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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만한 구원자에게 (116)화 (116/159)

116화

에블린이 마부를 부축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지만, 마부는 겁에 질린 상태로 그대로 기절한 상태였다.

“물러서 주세요, 마님! 제가 옮기겠습니다!”

마물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어느덧 마차와 마물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마야가 다급히 사내의 겨드랑이 안쪽에 손을 넣어 강제로 끌어 올렸고, 그와 동시에 에블린이 마차의 문을 닫았다.

콰앙- 쾅, 콰앙.

마물은 마차에 몇 번이고 몸을 부딪치더니 이내 별 타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선 다른 표적을 찾아 떠났다.

“하아, 하아.”

마야는 거칠게 숨을 내쉬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자리에 주저앉았다.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마님께서는 다친 곳 없으시고요?”

“자네 덕에 멀쩡하지.”

기진맥진한 채로 쓰러진 둘을 대신하여 에블린이 마부석과 연결된 창문마저 닫은 후 커튼을 쳤다.

“그래도 마부가 빨리 마차를 멈춰서 다행이네. 조금이라도 늦게 멈췄다가는 다른 마물들에게도 표적이 되었을 테니까.”

“하긴……. 한 마리의 마물 정도는 버텼다 하더라도 마물 여러 마리가 협공하면 이 마차도 산산조각이 났었겠죠.”

상상하기조차 싫은지 마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어두운 목소리로 이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금껏 저런 마물은 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수도에 나타난 마물은 모두 땅을 걸어 다녔지 조금 전의 마물처럼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에블린은 창문을 가린 커튼을 살짝 거두어 밖을 살펴보았다.

신고받고 나타난 기사단들 또한 날아다니는 마물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아마 진화한 게 아닐까. 조금 더 공격하기 쉬운 모습으로.”

“정말 최악이에요!”

지긋지긋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에블린 또한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병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몰라도 평화와 절망을 번갈아 가면서 안겨 주다니 정말이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마물의 먹잇감이 되는 신세는 피했으니 이곳에서 구조를 기다리자꾸나.”

“예,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외출을 하지 말 걸 그랬다. 괜히 나 때문에 두 사람이 고생이구나.”

어쩜 매번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지. 꼭 모든 불행의 원인이 에블린이 불러일으킨 것만 같았다.

“아닙니다, 마님. 지금껏 외출을 삼가다가 겨울이 오기 전에 잠깐 나오셨을 뿐이잖아요. 그 누가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을 알았을까요.”

마야의 위로는 그런 에블린에게 큰 힘이 되었다. 땅을 파고 자책할 뻔했던 것이 그녀의 말에 멈출 수 있었다.

‘저 마물들에게 말을 걸어 볼까? 혹시 명령에 따른다면 그들을 컨트롤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빠른 해결책을 찾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더스틴 때의 경우를 떠올려 마차 밖으로 나가 볼까 고민하던 찰나.

“지난번에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물이 나타났다지요? 혹시 누군가 마물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요?”

마야의 말에 에블린의 생각이 멈췄다.

‘……만약에 마물이 내 말을 듣는다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 행동이 마물들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고민에 잠긴 그 순간 밖에서 갑자기 안도가 섞인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야가 커튼을 살며시 거두어 창밖을 바라보았고 곧 그녀의 얼굴에도 안도의 웃음이 피어났다.

“마님! 마물이 죽었습니다!”

“응? 벌써?”

“네, 벌써요! 모조리 다 죽었어요!”

들뜬 목소리에 에블린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대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날짐승을 닮은 마물들은 크고 날아다니는 속도도 매우 빨랐다. 

처음 겪는 마물의 형태에 기사단이 나선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인 일이기는 하였지만 이해가 가는 상황은 아니었다.

에블린이 의아해하는 사이 갑자기 마차의 문이 벌컥 열리며 바깥 상황을 정리한 자가 등장하였다.

“에블린!”

“……체이서?”

마차 너머로 화한 불꽃의 냄새가 퍼져 왔다.

열렬하게 날뛰고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에 그가 밖에 있는 마물을 처치하고 곧장 이곳으로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에블린은 우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반가운 마음과 별개로 날뛰는 그의 기운이 금방이라도 능력의 과부하를 일으킬까 봐 두려웠다.

체이서는 그 또한 부족하다는 듯 에블린을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네가 거리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 줄 몰라.”

강제로 그의 기운을 진정시키자 체이서의 안색이 조금 전보다 좋아지는 게 보였다.

그는 제 기운을 가라앉히는 데 관심이 없는지 에블린의 몸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

이곳 상업지구는 황성과는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기에 마차로 달려와도 족히 30분은 걸리는 곳이었다.

그래서 체이서가 이곳에 도착하는 건 시간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동 비슷한 능력을 쓰는 이가 있어서 도움을 좀 받았지. 그보다 괜찮나? 다친 곳은 없어?”

