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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화 (126/159)

외전 1화

세자르 필베르타가 체포되고, 마물화와 관련된 연구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신문은 앞다투어 관련된 기사를 쏟아 내기 바빴다.

제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한 마물화 병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은 수도를 넘어 제국에 빠르게 퍼져 나갔으며, 거리마다 마물화 사태의 원흉에 대해 떠들어 댔다.

사람들은 선량한 공작가에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음을 믿지 못했으나 낱낱이 밝혀지는 악행에 모두가 필베르타 공작가를 비난했다.

민중의 분노가 극에 달아 당장 죄인을 참수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때쯤, 기적적으로 치료제 완성 소식이 전해지자 분노한 여론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치료제 덕분에 무사히 마물화를 치료한 환자의 가족들이 앞다투어 경과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고, 드디어 길고 길었던 전염병의 끝을 알리는 소식에 사람들은 기뻐하였다.

또한 치료제 개발이 루이사 공작가의 도움이 컸다는 소식을 뒤늦게 퍼지며, 다른 의미로 수도가 소란스러워졌다.

재난을 끝내 준 루이사 공작가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게 된 것이다.

“해서……. 사람들이 감사의 표시로 놓고 간 선물들입니다.”

에블린은 눈앞에 쌓인 어마어마한 선물 더미를 보며 머리를 짚었다.

“모두 거절하라 하지 않았나.”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고생한 것도 모두 잊어버릴 만큼 기뻐 웃으며 좋아했었는데 설마 이런 결과를 낳을 줄 몰랐다.

“얼굴을 보지 못해도 감사 인사라도 전하게 해 달라며 선물을 두고 갔다더군요. 저희가 막기도 전에 그냥 두고 사라진 터라…….”

정문 앞에 한가득 쌓이기 시작한 선물들이 통행이 방해될 우려가 있어 결국 안으로 들여왔다고 한다.

선물은 소소하게 농산물로부터 시작해서 공예품, 질 좋은 원단, 보석 등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두 분께서 범인을 잡고 치료제 개발을 위해 고생하지 않으셨습니까. 감사의 표현이니 마음 편히 받으시는 게 어떨지요?”

계속해서 곤란해하고 있으니 마야가 다가와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아. 정말이지.”

에블린이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긴 전염병을 끝내 준 은인에게 뭐라고 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저 정도면 일상생활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형편이 여유로운 상인, 귀족들이라면 모를까. 

선물들의 상태가 너무 좋아 무리해서 선물을 준비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을 편히 가질 수가 없었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어.”

작은 중얼거림에 대한 답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왜 안 되지? 네가 고생을 안 한 것도 아니지 않나.”

에블린이 깜짝 놀라기도 전에 뒤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체이서, 언제 왔어요?”

“조금 전에.”

“일찍 왔네요?”

“오늘은 하기로 한 게 있으니까. 블러드윈도 곧 돌아올 거야.”

익숙한 체온에 슬쩍 몸을 기대니 그의 시선이 눈앞에 쌓인 선물로 향했다.

“저 정도는 받아도 돼. 치료제 개발을 위해서 누구보다 고생한 게 누구인데.”

“이런 거 부담되지 않아요?”

“전혀.”

“그런가.”

“부담스러우면 조금 뻔뻔해져도 좋고.”

무거운 마음을 덜어 주려는 말에 에블린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볼게요. 음식들은 주방에 전달해 주도록 하고, 나머지는 내가 따로 정리할 테니 그대로 두게.”

“다른 이들 시키지 않고?”

“그래도 감사의 표시니까요. 제가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요.”

에블린이 체이서에게 팔짱을 끼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니 그가 익숙하게 그녀를 이끌기 시작했다.

루이사 공작가는 예전의 서늘하고 위태로웠던 분위기가 가시고, 따스한 봄날이 찾아온 것처럼 평화로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모든 건 드디어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에블린이 납치당했던 곳이 마물화 약을 만드는 연구실임을 알게 된 황실은 필베르타 공작가의 대대적인 수색을 명령하였다.

선두에 선 체이서의 지휘 아래 기사단이 조사를 시작하였고, 선대 필베르타 공작의 일기가 발견되며 충격적인 내막이 드러났다.

바로 마물화의 약이 이능력자인 사람의 피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선대 필베르타 공작은 이능력의 개발을 위해 빈민가와 돈이 필요한 이능력자들을 찾아서 실험체로 썼고, 마물화라는 인위적인 이능력을 만들어내 사달을 내었다.

