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인도하는 빛 (3)
‘혼돈’은 본래 베아툼의 마법사로, 초대 원로원을 구성하는 대마법사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법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규율을 부정했다. 마법이 사람을 해치거나 복수하는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원칙에도 동의하지 못했다. 혼돈은 자신이 강해진 만큼, 제 삶을 나락까지 굴러떨어지게 한 이들에게 복수하고 싶어 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잔인하고 비참한 앙갚음이었다. 마법사를 비롯한 베아툼의 사람들은 세상의 평화와 법칙을 깨뜨리는 그녀를 마녀라 부르며 배척하기 시작했다.
마녀는 다른 이의 영혼을 파괴하고, 그들이 살아가야 했을 시간을 빼앗아 자신이 누렸다. 그런 식으로 영생을 살아가며 자신을 배척했던 모든 이들을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하는 것이 단 하나의 목표였다.
그리고 그런 마녀를 숭배하고 그녀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세력이 존재했다.
“악령술사, 라고요…….”
“그렇습니다. 악령술사들은 저들끼리 비밀리에 모여 혼돈을 이 세상에 불러들이려 합니다. 찾는 대로 붙잡고는 있지만, 워낙에 제 정체를 집요하게 숨겨서 발견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악령술사들은 대개 금지된 마법, 즉 저주 같은 것들을 연구하거나 사용하다가 발각되는 것이니 처벌도 엄격할 수밖에 없다고 레먼이 설명했다.
“들키면 어떻게 해요?”
“곧장 ‘참회의 탑’에 가둡니다. 그리고 평생 나오지 못하게 하지요.”
소티스는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없이 누군가를 해치거나 저주하며 살아갈 이들이었을 것이다.
마법은 그저 기적에 가까운 놀라운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방향이 잘못되면 이렇게 나라 전체가 시름에 잠길 수도 있구나.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사실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혼돈은 상당히 강력한 마법사였던 것 같네요. 그런 영혼을 그저 부르고 싶다고 해서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렇습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악령술사 중에서도 이따금 천재적인 마법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이 있어요. 세기에 한 번쯤 볼까 말까 한 천재가요.”
레먼은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혼돈은 존재만으로도 위협적이지요. 형체가 없을 때부터도 그래요. 몸집을 불리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좀먹고, 영혼을 망가뜨리며 비탄을 양분 삼아 움직입니다.”
“애나에게 그랬던 것처럼요?”
“맞아요. 어쩐지 생자의 영혼이 갑자기 분리되는 것도 이상했고, 분리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소멸 직전까지 갔던 것도 느낌이 안 좋았습니다.”
“빈민가의 영혼들이 악령으로 변했던 것도 어쩌면 혼돈과 관련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서, 적당한 육신을 그릇 삼아 온전히 되살아나게 되면……. 그때는 정말로 싸워 이기기 어렵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강해지기를 선택한 존재를 이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 그녀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다행인 건, 혼돈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겁니다.”
“약점이요?”
그녀가 반색하며 물었다.
혼돈이 멘데즈 황국에 나타난 탓에 죄 없는 사람들이 죽거나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게 뭔가요, 레먼? 그 약점이라는 것만 잘 알고 대처한다면 혼돈을 쫓아내거나 없앨 수 있다는 거죠?”
“비슷합니다.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혼돈이 세상에 현현하게 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힘을 가진 마법사가 태어납니다. 혹은 뒤늦게라도 마법이 발현되기도 하고요. 힘에는 균형과 법칙이 존재하거든요.”
그 말을 들은 소티스는 문득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법사가 될 아이들은 보통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린다고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마법적인 소질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티스는 스무 살이 넘도록 마법적인 징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영혼에 관련된 일을 쫓아다니다가 별안간 각성해 버렸다. 그것도 혼돈과 관련된 일에 맞닥뜨렸을 때.
이게 정말 우연한 일일까?
“혹시…….”
“소티스 님은 아닐 겁니다. 절대로.”
레먼이 어찌나 딱 잘라 말하던지, 반쯤 농담 삼아 말이라도 꺼내 보려던 그녀가 무안해질 정도였다.
조금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그녀를 보고 레먼이 미안한 듯 웃었다. 그는 소티스의 손을 조심스레 쥐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신이 규율의 마법사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규율…….”
“혼돈을 잡을 힘을 가진 마법사를 규율이라고 부르거든요.”
“왜 제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소티스는 실망감을 애써 숨기며 물었다. 혼돈을 잠재울 만큼 대단한 힘을 가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
레먼이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규율의 마법사들은 거의 혼돈과 함께 죽었거든요. 초대 규율도 그랬고, 선대 규율이셨던 제 옛 스승님도 그랬습니다.”
“…….”
