴 그자에게 복수하는 것. 복수를 이루고 나면 내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의 시선이 체이서에게 향했다.

“물론 형님이 나를 죽이지 않을 거란 기대감도 있었지만.”

실제로 체이서는 트렐로니 백작을 시작으로 루이사의 비밀을 아는 이들을 쳐 내고, 가문을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걸 바꾸고 나면 네게도 말해 줄 생각이었다.”

체이서의 말에 블러드윈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화목한 편은 아니었지만, 사이가 안 좋았던 건 아니잖아.”

데몬스는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자신을 속인 일이 원망스러웠는데 그게 저를 위했기에 한 일이었다니.

믿기지 않는 말이었지만, 혹시나 이 말이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믿고 싶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그의 가족이었으니까.

“처음 진실을 알아차렸을 때 형님들이 많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형님들을 가족으로 여긴 건 저뿐인 것 같아서 서럽기도 했고요.”

데몬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서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마주했다.

진중한 눈빛에 그를 향한 비난도 부정적인 감정도 없었다.

“하지만 저 또한 형님들이 어떻게 자라온 지 보았습니다. 형님들의 고통을 아는데 제가 어찌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모두 추스르고 남은 것은 결국 이러한 결론이었다.

조금은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볼까 합니다. 데몬스 루이사로서 말입니다.”

그 대답에 블러드윈이 가슴을 쓸어내렸고, 체이서 또한 흔치 않게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 뭔데? 말만 해!”

한껏 상기된 블러드윈의 목소리에 힘입어 체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데몬스는 조금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제 가족들을 보고 싶습니다. 가족들이 묻힌 무덤이어도 좋으니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가 긴장한 것과 다르게 두 사람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당 그래야지.”

“걱정하지 말거라, 이 형님들이 찾아줄 테니.”

“……고맙습니다, 형님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식을 좀 가져왔는데.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건 어때요?”

살짝 열린 문 틈새로 에블린이 웃는 얼굴을 빼꼼 내밀며 제안했다.

이미 대화가 끝난 줄도 모르고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세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에블린만 영문 모른 채 서 있었고, 보다 못한 체이서가 그녀를 이끌고 함께 소파에 마주 앉을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에블린까지 합석 후, 네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묵혀 왔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이사의 시험, 루이사 저택에서 자라 오며 겪은 일, 이번 마물화로 인해 고생했던 이야기 등 안 좋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니 그때의 기억을 술술 털어 내는 것만 같았다.

“아, 우리는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블러드윈이 깨달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얘기도 잘 마무리했으니 그 자식을 처리해야지.”

“그 자식이라니요?”

데몬스의 질문에 블러드윈은 기다렸다는 듯 밝게 답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엉망으로 만든 원흉이 아직 남아 있잖아.”

“……아직 안 죽인 거였어?”

에블린의 중얼거림을 들은 블러드윈이 자신을 뭐로 보냐며 장난스럽게 흘겨보았다.

‘뭐로 보기는.’

더스틴의 능력이 봉인되자마자 신나게 그를 괴롭힌 걸 모르는 건 데몬스뿐일 것이다.

“새삼 보면 우리 형수님이 제일 잔인하신 다니까요. 기억을 조금 휘저어서 괴롭혔지만, 아직 멀쩡히 살아 있습니다만?”

“그리고 이미 치료제도 투하하기는 했어.”

처음 듣는 소식에 에블린이 휙 고개를 돌려 체이서를 바라보았다.

“네? 언제요?”

“실험체가 있으니 써 줘야 하지 않겠어?”

나름 비인륜적인 방법이라 조용히 일을 처리했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일부러 말 안 한 거예요?”

“그런 건 아니고.”

대수롭지 않아 하는 반응에 에블린이 설마 하며 물었다.

“설마 내가 충격받을까 봐?”

“…….”

침묵은 긍정이라 하였다.

에블린이 입을 가리고 작게 웃음을 터트리자 체이서의 지긋한 시선이 뺨에 닿는 게 느껴졌다.

“괜한 걱정 하셨네요. 나도 그 인간 싫어하는 걸로 여기 있는 사람들 못지않은데.”

에블린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데몬스를 바라보았다.

“데몬스 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예?”

“복수하고 싶지 않아요? 허망하게 보내기 싫지 않을까 싶어서요.”

데몬스는 어깨를 움찔 떨더니 이내 결심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만장일치인가요?”

다시 고개를 돌려 체이서를 보니 그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별관을 깨끗이 비울 때가 되기는 했지.”

네 사람의 마음이 통했으니 더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

그들은 사이좋게 별관으로 향했고, 양손이 포박된 채 벽에 걸린 더스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이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는지 조금 초췌하기는 했으나 그럭저럭 봐 줄 만한 몰골이었다.

“아직 정신을 멀쩡하고?”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기는 했는데. 몇 번 머릿속을 주무른지라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어. 괴롭힌 기억도 남아 있거든.”

‘음, 겉모습만 멀쩡한 거였구나.’

갑작스러운 인기척을 느꼈는지 더스틴이 인상을 찌푸렸다. 곧 감겨 있던 눈이 서서히 뜨였다.

더스틴은 자신의 앞에 모인 이들을 발견하고서는 눈을 홉떴다.

“믿기지 않네요.”

제일 뒤에 서 있던 데몬스의 중얼거림에 에블린이 고개를 돌렸다.

데몬스는 창백하게 질린 채 더스틴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으나 분명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그렇게 위풍당당하던 자가…….”

떨리는 목소리에는 더는 두려움이 담기지 않았다.

“이리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자라는 걸 왜 몰랐을까.”

오히려 분노와 원망, 이제야 그에게 복수를 행한다는 것에 대한 늦은 후회가 강하게 어려 있었다.

데몬스는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고, 더스틴을 마주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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