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에블린은 구겨질 것 같은 얼굴에 힘을 주고선 어색히 웃었다.
“잃어버린 물건은요?”
“일단 이 근처에는 없는 것 같군.”
에블린을 유인할 핑계였나 보다.
조용한 곳으로 에블린을 끌어내기 위해 슬쩍 던진 미끼를 그녀가 냉큼 물어 버린 게 잘못이었다.
에블린은 저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체이서는 에블린이 홀로 반성하는 모습을 빤히 보다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뭘요?”
“병아리처럼 낯선 사람을 쫄래쫄래 따라가지 말라고. 특히 인적이 드문 곳으로는.”
걱정이 섞여 있는 말 같았지만, 애석하게도 가장 큰 두려움을 주는 이의 조언이기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도움이 필요하다니 나선 것뿐인데.’
하지만 에블린은 눈치가 있는 이였기에 구태여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
“멍청한 건지, 아니면 순진한 건지.”
비웃음이 섞인 말은 에블린이 가졌던 순수한 선의를 잘근잘근 짓밟았다.
에블린이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 내어 가진 선의는 그렇게 그에게 닿을 수 없었다.
“아, 이 근처에는 마물이 나오지 않나?”
이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다행히도 체이서가 말을 돌려주었다.
에블린은 그제야 말문을 틀 기회에 마른 입술을 열었다.
“네. 이곳에서 10년은 살았지만 저는 마물을 본 적 없어요. 옆의 포렌 산맥에서는 자주 출몰한다고 하는데 아스트 산 쪽에서는 드물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산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도와주겠다고 한 거군.”
“보통은 안 그런가요?”
“안 그러지. 이른 아침이라지만 인적이 드문 산길을 이렇게 맨몸으로 맘 놓고 돌아다니다니. 마물에게 잡아먹어 달라 애원하는 꼴이나 다름없어.”
신랄한 표현이었지만 체이서의 말에는 틀린 점 하나 없었다.
바보같이 도와주겠다고 나선 것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닥쳤으니 말이다.
“저는 그 저택을 빠져나온 뒤로 수도원과 산 아래에 있는 마을 외에 어딜 가 본 적이 없어서 몰랐어요.”
더 말해 보라는 듯한 따끔한 시선에 에블린은 나름의 변명과 함께 횡설수설 말을 이어 갔다.
“수녀님은 저를 이런 작은 시골 마을 말고 수도로 보내고 싶어 하셨어요. 더 큰 세상을 보고 자라면 좋겠다고 하셨었죠. 저는 무서워서 거절했지만요.”
“루이사가 찾아올까 봐?”
“네. 가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살아 있다는 걸 안다면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니까.”
실제로 체이서가 찾아왔을 때 두려움의 결실이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했었다.
체이서도 그걸 알기에 그것으로 겁박했을 테고.
“겁쟁이군.”
질책에 이어 한심하다는 어조였다.
이 순간만큼은 체이서의 마음과 똑같기에 공감이 되었다.
“그러니 루이사가 되지 못한 거겠죠.”
에블린은 목걸이를 매만지며 불안감에 달달 떠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런데 어떻게 저를 기억하세요?”
에블린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무능력자로 쓸모없는 이 취급을 받던 실패자를 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냥 그가 기억력이 좋아서인 걸까?
아니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후보들을 기억해 놓는 걸까?
하지만 에블린의 물음에 그녀가 기대하는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수도원에 며칠 더 묵고 가야겠어.”
대신 뜬금없는 통보를 내렸다.
“네?”
에블린은 화들짝 놀라며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에블린의 반응에도 체이서는 대수롭지 않게 설명을 덧붙였다.
“찾는 물건이 있다고 했잖아.”
“거짓말이 아니었나요?”
“내가 뭐하러?”
체이서의 진지한 눈빛을 마주하자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에블린을 유인하기 위해 꺼낸 미끼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루만 버티자며 간절히 빌었던 어젯밤의 소원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이 산에서 찾을 게 있어.”
“아…….”
에블린의 목소리에 체이서의 오만한 시선이 와 닿았지만 그녀야말로 여기서 더 물러설 수 없었다.
“수도원은 월동 준비를 해야 하다 보니 바빠요. 그러니 손님을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조용히 머물기만 하지.”
“그래도 안 돼요…….”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지만, 드러나는 의지는 확고했다.
“여전히 내가 널 죽일까 봐 겁이 나나 보지?”
체이서는 한쪽 입술을 씰룩이며 비아냥거렸다.
그리고는 그녀가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죽일 거면 거기서 죽였겠지.”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어물쩍 넘어가는 답에 에블린은 더욱더 긴장한 듯 몸이 경직되었다.
