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외전 제2화
야릇한 말과 뜨거운 숨결을 제 귀에 불어넣고 아들의 뒤를 따라 욕실로 향하는 남편의 뒷모습은 약이 오를 정도로 지나치게 담백하고 우아했다.
사빈은 달아오른 뺨을 손등으로 지그시 눌렀다.
“……얄미워 죽겠다니까.”
말만 그렇게 할 뿐, 그녀의 눈동자에는 진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다.
벌써부터 강헌이 선사할 짜릿한 자극과 쾌감에 몸이 기대하는 게 느껴졌다.
아랫배가 뜨거운 한 점을 향해 움츠러드는 기분이었고 다리 사이로 덥고 습한 열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러다 아빠가 저를 따라 욕실로 들어오자 신이 나서 종알거리는 아들의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사빈은 황급히 다른 욕실로 향했다.
‘나도 참. 아직 대낮인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말.’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욕실에서 나온 사빈의 얼굴은 발칙한 생각을 했다는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맑았다.
부엌으로 향하자 건이 잔뜩 기대에 부푼 눈을 하고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쨔짠! 엄마, 건이랑 압빠가 케이크 만들어떠요!”
“우와, 너무 잘 만들었다! 정말 건이랑 아빠랑 만든 거예요?”
“응!”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이 사랑스러워서 사빈이 건을 끌어안고 쪽쪽 볼에 입을 맞추었다.
“예뻐라. 우리 건이 누구 아들이지요?”
“청사빙, 이강헝 아들임미다!”
“아휴, 똑똑해라.”
다시 한번 뽀뽀 세례가 이어지자 건이 까르르 웃으며 뒤로 넘어갔다.
“나는 안 해 주나?”
아들과 둘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사빈은 옆에서 불쑥 들려오는 낮고 굵은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나도 열심히 만들었는데.”
강헌의 그윽한 눈빛에 사빈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이 참.”
“맞아! 압빠도 열심히 만드셔떠요! 엄마가 뽑뽀해조.”
뽑뽀! 뽑뽀! 아들의 열렬한 외침에 강헌은 흐뭇해졌다. 역시 누구 아들인지 눈치도 빠르고 예의도 바르다.
“얼른.”
강헌이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로 제 얼굴을 내밀었다.
입술을 안으로 말던 사빈은 이내 남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양 볼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뒤로 물러가는 그녀를 따라간 강헌이 아내의 입술을 살짝 머금었다 놓았다.
“이 뒤는 밤에 계속할게.”
사빈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인 강헌은 빨갛게 물드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귀엽고 여전히 사랑스러우며 여전히 아름다운 사빈이었다.
“케이꾸! 케이꾸!”
엄마 아빠의 애정 표현이 무척이나 익숙한 듯 건은 두 사람의 행동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의 바짓자락을 붙잡아 흔들었다.
“그래, 케이크 먹자.”
건을 전용 의자에 앉힌 강헌이 케이크를 잘라 아내와 아들 앞에 각각 놓아주었다.
건은 아빠가 엄마를 먼저 챙기는 것에도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다.
“잘 먹게뜸미다!”
“네, 우리 건이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세요.”
“녜!”
건은 작은 포크로 케이크의 끝부터 조금씩 잘라 맛을 보았다.
아이답지 않게 우아한 그 모습은 옆에 앉아 있는 강헌과 똑 닮아 있었다.
본인도 업무 때문에 바쁘면서, 그는 집에 있을 땐 사빈이 쉴 수 있도록 최대한 자신이 건을 케어했다.
때문에 건은 강헌의 우아하고 점잖은 태도를 몸에 익히게 되었고 그것이 사빈을 흐뭇하게 했다.
“우리 건이 혼자서 포크로 잘 먹네?”
“헤헤. 엄마! 아아-.”
“엄마 주는 거예요? 고마워라.”
사빈이 입을 벌리자 건이 짧은 팔을 쭉 뻗어 포크로 콕 찍은 케이크 조각을 쏙 넣어 주었다.
“건이가 만들어서 그런지 너무 맛있다.”
다람쥐처럼 오물오물 케이크를 먹는 사빈의 입가를 바라보던 강헌의 눈빛이 짙어졌다.
“사빈아.”
“응?”
몸을 일으킨 강헌이 그녀에게로 상체를 숙이며 입가에 묻은 크림을 살짝 핥은 뒤 미소를 지었다.
“묻어서.”
“마, 말을 해 주지.”
“이제 괜찮아.”
귀엽긴- 하고 덧붙이는 그의 말에 사빈의 볼이 화끈거렸다.
“엄마 얼굴에 불 나떠! 호오- 호오-.”
건이 입을 병아리 부리처럼 내밀고 사빈의 얼굴에다 바람을 불었다.
아들의 반응에 부끄러워진 사빈은 케이크 위에 얹은 라즈베리를 집어서 건의 입에 넣어 주었다.
