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의 연인에게 (40)화 (40/90)

제40화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였다. 그가 말할 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사빈의 입술에 닿았다.

강헌이 사빈의 손을 붙잡고 제 어깨로 이끌었다.

“꽉 잡아요.”

“이, 이강헌 씨.”

“목을 휘감아도 좋고.”

등줄기가 찌릿했다. 사빈은 눈을 꽉 감고 싶었다.

“그리고 호칭.”

“하아…….”

“제대로 불러야지.”

커다란 손이 사빈의 등을 감싸 제게로 바짝 당겼다. 그 반동에 순간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 떨어졌다.

강헌의 눈빛이 순식간에 위험하게 번뜩였다.

“박 여사가 다가온 것 같군.”

사빈에게는 그런 기척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제처럼 소리 참지 말아요.”

“……네.”

“호칭도 제대로 부르고.”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사빈의 동공이 갈피를 잃고 제멋대로 흔들렸다.

그러나 강헌은 시선을 집요하게 붙들며 대답을 요구했다.

“네, 강헌 씨.”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강헌은 사빈의 허리를 휘감아 당겨 입술을 겹쳤다.

곧장 벌리고 들어간 혀가 사빈의 것을 매끈하게 휘감았다.

거친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키스에 그녀의 몸이 서서히 뒤로 밀렸다.

“으응……!”

뒷걸음질 친 사빈의 등이 침실 문 바로 옆 벽에 닿았다.

‘박 여사님이 바로 앞에서 듣고 있을 텐데!’

그녀가 붙잡은 강헌의 어깨를 조금 밀어냈지만 마치 고목나무를 미는 듯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헌은 그녀의 입술을 물고 혀를 미친 듯이 뒤섞으며 놔주지 않았다.

그러다 쪽, 쪽, 소리를 내며 목을 타고 내려간 입술이 쇄골에 닿았다.

동시에 그의 손이 사빈이 입은 제 티셔츠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아읏, 강헌 씨……!”

걸리는 것을 곧바로 툭, 풀어낸 강헌의 손이 등을 매만지다 허리를 위아래로 슬슬 매만졌다.

사빈은 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미약하게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제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야한 소리들이 입술을 타고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게 정말 내 목소리야?’

“하으…… 으응…….”

입술을 깨물며 참으려 할 때마다, 강헌은 민감한 곳만 골라 문지르고 쓰다듬었다.

허리를 타고 앞으로 넘어온 손이 조금씩, 조금씩 위로 향했다.

“자, 잠깐만요…… 거긴……!”

“진짜처럼 보여야 한다고 분명 말했던 것 같은데.”

열락에 젖은 남자의 목소리는 거칠고 탁했다.

“받아들이고 계약서에 사인한 건 당신이야.”

그가 앙증맞은 귀를 베어 물며 솟아오른 탐스러운 살결을 부드럽게 쥐었다.

사빈의 몸이 크게 반동하자, 강헌은 강한 쾌감과 욕정을 느끼며 으르렁거렸다.

“이, 이제 그만…… 너무, 더는…….”

“너무 빨리 끝내면 의심할 겁니다.”

그의 손끝에서 굴려지는 찌릿한 감각에 사빈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신음을 흘려 댔다.

“그리고 난 내 능력을 의심받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눈앞은 몽롱하고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강헌이 헤집을 때마다 사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쾌감을 느끼며 신음을 흘려 댔다.

박 여사님이 바로 앞에서 듣고 계시는데.

아무리 연극이라지만 이런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너무 부끄럽고 싫은데.

그때 강헌이 티셔츠를 위로 들어 올리며 쇄골을 지분거리던 입술을 아래쪽으로 내렸다.

“아……!”

뜨거운 숨결이 꼿꼿하게 굳어 버린 곳에 닿는 순간.

다리의 힘이 풀린 사빈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녀의 한쪽 허벅지를 들어 제 허리에 휘감은 강헌이 다시 고개를 들고 그녀의 입술을 물었다.

거칠고 갈급했던 방금과는 다르게 이번엔 부드러운 키스였다.

가쁘게 오르내리던 사빈의 어깨가 서서히 진정되었다.

“으응…….”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강헌의 목덜미를 꼭 끌어안으며 그의 머리칼을 헤집었다.

그러자 강헌의 목울대에서 낮고 거친 소리가 울리더니, 크고 단단한 몸을 사빈에게 완전히 밀착시켰다.

한창 더운 숨결을 주고받던 그들은 조금 크게 울리는 발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

“…….”

붉게 달아오른 얼굴, 풀린 동공, 젖은 입술.

이러다간 정말로 위험해진다.

그간 단련해 온 자제력을 한껏 발휘한 강헌은 이마 위로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엄지로 그녀의 입가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곧 식사하라고 부를 듯한데.”

“네에…….”

조금 가라앉은 사빈의 목소리를 들으니 또다시 욕망이 난폭하게 요동쳤다.

꾹. 강헌은 입가에 힘을 주었다.

그러다 사빈의 머리를 감싸 끌어당겼다.

갑자기 그의 품에 폭 안기게 된 사빈이 놀라 커진 눈을 깜빡거렸다.

“강헌 씨……?”

“진정하라는 의미로.”

그가 사빈을 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횡단보도에서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강헌은 상견례 날을 떠올렸다.

