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페리윙클이 피는 땅 (2)
“퀘렐라 에니드, 감정 마법사지. 타인에게서 흘러나오는 감정의 결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유의 통찰력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야.”
지팡이를 든 채 앞서 걷던 알베스가 말했다.
“그러다 보니 입장상 외국인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어. 특히 멘데즈에게는 더욱. 그러니 소티스, 네가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거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네.”
“하지만 무례가 반복되어서는 안 되겠지. 다시 만날 때도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 내가 따끔하게 지적하마.”
느리게 이어지던 소티스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그건 문답이 아니었다. 마차에서 내린 이후, 알베스는 소티스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소티스는 대답을 찾아냈다. 그건 자신이 찾아 헤매는 본질에 가까웠다.
그녀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퀘렐라 님은 스카우터군요.”
“맞아. 베아툼의 최연소 스카우터로, 현재 가장 많은 실적을 올리고 있지. 주로 활동하는 곳은 북부 지역이다.”
스카우터. 베아툼 왕실 소속 마법사로, 평소에는 접경 지역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온다. 대부분 마법이 발현되기 전의 이상 증상 때문에 몸과 마음이 약해져 있겠지.
고향을 잃고 버려진 아이들. 죽음과 소외로 쉽게 내몰린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데려오는 역할을 맡은 스카우터들이 외국에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다.
“그래도…… 생각보다 친절하셨어요.”
소티스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저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데도, 조언을 해 주셨잖아요.”
레먼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지친 소티스 님을 걷게 하는 일이 어떻게 조언이 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곧게 말했다.
“연습이 돼요.”
퀘렐라는 자신의 감정을 읽어 냈다. 소티스는 확신할 수 있었다.
베아툼에 온 소티스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떠올렸던 바람은 바로 이곳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베아툼에서는 마법사를 자국민처럼 보호하는 풍습이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갈 곳 없이 버려진 이들에 대한 동질감에서 비롯된 유대였다. 자신은 예외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알베스와의 문답으로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티스는 베아툼의 도움이 필요했다. ‘규율’로서의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역대 규율들과 혼돈의 행적을 찾아야 했고, 마법사로서도 더욱 성장해야만 했다.
그러려면 우선 이곳의 국민들과 심리적인 거리감을 좁힐 필요가 있다. 혹은, 그들의 반응을 직접 살피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퀘렐라는 그 기회를 준 셈이었다.
“…….”
소티스는 주변을 차분하게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소티스 일행을 복잡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시선은, 역시나 따가웠다.
예상대로 달갑지 않게, 게다가 조금쯤은 얄밉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알아본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레먼과 알베스를 열렬히 환호했다. 이따금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거나, 절을 하기도 했다. 그저 곁을 스쳐 지나갈 뿐인데도 그들이 베아툼의 대마법사에게 가지는 경외와 호의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레먼이 그녀의 쪽으로 몸을 살짝 숙이며 물었다. 다정하게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소티스가 살짝 웃었다.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실감했어요.”
그녀가 재빨리 덧붙였다.
“물론 평소에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의 반응을 보니까…… 그걸로는 역시 많이 부족했나, 싶어서요.”
레먼이 찡그리듯이 웃었다.
“부디 평소처럼 대해 주세요, 소티스 님. 소티스 님만이라도 이 마법지상주의에서 자유로워지셨으면 좋겠거든요.”
“아하하.”
“그보다도, 아까 ‘북부’라고 하셨던데요…….”
그의 단정한 얼굴에 감탄하는 기색이 어렸다.
“조금 놀랐습니다. 멘데즈에서 여기는 남부에 속하잖습니까.”
소티스가 아, 하고 작게 입을 벌렸다.
“하지만 여긴 멘데즈가 아니라 베아툼인걸요. 마땅히 이곳을 기준으로 두어야지요.”
오는 내내 눈을 감고 수없이 상상했다. 자신이 모르는 이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생각할지. 제가 아는 것을 그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어떤 것이 어떻게 다를지.
최대한 이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서 그들의 입장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해와 배려는 상상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생각하고 노력해야죠.”
소티스가 반듯하게 걸어가며 말했다.
어느새 왕성에 거의 다 도착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일행을 구경하고 수군거렸다.
레먼이 작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네요. 그래서 소티스 님께서는 겪지 않은 것도 해내실 수 있었던 거군요.”
“겪지 않은 것?”
“사랑 말이에요.”
큼직한 손이 소티스의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소티스는 온전한 사랑을 받은 일이 적었다. 공작 부부는 그녀를 유용한 패로 취급했고, 에드먼드는 당연한 것처럼 냉대했다. 사교계의 누구도 쉽게 믿지 못했을 것이다. 마리아네스가 주는 호의는 따뜻했지만,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우정과 의리에 가까웠으니.
소티스는 그 손에 제 손을 깍지 끼며 마주 웃었다.
“그래서 많이 부족했지요. 상상이 만능은 아닌가 봐요.”
