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의 연인에게 (70)화 (70/90)

제70화

떨어져 있는 동안 강헌은 수없이 다짐하고 되뇌었다.

다시는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으리라고.

품에 안게 된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사빈의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겠다고.

안았던 팔을 푼 그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감싸 어루만졌다.

“사빈 씨.”

숨을 낮게 들이마신 강헌의 입술이 다시 벌어진다.

“사빈아.”

바람 앞에 선 작은 꽃처럼, 그녀의 동공이 연약하게 흔들렸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온 마음을 담아, 다정하고 애틋하게.

“혼자서 힘들어하지 말고 내게 기대. 앞으로는 함께 가자. 그게 어디든.”

붉게 짓무른 눈가에 가만히 입술을 내린 강헌은 허락하듯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상관없어.”

“이강헌 씨한테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이미 많은 걸 주었어. 당신의 위로가 없었다면 난 벌써 무너졌을 거야.”

하얀 이마에, 젖은 뺨 양쪽에 입을 맞춘 강헌이 사빈의 입술을 아주 살짝 머금었다 놓았다.

“당신과 진짜 부부가 되고 싶어.”

그의 더운 숨결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허락해 줘.”

이강헌 씨는 비겁하다. 자신이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빈아.”

다시 한번 이름이 불리자, 굳게 세워 놓았던 마음속 장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나를 사랑해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증명할게.”

강헌이 그녀의 손등을 들어 입을 맞추었다. 희고 가는 손가락에는 미처 빼지 못한 반지가 여전히 끼워져 있었다.

“평생, 천사빈 곁에서.”

엄마, 아빠. 이 남자의 손을 잡아도 괜찮은 걸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는데…… 믿고 싶어.

아니, 어쩌면 이미 믿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떠나지 말아요.”

“절대로.”

강헌의 눈이 짙게 내려앉았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다.

사빈은 그의 어깨를 꼭 붙잡았고, 강헌은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감싸 받쳤다.

뜨거운 감정이 속에서 왈칵 차올랐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온기를 드디어 손안에 넣었다.

물기 어린 혀끝과 혀끝이 맞닿음과 동시에 서로에게 휘감겼다.

하나, 부족하고 또 부족했다.

강헌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려 침대에 눕힌 뒤 다시 입을 맞추었다.

그러면서 팔을 뒤로 하여 재킷을 벗어 던지고 넥타이를 풀어 내렸다.

사빈의 숨이 가빠지자 그의 호흡 역시 거칠어졌다.

사랑스럽다.

그녀가 소중하고, 또 사랑스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 넘치는 마음을 그녀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녀가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강헌의 입술이 그녀의 피부를 부드럽게 머금으며 타고 내려갔다.

그토록 그리웠던 사빈의 싱그러운 향기가 점점 더 진해지자 그의 목울대에서 긁는 소리가 났다.

톡. 톡. 톡. 어느새 풀려 나간 블라우스는 침대 아래로 힘없이 풀썩, 내려앉았다.

환하게 드러난 희고 연한 살결에 붉은 자국이 꽃잎처럼 점점이 수놓였다.

스커트와 속옷이 차례로 낙하했다.

이윽고 강헌 역시 걸치고 있던 것들을 모두 벗어 던지고 그녀와 몸을 겹쳤다.

살갗과 살갗이 맞닿자, 긴장되고 부끄러우면서도 어딘가 안심이 되었다.

사빈은 손을 뻗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강헌의 얼굴을 감쌌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의 손바닥에 키스했다.

간지러워서 사빈이 살짝 웃자 그의 눈이 더욱 짙게 내려앉았다.

“사랑해.”

그의 입술이 이마에, 눈가에, 볼에 가라앉는 깃털처럼 내려왔다.

“더는 혼자 두지 않을 거야.”

“강헌 씨.”

잠깐 숨을 들이마신 사빈이 입가를 올렸다.

“사랑해요.”

순간 그의 동공이 크게 벌어지며 흔들렸다.

“천문호에게 복수하게 되었다는 기쁨보다, 당신을 더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슬픔이 더 컸어요.”

그는 자신에게 위로를 받았다고 했지만, 사빈이야말로 강헌에게서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

자신의 편을 들어 주고, 감싸 주고, 그토록 다정한 손길로, 뜨거운 눈길로 저를 대한 사람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이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럴 일 없어. 평생.”

입술이 포개졌다. 부드럽게 시작한 입맞춤이지만 서로를 갈구할수록 점점 더 격렬해졌다.

그의 커다란 손이 사빈의 몸 곳곳을 어루만졌다.

반듯한 어깨를 지나 솟아오른 살결을 쥐자 사빈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아…….”

온 신경이 그의 손가락이 문지르는 곳으로 꼿꼿하게 몰렸다. 사빈의 몸이 움찔거리자 강헌은 달래듯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입으로 예쁘게 솟은 곳을 머금었다.

부드럽게 빨아들이다가도 일순 강하게 주어지는 자극에 가슴 끝이 저릿했다.

사빈은 손으로 그의 머리칼을 헤치며 잘게 떨었다.

커다란 손이 굴곡진 허리와 납작한 배를 지나 사빈의 다리 사이로 숨어들었다.

이전에도 그의 손이 닿은 적 있던 곳이었다.

마음이 통해서일까.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읏…… 강헌 씨…….”

그의 손가락이 젖은 살결을 헤집자 사빈은 몸을 크게 뒤틀었다.

“잔뜩 젖어 있어…… 예뻐.”

질척한 물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강렬한 쾌락에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가 안으로 들어올 때만큼은 아니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 보는 생경한 고통에 사빈이 작게 몸부림치자, 그가 달래듯 입을 맞추며 천천히 자신을 밀어 넣었다.

