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용서와 자유 (1)
피니에 로즈우드의 장례식에서 소티스는 그보다 더 울 수 없을 만큼 많이 울었다.
여인의 품에 다 안기지도 못할 만큼 꽃을 가득가득 채워 관을 닫는 순간까지도 소티스의 물빛 눈동자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굴러떨어져서, 그녀의 곁에 딱 붙어 선 레먼이 손수건으로 계속 짓무른 눈가를 훔쳐 주어야만 했다.
“언니가 울고 있어요.”
핀의 관 위에 흙을 덮을 때,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소티스를 보며 퀘렐라가 작게 속삭였다.
“슬퍼하는 걸 처음 본 건 아니지만…… 항상 어딘가 의연해 보였잖아요?”
“여력이 생긴 게지.”
검은 옷을 입은 알베스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이 모든 슬픔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날이 한없이 쾌청하기만 했다.
“어떤 감정이든 밖으로 꺼내려면 힘이 필요한데, 소티스에게는 그럴 힘도, 기회도 많이 주어지지 않았거든.”
“저렇게 울기도 해 봤으니까, 언젠가는 또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그래, 분명히 그런 날도 오겠지.”
악몽 같은 날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소티스와 알베스, 그리고 퀘렐라는 탈진한 나머지 한나절 동안 동굴에서 기절해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을 뜬 사람은 퀘렐라로, 그녀는 연신 투덜거리면서도 알베스와 소티스를 동굴 밖으로 끌어내고 그들에게 합류한 레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만, 산 사람만 끌어내려던 퀘렐라의 계획은 실패했다. 소티스가 핀의 시체를 끌어안고 절대로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절한 상태로도 어찌나 팔에 힘이 단단히 들어가 있던지, 도저히 떨어뜨려 놓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레먼이 와서 소티스의 이마를 쓸며 그녀의 영혼과 소통하고 나서야 두 사람을 떨어뜨릴 수 있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소티스는 내내 울적해 보였다.
“그래도 의외네요.”
“뭐가 말이냐?”
“그냥…….”
퀘렐라의 복잡한 시선이 묘비에 아로새겨진 이름에 가 닿았다.
「피니에 로즈우드, 온전한 안식 속에 깊이 잠들다.」
“에드먼드 폐하는 핀을 외면할 줄 알았거든요.”
그녀의 곁을 지키던 알베스가 물었다.
“자신을 배신했으니까?”
“아무래도 그렇죠. 괘씸하지 않겠어요? 아기가 생겼다면서 거짓말하고, 평판을 떨어뜨리고, 결국 도망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에드먼드는 핀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녀가 국경지대의 동굴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을 보내 핀의 장례를 도와주었다.
“책임을 기억하는 거지. 본인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책임…….”
퀘렐라가 냉소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사람이었다면 그토록 소티스 언니를 냉대하진 않았겠지요.”
“사람은 날 때부터 완벽하지 않단다, 퀘렐라.”
알베스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길을 잘못 든 사람도 돌아갈 기회는 있어야지. 멀리 갔던 만큼 과정은 고통스럽겠지만, 그 또한 그 사람의 책임인 거야.”
“음…….”
퀘렐라는 전부 이해한 눈치는 아니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먼드의 변화가 떨떠름하게 와닿는 건 사실이나 적어도 예전처럼 몰염치할 때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지금의 그는 핀을 외면하지 않았고, 소티스에게 자신이 내내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게 에드먼드 폐하께서, 황제로서 하는 마지막 일이 되겠네요.”
알베스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멘데즈에 일어났던 반란은 이제 완전히 불이 붙어 혁명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혁명의 중심에는 바로 아벨이 있었다.
아벨 폰 세턴 멘데즈는 멘데즈 황실의 유일한 적자였다. 게다가 북부 웰트 대공령에서 인정받은 통솔력으로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내기도 했다.
국민들은 그가 무능한 에드먼드를 대신하길 바랐다. 하나뿐인 미래를 누군가에게 걸어야 한다면 에드먼드보다는 아벨이 더 믿음직했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벨은 사람들의 부름에 응답했다. 십여 년 전, 황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며 대공령으로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는 에드먼드의 무능함, 소티스의 부당한 폐위와 핀의 거짓말이 가져온 혼란을 나서서 비판했다.
아벨과 국민들은 에드먼드에게 황위를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아마 에드먼드가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면 무력충돌은 불가피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곧이던가?”
알베스가 물었다. 퀘렐라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네, 열흘 뒤예요. 저희가 황성에 도착할 때쯤이겠네요.”
에드먼드 레 세턴 멘데즈는 황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약속한 시일 안으로 자신의 형제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이며, 수도를 떠나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마저 덧붙였다. 그간의 행보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에드먼드의 진의를 의심했지만, 어쨌든 진실은 약속한 날이 되면 밝혀질 것이다.
“돌아갈 수 있는 기회…….”
알베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퀘렐라가 물었다.
