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프롤로그 (1/20)

남이 된 남동생이 남편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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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리 장편소설

목차

프롤로그

1장 남동생이 생겼다

2장 남동생이 내게 반응한다

3장 남동생이 갑자기 떠났다

4장 남동생이 돌아왔다

5장 남동생이 너무 낯설다

프롤로그

예고 없이 전쟁터로 떠난 남동생이 돌아온다. 그것도 5년 만에 전쟁 영웅이 되어서. 밀리안이 금의환향한다는 소식이 성에 돌자 사용인들이 아침부터 분주했다.

프레아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제 동생을 위해 꽃다발을 손수 만들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레이첼 가문을 상징하는 아이리스와 에드모어 가문을 상징하는 아마릴리스를 한데 모은 꽃다발은 프레아가 보기에도 무척 아름다웠다.

프레아의 어머니인 레이첼 후작과 밀리안의 아버지인 에드모어 공작이 결혼한 지 어언 13년. 남동생이 전쟁터로 간 것은 5년 전이었다.

프레아는 5년 만에 남동생을 만날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는 경우가 어디 있나 싶을 정도로 매정하게 떠나 버린 남동생.

애초부터 자신을 누나로 여겨주지 않는 녀석이었지만 프레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밀리안은 제 남동생이었다.

“아가씨, 도련님이 오신다니까 기분 좋으신가 봐요. 콧노래까지 부르시고.”

“당연하지. 내가 밀리안을 얼마나 예뻐했는데. 오기만 해봐라. 싫다고 발버둥 쳐도 진하게 뽀뽀 세례를 해줄 거야.”

“어머, 아가씨. 밀리안 도련님도 이제 성인이세요. 뽀뽀라뇨. 아직도 어린애로 보신다니까.”

“아무렴 어때, 내 동생인데.”

프레아가 배시시 웃으며 시녀의 말을 되받아쳤다. 프레아는 밀리안이 질색하든 말든 아주 격하게 환영해 줄 예정이었다.

밀리안이 오는 날에 선약이 있는 것은 좀 아쉬웠지만 가문 대 가문으로 만나기로 한 날이라 취소할 수 없었다. 프레아는 제가 만든 꽃다발을 시녀에게 넘겨주었다.

“시들지 않게 잘 보관해 줘.”

“알겠습니다.”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높게 올려 묶은 프레아는 푸르스름한 보라색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거울로 제 모습을 재차 확인했다. 밀리안이 전쟁터로 가버린 뒤, 남동생이 사지에 있는데 혼인할 수 없다며 결혼을 미룬 지도 어언 5년이었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며 부모님이 선 자리를 주선한 탓에 퍽 난감했는데 때마침 밀리안이 와주어 다행이었다. 명색이 누나가 저 빼고 결혼을 해버리면 서운할 테니까.

이제 마음 놓고 좋은 신랑감을 찾아 결혼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숙원 사업을 끝낸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성을 나와서 막 마차로 올라타려는데 저 멀리 에드모어 공작이 다급하게 말을 타고 성을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

프레아가 서둘러 나가는 에드모어 공작을 불렀으나 그는 경황없이 사라진 뒤였다. 뒤이어 어머니인 레이첼 후작도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뒤따라 나갔다.

어찌나 급했는지 둘 다 실내복을 입은 채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프레아가 의아한 빛을 띠며 고개를 갸웃거리곤 마차에 올라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프레아는 다시 한번 손거울로 제 모습을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만하면 저도 꽤 예쁜 축에 속하지 않나 하며 홀로 히죽거렸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에서 말끔한 복장을 한 남성이 프레아를 향해 손짓했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 로테인 후작가의 장남, 글라디안이었다.

프레아가 제법 수줍은 티를 내며 글라디안 쪽으로 다가가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프레아의 의자를 빼주었다. 글라디안이 연신 싱글벙글한 프레아를 보며 물었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남동생이 오는 날이거든요.”

“아, 그 전쟁터로 갔다던?”

“네. 그것도 승전보를 들고 온다고 해요.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프레아가 한껏 들뜬 표정으로 동의를 구했다. 글라디안은 그런 프레아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동생 사랑은 여전하네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거든요.”

프레아가 해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제 동생인 밀리안은 무척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모두가 그 아이의 매력을 알기를 바랐다. 글라디안이 부드러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나중에 꼭 소개해 주십시오. 하도 들어서 보기만 해도 알아볼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남동생 이야기만 했었나 보네요.”

프레아가 멋쩍게 미소 지었다. 이를 본 글라디안이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즐거웠습니다.”

“그럼 다행이에요.”

저를 편하게 해주려는 빈말인 것을 알고 배시시 웃었다.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남동생인지라 프레아는 늘 주책맞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에드모어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아 검을 어찌나 잘 다루는지. 이미 15살에 오러를 제 마음대로 다룰 뿐만 아니라 최연소로 전쟁터에 나가 승리 소식만 전해준 아이였다.

능력이 출중한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프레아는 밀리안이 자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어릴 적엔 사이가 나빴지만 나이가 들면서 제법 돈독해진 편이었다. 그 무지막지하다는 전쟁터에서도 프레아의 편지만큼은 꼬박꼬박 답을 줄 정도로 상냥한 아이이기도 했다.

그러다 이번에 선을 보러 간다는 편지를 보낸 뒤로는 답장이 오지 않아 염려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걱정하던 차에 적국의 항복을 받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사지 멀쩡하게 돌아오기만을 매일 밤 빌었던 것이 효용이 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은 밀리안이 오는 날이라 저녁은 같이 못 먹을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이런 날에도 만나러 와준 것만 해도 기쁩니다.”

