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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화 (127/159)

외전 2화

열린 문 바로 앞에는 데몬스가 손잡이를 붙잡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퀭한 눈빛을 한 그는 문 앞에 있는 두 사내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아무런 말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지 않은 채로.

‘얼른 들어오라고 하는 것 같네.’

두 사내 또한 에블린과 같은 생각을 했는지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듯 보였다.

“어서 들어가 봐요. 기다리잖아.”

에블린은 일부러 두 사내의 등 뒤로 가 직접 그들을 방 안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끝까지 망설이는 모습에 단호히 대하고 문을 닫아 버렸지만 이렇게 하는 것도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더라.’

그러니까 이 일에 대해서 알려면 며칠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

에블린이 무사히 구출된 후 일주일 정도 흘렀을 때 일이었다.

부상으로 인해 다시 외출을 삼가고 있던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앞의 정원으로 산책하러 나갔고, 그곳에서 오래간만에 방 밖에 나온 데몬스를 만날 수 있었다.

“아.”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당황하다가 도망치려는 데몬스에게 에블린은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잠시만요, 데몬스 님!”

에블린의 부름에 데몬스가 멈칫하자 그때를 놓치지 않고 옷깃을 붙잡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 잠시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조심스러운 부탁에 데몬스는 난감한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퀭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사이좋게 벤치에 앉았다.

더스틴과의 일 이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어 무작정 잡았으나 쉽사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무슨 말부터 시작하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입을 떼려던 순간.

“몸은 괜찮으십니까?”

의외로 먼저 입을 연 건 데몬스였다.

“네?”

“마물화를 일으킨 범인에게 납치당해 크게 다쳤다고 들었습니다.”

“아, 다행히 무사히 구출되어서요. 상처도 많이 회복되었답니다.”

“다행이군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걱정해 주는 걸 보면 대화하기 싫은 것 같지는 않지?’

에블린은 슬쩍 눈을 굴려 데몬스를 살펴보았다.

그는 긴장한 듯 두 주먹을 쥔 채 무릎 위에 올려놓았는데 고개도 살짝 숙인 상태였기에 한껏 경직된 것처럼 보였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우선 가볍게 안부부터 전하자는 생각에 입을 열자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간만에 만나게 되어서 기뻐 무작정 잡았는데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솔직한 에블린의 말에 데몬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저와 대화하기 싫어하실 것 같아서 조금 놀랐어요. 응해 줘서 고마워요.”

“……그간 생각할 게 많아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밖을 나서고 싶더라고요.”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 가던 그가 이번에는 에블린의 눈을 마주했다.

“아마도 형수님을 만나게 될 것 같아서 나오고 싶었나 봅니다.”

피곤함이 잔뜩 어려 퀭한 눈과 마주하자 에블린의 안에 잊고 있던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가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의 원천이 제게서 시작된 것만 같은 죄책감.

마주하기 두려워 지금껏 그가 원치 않는다는 생각으로 미뤄 왔지만 더는 미뤄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나게 된다면 꼭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고개를 숙이고 싶었다.

하지만 제 진심은 두 눈을 마주하며 전해 주고 싶었다.

“당신도 알게 되었겠지만, 루이사는 참 복잡한 가문이죠. 더스틴 그자는 이 가문에 자신의 피를 잇고 싶어 했어요. 그러지 못하게 되자 당신들에게 화풀이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에블린이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이어 갈수록 데몬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괴로움이 어린 얼굴을 보니 왜 이제야 솔직히 말한 건가 싶은 후회가 들다가도.

“관계는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었어요. 그자가 제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았었고, 저 때문에 모든 일이 일어난 것 같아 괴로웠거든요. 남을 살필 여유가 없어서 이제야 사과를 전하게 되었네요.”

“…….”

“미안해요, 괴로워하는 걸 알면서도 많은 걸 숨겨서.”

마주한 시선 너머 그의 눈가에 옅은 물기가 차오르는 것을 보자 오늘은 사과를 미루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지친 얼굴로 입을 뗐다.

“……그게 어찌 형수님의 죄일까요. 못된 그자의 죄이지.”

“…….”