“네, 저는 괜찮아요. 두 사람이 힘써 줘서 저는 무사해요.”

에블린은 차분히 앉아 있는 마야와 기절해 있는 마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야가 눈치껏 마부를 흔들어 깨웠고, 마차의 문이 열린 것을 보고 기겁하다가 그 앞에서 있는 이가 체이서임을 알아보고서는 금세 조용해졌다.

“마부의 현명한 판단으로 다행히도 표적이 되지 않았어요. 마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감싸주어 덕분에 상처 하나 없네요.”

“돌아가면 둘에게 큰 상을 내려야겠군.”

체이서는 제 품에 에블린을 가둬 놓듯 끌어안고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당장은 현장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아. 아직 온전히 시체를 처리하지 못했거든.”

“피해자들도 찾아야 하니 정신이 없을 거예요. 아무리 일이 많아도 휴식을 취하는 거 잊으면 안 돼요.”

“아무렴. 부인의 말인데 따라야지.”

체이서는 에블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서는 그녀를 마차에 앉혀 주었다.

“마물은 처리하였으나 돌아가는 길이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너는 네 주인을 안전하게 저택으로 모시도록 하여라.”

“예, 그것이 제 일인걸요!”

마부는 체이서의 명령에 힘차게 대답하고서는 마차 밖으로 나갔다. 마부가 마부석에 앉자 체이서는 마차의 문을 닫아 버렸다.

위급한 상황이 끝났음에도 그를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이 무거웠다.

에블린이 마차의 창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그 앞에는 체이서가 서 있었다.

“조심히 들어가고, 놀란 마음 추스르고 있어.”

“알겠어요.”

“나도 최대한 빠르게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갈게.”

“다치지 말고, 밤도 새우지 말고, 몸 멀쩡히 돌아오는 거예요. 다쳐 온다 해도 불쌍하게 봐 주지 않을 거니까요.”

“알겠어.”

체이서는 다시금 에블린의 입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애타는 입맞춤을 끝으로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블린은 체이서가 제 시야에서 벗어나고서야 간신히 마차의 창문을 닫을 수 있었다.

***

하지만 저택으로 돌아왔다고 평화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김없이 체이서는 저택으로 돌아오지 못하였고, 다음 날이 되자 충격적인 소식이 에블린에게 도달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마부가 감염되었다니?”

마야의 말에 에블린이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차에 오르기 직전에 마물이 다리에 상처를 입힌 모양입니다. 갑자기 상처가 부어오르기 시작하더니 변화를 짐작하고선 곧바로 집사장에게 말을 올렸다 합니다.”

“그는 어디에 있나!”

“현재 그곳과 다른 지하실에…….”

“당장 안내해 주게.”

에블린은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마야와 함께 방을 나섰다. 

마부는 에블린이 가 본 적 없는 별관의 또 다른 지하실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감옥 안에 사람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업지구에서 보았던 날짐승의 모습을 한 마물이 감옥 천장 가까이 떠 있는 광경에 에블린이 머리를 짚었다.

“……이미 변해 버린 모양이구나. 접촉한 사람은 있다고 하던가?”

“다행히 아무하고도 마주치지 않았답니다. 피가 묻은 마차는 집사장이 곧바로 소각처리를 한다고 합니다.”

그나마 마부가 재빨리 제 변화를 알린 덕에 추가 피해를 막을 수가 있었다.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건가.”

에블린은 철창 감옥 안에 갇힌 마물들을 보며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봐 자네, 내 말이 들리나? 들린다면 잠시 바닥으로 내려와 주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부였던 마물에게 말을 걸자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 마님?”

마물이 에블린의 말을 듣는 걸 처음 목격한 마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에블린은 긴장한 얼굴로 입을 뗐다.

“우선 미안하다 사과하고 싶네. 내가 데리고 외출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는 이렇게 마물이 되지는 않았을 거야.”

“마님, 그런 말씀 마시라니까요. 그리고 위험하니 제발 철창에서 떨어지세요.”

마야의 말에 에블린은 고개를 저었다. 의사가 통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확실하게 그에게 알려 주어야 했다.

“우리는 치료제 개발에 힘을 쓰고 있어. 곧 치료제가 개발될 테니 그때까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게. 곧, 곧 원래의 몸으로 되돌려 줄 테니.”

그에 마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에블린의 말을 모두 알아들었다는 듯이.

“꼭 약속할 테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마물이 갑자기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괴로운 듯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 거지? 어디가 아픈가? 이보게, 괜찮은 건가?”

처음 보는 광경에 에블린 또한 당황스러워 계속 말을 붙여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마님, 위험하니 물러서야 합니다!”

곧 마물의 몸 위로 거대한 기포가 생겨났다.

심상치 않은 모습에 마야가 재빨리 에블린을 강제로 뒤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기포가 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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