권력으로 압박해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괜히 수도원으로 들였다가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
에블린이 단단히 마음먹고 눈을 매섭게 떴다.
이어지는 거절에 불만스러울 법도 하건만 그는 오히려 퍽 여유로워 보였다.
“그래, 내가 배려가 부족했어. 월동 준비를 하려면 아무래도 돈이 많이 필요하겠지.”
체이서는 품을 뒤지는 듯하더니 묵직한 주머니 하나를 꺼내었다.
“자, 이건 숙박비.”
그리고는 그 주머니를 에블린의 손 위에 올려 주었다.
에블린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주머니 안에 반짝반짝 빛을 내는 황금빛 금화가 가득 들어 있었다.
“아, 부족한가?”
에블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손에 또 다른 주머니가 얹어졌다.
심지어 조금 전 주머니보다 더욱 묵직했다.
상당한 금액은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이 돈이면 분명히 당분간은 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당분간이 뭔가.
몇 년은 큰 걱정 없이 지내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체이서는 루이사 가문의 사람이야.’
이 돈을 받았다가 후에 어떤 안 좋은 일에 휘말릴 줄 알고 덥석 받을까.
“아, 아니에요. 이렇게 많은 돈은 받을 수 없…….”
“흐음.”
체이서는 인내심의 한계라는 양 불쾌한 낯빛으로 에블린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더 이상 에블린을 설득하려고 들지 않았다.
“네가 거절할 만한 위치가 되는지 몰랐군.”
이상했다.
분명 체이서의 품 안에서 벗어났음에도 안겨 있을 때보다 숨통이 조이며 더욱 답답한 것만 같았다.
“살고 싶으면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겠어?”
이건 마지막 경고였다.
그래, 애초에 그에게 설득은 어울리지 않았다.
설득이라는 이름의 협박이라면 모를까.
‘조금 대화를 나눴다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리다니.’
에블린은 스스로를 비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에블린에게 선택의 자유란 건 없었으니까.
체이서는 대화를 끝으로 산을 조금 더 살펴보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에블린은 그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흐윽.”
지금껏 참아 왔던 눈물이 눈가에 고이기 시작했다.
‘왜, 왜 하필 체이서 루이사인 거야?’
과연 오만한 저 사내를 두고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수도원의 생활이 불만족스럽다며 화를 내는 것 정도는 어떻게든 버텨 낼 수 있을 것이다.
에블린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고작 순간의 불편함이 아니었다.
‘만약 찾는 물건을 다 찾고서 입막음을 한다는 이유로 수도원을 정리하면 어떻게 하지?’
귀족들은 평민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루이사 가문의 사람이라면 더더욱 사람을 치우는 데 망설임이 없겠지.
루이사 가문의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어렸을 때 충분히 겪어 보았기에 두려움이 자꾸만 몸을 잠식하였다.
에블린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땅에 고개를 묻었다.
입을 열면 금방이라도 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와 그 소리를 듣고 다시금 체이서가 돌아올 것 같아서였다.
“흐으읍.”
에블린은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도대체 누구에게 원망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기도 하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특별한 능력도 없는 주제에 루이사의 시험에서 살아남은 것? 그것도 아니면 감히 체이서 루이사의 눈에 띈 것?
아니, 애초에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가장 큰 잘못이지 않을까?
만약 에블린에게 정해진 운명대로 루이사의 시험에서 죽었더라면 라사냐는 그녀를 수도원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체이서 또한 에블린이 없는 수도원에서 하루만 비를 피하고 떠났을 테니 이러한 위험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테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수도원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만 같아 스스로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미워하더라도 이 상황에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에블린은 떨려 오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앙상히 마른 나뭇가지들 사이로 멀리 수도원의 형체가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그래, 수도원만은 절대로 지켜 내야 했다.
에블린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안겨 준 소중한 곳이며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러니 언제까지고 자리에 주저앉은 채 눈물만 쏟고 있을 수는 없었다.
에블린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 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에 안고 가는 기분이었지만 그럼에도 버텨 내야 했다.
아니,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서 살아남아 모두를 지켜야 했다.
‘최대한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하자. 비굴하다 욕해도 상관없어. 그렇게 해서라도 무사히 이 시간이 지나갈 수만 있다면야.’
물론 이마저도 이미 체이서가 에블린을 죽이겠다 마음을 먹었다면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에블린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겠다 다짐하며.
***
수도원은 아스트 산의 중간에 위치하였고, 산 중턱이다 보니 근처를 둘러싼 나무들의 높이는 상당히 높은 축에 속했다.
체이서는 에블린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한 뒤 그녀의 시선을 피해 주위에 있는 주위에서 가장 높은 나무 위로 가볍게 뛰어올라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한참이고 주저앉아 울음을 참고 있는 에블린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