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안식과 희망(1)
빈민가의 뒤편, 쓰레기가 잔뜩 쌓여 좁다란 길을 따라 오르면 어두컴컴한 야산이 나타났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조차 뿌리내리지 못한 산은 조금만 올랐는데도 불쾌한 냄새로 가득했고, 불온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더 가까이 오세요. 아니면 불을 소티스 님께 드릴까요?”
마법으로 만들어 낸 작은 불빛을 손 위에 올린 채 앞서가던 레먼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최대한 안전한 길로 소티스를 이끌며, 그녀의 걸음걸이나 몸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한참 이어지던 언덕에 숨을 조금 몰아쉬던 그녀가 웃었다. 소티스는 맞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괜찮아요. 잘 따라갈게요. 앞의 상황은 어떤가요? 길 잃은 영혼들이…… 꽤 많다고 하셨죠?”
레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버려진 시체들은 본래의 길을 잃었고, 영혼들이 고스란히 그 근처를 떠돌고 있었다.
다행히도 제 본질을 잊을 만큼 악의 있는 영혼은 많지 않았다. 대개 살아생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슬픔에 잠겨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야산을 맴돌고 있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잠깐이라도 좋으니 다시 살아나고 싶은 거겠지.
대개는 레먼의 마법으로 인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몇몇 영혼은 원망과 분노로 얼룩져 있었다. 비참한 삶을 이어 가는 것보다 함께 죽는 것이 나을 거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보아, 그런 이들이 빈민가의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듯했다.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누군가 말을 걸더라도 대답하지 마세요.”
그의 호박색 눈동자가 주변을 꼼꼼히 훑었다. 영혼들은 마법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소티스도 안전했다.
그렇게 얼마나 올라왔을까. 어느덧 어둑한 시야에 허름한 산장의 모습이 담겼다. 소티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금방이라도 앞서 나가고 싶은 듯 발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레먼은 그녀를 조심스레 막았다.
“영혼들이 술렁거리고 있어요. 겁에 질려 있습니다.”
“무서워하고 있다고요? 뭘요?”
“아마…….”
끼익.
널빤지를 비뚤비뚤하게 덧대 못질한 문이 열렸다. 노인은 뼈와 가죽만 남을 정도로 앙상하게 말랐고, 등이 비틀렸으며 눈 밑이 움푹 꺼져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걸어왔다. 소티스는 적대적인 눈길이 자신을 훑는 것을 느꼈다. 서늘하고 불쾌한 기분이 등줄기를 따라 내달렸다.
“뒤로 물러서 주세요, 소티스 님.”
레먼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빛을 꺼뜨리더니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이루어진 주문을 몇 개 읊조렸다.
이내 두 사람의 중심으로 주홍색 빛이 천천히 퍼져 나가더니, 복잡한 문양을 그리며 환하게 타올랐다.
묘지기에게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던 영혼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고대 마법이잖아!]
[베아툼의 마법사가 왜 여기에 있지?]
영혼의 기척을 읽는 마법이 발현되자, 영안이 없는 소티스에게도 영혼들의 모양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커먼 덩어리가 노인의 굽은 어깨, 등, 허리춤에 다닥다닥 매달려 흐물거리는 팔을 뻗고 있었다. 마치 노인을 통째로 삼키려는 것처럼.
묘지기의 번들거리는 눈이 소티스를 보고 있었다. 집요한 시선은 그녀의 정체를 가늠하는 듯했다.
“영혼을 떼어 내고 나면 묘지기가 숨을 거둘지도 모르겠습니다. 생명의 기척이 거의 남지 않았어요. 빈 몸을 가지기 위해 영혼들이 다투고 있는 듯합니다.”
레먼이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손끝으로 문양 몇 개를 그려 냈다. 그가 뒤를 잠시 돌아보았다. 소티스가 조금 더 물러나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 주기를 바라는 듯했다.
