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강헌은 무척이나 천천히 다가왔으니까. 마치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기라도 하듯.
피해야…… 하는 걸까?
아침마다 하는 그와의 키스는 달콤했다.
문밖에서 듣고 있을 박 여사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면서도, 어느 때는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와의 아침이 기다려졌다.
동시에 그가 궁금해졌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밥은 먹었는지, 집에는 언제 오는 것인지 등 묻고 싶은 것이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오늘 내내 서재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머릿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강헌의 얼굴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금 전 재킷도 벗지 않은 채로 자신에게 케이크를 건네주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에 깊고 잔잔한 파장이 일었다.
‘밖에서 박 여사님이 듣고 계실지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는 진짜 부부처럼 보여야 하니까…….’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사빈은 피하는 대신 눈을 질끈 감았다.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
혀로 살짝 그녀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핥은 강헌은 이내 입술을 맞물리며 깊이 다가왔다.
매끄럽게 밀려들어 온 혀가 사빈의 혀를 느릿하게 휘감았다.
“읏…….”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린 사빈은 그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여린 등과 허리를 받치며 제게로 끌어당겼다. 그 반동으로 인해 혀가 더욱 깊이 얽혔다.
촉, 촉, 입술이 맞붙었다 떨어지는 야릇한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방금 전까지 케이크를 머금었던 그녀의 입안은 무척이나 달고 부드러웠다.
단맛을 싫어하는 강헌이나, 다디단 사빈의 입술은 언제 머금어도 맛있었다.
강헌이 몸을 실으며 더 가까이 다가오자 사빈은 쥐고 있던 포크를 놓쳤다.
크림이 묻은 포크가 러그 위로 떨어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
조금씩, 조금씩 다가간 그의 커다란 몸이 사빈의 여린 몸을 짓누를 듯 덮었다.
균형을 잃은 사빈은 소파 위로 쓰러졌고 강헌은 입술을 떼지 않은 채 따라붙었다.
“으응…….”
몸 위로 그의 무게가 실리자, 맞닿은 곳은 불이라도 지펴진 듯 뜨거웠다.
사빈은 저도 모르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고, 그 행동은 강헌에게 강한 자극을 주었다.
“아……!”
그는 사빈의 다리를 제 허리에 감으며 혀를 더욱 깊이 밀어 넣었다.
점점 더 농염해지는 키스에 사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온몸에 찌릿한 감각이 흘렀고, 특히 아랫배 부근이 저릿거렸다.
강헌의 입술이 목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자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강헌 씨…….”
신음과 섞인 희미한 목소리에 강헌의 목울대에서 긁힌 듯 거친 소리가 났다.
그는 사빈의 티셔츠를 밀어 올린 뒤 쇄골에 입술을 묻었다.
달큰한 살내음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붉은 자국을 내며 입술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혀가 잔뜩 곤두선 곳에 닿는 순간.
“하으……!”
사빈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강헌은 달래려는 듯 허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혀로 부드러운 살결을 천천히 핥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숱 많은 검은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붉은 자국은 꽃잎처럼 사빈의 목에서부터 배꼽까지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잠깐, 잠깐만요……!”
희미한 애원에도 강헌은 멈추지 않았다.
제 움직임에 따라 사빈의 몸이 여리게 떨릴 때마다 흥분이 차올랐다.
사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하는 키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극적인 그의 움직임에 어쩔 줄을 몰랐다.
머리로는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도저히 그만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선사하는 짜릿하고 뜨거운 감각을 더 느끼고 싶었다.
“강헌 씨…… 하아…….”
달뜬 얼굴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 대는 사빈을 보자 오늘은 정말로 참을 수 없어졌다.
그의 인내심은 진작에 바닥난 지 오래였다.
다시 한번 사빈과 입술을 겹친 그는 손으로 그녀의 옷자락을 헤집으며 부드러운 살결을 어루만졌다.
더 가까이 그녀를 느끼고 싶다.
이렇게 맞닿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당신 안을 거야.”