글라디안이 낮게 웃었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도 불편한 것 없이 편안하게 해주는 사내였다. 아직 다른 선 자리에 가보진 않았지만, 큰 잡음이 없는 한 글라디안과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창 글라디안과 다과를 나누며 대화했다. 프레아는 신이 나서 어릴 적 밀리안이 어떠했는지, 처음 가족이 되었을 때 얼마나 쌀쌀맞게 굴었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밀리안이 오는 날이라 그런지 더욱 밀리안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떠올랐다.

글라디안은 귀찮은 기색 없이 프레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간혹 프레아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간단한 접촉을 해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의도가 빤한 것을 알면서도 프레아는 모른 척 넘어갔다. 이 정도의 스킨십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밀리안이 엄청 세게 넘어졌었는데요…….”

벌써 세 번째로 밀리안과 처음 만났던 때를 설명할 즈음이었다. 딸랑거리는 맑은 방울 소리와 함께 누군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는 것 같았다.

분명 이번 약속을 위해 글라디안이 레스토랑 전체를 빌렸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프레아는 직원이 들어왔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계속 말을 이으려 했다. 그때 글라디안이 의아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프레아.”

“네?”

“남동생이 은발에 적안이라고 했던가요?”

“그랬죠. 붉은 눈이 얼마나 예쁜 줄 아세요? 남들은 핏빛 같다며 무서워하는데 저는 또 그게 반짝반짝한 루비 같아서 좋아요.”

“사람들이 왜 핏빛 같다고 말했는지 알겠네요.”

“네?”

프레아는 글라디안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그가 밀리안의 눈을 직접 본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었다. 글라디안은 프레아의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 굉장히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거든요.”

“네에?”

프레아는 글라디안의 말에 놀라 고개를 뒤로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저 멀리 은발의 사내가 보였다. 밀리안은 프레아에게 시선을 붙박은 채 삐딱하게 서 있었다.

5년 만이라 그런가. 벌써 훌쩍 커서 애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예상 밖의 상황에 프레아가 놀란 얼굴로 밀리안을 바라보다 말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밀리안이 프레아에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프레아 역시 기쁜 마음에 그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밀리안!”

밀리안은 제 품에 안겨오는 프레아를 꽉 끌어안으며 글라디안을 차갑게 노려봤다. 글라디안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두 남매의 재회를 지켜보았다. 남매라고 하기에는 퍽 애절한 재회 현장이었다.

이때 밀리안이 글라디안에게 턱짓으로 나가라는 듯이 문 쪽을 가리켰다. 글라디안은 선명하게 전해오는 살기에 더욱 당혹스러워하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밀리안! 언제 왔어?”

프레아가 밀리안을 제게서 떼어내며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밀리안은 프레아가 저를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풀곤 예쁘게 미소 지었다.

프레아는 5년 만에 몰라보게 큰 밀리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예쁘게 빛나는 붉은 눈 하며 반짝거리는 은발은 여전했지만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었다.

저와 얼추 비슷하던 키는 어느새 저보다 훌쩍 커 있었다. 프레아의 머리가 그의 어깨에 간신히 닿았다. 프레아도 키가 큰 편인지라 밀리안의 성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글라디안은 이중적인 밀리안의 태도에 경악하고 있었다. 그는 무슨 실수를 한 건지 몰라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연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남다른 재회 현장에 당황스러웠다. 밀리안이 프레아를 향해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방금 왔어. ……근데 프레아, 지금 뭐 하는 거야?”

그의 물음에 프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응? 뭐 하냐니? 편지 못 받았어? 나 선본다고 했잖아.”

프레아의 말에 밀리안의 시선이 프레아의 머리 장식 쪽으로 향했다. 프레아가 제법 아끼던 머리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밀리안이 준 머리 장식이었다. 밀리안이 머리 장식 쪽으로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남이 된 남동생이 되려 한다 002화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프레아의 머리 장식이 밀리안에 의해 풀어졌다. 그 덕에 높게 올려 묶은 머리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아침에 열심히 바른 향유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밀리안은 풀어진 그녀의 머리카락 한 줌을 손으로 움켜쥐고 가볍게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마치 그리운 향이라도 맡는다는 듯이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프레아는 갑작스러운 밀리안의 행동에 놀라 그대로 굳었다. 밀리안의 시선이 프레아에게로 향했다. 어쩐지 이글거리는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기 어려웠다.

프레아의 눈빛이 얕게 흔들렸다.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자신이 알던 남동생과 사뭇 다른 행동에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때 그의 가는 손가락이 프레아의 입가를 매만졌다. 그리고 낮게 읊조렸다. 사나운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아주 묵직하게. 마치 그녀를 탓하는 것처럼 강하게.

“내가 아닌 남자한테 웃기나 하고.”

“미, 밀리안?”

프레아는 밀리안의 갑작스러운 애정 행세보다 뒤에 있는 글라디안이 신경 쓰였다. 그래도 결혼할지도 모르는 남자인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했다.

프레아가 밀리안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 했으나 밀리안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를 움켜잡으며 막았다.

“잠깐만, 뒤에 글라디안 님이 계시잖아.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 하하.”

프레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밀리안의 어깨를 퍽퍽 때렸다. 밀리안은 그럼에도 꿈쩍 않고 그녀를 제게로 바짝 안고 있었다. 밀리안이 프레아에게서 글라디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엄청난 기세로 글라디안을 노려보던 밀리안이 프레아를 향해 짧게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선을 본 거지?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무슨 소리야, 내가 선을 보는 게 왜 네가 미치는 일인데?”

프레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밀리안을 바라보았다. 이에 밀리안이 짧게 혀를 차더니 사색이 된 글라디안을 턱짓하며 서늘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저자의 눈을 뽑아버리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야, 프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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