그러나 스스로 빛을 발하는 마법사의 눈을 본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국에서 온 이조차도,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이렇게 최선을 다한다.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제게 말해 주세요. 고칠 수 있는 게 있다면 고치겠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어렵더라도 상관없어요. 적어도 모르는 것보다는 나아요. 저는 멘데즈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이곳에 왔으니까요.”
마법 때문에 악령들이 주춤거렸다. 그러나 여전히 적대적이었기에, 소티스는 몸을 뒤로 빼며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 했다.
“황후 때문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황후 때문이라고요?”
묘지기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무리하게 성을 짓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죽어 나갔어. 공작은 죽은 사람들을 짐짝처럼 내다 버렸지. 그뿐인가? 죽어 가는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며 시체 사이에 끼워서 내게 보냈어.”
“……공작.”
여인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사내의 목소리 같기도 한 영혼들의 음성이 묘지기와 섞여 기묘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메리골드 공작.”
“…….”
“딸을 황후로 만들었으니 득의양양하겠지. 게다가 상단을 뒤에 업고 돈까지 많아졌으니, 무얼 하겠어? 서쪽의 빈 땅을 사들여 성을 새로 짓는 거겠지! 숲을 밀고, 강을 메우고, 돌을 부수고, 벽돌을 수없이 쌓아 올리고!”
부와 지위를 가진 아버지가 수도 근방에 터전을 마련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 기울어져 가는 허름한 저택이 아니라, 작게나마 영지가 딸린 진짜 성을.
그러나 그건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메리골드 공작은 조급해했고, 사람들을 돈으로 샀다. 말이 좋아 샀지, 가난한 사람들을 부려 먹는 것에 가까웠다. 많은 돈을 주는 척하며 잡아 두고 끝없이 착취하는 방식으로.
소티스는 아버지와 대립할 수 없었다. 에드먼드가 그녀를 못마땅히 여기는 상황이었으니, 아버지와 협력해야만 국무를 처리하는 데 자신의 의견을 조금이나마 더 피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메리골드 공작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일이 되고 말았다.
“왜 황성에 항의서를 보내지 않았나요?”
그러자 묘지기가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글을 먼저 배웠는지나 물어보시오! 배울 시간이 있는지도! 게다가 알면 무얼 하겠소. 이미 죽어 버린 이들은 말이 없지, 안 그래?”
“…….”
“황후는 현명한 성정을 타고났다지만, 그렇다고 다른 귀족들과 썩 다른 건 아니야. 모든 일을 책상 앞에서만 처리할 뿐이지. 그 얼굴조차 제대로 보여 준 적이 없었어. 차라리 공작의 패가 되지 않았더라면 억울하게 죽은 이가 적기라도 하겠지.”
죄책감과 슬픔이 울컥 치밀었다. 소티스는 한 발짝 앞으로 더 나섰다. 레먼이 옆에서 말리듯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게 들렸으나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홀린 듯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어요.”
변명처럼 들리는 말이었으나 진심이었다.
아무리 똑똑하게 군다고 한들, 서른도 되지 않았다. 황후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다 돌볼 수는 없었다. 메리골드 공작의 악행을 그녀는 알지 못했고, 알았다 하더라도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제대로 된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요.”
묘지기의 말을 자른 그녀가 슬프게 웃었다.
죽은 이들에게 그런 핑계는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한다. 국민들이 사랑하는 황후라고 했지만, 그 국민에 소속되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팍팍한 이들이 고작 몇 푼을 벌겠다는 이유로 메리골드 공작의 성을 짓다가 다치고 죽어 갔으며, 가난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들은 차라리 그들에게 어떤 관심 없는 황제가 나았을 것이다. 황후의 모든 것이 기만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나는 당신을 알아.”
여인의 영혼 하나가 묘지기의 입을 빌려 말했다. 낮고 음산한 목소리였다.
레먼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마법을 준비했다. 여차해서 그 영혼이 소티스를 공격하려고 한다면, 소멸시켜서라도 막을 생각이었다.
“당신을 아주 오래전에 보았어. 그래, 라일락 같은 보랏빛 머리카락에 물색 눈동자…… 아주 연약하고 우울해 보이는 인상이었지. 흉년이 들었던 해, 새 황태자비를 들였다며 사람들이 수군거렸어.”