일개미를 따돌리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횡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재희를 보았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그날 본 영상이 재생되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울렸다. 평생 이 질식할 것 같은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사빈이 안아 준 순간.

떨림이 멈추었다.

“그때.”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고마웠습니다.”

사빈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줄곧.”

그 순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빈이 눈을 넘어 마음에도 들어올 것이라는 걸.

“……뭘요.”

“좀 진정됐습니까?”

여린 등을 쓸어내리던 강헌이 안았던 팔을 풀고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가쁜 호흡은 잔잔해졌고 아직 붉은 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혈색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네, 덕분에요.”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지 사빈의 볼이 다시금 붉게 물들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사빈이 그의 옷자락을 붙들자, 그가 괜찮다는 듯 어깨를 감싸 왔다.

그 모습이 이제 꽤나 자연스러워졌다.

- 본부장님, 사모님. 아침 식사 준비되었습니다.

“곧 나가죠.”

- 알겠습니다.

멀어지는 박 여사의 발소리를 듣던 사빈이 고개를 숙이고 목을 가다듬었다.

“저 거울 좀 보고 올게요.”

강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감싼 손을 놓았다.

드레스룸으로 들어온 사빈.

거울을 보며 소리 없이 절규했다.

‘누가 봐도 뭔가 하고 온 사람이잖아…….’

그가 정리해 준 것이 무색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붉게 물든 눈가와 볼, 부푼 입술.

그리고 아직 채워지지 않은 속옷.

황급히 브래지어의 후크를 채운 사빈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야한 행위였다.

이걸 앞으로 1년간 해야 한다니.

걱정이 됨과 동시에, 방금 전 자신을 품에 안고 등을 쓸어내리던 그의 다정한 손길이 떠올랐다.

‘좀 민망하긴 해도…… 괜찮을 것 같아.’

그가 잘 이끌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견고해졌다.

그리고 오해를 곧바로 대화로 풀어 나간 점도 마음에 들었다.

역시 강헌은 천문호와는 다른 사람이다.

사빈은 방금 전 박 여사의 노크로 놀라 저도 모르게 그에게 안겼을 때, 강헌이 곧바로 제 어깨를 감싸 준 것을 떠올렸다.

‘……손이 따뜻했어.’

다이닝룸.

사빈과 강헌은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이번 주 내로 기사가 나갈 겁니다.”

반찬을 집으려던 그녀가 눈을 고쳐 떴다.

“기사요?”

“내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는.”

“아…….”

그런 것도 기사로 나가는 사람이구나. 사빈은 새삼 그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깨달았다.

“발리에서 찍힌 사진과 함께 실릴 겁니다.”

아, 그렇구나.

발리에서 찍힌…….

‘응? 발리?’

발리에서 그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여 일부러 스킨십을 하곤 했다.

강헌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든가, 사빈이 그의 허리를 감고 그는 사빈의 어깨를 감싼 채 다닌다든가.

그런 모습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진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가뜩이나 지금도 민망해 죽겠는데 말이다.

그들을 본 박 여사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아서 더욱 부끄러웠다.

‘차라리 이게 나은가.’

적어도 자신에게 눈치를 주지는 않으니까.

천문호의 집에서 일하던 가사 도우미는 사빈이 뭐만 했다 하면 표정으로 감정을 다 드러냈고, 곧장 추연실에게 달려가 입을 나불거렸다.

그 사람에 비하면 박 여사는 정말 프로페셔널 했다.

“박 여사님.”

“네, 본부장님.”

“다음 주에 회장님과 저희 부부 저녁 약속이 잡혀 있습니다.”

“네, 전달받았습니다.”

“그날은 일찍 퇴근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누가 누가 더 딱딱하고 차가운지 내기라도 하는 듯 강헌과 박 여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감정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사빈은 이편이 도리어 마음이 편했다.

결혼 전에는 늘 가식적인 얼굴로 가식적인 말들을 해야 해서 지쳐 있었다.

차라리 강헌이나 박 여사처럼 서로에게 필요한 말만 하는 쪽이 좋았다.

식사를 끝낸 그들에게 박 여사가 물었다.

“차는 어디로 준비해 드릴까요?”

“난 살펴볼 보고서가 있습니다.”

“아, 저도…….”

“그럼 각각 서재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층으로 올라간 두 사람은 복도에서 어색하게 마주 보았다.

아니, 어색한 것은 사빈 혼자뿐인 듯했다.

강헌은 벌써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나만 신경 쓴 건가?’

나도 빨리 익숙해져야겠어. 사빈은 다짐하며 입가에 힘을 주었다.

“곧 어머니께서 부르실 겁니다.”

강헌의 말에 사빈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어머님께서요?”

“곧 기조미술관으로 적을 옮겨야 하니까요.”

아, 그렇지.

결혼 전, 미리 합의가 된 사항이었다.

추연실은 저를 앉혀 두고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기조그룹 며느리가 됐다지만 우리 집안이 우선임을 잊지 마라.]

[……네, 어머니.]

[유 여사한테 잘 보여서 되도록 빨리 미술관 경영권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해라. 내가 도와줄 테니까. 미술에 관해선 너보다 내가 해박하잖니.]

고상하게 표현했지만 결국 풀어 말하자면 미술관을 꿀꺽 삼키겠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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