그녀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이번엔 진짜로.”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잔뜩 날이 선 그의 눈빛.
사빈은 고개를 저어야 했다. 그게 옳았다. 그런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가 선사하는 짜릿한 감각에 계속 잠겨 있고 싶었다.
“잠깐,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요.”
“천사빈.”
그의 목에서 긁힌 듯한 소리가 났다. 그는 말하고 싶었다. 다 털어놓을까. 재희와의 관계를, 그리고…… 자신의 마음도.
“이렇게까지 자극해 놓고 도망가려고?”
“강헌 씨에게는…… 연인이 있잖아요.”
강헌이 속삭이는 그녀를 뒤에서 거칠게 끌어안았다.
“강헌 씨…….”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만 생각하면 안 되나?”
낮고 짙은 목소리에 사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당신하고 나, 둘만.”
“…….”
“제발.”
자신을 원하는 그의 눈빛에 그녀의 마음은 속절없이 흔들렸다.
낮게 으르렁거린 그가 커다란 손을 아래로 내렸다.
‘안 돼……!’
지금껏 단 한 번도 타인에게 만져진 적도, 보인 적도 없는 곳에 그의 손이 닿았다.
당황한 사빈이 다리를 버둥거리자 강헌이 쉬이, 하며 그녀를 달랬다.
그는 입술을 겹치며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강한 쾌락이 사빈을 덮쳤다.
그녀는 매달리듯 강헌의 옷깃을 꼭 붙잡았다.
신음은 그의 입안에 삼켜졌고, 쾌감은 더욱 커져 갔다.
“가, 강헌 씨, 그만……!”
그녀의 몸이 잘게 떨렸다. 가쁘게 호흡하는 사빈의 이마에 입을 맞춘 강헌이 다시 한번 그녀의 입술을 길게 머금었다.
야릇한 열기가 뒤섞인 공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강헌은 그대로 사빈을 품에 끌어안은 뒤 그녀의 등을 연신 쓸어내렸다.
“괘, 괜찮…….”
“조금만 이렇게 있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낮고 단단한 음성이 꼭 저를 달래 주는 것 같아, 사빈은 긴장된 몸에서 조금씩 힘을 뺐다.
이윽고 안겨 있기 편한 자세를 취한 사빈은 그에게서 나는 짙은 우디 향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가까이에서 맡으니 더욱 좋았다.
향기도 섹시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처음 알았다.
쿵, 쿵, 쿵.
다소 빠르게 뛰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자니, 방금 전 행위의 여파인 듯하여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어, 어떻게 그런 짓을…….’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미쳤어. 정말 미쳤나 봐, 천사빈!’
아직도 전류에 감전된 듯 찌릿한 느낌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그런 행위를…….
그녀 자신보다 그녀의 몸을 더 잘 알고 있는 듯 강헌의 커다란 손은 부드러우면서도 매끄럽게 유영하며 기분 좋은 곳만 건드렸다.
나른하게 풀렸던 몸에 다시 힘이 잔뜩 들어갔다.
사빈은 그의 가슴을 살짝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강헌도 그녀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어디 불편합니까?”
“아, 아뇨. 그냥…… 계속 늘어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사실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아요.
사빈은 강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우리 집, 당신 서재인데 뭐가 어떻습니까.”
우리 집, 당신 서재라는 말에 사빈의 마음에 봄바람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부끄러움이 점점 더 심해질 것 같아서 말을 돌렸다.
“아, 아버지, 어머니께서 혼자 있어도 흐트러지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아버지, 어머니.
딱딱한 호칭에 강헌의 눈 밑이 움찔거렸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빈은 보지 못했다.
“내 생각보다도 더 엄하신 분들인가 봅니다.”
“……아무래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것에 비하면 두 형님은 비교적 자유롭게 자란 듯합니다. 호칭도 그렇고.”
순간 크게 벌어졌던 사빈의 동공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가슴은 불안한 소리를 내며 크게 뛰고 있었다.
“몸이 아파서 요양까지 해야 했던 막내딸에게 더 너그러울 것 같은데.”