“윽…….”

강헌은 이성을 놓지 않기 위해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미치게 좋았다.

사방에서 사빈이 자신을 조여 오는 감각은 돌아 버릴 정도로 황홀했다.

까딱 잘못하다간 이대로 사빈을 거칠게 몰아붙이고 말 것 같았다.

“가, 강헌 씨……! 조, 조금만 더 천천히……!”

그로서는 죽을힘을 다해 스스로를 억제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만, 사빈에게는 그조차도 아주 묵직하고 커다란 통증으로 다가왔다.

“후…….”

강헌은 그녀를 끌어안고 가는 다리를 제 허리에 감은 다음, 아주 느리고 깊게 자신을 깊이 묻었다.

“아윽……!”

사빈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뻐근한 통증에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기분이었다.

“사빈아.”

“하아, 하…….”

“조금만 힘을 빼 봐. 응? 천천히.”

사빈은 어떻게든 그의 말을 따르려 노력했다. 하지만 힘을 빼기가 무섭게 그가 깊이 찔러 와서 다시 꽉 조이고 말았다.

그런 행위가 반복되자, 조금씩 조금씩 고통에 쾌감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사빈의 몸은 그의 움직임에 맞추어 반응하고 있었다.

서서히 맞아 가는 합에 두 사람의 입에서 끊임없이 교성과 신음이 터졌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미치도록 행복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땀이 서로의 몸을 타고 흘렀다.

자신의 아래에서 흔들리는 사빈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강헌은 확신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금 그녀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고.

설령 기억이 다 지워지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은 그의 머릿속에, 몸에 깊이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으리라고.

강헌은 지쳐 눈을 감은 사빈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제 허리에 감기는 가는 팔의 감촉에 미소가 흘렀다.

사빈은 둥, 둥, 하고 뛰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동시에 감사했다.

그와 만날 수 있음에. 만나서,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음에.

“사빈아.”

사빈이 숨을 작게 들이켰다. 그가 자신을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고 가슴이 떨릴 만큼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전부터 이렇게 불러 왔던 사람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강헌은 대꾸 없이 저를 빤히 올려다보는 사빈을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봐?”

“되게…… 익숙해 보여서요. 그렇게 부르는 게.”

“속으로 매일 이렇게 불렀거든.”

그녀가 전혀 몰랐다는 듯 눈을 고쳐 뜨자 강헌이 눈을 접으며 웃었다.

“전부터 이렇게 부르고 싶었으니까.”

“언제부터요?”

“신혼여행 갔을 때부터.”

“정말이에요?”

“술에 취한 천사빈이 귀여워서.”

붉게 물드는 볼이 사랑스러워서 강헌은 그녀의 작은 얼굴을 붙잡고 양쪽에 입을 맞추었다.

“당신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었어.”

몰랐다. 강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아니, 이따금 그렇게 느꼈던 순간도 있었으나 재희와 만나서 그녀의 말을 들은 후로는 그저 자신의 착각이라 여겼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강헌은 예전에 해남에 내려갔을 때 그녀의 부모님이 남긴 사진과 글귀를 보았다고 말했다.

“저, 정말이에요? 정말, 정말 우리 엄마 아빠가 남긴 것들을 봤어요?”

마구 떨리는 목소리에 그의 심장이 저몄다.

달래듯 사빈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에게 남기는 사진과 글도 있었어.”

놀라 커다래진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오늘, 몇 번이나 그녀를 울려 버리고 만다.

강헌은 손가락으로 연신 그녀의 눈가를 닦아 냈다.

“어, 어떻게요? 어떻게 봤어요? 지, 지금 가지고 있어요?”

“한 카페에 붙어 있었어. 사진작가, 여행작가 부부가 남긴 거라고 주인이 말하더군.”

“카페……?”

그게 왜 거기에…….

“For my baby, angel bean.”

강헌의 말에 사빈은 시간이 멈추는 듯했다.

순간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우리 딸은 천사가 가져다준 열매야.]

[그게 모야?]

[아주 아주 사랑스럽다는 뜻이야.]

‘엔젤빈’은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오직 엄마 아빠와 저만 알고 있는 애칭이었는데.

강헌이 알고 있다. 그러니까 정말로, 엄마 아빠가 남긴 사진과 글을 본 것이다.

“어, 엄마 아빠가…… 나한테…….”

“카페는 운영 중이라고 해. 벽에는 여전히 당신 부모님께서 찍은 사진과 글이 붙어 있다고 하고.”

“그, 걸, 흐윽, 어, 흑, 언제, 어떻, 게 봤어요?”

울음 섞인 목소리는 마구 떨렸지만 강헌은 용케 알아듣고 그녀의 뺨을 부드러이 매만졌다.

“도망친 적이 있었어. 스물셋에, 해남으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었다.

보육원에서 자라 입적된 일, 지쳐 도망친 일, 그리고 재희의 얘기까지.

그가 보육원에서 자랐다는 말에 사빈은 크게 놀랐고, 그가 카페에서 자신의 부모님의 사고 소식을 듣고 남겨진 그들의 아이에게 동질감을 느꼈다는 것에선 또다시 오열하듯 울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사빈은 그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버텼어요. 잘 해 왔어요.”

강헌은 우는 대신 소리 없이 웃는 쪽을 택했다. 이미 그의 아내가 그의 몫까지 너무 많이 울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야 누가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동시에 가슴이 아팠다.

그간 이 작은 몸 안에 이 커다란 울음을 꾹꾹 눌러 감춰 왔으니.

강헌은 온전히 자신의 아내가 된 여자를 끌어안고 다독거렸다.

……이제 재희의 얘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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