다행히 하소 경 덕에 연구실에 남아 있는 약을 분석하여 들어간 재료를 알게 되었고, 시행착오 끝에 이능력을 억제하는 약을 개발하여 드디어 치료제가 성공하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살아 있는 이들은 무사히 치료제를 처방받게 되었고, 시간의 차이를 두고 서서히 사람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만약 치료제가 개발되지 못했더라면 파장이 꽤 컸을 것이다.

“선물들이 그리 부담스러웠나?”

치료제를 생각하느라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굳히고 있었는지 걱정스러운 물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생각해 봐, 에블린. 치료제가 개발되기까지 네가 준 도움을 말이야. 그리고 치료제가 개발된 뒤에도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경과를 지켜보며 위로해 주지 않았나. 그 진심이 사람들에게 닿은 것일 뿐이야.”

체이서의 다정한 속삭임에 에블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이지. 누구 남편이 이리 위로를 잘하는지 몰라.”

에블린은 일부러 그의 팔을 꼭 끌어안으며 더욱 힘차게 웃었다.

기분이 괜찮아진 게 보이자 체이서 또한 마주 웃었다.

체이서가 퇴근을 하면 두 사람은 제리의 곁에 머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두 사람은 익숙하게 제리의 방으로 향했고, 조용히 잠들어 있는 제리의 앞에 섰다.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지 않아도 좋으니 제리가 얼른 깨어났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이 깨어났지만 제리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진 채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혹시 치료제가 효과가 없는 건지 한때는 걱정도 했다. 그런 에블린에게 하소 경이 효과는 있지만 워낙 어린 나이이다 보니 몸에 충격이 가 회복이 더딘 것이라 설명하였다.

“긴 기다림 끝에 마주한 기적은 얼마나 달콤할까요.”

“분명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거야.”

원체 희망 어린 말을 잘 하지 않는 체이서였지만 유독 제리의 앞에만 서면 혹시나 하는 희망을 기대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따스한 위로를 들으며 에블린은 침대 옆에 앉아 애정이 섞인 손길로 제리의 머리칼을 쓸어 주었다.

그때 똑똑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블러드윈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형수님. 저 이제 막 도착했습니다.”

아쉽지만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벌써 인사를 할 때가 찾아와 버렸다.

“제리, 누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그러니 무사히 곁으로만 돌아와 줘.”

에블린은 제리의 이마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불까지 잘 정리해 준 그녀는 제게 향한 시선에 체이서의 손을 잡고 이만 가자며 웃었다.

문을 열고 나오니 이제 막 옷을 갈아입고 왔는지 편안한 옷차림의 블러드윈을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꼬맹이는 아직 안 깨어났나 봅니다?”

“아직 꿈나라가 좋은가 봐요.”

긴 기다림에 애가 탔지만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하니 블러드윈이 덤덤히 물었다.

“얼른 깨어나면 좋겠네요. 꼬맹이가 머물 방은 준비 끝났나?”

“아니, 제리는 깨어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니까…….”

에블린이 아끼며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제리는 평민 아이이며, 그녀의 친동생이 아니었다.

공작저에서 머물게 되는 건 감히 바라지도 않았기에 깨어나게 되면 좋은 곳에 입양을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홀로 생각하고는 했다.

물론 당장 깨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할 생각은 아닌지라 접어 두었지만.

“다른 곳이요? 왜?”

“아무래도 나보다는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기도 하니까요.”

옆에 계속 두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모른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씁쓸해 보이는 에블린의 모습에 블러드윈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체이서가 고개를 내젓는 것에 입을 다물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아쉽네요. 여기는 좀 시끄러워질 필요가 있어서 공작저에서 머물기를 바랐는데.”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필요하다며 한껏 불만을 토해 내던 그는 곧 목적지에 도착하자 입을 꾹 다물었다.

블러드윈이 불안한 듯 눈을 굴리더니 괜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형님, 역시 우리 다음 기회를 노려 보는 건 어때?”

체이서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으나 이어지는 말에 그의 두 눈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을 코앞에 둔 채 망설이는 두 사내의 모습에 에블린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망설임을 읽은 에블린은 이해한다는 듯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데몬스랑 화해하고 싶다 해서 내가 자리를 마련해 준 거잖아요.”

“하지만…….”

블러드윈이 조금 전과 달리 약한 모습으로 망설이는 그때.

끼익,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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