“……몸이 안 좋으니 실수가 잦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군요.”
대답과는 다르게 강헌은 의문이 걷히지 않은 눈으로 계속해서 사빈을 주시했다.
“…….”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그의 시선이 느껴져서 사빈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설마…… 눈치챈 걸까?
내가 천문호와 추연실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저 스스로 조심한 것도 있어요. 부모님께 너무 허물없이 대하면 혹여 이런저런 말이 나돌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아. 덧붙이지 말 걸 그랬나. 더 이상하게 들렸을까.
“그랬군요.”
강헌은 더 캐묻는 대신 바닥에 떨어진 포크를 주워서 봉투 위에 올려놓았다.
“다시 가져오라고 할까요.”
“아, 아뇨. 마들렌만 먹을게요. 케이크는 나중에 먹죠, 뭐.”
다소 급하게 마들렌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려는 찰나.
강헌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체할지 모르니 천천히 먹어요.”
“……네.”
“물을 가져오겠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려던 사빈은 생각을 바꾸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강헌과 조금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강헌 역시 사빈과 같은 생각이었다.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해서 일부러 직접 물을 가지러 갔다.
나오며 문을 닫은 강헌은 마른세수를 했다.
“……후.”
하마터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 뻔했다.
달콤한 살결에서 도무지 입술과 몸을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사빈과 함께 있을 때면 이성이 날아가고 본능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본능대로…… 그녀를 안고 싶었다.
그러나 서재에서 이토록 갑자기 안고 싶지는 않았다.
소중하게 대해 주고 싶었다. 아프지 않도록 다정하게 아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빈은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은 걸까.
혹시……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인 걸까.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한 강헌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역시 박 여사는 퇴근을 한 모양이었다. 1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커다란 집에 오직 그녀와 자신, 단둘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강헌은 우선 차가운 물을 한 컵 들이켰다.
사고의 흐름이 자꾸만 한쪽으로 쏠려서 미칠 지경이다.
좀 더 정신을 차려야지 싶다가도, 위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사빈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이러다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래서 사빈과의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런 생각이 들자 정신이 확 들었다. 강헌은 우선 옷을 갈아입으면서 마음을 천천히 다스리기로 했다.
방금 전, 가족 얘기를 꺼냈을 때 동공이 흔들리던 사빈의 모습을 떠올리자 서서히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
한편, 강헌을 기다리는 동안 사빈은 창가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옷매무새를 다듬긴 했지만…… 젖은 속옷을 갈아입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강헌이 물을 가지고 올라올 것이다. 속옷을 갈아입고 오기는 너무 민망했다.
“……하아.”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사빈.
‘이대로 지낸다면 끝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만약 그와 끝까지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순간 재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자 사빈은 자신이 큰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냐, 난 계약에 따르고 있는 거야.”
그들이 부부 관계를 나누고 있다고 철저히 속여야 한다. 그것이 강헌과 결혼을 할 때 계약했던 조건이다.
자신은 계약을 이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생소한 접촉에 잠깐 정신을 빼앗겼을 뿐이라고, 절대로 강헌을 마음에 담기 시작한 게 아니라고,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듯 되뇌었다.
드르륵-.
책상 위에 두었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진우 선배네?”
[호텔에서 남편분 봤어. 마들렌은 잘 먹었어?]
[네, 레몬 맛이 참 상큼했어요.]
답장을 보내자마자 곧바로 메시지가 왔다.
[초코 케이크도 괜찮았지? 그거 이번에 엄청 공들인 신작이거든.]
“초코 케이크……?”
[그런데 사빈이 너, 입맛이 변했나 보더라. 베리 들어간 거 싫어한다면서.]
“내가……?”
아니, 자신은 여전히 베리 계열이 들어간 디저트를 좋아한다.
분명 내게 주려고 마들렌을 사 왔다고 했는데. 아니…… 그가 그 말에 대답을 했었나?
사빈은 기억해 냈다.
강헌은 세인트마리아 호텔 베이커리가 맛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연인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