오물오물. 방금 사빈과 똑같이 움직이는 작고 통통한 입술을 보며 강헌이 낮게 웃었다.
행복한 오후였다.
* * *
“아흣…….”
사빈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온몸의 쾌락이 한 점으로 모이는 기분이었다.
그 중심에 남편인 강헌이 있었다.
젖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사빈의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눈빛은 색정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쪽쪽. 하얀 살결에 입을 맞추며 올라온 강헌이 고개를 기울이며 사빈과 입술을 맞댔다.
맞물린 입술이 서로를 머금으며 겹쳐졌다.
말캉한 근육이 비벼지며 할짝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만을 계속 기다렸어.”
“강헌 씨…….”
그는 자신의 이름을 힘겹게 내뱉는 사빈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요즘 너무 바빴잖아.”
요 며칠, 각자의 일정이 너무나도 빡빡하여 제대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스케줄 때문이기도 했지만 녹초가 되어 먼저 침대 위로 쓰러져 잠든 사빈의 이마 위로 짧게 키스를 남기는 것이 다였던지라, 요즘 강헌은 신경이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
그에게는 아내를 끌어안고 잔뜩 사랑을 나누는 것만이 피로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나 제 만족을 채우자고 피곤한 사빈을 괴롭힐 수도 없어서 차라리 일에 매진하던 나날이었다.
덕분에 직원들은 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 강헌의 작은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벌벌 떨며 하루하루 공포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둘만 있을 땐 나만 봐줘.”
강헌이 사빈의 손바닥에 입술을 깊이 묻으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깊은 눈매 아래로 음영이 졌다.
사빈의 손바닥에 그의 높은 콧대가 닿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남편의 잘생긴 얼굴을 덧그렸다.
“강헌 씨.”
“응.”
“사랑해요.”
“…….”
“저도 기다렸어요. 이 시간만을.”
그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사빈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마음껏 끌어안고 밤새도록 탐하겠다는 신호라는 것을.
“오늘 급한 일을 해결해서 월요일에는 오후 늦게 출근하기로 했어요.”
그녀는 강헌의 뺨을 붙잡은 채 제게로 내렸다.
“그러니까…… 원하는 대로 해도 돼요. 강헌 씨만 괜찮다면.”
“어쩌자고.”
말을 멈춘 강헌은 스스로를 다스리려는 듯 잠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다시 천천히 내쉬며 말했다.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알고.”
“강헌 씨가 무슨 생각을 하든 나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니까요.”
예쁜 소리만 한다, 내 아내는.
그녀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행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사빈을 향한 독점욕과 소유욕은 여전히 끝없이 샘솟았다.
소중하게 아껴 주고 싶다가도, 이따금…… 회사에도 갈 수 없도록 엉망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내 침대에서 둘만 있고 싶기도 했다.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일들은 전부 잊고 오직 서로만 눈에 담고 서로만 생각하도록.
하나 이제는 가족이 생겼고, 맡은 업무가 많았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늘어갈수록 부부 둘만의 시간은 적어졌다.
그게 아쉬워서 강헌은 요즘 한 가지 준비하고 있는 게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군.’
그날을 생각하니 앞으로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사빈아.”
부드러운 살결을 어루만지자 사빈의 붉은 입술 사이로 야릇한 소리가 흘렀다.
“키스해 줘.”
손을 뻗은 그녀는 남편의 목을 휘감고 제게로 당겼다.
겹쳐진 입술 사이로 젖은 근육이 서로를 휘감고 얽었다.
오랜만에 맡는 사빈의 향기에 그는 취할 것만 같았다.
“아……!”
그녀는 여전히 너무 좁고 뜨거웠다.
받아내기 버겁다는 듯 아내의 몸에 힘이 들어가자 그는 쉬이- 하며 달래듯 얼굴 이곳저곳에 키스를 했다.
“강헌 씨…….”
애원하듯 저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퍽 색스럽고 야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광배근이 날개처럼 펼쳐졌다 모아지기를 반복했다.
커다랗고 단단한 몸 아래에서 사빈은 정신없이 흔들렸다.
그러다 이내 두 사람은 서로를 세게 끌어안고 같은 지점에 올랐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땀이 서로의 몸을 타고 흘렀다.
“하아, 하…….”
강헌은 사빈을 마치 아이처럼 제 몸 위에 올려놓고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사랑해.”
낮게 속삭인 강헌이 그녀의 하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으응…… 나도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헌은 몸을 확 뒤집었다.
그는 제 아래에 누운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알아.”
짙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를 보며 사빈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우, 우리 방금 끝냈는데.”
강헌이 눈을 접으며 싱긋 웃었다.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면서.”
길고 커다란 손가락이 곳곳이 붉은 자국으로 물든 하얀 몸을 부드럽게 매만지다 이내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그래서 사빈이 말대로 하려고.”
민감한 곳을 건드리자 가녀린 몸이 가늘게 떨렸다.
강헌은 다시 한번 아내와 입술을 포개며 그녀를 열렬히 몰아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