“알베스 님께서는 에드먼드 폐하께서 황위를 포기하는 게, 일종의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알베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그리고 그 의지를 나타내기에 너무도 좋은 상황이지. 공교롭지 않으냐?”
“그러니까…… 지금, 이 혁명을 일부러 조장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는 대답 대신 재차 웃어 보였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퀘렐라는 알쏭달쏭한 기분이 되어서,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소티스가 레먼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럼, 에드먼드가 굳이 친서까지 보내 가며, 핀의 장례를 도와줄 테니 소티스에게 황성에 와 달라고 부탁한 건…… 돌아와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겠구나.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니까 이상하네요.”
그녀의 솔직한 말에 알베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것도 그렇구나.”
“게다가 번거롭잖아요. 베아툼이랑 멘데즈가 아무리 이웃 나라라지만, 오가는 데 하루 이틀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아직 황제라지만, 마법사를 네 명이나 오라 가라 하다니! 안 그래요?”
알베스는 그녀가 투덜거리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해 주었다.
“그래. 확실히 과하지. 심지어 나와 레먼은 대마법사가 아니냐. 원로회에서도 이 일은 언짢게 여기고 있더구나. 다만 혼돈이 소환되었던 동굴이 엄밀히 따지면 멘데즈의 영토였으니, 그걸 보고하러 간다는 핑계를 들어 주기는 했지만…….”
말끝을 흐리던 알베스가 아, 하고 탄식하듯이 덧붙였다.
“마법사는 네 명이 아니라 세 명이란다.”
“왜요? 알베스 님, 레먼, 소티스 언니, 그리고 저까지 네 명이잖아요.”
“소티스는…….”
소티스는 더 이상 마법사가 아니다.
혼돈이 완전히 사라지고, 레먼의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갔을 때 소티스에게서는 이미 어떤 마력의 자취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가진 힘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소진한 탓이겠지. 불안정한 방식으로 찾아온 힘은 쉽게 떠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알베스는 그 선택이 미련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레먼이 절반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으며, 핀의 영혼이 불완전하나마 모여들어 소티스의 영혼에 스며들었으니.
“…….”
알베스는 말없이 소티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서글퍼 보였지만, 한 점 미련 없이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최선을 다한 이들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라는 것을 그는 안다. 그래서 기특하다는 듯, 한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번거로워도 다녀오자꾸나.”
알베스가 다정하게 말했다.
“멘데즈의 일이 해결되어야 소티스도 마음 놓고 베아툼에서 지낼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 관문이라 생각하면 되겠어.”
“……알겠어요.”
퀘렐라는 투덜거리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테스타멘이 세상을 떠난 지금, 굳이 베아툼으로 일찍 돌아가야 할 필요는 없었다. 곁에 머물고 싶고, 아끼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있었으니까.
다만 수긍했다고 해서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소티스의 몸은 약하고, 부상도 상당하다. 그러니 수도까지 향하는 여정은 너무 혹독할 게 자명했다.
‘곱게 볼 수가 없네, 정말.’
그녀는 혀를 차며 소티스를 바라보았다.
소티스는 붕대를 감은 손으로 핀의 묘비를 쓸고 있었다. 몸을 낮추고 무어라 속삭이는 표정이 슬퍼 보이면서도 한없이 부드럽고 다정했다. 마치 그들 사이에 있었던 숱한 일 같은 건 전부 잊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소티스는 마법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금도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티끌만큼의 아쉬움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듯 한없이 자유로운 듯했다.
그렇구나. 퀘렐라는 여름 바람에 나부끼는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보며 생각했다.
어떤 것은 사라져야만 완벽해진다. 또 어떤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것은 사라짐으로부터 끝끝내 돌아와, 자신의 자취를 영원히 남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
알베스가 물어 왔다. 답을 알면서도 건네는 질문은 사뭇 따뜻했다.
“언니가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차라리 마법 같은 게 사라져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하고요. 물론 언니가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저는 그 바다에서 죽었겠지만, 그래도 언니는…….”
“어떤 이유로도 휘둘리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기를 바랐겠지.”
“베아툼의 마법사에게는 귀찮은 제약이 너무 많잖아요. 우리는 그걸 너무 잘 알고.”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리고…….”
핀의 묘비를 보던 퀘렐라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사라지지 않고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언제여도 좋으니까, 아주 늦어도 좋으니까.”
“그래.”
알베스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소티스의 사랑은 대단했다.
그녀는 약하고, 위태로워 어쩌면 그저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어 덮어 두고 사랑하기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티스의 사랑은 대단했다. 그녀의 사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단지 그녀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소티스가 마음에 드는 모든 것이 특별해 보이고, 조금 더 애처로워 보이고, 더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져, 기어이 그 마음이 옮은 것처럼 그것을 가엾게 여기게 한다.
그 사랑은 소티스를 슬프게 하겠지만, 동시에 그 슬픔을 이겨 낼 힘 또한 주겠지.
퀘렐라는 앞으로 달려갔다. 알베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소티스를 와락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