“대마법사 세 명과 마탑 소속 마법사 열 명이 혼돈과 싸우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선배들이 모두 죽었기에 페리윙클 마탑을 책임질 이가 저밖에 남지 않았지요. 살아남았다는 사실조차도 불명예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저는 너무 어려서 전력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치스러웠어요.”
이렇게 젊은 나이에 마탑주가 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설명한 레먼이 씁쓸하게 웃었다.
“마법사들이 모여 만든 추방 술식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던 게 희생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이후로 혼돈이 보이지 않아, 마법 자체는 성공한 줄로만 믿었는데…….”
제 스승과 선배의 죽음이 헛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욱신거렸다.
레먼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법이 실패해 혼돈이 베아툼에서 도망친 것 같습니다. 마지막 육신이 빨간 머리의 여인이라고 했으니, 그대로 멘데즈로 활동 무대를 옮긴 듯해요.”
“그래서 황국 곳곳에서 영혼 문제로 고생한다는 보고가 올라왔군요.”
“여지없는 베아툼의 실책입니다. 당장 남쪽으로 사람을 보내 지원을 부탁해야 할 일입니다. 에드먼드 폐하께도 알리는 게 좋겠어요.”
차라리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레먼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심호흡했다.
혼돈은 그들의 실수이자 그의 원수였다. 마녀가 어디에 있든, 레먼은 그것을 반드시 붙잡아 이루지 못한 과업을 해낼 것이다.
그것만이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의 소원이었으므로.
“소티스 님을 만나서 다행인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네요.”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러 멘데즈에 오지 않았더라면 시기가 더 늦었을 것이다. 정말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오싹하기까지 했다.
소티스는 그의 말에 살짝 웃었으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에드먼드 폐하께서 제 말을 믿어 주실지 모르겠어요. 제 입지를 위해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생각하실지도요. 그러니, 만일을 위해서라도 마법을 더 연습해야 해요.”
레먼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하기 전에 일단, 소티스 님의 적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영혼에 관련된 마법인 것까지는 알겠지만, 영혼 마법도 여러 갈래로 나뉘거든요. 마력이 부드럽게 흐를 수 있도록 연습도 해야 하고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소티스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마력의 흐름…….”
그녀는 제 가슴께에 손을 얹어 보았다. 이전과는 다른, 따스함이 안에서 느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마력처럼 느껴지는 힘은 그녀의 몸 안쪽에 가만히 굳어 있을 뿐이었다. 애나를 이끌어 올 때는 어떻게든 했던 것 같은데, 그 감각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소티스가 아쉽다는 듯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쥘 수 있다면 더 편했을 텐데요.”
“그런 오감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라는 게 아쉽죠. 쉽게 설명해 드릴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
레먼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작게 탄식하더니 이어 말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전해 드릴 수는 있어요.”
“어떻게요?”
“잠시 눈을 감아 보시겠어요? 몸에 힘을 빼시고, 저를 믿어 보세요.”
그녀는 고민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소티스는 레먼을 믿었다. 적어도 그가 그녀를 망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몸의 힘을 완전히 빼고, 무엇을 전해 줄지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이내 목덜미에 따뜻한 손길이 닿았다. 그녀의 어깨가 움찔 떨렸으나 그 미세한 긴장도 금세 풀어졌다.
레먼은 그녀의 고개를 제게 가까이 끌어당겼다. 소티스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더 가까워지다가 이내 초점이 잘 맞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였다.
정적 속에서 규칙적으로 흩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숨소리만이 들렸을 때, 레먼은 이마를 조심스레 맞댔다. 그리고 자신의 마력이 몸 안을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그 감각을 전달했다.
“…….”
그건 정말 이상한 감각이었다. 따뜻한 샘물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느릿하게 흐르는 것 같았다. 심장이 뛸 때마다 온 핏줄에 생명력이 퍼져 나가는 것처럼, 마력 또한 밀물처럼 밀려들어 전신을 가득 채웠다가 썰물처럼 우아하게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것은 쉽게 빨라지지도 않았고, 어딘가에서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그저 어떤 숙명을 따르듯 묵묵히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레먼이 팔을 짧게 움직였을 때, 마력이 일제히 그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은 이내 손바닥 부근에서 둥그렇게 뭉치며 저들끼리 열을 냈다.
“제 손을 찾아서 잡아 보세요.”
소티스는 눈을 감은 채로 손을 움직였다. 보고 있지 않은데도 레먼의 손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마치 그의 마력이 그녀를 옳은 곳으로 인도하는 듯했다.
빛을 머금은 손은 따뜻했다. 그의 마력이 어떤 모양인지, 어떤 촉감이며 어떤 온도를 가졌는지, 그저 닿은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백 마디의 설명보다 더 또렷한 경험이었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마법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 아닐까요?”
레먼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소티스가 새로이 나타난 규율이 아니기만을 진심으로 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