레먼은 소티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싶다는 듯 열렬한 시선이었다.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서운하지는 않으세요? 제 나라의 반응이 생각보다 더 차가워서 면목이 없습니다. 하필이면 퀘렐라를 만나서…….”
“괜찮아요.”
그녀가 고개를 들어 레먼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그런데, 레먼. 제 착각이 아니라면 그분께서 당신을 미워하고 계시는 듯했어요.”
당신은 이방인이 아닌데도요, 하고 덧붙이려던 말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아직 묻기에는 너무 이를까.
잠시 고민하던 소티스가 나중에 말해 달라고 할 때였다.
“퀘렐라는 고대어로 원망을 뜻합니다.”
“원망…….”
“밝고 쾌활한 퀘렐라를 보면서 처음에는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녀석을 어렸을 때부터 보았거든요. 불의를 참지 못하고, 화를 낼 때는 불같이 뜨거웠지만…… 그래도 누굴 쉽게 원망하는 성격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빠르게 털어 내고 용서하는 쪽에 가까웠지요.”
어쩐지 이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누가, 그 이름을 지었어요?”
“제가 아는 가장 현명하신 분이자, 퀘렐라의 숙모님이셨지요.”
왜 그렇게 알려 주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저절로 떠오를까. 그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 흐름에서, 소티스는 또다시 묻지도 않은 질문의 답을 알아내고 말았다.
“엘디카 님이시군요.”
소티스가 슬프게 웃었다.
엘디카의 조카이자 멘데즈와의 접경 지역에서 활동하는 스카우터. 그런 퀘렐라가 어떻게 소티스를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엘디카 님께서 돌아가신 뒤로 퀘렐라는 변했어요. 누구보다 혼돈을 뿌리 뽑고 싶어 했지만, ‘규율’이 될 수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초대 혼돈이 멘데즈의 바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황국에 대한 증오가 더 심해졌어요.”
“……제가 규율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저를 더 미워하실 수밖에 없겠군요.”
소티스는 알 수 있었다. 퀘렐라는 제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엘디카가 규율로서 패배했으며 그녀의 숙명이 자신에게 내려왔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내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대화로는 퀘렐라가 소티스를 싫어하는 이유만이 설명되었을 뿐, 레먼을 미워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레먼은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혼돈과 맞서 싸운 마법사 중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현재 저와 스승님 정도만이 살아남아, 대마법사가 되었지요. 퀘렐라는 살아남은 저희에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왜, 엘디카 님은 살리지 못했냐는 거지요.”
“그건 억지예요.”
“원망은 그렇게 논리적인 감정이 아니에요, 소티스 님.”
잠시 고민하던 레먼이 느리게 덧붙였다.
“게다가 저는, 퀘렐라가 저를 가장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했어요. 스승님을 잃고, 살아남은 이들 모두가 반쯤 미쳐 있었지요.”
“…….”
“퀘렐라는 그때 너무 어렸어요.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죠.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 제 상처를 돌보기에도 급급해서 녀석을 외면했고…… 그 애는 제게서 돌아섰던 이들을 미워하기 시작했어요.”
“그중 레먼을 가장 미워했던 거고요?”
레먼이 슬픈 시선으로 소티스를 내려다보았다.
“저를 좋아했으니까요.”
그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레먼은 매력적인 남자였다. 수려한 외모, 다정한 심성, 천부적인 재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누구든 그를 사랑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사랑했기에 잠시 잊고 있었다.
“퀘렐라의 마법적인 능력은 항상 발동됩니다. 그러니 그 애는 제 감정을 언제나 읽을 수밖에 없었어요. 녀석을 향한 제 미안함, 괴로움, 미묘한 유대감, 호의에 대한 거절, 그리고 동정…… 그런 것들을 보면 참을 수 없었겠지요.”
소티스는 대답 없이 그의 말을 들으며 엄지로 손등을 가만히 문질러 주었다.
그러다 왕성으로 향하는 길에 깔린 새하얀 대리석을 밟았을 때,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
“퀘렐라 님이 당신을 좋아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마음에 보답해야 할 의무는 없어요. 오히려 당신이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서 억지로 퀘렐라 님의 곁에 머물러 주었다면, 더욱 원망하고 자책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랬을까요…….”
“저는 엘디카 님을 몰라요. 혼돈과의 싸움이 베아툼에서 어떤 의미인지, 그 상흔이 사람들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도 잘 알지 못해요. 그러니 제가 아무리 그 슬픔을 상상한다 한들, 레먼이 직접 겪은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예요.”
그녀가 또박또박 말하며 손을 힘주어 잡았다.
“하지만 당신도 힘들었을 거예요. 본래 싸움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녀는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밟고 나아가며 다짐했다. 반드시 이 싸움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겠노라고.
처음에는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멘데즈의 국민들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어쩌면 끝내 ‘좋은 황후’로 남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 알지도 못한 사이에 주어진 운명을 위해서, 고결한 삶과 온전한 죽음을 위하여 규율이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제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이 오래된 슬픔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혼돈과의 싸움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