“제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알고 있던 모든 게 부정당했다는 현실을 차마 견딜 자신이 없어서였습니다.”

데몬스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 보았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참으로 공허하고 쓸쓸해 보였다.

“무엇보다 저는 더스틴 그자가 증오스러운 것보다 형님들께 서운함이 컸습니다. 적어도 이 빌어먹을 집안에서 제가 기댈 수 있는 건 두 사람뿐이었으니까요. 형제라 생각했는데 그리 생각했던 것 저뿐이었던 것 같더군요.”

허탈하게 웃는 그 모습에 에블린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두 사람은……. 표현에 서툴 뿐 데몬스 님에게 미안해하고 있어요.”

“그리 냉정한 두 분을 좋게 봐주시는 건 아마 형수님이 유일할 겁니다.”

자조적인 목소리 뒤로 그가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 진심이 드러났다.

“그간 많은 생각을 했어요. 왜 하필 나였을까, 어째서 나는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왜 형님들은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고 나를 속였던 걸까, 그리고…….”

순간 데몬스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괴로운 얼굴로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내 진짜 가족은 하필 나 때문에 죽어야 했었나.”

그 말에 에블린은 심장이 무거운 돌에 짓눌린 것같이 숨이 턱 막혀 왔다.

“그저 이 모든 게 제가 태어나서 일어난 일 같아서 도무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더군요.”

제게 벌어진 모든 일이 자신이 못난 탓에 일어난 것 같다며 자책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에블린 자신이 보이던 모습이기도 했으니까.

에블린은 머뭇거리다가 이내 용기 내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비슷한 경험이라니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이어 가야 할까.

체이서와 블러드윈과의 관계를 알려 주려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데몬스 님은 루이사의 비밀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시험까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설명하기 쉽겠네요. 제가 두 사람을 처음 만난 곳이 그곳이거든요.”

“예? 바이아르도 가문에서 그걸 받아들였습니까?”

“여기에도 숨겨진 사정이 있죠.”

에블린은 천천히 과거를 되짚어 가며 미로에서 겪었던 일과 두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때를 이야기해 주었다.

“멋대로 기억을 지웠다고요?”

“놀랍죠? 저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덕분에 목숨은 구했지만 아무 기억도 없이 수도원에서 자라났거든요.”

“수도원이요? 어째서 바이아르도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그곳에서는 저를 팔아 버려서 시험장에 가게 된 것이니까요. 물론 이것도 더스틴과 계약 중 일부였지만요. 그래도 덕분에 이곳에 머물 명분은 생겼었죠.”

수도원에서 체이서를 만난 것, 스스로 마물화에 감염된 이를 들였고, 소중한 가족이 모두 저 때문에 죽었다는 것까지 이야기가 이어지자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기억이 없는 제게 루이사는 무서운 곳이었죠. 여러 고난도 있었고, 뜻하지 않는 일에 많이 울었으며 이 모든 일이 제 탓이라 생각하고 안 좋은 생각도 했어요.”

에블린은 스스로 지난 삶을 되돌아보았다.

치료제 개발을 위해 루이사에 머물기 시작한 때부터 개발이 된 지금에 이르고 나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런 제가 이제는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되었네요.”

“화가, 화가 나지 않으셨습니까?”

억울함이 가득한 물음에 에블린은 고개를 저었다.

“화를 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모든 게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까. 그런데 지금 되돌아보니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에블린은 불안해 보이는 데몬스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건 데몬스 님의 탓이 아니에요. 원치 않은 일에 휘말린 피해자 중 한 명일 뿐.”

“…….”

“주제넘은 바람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데몬스 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웃으며 살아도 될까요?”

“그럼요.”

빠르고 단호한 대답에 데몬스의 눈가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물기 어린 목소리에 에블린은 그의 어깨를 끌어안아 도닥여 주었다.

“형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워요.”

덜덜 떨리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용기를 내었다면 밀어주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제가 두 사람에게 제대로 화도 못 냈더라고요.”

“네?”

오늘에서야 제 나이대로 보이는 소년의 모습에 에블린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저 대신 많이 화내 준다면 자리를 마련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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