“…….”
“조그만 마차의 창문 안으로 그 얼굴이 보였어. 우리를 바라보기만 했지. 말도 걸지 않았고…….”
소티스가 묘지기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자, 레먼이 소리쳤다.
“위험합니다, 가까이 가지 마세요!”
그러나 소티스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저 노인을, 그리고 노인에게 달라붙은 모든 영혼을 차분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맞아요. 그건 저였어요.”
“소티스 님!”
“소티스 메리골드, 황제가 미워하는 황후. 국민을 위한다면서 황성 밖으로 몇 번 나오지도 않은 귀족. 그리고 메리골드 공작의 딸.”
“…….”
“미안해요.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조차도 기만으로 달리겠지만, 정말 미안해요.”
그녀가 팔을 뻗어 묘지기를 끌어안았다.
레먼은 재빨리 소멸 마법을 준비했다. 손끝 하나만 움직여도 소티스에게 가까이 다가온 영혼은 갈기갈기 찢겨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공격은커녕 술렁거리고 있었다. 원망과 증오로 일그러져 있던 이들조차도 주춤하며 소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울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가 너무 늦었어요. 왜 한 번도 직접, 혼자서 바깥을 나와 진짜 세상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
“저는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귀족 사회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그럴싸한 정책을 내놓아야만 했죠. 실재하는 정책이 아닌, 이론적인 제안을 하나라도 더 내놓아야 했어요. 그럼 사랑받지는 못해도, 존경받을 수는 있었을 테니까. 국민들이 그런 시도에 기뻐한다고 생각하고, 멋대로 안주했어요.”
소티스가 흐느끼며 덧붙였다.
“맞아요. 그건 온전히 저를 위한 거였어요. 사람들의 삶을 도구로 생각한 것이나 마찬가지겠지요. 저는 그런 쓸모에 집착한 나머지 모든 것을 제 기준으로 재단하고 살펴봤어요. 마법사를 청하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이곳에 혼자 와 봤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적어도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을까요?”
그녀의 목소리가 먹먹한 슬픔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제는 그 마차에서 내릴게요.”
소티스가 묘지기를, 그리고 모든 죽은 이를 힘껏 끌어안으며 말했다.
“행복한 삶을 줄 수는 없었지만, 편안히 안식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제 입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서.”
레먼은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시커멓게 눌어붙어 있던 영혼들이 주춤거리며 묘지기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그들은 혼란스러워하며 저들끼리 말을 주고받았다.
[믿을 수 있나?]
[어차피 귀족이잖아? 다 똑같다고!]
[그래도…… 어떤 귀족이 우리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 주었지?]
[정말로 딸이 아비를 막을 수 있을까? 이제는 황후도 아니잖아?]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어떻게 하지?]
그들의 고민은, 소티스의 작은 질문에 의해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름을 알려 주세요.”
그들 중 굵직한 영혼 몇 개가 묘지기의 입을 빌려 물었다.
“알아서 무엇 하려고?”
“남은 가족이 있다면, 찾아가 당신의 말을 전해 주고 싶어요.”
“…….”
“아, 그리고…….”
그녀가 발갛게 물든 눈가를 문지르며 묘지기를 놓아주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꽃은요? 시간이 많지 않아 장례를 한꺼번에 치러야 할 것 같은데…….”
어느 영혼이 말했다.
[믿어 보자.]
[…….]
[뭔가 달라질 것 같아.]
영혼들이 소티스를 일제히 응시했다.
남루한 옷을 입고,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오느라 지쳐 보이는 여인이었다. 묘지기를 한참이나 끌어안고 있었던 탓에 팔과 옷에는 더러운 것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해 마른 모습은 수척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 물빛 눈동자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결의로 타오르는 눈동자는 꼭 푸른 불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묘지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의 이름도 알려 주세요. 죽은 사람들의 유일한 친구셨잖아요.”
이윽고, 묘지기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원망과 미움, 슬픔이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온도였다.