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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만한 구원자에게 (119)화 (119/159)

119화

불안함이 가득한 목소리에 체이서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에블린의 구겨진 이마를 펴 주며 말했다.

“어떻게 하긴. 찾아내서 잡아들여야지.”

“하지만 원인을 명확히 알아내지 못했잖아요.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내 부인은 걱정도 많군. 그걸 찾아내는 게 내 일이야. 그리고 나는 기사단 내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이지 않나.”

“……부정은 못 하겠네요. 제가 본 이들 중 최고이기는 하니까.”

농담이 섞인 진심에 조마조마한 감정은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은 여전하였다.

“처음부터 다시 감염자들의 주변을 살펴보려 해. 어떻게든 감염자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낸다면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차라리 이 병에 대해 게임에서 나왔다면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참 아쉽네.’

유행하는 소설이나 게임에서 원작의 기억을 가지고 놀라운 활약을 보여 주는 주인공들이 부러웠던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약간의 힌트라도 간절했다.

‘보통 이런 감염병이 나오는 영화에서는 어떻더라…….’

누군가가 일부러 병을 퍼트리는 것에는 분명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약을 개발하려다가 발생한 부작용이라든가, 일부러 재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원인이 된 기업에서 치료제를 내놓는 등 특별한 이익을 목적으로 움직이고는 하였다.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무슨 약이 있을까. 병의 치료제? 아니면…….’

병이 인위적으로 퍼진 것이라면 이쪽에서 답이 나올 수가 있다.

에블린이 생각에 잠긴 사이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저 멀리 복도에서 하소가 다급한 얼굴로 이쪽을 향해 뛰어왔다.

“다, 단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지? 마물이 탈출이라도 한 건가?”

“그, 그게 아니라. 위쪽에서 명령이 내려왔는데 감염의 확산 위험이 있으니 실험체들을 모두 폐기하랍니다!”

하소의 말에 에블린과 체이서 둘 다 기함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 상황에서 치료제 개발을 중단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아무래도 황실에서 실험체를 데리고 있다는 소문이 주민들 사이로 퍼진 모양입니다. 마물화 병이 황실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유언비어도 함께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 있나!”

“아무래도 민심을 고려하여 내려진 결정 같습니다. 원흉인 마물도 있으니 폐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도 함께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피해자만 늘어 갈 뿐이야.’

하소가 들고 온 정보에 에블린의 마음은 더더욱 조급해졌다.

‘죄 없는 사람이 죽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제발, 제발 생각해 봐, 에블린. 제발. 아주 작은 거라도 좋으니까 제발!’

그녀의 간절함이 닿은 듯, 곧 무언가가 머리를 번뜩하고 지나쳤다.

“체이서! 처음 감염된 이들 중 이능력자가 없었다고 했었죠?”

“맞아, 없었어. 대부분 집안 사정이 어렵거나 빈민가의 사람들이었지.”

‘조금 전 마물에게는 내 힘이 사용되지 않았어. 하지만 일반인들이 마물화에 감염되고서는 이능력자처럼 내 능력이 효과가 있게 되었고.’

누군가가 일부러 그들을 저리 만들었다면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뭘까. 무언가 개발하기 위해서? 혹은 확인하기 위해서?’

머릿속으로 무어라 결론이 낫는데 말로 꺼내려니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것 또한 마찬가지로 가정인데요……. 저는 마물화가 특별한 힘을 가지려다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에블린이 끙끙거리며 생각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먼저 생각의 정리를 마친 체이서가 물었다.

“혹시 그들이 이능력을 만들어 주는 특별한 무언가로 인하여 이리되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 말하고 싶은 건가?”

“맞아요!”

체이서의 말에 에블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능력을 각성시켜 주는 약이나 음식을 먹었다든가, 그런 효과가 있는 물건을 가까이 두어서 이렇게 변화한 건 아닐까요?”

체이서와 하소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곧바로 어디론가 향했다.

에블린 또한 급히 그들의 뒤를 쫓았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체이서의 단장실이었다.

체이서가 쌓여 있는 서류에서 몇 개를 빼내더니 빠르게 넘겨 보며 보고서를 확인하였다.

“이들은 다들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집을 비웠다는 공통점이 있어. 일용직으로 전전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한지라 특별히 여기지는 않았는데. 만약 이들이 그동안 일을 한 게 아니라 마물화를 일으키는 무언가와 접촉한 거라면…….”

“그 후 잠복기를 거쳐서 마물화 증상이 나타난 걸지도 몰라요.”

마찬가지로 연구 보고서를 확인해 보던 하소가 의견을 더했다.

“이들이 지닌 소지품을 다시 조사해 봐야겠군. 혹시 공통으로 복용한 약이 있는지도 함께.”

체이서는 서류를 챙겨 들고는 모조리 하소에게 전달해 준 뒤 에블린을 보았다.

“에블린, 이만큼 했으면 충분히 많이 도와주었어. 당신 덕분에 치료제 개발은 계속 진행될 수 있을지도 몰라. 고마워.”

“아니에요. 이 정도 가정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걸요.”

“그럴 리가 없잖아.”

체이서는 에블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나는 당신이 헛된 살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들은 마물화에 감염이 되었을 뿐이지 모두 사람이니까요.”

에블린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단호히 결심이 서린 얼굴로 말하였다.

“우선은 민심의 안정이 우선이에요. 만약 이 가정을 내세워도 치료제 개발이 중단된다면 그때는 나를 모두의 앞에 내세워 이용해 주세요. 저는 채혈도, 이능력의 사용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알겠죠?”

“네가 더는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일을 끝내도록 하지.”

체이서는 걱정하지 말라며 몇 번이고 에블린을 안심시킨 뒤 단장실 밖에서 대기하던 보좌관을 불러들였다.

“부인을 저택까지 모셔라. 절대로 딴 길로 새지 말도록.”

*** 

세자르는 불안한 얼굴로 엉망이 된 제 집무실 안을 서성이다가 갑자기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젠장!”

빠른 효과를 보기 위해 약물의 주입량을 늘렸을 뿐인데 갑자기 실험체들의 마물화가 진행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는 지하 연구실의 뒷문을 찾아 탈출을 감행할 줄은 더더욱!

“도중에 사용인들을 만나지 않아 천만다행이지.”

마물들은 날짐승의 형태를 한 덕에 필베르타 공작저에서 빠르게 벗어났고, 덕분에 이를 목격한 이는 없었다.

“약의 효과를 보이기는커녕 부작용만 가득하다니! 아버지께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세자르는 불안했다.

이대로 남은 실험체들조차 마물화가 진행되어 깨어나게 된다면?

그때도 목격자가 없을 거라 보장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의사가 통한다면 다루기라도 쉬울 텐데.’

세자르는 마물을 죽일 줄만 알지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을 회유하고 돌봐 본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심지어 이번 마물들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온몸이 터져 버리는 끔찍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제 어쩌면 좋지?”

이대로라면 세자르는 더 이상 지하 연구실에는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약도 모조리 그곳에 있는데…….”

무엇보다 실험체가 모두 마물화가 진행되어 터져 죽고 만다면 그 후로는 세자르가 직접 실험체를 찾아보아야 했다.

‘그것도 쉽진 않을 거야. 나는 전문지식이 없으니 연구원들이 함께 참여하지 않는 이상 나 혼자서 실험은 불가능할 테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이런 걸 내게 남겨서 이리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시는가.”

세자르는 제가 저지른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탓하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시선이 책상 한편에 놓여 있는 서신에 닿았다.

마물화의 확산 방지와 관련하여 기사단에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이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도 더는 어려울 것 같은데.”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돌아가는 현 상황을 파악할 필요성도 있었다.

‘내일 출근하도록 할까.’

세자르가 그리 생각하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노크와 함께 보좌관이 안으로 들어섰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도착한 서신을 내밀었다.

“이건……?”

“황실에서 내려온 급보입니다.”

그렇다면 무시할 수도 없었다.

세자르가 느릿느릿 서신을 풀어 헤쳤고, 곧 충격적인 소식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 마물화 감염의 증상이 약물 복용으로 인해 발생했다 추정. 이는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이능력 각성제로 추정되며 수도 내에 퍼진 불법 이능력 각성제를 찾아 수거하라고?’

세자르의 심장이 불안함을 느끼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주인의 눈이 거칠게 떨리며 당황하는 것에 보좌관이 조용히 집무실에서 물러났고, 문이 닫힘과 동시에 세자르는 내려온 공문을 단번에 구겨 버렸다.

‘어떻게 알았지?’

아무래도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언가 많은 일이 있던 모양이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어떻게 각성제의 존재에 대해서 알았는지, 이것이 왜 수도에 퍼져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두 알아보아야 했다.

세자르는 덜덜 떨리는 두 손을 보고서는 침착하게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긴장하지 마. 기사단으로서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이지 내게 죄를 묻는 것이 아니다.’

세자르는 구겨진 자신의 기사단복을 챙기고서는 오래간만에 외출을 준비하였다.

주인의 오래간만의 외출에 공작저의 사용인들이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녀오십시오, 가주님.”

세자르는 기쁜 얼굴로 저를 배웅하는 이들을 보면서 착잡함을 숨기곤 가볍게 대꾸하였다.

“늦을 수도 있네.”

그가 보좌관과 함께 마차에 올랐고, 그의 명령에 따라 마부는 빠르게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세자르는 초조한 얼굴로 창에 팔을 기댄 채 턱을 괴고 있다가 거리가 평소와 다르게 소란스럽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왜 다들 신문을 들고 있는 거지?”

“아, 이번에 치료제 개발이 완성에 가까워졌다는 희소식 덕분일 겁니다.”

보좌관은 제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어 그의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세자르는 받은 신문을 펼쳐 보자마자 곧바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공작 부인이?”

그가 받은 신문의 1면에는 에블린의 이름이 크게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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